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민주당은 왜 이 모양일까... 지금 필요한 노무현의 이 말

[성지훈의 농담번역실] 품위라는 것이 사라진 시절에 대하여

26.08.12 07:09최종 업데이트 26.08.12 07:09

한 대선후보 토론회 모습. 자료사진.국회사진취재단

'품위'라는 것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또는 인격적 가치나 품격. 사회생활에서 각자의 지위나 위치에 따라 마땅히 지녀야 할 품성과 교양의 정도를 말한다.

어느 대선의 TV 토론회에서 대쪽 같은 성품으로 유명했던 판사 출신의 보수정당 후보는 재야 시민운동 진영의 인권변호사 출신 후보에게 "과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던 입장과 지금의 입장이 다른데, 말을 바꾼 것 아니냐"라고 물었다. 인권변호사 출신 후보는 당시의 생각과 지금은 달라진 생각을 설명하면서 젊은 초선 시절의 미숙함을 너무 엄히 꾸짖지 말아 달라고 했다. 보수정당 후보는 껄껄 웃었다.

이 대화 안에는 색깔 공세에 이어 예나 지금이나 한국 정치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한미동맹과 통일관에 대한 공박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인권변호사 출신 후보는 지지 기반에 다소 실망을 줄 수 있어도 과거와 지금의 입장이 조금은 달라졌음을 인정해야 했고, 보수정당 후보는 여전히 휴전 중인 나라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비롯한 안보 정책에서 보수정당이 여전히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강조했다.

얼굴을 붉히고 대화 상대의 말을 끊고, 인격을 모욕하고 당장 확인이 되지 않는 거짓 정보로 상대를 공격하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어른스럽고 품위 있는 말로 서로를 공격했고 자기를 방어했으며, 국민은 그 대화에서 각자의 정책적 지향과 오류, 한계를 모두 엿볼 수 있었다. '품위'라는 것이 어울리는 대화였다.

'책임'이라는 것도 아직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노동자와 농민의 자식'이라던 대선후보가 농민대회에 연설하러 갔던 날,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은 달걀을 던졌다. 그 자리에서 대선후보는 "개방을 최대한 막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질 수 없는 장담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뉴스는 대선후보에게 달걀을 던진 농민을 탓하기 바빴지만 정작 대선후보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달걀이라도 맞아야 화가 좀 누그러들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를 하는 사람의 '책임'에 대해, 그리고 정치하는 사람이 감내해야 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가치'라는 것이 살아있는 시절도 이제는 꿈같지만 있었다. 선거에서 이긴 적보다 진 적이 더 많았으면서 결국엔 대통령이 되었던 어떤 정치인은 선거에 대해 "원칙 있는 승리가 첫째요, 다음은 원칙이 있는 패배, 최악은 원칙도 없는 패배"라고 말했다. 정치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일 뿐, 무엇이 될 것인가를 겨루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 무엇을 위해 무엇이 되기 위한 것이 선거이지, 선거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할 수는 없다는 것.

품위와 책임과 가치. 작금의 정치에서 가장 멀리 있는 말은 이런 것들일까. 이제 이런 말들이 아련할 지경이다.

묻고 싶은 단 하나의 질문

9일 오후 대구 인터불고 엑스코 호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후보자들이 손을 잡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현재 전당대회가 한창인 여당의 어느 최고위원 후보는 상대 후보가 연설하는 동안 야유를 보낸다. 단상에 올라서는 '한 표 줍쇼'라고 구걸한다. 연설은 정책과 비전보단 악다구니와 상대에 대한 모욕과 조롱에 그친다(그 후보만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이런 행태에서 자유로운 인사가 지금 한 명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물론 오늘날은 '품위'라는 것이 무엇을 담보하느냐고 묻는 시대다. 그런 시대를 만드는 데 지금의 정치가 아주 큰 일조를 했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렇다면 이 최소한의 품위마저 내던져버린 천박함은 또 무엇을 담보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천하를 얻었다는 어느 고사를 떠올리기에 그 천박함으로 얻을 수 있는 천하라는 것은 고작 당내 공천권 정도 아닌가.

세금으로 지원금을 수백 억씩 받고, 정부의 정책 결정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정당의 지도부가 품위는 다 내던지고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에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표를 구걸하거나, 상대를 박쥐라고 쏘아붙이고,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당원들은 모두 '일베'라고 쏘아붙이는 천박함으로 얻는 자기들의 '천하'라는 게 고작 공천권이라니. 그들의 천박함에 우리 사회 전체가 오염되고 있는 것만 같다.

과거의 정치가 더 아름다웠다거나 선량했다는 향수에 젖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절에도 야합과 모략이 있었고, 날 선 말과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적 규범을 위반하거나 품위를 잃은 언어를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합의는 있었다. 그래서 품위와 천박함을 가르는 요체는 선악이나 시비보다는 어쩌면 부끄러움이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자기에게 적용할 줄 아는 염치다.

자기에게 비판적인 언론의 취재를 방해하고, 카메라를 가로막는 것은 정치인의 '책임'일 수 있을까. 지난주 그 정당의 전당대회장에선 특정 언론사의 취재 카메라를 특정 정치인의 보좌진이 가로막는 현장이 포착됐다. 명백한 취재 방해 행위다. 정당한 취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는 정도와 방법에 따라 업무방해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등이 문제 될 수 있다.

최민희 후보'의 명찰을 단 사람이 취재중인 <오마이TV> 기자들의 카메라를 막아서고 있다.오마이티비

더구나 취재를 노골적으로 방해하던 그 국회의원은 '기자' 출신이다. 진보적 매체의 기자였던 그의 보좌관이 카메라 렌즈를 막아서는 장면은 차라리 상징적이었다.

품위가 있었고, 책임을 졌던, 그러니까 결국 자기를 부끄럽게 여길 줄 알고, 자기를 규제할 줄 아는 염치가 강요되던 시대의 정치인들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을 갖고 있었다. 상인의 현실감각과 서생의 문제의식으로 수십 년 긴 역사를 만들어왔던 어느 정치인은 마침내 필생의 꿈이었던 통일의 대원칙을 만들었다. 또 '바보'라는 별명조차 후하다고 할 만큼 제 잇속이라고는 못 찾는 것 같던 그는 역대 가장 사랑 받는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것으로 그토록 바라던 '국민통합'이라는 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정치인으로 남았다.

하여 결국 묻고 싶은 것은 단 하나의 질문이다. 당신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한 표를 구걸하고, 엊그제까지 동지라고 부르던 이들을 박쥐라고 모욕하고, 몇 년 전까지는 우리 편이라던 언론사의 취재를 방해하는 이들이 필생을 두고 쥐고 있는 정치적 질문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도 옛날을 이야기했지만, 옛날이야기를 하느라 정작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정치란, 그보단 살아가는 모든 일이란 그저 앞으로의 시간을 사는 일이다. 그럼에도 다시금 옛날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과거에 기대어 앞으로 나가는 역사를 훼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멋대로 꾸며낸 과거로.

그들이 '노무현의 이름을 팔아' 얻고자 하는 정치적 이익에, 또는 어떤 정파적, 진영주의적 소꿉놀이를 그가 그곳에서 본다면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좋아했고, 또 미워했고, 그래서 지금도 기억하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품위 #책임 #민주당 #노무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