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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춘추정병시대] “쓸모요? 그런 생각하면 정병 와요”…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수정 2026.10.26 06:56

④모자무싸 - 존재 가치를 찾아서

최민석(28·가명)은 폭설을 기다린다. 산간 지역인 고향이 눈으로 뒤덮이면 건설 중장비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돈다. 고립된 차량들을 끌어 올리면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있던 이들이 연신 감사 인사를 한다. 그날들을 떠올리는 민석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나도 쓸데가 있구나 싶었어요.” 건설 현장에서도 중장비를 몰지만 보람을 느낀 적은 드물다. “올해만 하고 그만둬야지” 한 게 벌써 몇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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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삶의 이유를 찾고 싶지만 쉽지 않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하는 일에 몰입하고, 노력에 걸맞은 인정을 받고 싶다.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에서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보람이나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자리는 문이 좁다. 그 ‘좁은 문’ 밖에는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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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 주변의 ‘삼촌’들은 “젊은 놈들”이 건설일도 안 하려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민석은 “배우러 가는 애들을 수없이” 봤다. 한 친구는 포클레인 기술을 배우려고 현장에서 월 30만원 받으며 1년을 일하다 관뒀다. 어른들은 “옛날에는 맞으면서 배웠는데 너네는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말한다. 낮은 임금과 모욕을 견디는 일이 배움의 과정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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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청년이 일터에서의 자신을 “톱니”나 “부품”에 빗댔다.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장치 속에서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이다. 행사장에서 일하는 오세준(26·가명)은 스스로를 “하등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저라는 존재가 치워져도 이틀 만에 바로 채워질걸요.” 존재 가치를 떠올리는 것조차 버겁다. 직장인 고예원(26)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 쓸모요? 그런 생각하면 정병(정신병 줄임말) 오는 거에요.” 경향신문이 만난 청년 100명 중 일에서 의미를 느끼는 이는 14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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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자리도, 역할도 내주지 않는 시대. 청년들은 부나방처럼 속할 곳을 찾아 유영한다. 그 끝에서 민석처럼 설국을 발견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세계에 가닿을 수도 있다. “대통령을 구하러” 서울행 기차에 오른 은둔 청년처럼, ‘엑셀 방송’ 최하위 계급 출연자에게 하룻밤 사이 500만원을 쓴 삼수생처럼. 환대를 찾다 사이비 종교의 입구까지 다다른 취업준비생도 있다. 몇몇 문제적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아 곪아가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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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속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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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주어지면 청년은 달라진다. 일이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준서(24·가명)는 최근까지 중앙행정기관에서 대학생 인턴을 하며 “(그 조직이) 나를 필요로 한다”고 느꼈다. 그는 “하루에 14~15시간을 일해도 뭐 맞은 것처럼 설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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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런 자리가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준서도 본격적으로 취업준비에 나서며 가장 걱정하는 건 ‘지방대’ 꼬리표다. 사회는 끊임없이 학벌과 경력 같은 것들로 사람의 가치를 가늠한다. 청년에게 삶의 의미는 자격을 갖춰 ‘획득’해내야 하는 것이 됐다. 하지만 그 잣대에 맞출 기회와 자원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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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생 한소율(20·가명)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직장인도 아니니까요.” 집에서도 그의 자리는 없다. 부모는 “한 번에 대학 간” 언니에게만 고기반찬을 준다. 고교 졸업 후 사회에 뛰어들었던 부모는 ‘인서울 대학’만이 다른 세계로 나아갈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그건 소율도, 또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고3 교실에선 “지방대를 왜 가냐”는 말이 심심찮게 들렸다. 사회가 그어놓은 대학 서열의 잣대가 가정도, 학교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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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소율은 가장 절친한 친구 A를 잃었다. 한양대에 붙었다던 A는 사실 지방대에 다니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이 탐정처럼 집요하게 달려들어 이 사실을 밝혀냈다. ‘한양대생 연기’를 지속하는 A에게 소율이 “알고 있다”고 했을 때, 둘의 관계는 끝났다. 성적과 출신 대학이 곧 사람의 ‘값’이 되는 세상에서 ‘지방대’는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해서라도 일단은 숨겨야 할 치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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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율과 그의 친구가 사회가 요구하는 자격에 가닿지 못해 헤매고 있다면, 김태영(31)은 그 기준에 어떻게 닿는지조차 알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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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의 가정은 부모의 이혼으로 두 차례 무너졌다. 집에서조차 온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 태영의 사정은 공부, 대학, 진로 등 수많은 선택지에 여파를 미쳤다. 화장품 방문판매로 가계를 지탱해야 했던 어머니의 조력은 기대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버티는 곳이 된 학교 역시 다른 길을 일러주지 않았다. 태영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들인 만큼 결과가 쌓이는 게임만이 그의 삶에 “루틴”을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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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직업훈련 학원에 등록했고, 취업을 시도했고,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곳엔 그를 이끌어줄 여력이 있는 어른도, 제도도 없었다. 쉴 새 없이 호통만 날아들었다. 그때마다 태영은 “못하는 나”를 탓하다 그만두곤 했다. 태영에게 ‘좋은 직장’이란 “초심자가 일을 잘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지만, 그마저도 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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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태영에게 어딘가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준 건 온라인 정치 커뮤니티였다. 매일 커뮤니티 안을 맴돌며 “우리”라는 공감대는 두터워졌다. 2025년 1월, 게시판을 도배한 ‘대통령을 구하러 가자’는 구호가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구속 위기의 대통령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사회에서도 제 자리가 보이는 듯했다. 10년간 모은 게임 아이템을 팔아 여비를 마련했다. 다음날 곧장 서울행 기차에 올라탔다. 그가 향한 곳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이뤄진 서울서부지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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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네가 필요하다.” 가정에도, 학교에도, 일터에도 제 자리가 없는 청년들에게 이 한마디는 달콤한 구원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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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율에게 그 말을 건넨 건 새벽의 엑셀 방송이었다. 지난 8월 어느 자정 무렵, 우연히 본 유튜브 화면에선 한 남자가 울고 있었다. 돌아가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후원금 액수로 계급을 매기는 그 방송에서 최하위권인 그는 “쓰레기”로 불렸다. 소율은 그에게서 자신을 봤다. 처음엔 짧은 응원이었지만, “네가 날 살리고 있다”는 말에 1만원을 보냈다. 그 뒤로 5만원, 10만원, 100만원까지. 동틀 무렵, 남자는 1등이 됐다. 소율이 찾던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이 사람한테만큼은 필요한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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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찾은 곳은 쉽게도 허물어졌다. 소율이 현실을 깨달은 순간은 밤새 고맙다고 울먹이던 남자가 “환불은 안 돼”라며 선을 그은 때였다. “이 사람은 돈으로 생각하는 거구나. 멍청하게, 나만 진심이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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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도 마찬가지였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가담했다가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태영은 한동안은 정치 집회에 나갔다. ‘서부지법 청년’이 된 그를 찾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의 열기는 이내 식었다. 이제 그는 집회에서 만난 50대 남성이 마련해준 거처에서 성경을 읽는다. 세상을 뒤엎어야 한다는 남성과의 대화는 자주 어긋나고, 여전히 “애초에 안될 놈”이라며 스스로를 다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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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은(27·가명)에게도 그런 온기가 찾아온 적이 있다. 3년 전 나은은 끝이 보이지 않던 기나긴 취업준비 기간을 겪고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러 온 서울엔 기댈 곳이 없었다. 그러던 차 동네 중고거래 앱에서 “무료로 자소서를 첨삭해주겠다”는 공무원 ‘언니’를 만났다. 두 달간 자소서를 고치며, 그의 소개로 들어간 모임 사람들과는 주말 나들이를 나갔다. “제가 뭘 하든 ‘좋다, 잘한다’고 말해줬어요.” 낯선 도시에서 처음 받아본 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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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쯤 지나자 수상한 게 보였다. 모임은 성경 공부량을 검사했고, 가족에게도 비밀로 하라고 했다. 이상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좋아” 계속 다녔다. 그들이 신천지라고 밝힌 뒤에야 그곳을 나왔다. 선의인 줄 알았던 온기의 끝은 헤어나오기 어려운 깊은 “배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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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

몇몇 불운한 청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적잖은 청년의 삶이 경계를 오간다. 취준생 김예은(26·가명)은 어디에라도 속하고 싶어 대학 졸업을 유예했다. 직장을 구한다 한들 이 불안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대기업 비서실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반세린(23·가명)은 회사에 자신만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청년 100명 중 20명이 회사에서 ‘부품’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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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톱니로서의 쓸모조차 때때로 깎여나간다. 미용사 최현주(31·가명)는 일터에서 자주 작아진다. 그에게 머리를 맡기는 고객들은 그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군다. “돈 받았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태도 앞에 가끔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상품”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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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도 ‘나를 필요로 한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한 청년들의 마지막 버팀목은 지극히 사적인 관계다. 청년 넷 중 한 명은 가족과 친구, 연인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데에 삶의 의미를 뒀다. 하지만 그 관계마저 서로를 재고 따지는 시선 앞에 마모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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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관계가 경쟁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친언니와도 경쟁해야 했던 소율은 늘 타인의 점수를 매기며 산다. 나은은 취업한 뒤에도 주변에서 “은근히 경쟁하고 서로 깎아내리는 데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좁은 문 앞에서 서로를 계산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00명 중 80명은 ‘남의 급’을 매긴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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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 되는 자리를 두고 살아남아야 하는 이들에게 솔직한 속내는 “약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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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김수아(26·가명)는 연인에게도, 친구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 “속마음을 다 말하면 언제든 화살로 돌아올 수 있어요.” 반대로 털어놓는 게 “민폐”가 될까 입을 닫는 청년들도 있다. 예은은 “오랜만에 만나 힘든 이야기만 하면 다시는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아 친구들에게도 감정을 숨긴다. 청년들에겐 서로에게 기댈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다. 100명 중 41명은 속내를 모두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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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대신 찾는 건 혼자만의 출구다. 이채원(24·가명)은 “찌질한 모습”을 인공지능(AI) 챗GPT에게만 털어놓는다. 유민지(31·가명)는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방’에 감정을 쏟는다. 문준혁(26)은 인터넷을 끊고 한글 파일에 감정을 적은 뒤, 인쇄해 한 번 읽고는 분쇄기에 갈아버린다. “흔적을 남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김태영(31)이 지난 6일 서울역에 서 있는 모습.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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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내가 약점이 되는 세상이지만, 때론 가장 크게 다친 이들이 먼저 입을 열기도 한다. 신천지를 나온 나은은 블로그에 그들의 수법을 낱낱이 적었다. 같은 피해를 공유한 사람들이 “고맙다”는 댓글을 남겼다. 상처를 숨기는 대신 드러낸 자리에서, 나은은 폭설을 기다리는 최민석처럼 삶의 이유를 찾아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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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회가 설 곳을 내어주지 않는 한, 깎여나간 존재 가치를 온전히 되찾기란 쉽지 않다. 태영은 여전히 고향집과 50대 남성의 거처를 전전한다. 지인의 제안으로 세상과 단절된 지방의 한 종교 공동체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선뜻 정착하지 못했다. “도망치고 도망쳐서 간 곳이 거긴데, 거기마저 싫어지면 그땐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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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에 앉아 무채색 하루를 보내는 소율도 종종 떠나간 친구를 떠올린다. “저희를 막고 있는 벽이 없었다면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태영과 소율, 그리고 그들처럼 경계에 선 이들도 언젠가 저마다의 설국에 가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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