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부속 문서로 군사분계선을 표시한 5만분의 1 지도는 지금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도에 그은 군사분계선이 현장에선 어디인지를 두고서는 경계 부대 군인들이 "저기쯤 될 것이다"라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자료가 없습니다. 심지어 한국군과 북한군, 유엔군사령부가 인식하는 군사분계선 위치가 서로 다릅니다.
이런 배경에서 남북 대화가 끊어졌습니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했습니다. 2024년부터 북한은 군사분계선 일대에 철책과 방벽을 설치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국경선 요새화'를 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충돌하고 군인들이 다시 희생될 염려가 매우 큰 상황입니다. 우발적 충돌이 전면적인 충돌로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국방부와 통일부는 남북 군사당국 회담을 통해 군사분계선 위치를 재확인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필요하죠. 북한이 응답하지 않는데요. 북한은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군사분계선 위치 확인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본래 비무장지대는 군사적 충돌을 막는 폭 4km 완충 공간으로 설정했습니다. 지금은 지뢰와 철책, 군사시설이 밀집한 위험지대가 됐습니다. 이름과 현실이 정반대입니다.
이제는 '선 대신 면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군사분계선이라는 선을 놓고 서로 물러설 수 없다고 맞서는 방식에서 벗어나, 비무장지대라는 폭 4km 구간 전체를 실질적인 군사적 완충과 평화 협력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열었고, 딸린 조처로 9·19 남북 군사합의를 맺었습니다. 이 합의에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 철수, 유해 공동 발굴, 적대행위 중단 등의 조처를 담았고 남과 북이 소통하면서 상당 기간 합의를 실천했죠. '선'을 놓고 다투는 대신에 '면' 범위에서 평화를 유지했죠.
윤석열 정부 시절에 남과 북이 심하게 갈등을 빚었습니다. 이 와중에 9·19 군사합의가 무력화됐습니다. 이번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9·19 군사합의를 복원해야 합니다. 아울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군 통수권자의 위기관리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건 이후 대북 강경론에 편승하지 않았습니다.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낮추는 실질적 조치를 이어가고, 인내심을 갖고 남북 관계를 풀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을 규탄하고 지뢰 제거와 외교적 대응에 나서면서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같은 군사적 긴장 고조 조치는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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