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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단원고생 신고로 온 경비정, 선원들 타고 탈출…학생은 실종

등록 : 2014.04.24 02:17수정 : 2014.04.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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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52분에 재빠른 조난신고
174명의 소중한 목숨 구하고
정작 당사자는 못 빠져나와

해경 밝힌 ‘신고접수 8시58분’
실제론 경비정 출동시킨 시간
‘학생신고 숨기려했나’ 의혹도

세월호 사고 때 최초로 출동한 해양경찰청 경비정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연락이 아니라 침몰하는 배에 있던 안산 단원고 학생의 전화 신고를 받고 움직인 것으로 23일 밝혀졌다. 이 학생은 실종돼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결국 경비정을 부른 학생은 실종된 반면 승객들을 대피시켜야 할 승무원들은 가장 먼저 그 배로 구조되는 어처구니없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해경은 애초 16일 오전 8시58분에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혀, 세월호와 교신한 제주 관제센터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것처럼 알려졌었다.

 

※그래프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23일 제주해경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세월호에 탄 단원고 2학년6반 학생 최아무개(17)군은 16일 오전 8시52분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조난 신고를 했다. 최군은 2분 뒤 목포해경과 연결됐고, 목포해경은 사고 위치와 배 이름 등을 파악하느라 4분을 흘려보낸 뒤 8시58분 해경 경비정 123함을 출동시켰다.

 

세월호는 최군보다 3분 늦은 8시55분에 제주 관제센터에 사고 상황을 알렸다. 제주 관제센터는 1분 뒤 제주해경에 연락했다. 제주해경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상황 파악을 하고 8시59분에 목포해경에 연락했더니, 이미 경비정이 출동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제주해경은 그 뒤에도 연락이 제대로 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9시2분에 진도 관제센터에 확인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진도 관제센터가 통화중이어서 이미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대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진도 관제센터는 세월호 사고 자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목포해경이 경비정을 출동시키고도 진도 관제센터에는 연락을 하지 않은 탓이다. 목포해경은 출동 8분 뒤인 9시6분이 돼서야 진도 관제센터에 사고 사실을 알렸다. 진도 관제센터는 그제야 세월호의 사고를 파악하고 이 배와 교신하면서 승선 인원이 몇 명인지 등을 파악하느라 허둥댔다. 같은 해양경찰청 소속인 목포해경과 진도 관제센터도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에서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지난 16일 침몰하는 세월호 조타실에서 나온 선원들이 해양경찰의 도움을 받아 경비정에 올라타고 있다./목포해경 제공
해경은 그동안 조난 신고를 접수한 시각을 8시58분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실제 이 시간은 경비정이 출동한 시간이었다. 경비정 출동도 제주 관제센터가 아니라 침몰선에 탄 학생의 신고로 이뤄진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해경이 학생 신고로 경비정을 출동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질까봐 신고 접수 시각을 일부러 늦춰잡은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해경 경비정은 출동 명령을 받을 당시 사고 해역과 30㎞ 떨어진 상태에 있어서 사고 현장에는 9시30분에야 도착했다. 그사이 선장·항해사·기관사 등 선박직 승무원들은 선교(브리지)에 모여 승객들에게 “위험하니 객실에 있으라”고 한 뒤, 자신들만 아는 통로 등을 이용해 최초로 도착한 경비정에 승선해 탈출했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기관부 선원 7명이 먼저 배를 떠났고, 이후 선장 등 조타실에 있던 8명도 탈출해 최초로 출동한 해경 경비정에 탑승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결국 최군은 자신이 신고해 부른 구조선을 타지 못한 채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사이, 승객 구호 의무는 물론 배까지 버린 승무원들만 목숨을 구한 셈이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신고해 경비정을 부른 최군은 아직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경미 기자, 목포/김영동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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