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앞에 계신 분들은 국가전복세력입니다. KBS, MBC가 그렇게 취급했고 그렇게 보도했습니다. 그런 보도를 한, ‘기레기’들이 세월호 참사는 제대로 보도했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는 비중 있게 보도한 반면 유족들은 외면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없는 기레기 중 하나입니다.”

이경호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의 발언이 시작되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침묵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말을 이어갔다.

“이제 그 기레기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비난은 그대로 받아내고 이제 체념하지 않고 일어나겠습니다. 침몰하는 한국 언론에 선원이 돼서 국민 여러분들을 구조할 것입니다. 넘치는 화물이 있다면 들어내도록 힘을 모아주십시오, 시민들이 평형수가 되어 주십시오, 선장을 교체해 주십시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세월호 참사 한 달, 시민들은 언론에 특히 공영방송에 분노했지만 아직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수석부위원장이 KBS의 제작거부 결의, 길환영을 쫒아내겠다는 다짐을 전하자 박수는 이어졌다. 어쩌면 이번이 국민들의 마지막 박수일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가 주최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추모,실종자 신속구조수색,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 촛불행동'이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초반 5000여명에 불과하던 참가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 8시께에는 주최측 추산 5만여명에 이르렀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양한 참가자들의 촛불과 손팻말이 광장을 가득 매웠다.

이들의 목소리는 분노와 미안함으로 집약됐다. 정형곤 원탁회의 운영위원장은 “슬픔보다 더 큰 것은 고통”이라며 “우리는 목격자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모두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목격자였다”고 말했다. 원탁회의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추모,실종자 신속구조수색,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 촛불행동에 참석한 시민들이 '실종자를 구조하라! 아이들을 돌려달라! 박근혜가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검은티 행동을 제안한 권순영씨도 “사고 첫날을 배가 기울어진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바로 그 시각 아이들이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그 모습을 지켜봤을 때 그들은 살아있었다”며 “살인에 동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떻게 이렇게 처참하게 하늘로 보낼 수 있겠나”며 “선장과 해경, 보도지침을 받아쓰는 언론,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에 대한 분노와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원탁회의 김상근 목사는 “아무것도 못해서 미안하다”며 “저들(유족)이 울 때 우리도 울고, 저들이 몸부림치면 우리도 몸부림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와 대통령은 온전한 정부와 대통령이 아니”라며 “그 죄를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어 “참사의 진상규명은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라며 “이 정부에만 맡기면 안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 정부는 진정성이 없고 연출만 있다”며 “진심이 없고 눈물이 없고 가슴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각계가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침묵행진을 제안한 용혜인씨도 단상에 올라 “아직 유족들이 (8일 밤 청와대 앞에서) 경찰에 무릎을 꿇고 비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가만히 있으라는 한국에서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이다. 경찰이 내게 찾아와 내가 하는 행동이 불법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두려워 가만히 있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노란손수건’ 오혜란 대표는 “우리는 무지하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다. 처참하게 아이들이 수장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부모를 앞에 놓고 자식을 수장시키는 정부를 지켜보기만 했다”며 “주검으로라도 돌아온 아이들의 한을 풀기 위해 행동하는 엄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대표는 “왜 누구도 책임을 안지고, 왜 국민을 기만하는지,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며 “총체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조작과 연출을 서슴치 않았던 대통령까지 누구도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조목조목 따지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과 존엄이 무너진 대한민국에서 엄마의 이름으로 생명을 지키고자 한다”며 “3명이 7000명이 됐듯, 70만이 되어 위협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추모,실종자 신속구조수색,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 촛불행동에 참석한 시민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한편 집회 참가자들은 8시 30분 경 청계광장에서 보신각, 종로3가, 을지로3가, 을지로 입구를 행진해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이중 일부 참가자들이 청와대로 행진했고 경찰은 이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연행된 사람은 오후 10시 20분 현재 114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팩트TV는 이 과정에서 미란다고지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으며 부상자도 발생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