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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서열 1위' 왔는데 성과는 '고위급 접촉 재개'?

 

[분석] 황병서 북측 대표단 의문... '박 대통령 면담' 남측 제안 사실상 거절

14.10.04 20:38l최종 업데이트 14.10.05 00:0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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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는 북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왼쪽 두번 째)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왼쪽 세번 째)가 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건물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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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5일 오전 0시 9분]

북한에서 총정치국장은 군 서열 1위이며, 최고지도자의 특사로 외국 국가원수를 만날 정도의 비중을 가진 최고위직이다. 최룡해 근로단체 담당 비서는 총정치국장 시절인 2013년 5월 김정은 제1비서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사망한 조명록 총정치국장도 2000년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로 방미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최룡해 비서와 대남담당 비서이자 통일전선부장으로 대남업무를 총괄하는 김양건 비서 등과 함께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남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그가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메시지를 갖고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는 추측도 이런 이유 때문에 나왔다. 더욱이 북한 군 총정치국장의 방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통문으로도 가능한 '고위급 접촉 수락'

하지만 정부 발표에 따르면, 북측 대표단은 김 제1비서의 친서를 갖고 오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지난 8월 11일에 제안한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수용하고, 10월 말∼11월 초에 우리측이 원하는 시기에 회의를 열자는 입장만 밝혔다. 정부의 2차 고위급 접촉 개최 제안을,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 인권 문제 제기 등을 이유로 거부해온 북한이 이번 대표단을 통해 수락한 것이다.

박 대통령 면담과 관련해서도, 남측이 '청와대 예방 의사가 있으면 준비할 용의가 있다'고 했지만 북측은 시간 관계상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박 대통령을 만나겠느냐는 남측의 제안을 북측이 거부한 모양새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때 1박2일 일정으로 방남한 '특사 조의방문단'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체류 일정을 하루 늦춰 이 대통령을 만난 사례가 있으나, 북측은 이번에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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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수하는 남·북 고위대표단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방남한 북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4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영빈관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 우리 측 관계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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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북한의 총정치국장이 사상 처음 남측을 방문해 '겨우' 남측이 지난 8월에 이미 제안했던 '2차 고위급접촉' 수락 의사만 밝혔다는 것이다. 지난 2월의 1차 남북고위급 접촉 때 북측 대표단 단장은 김양건 비서가 관장하는 통일전선부의 원동연 부부장으로, 황병서 총정치국장과는 그 위상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고위급 접촉 수락 정도는 전통문으로도 가능한데, 왜 총정치국장이라는 거물이 호위총국 소속 경호원의 호위 속에 김정은 제1비서가 이용했던 전용기까지 타고 남쪽에 온 것이냐는 의문이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 대표단의 '급'에 비해 메시지가 너무 낮은 수준인데, 정상회담이나 장관급 회담 등이 거론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며 "대화로 현안을 해결하자는 것 자체가 (김정은 제1비서의) 메시지일 수 있고, 오늘 오찬 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한 자리였다"고 답했다. 

남북관계 파탄상황, 고위급이 나서 분위기 전환?

이런 상황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큰 합의는 없지만 북한이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9월 말 유엔 총회를 통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증폭된 상황에서, 스포츠 행사 참여를 통해 부드러운 이미지와 남북대화에도 적극적이라는 모습을 연출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하면서 "총정치국장이라는 고위직 인사가 나서 국제적인 주목도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번 대표단을 통해 직접적인 성과물을 얻어내기 보다는 대외·대남 이미지 개선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북한이 현재 남북관계가 파탄상태라는 점을 감안해 일단 분위기 개선에 주력한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북 대표단의 위상을 볼 때 뜻밖의 상황"이라며 "어제 오전까지도 북한 <노동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이번 방문이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측이 이번에는 최고위급 인사들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남측의 최고위급 인사들을 직접 만나 남북관계 개선 의사를 전달하면서 물꼬를 트는 정도로만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며 "이번 방문단을 통해 관계 개선의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도 "현재까지 정부 발표 내용으로만 보면, 극히 악화된 현재 남북관계 상황을 감안해 일단 안면을 트는 차원의 방문 일 수 있다"며 "김정은 제1비서가 김정일 위원장에 비해서는 유연한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고위급 실세들이 전면에 나서서 변화 분위기를 만든 뒤 실무자들이 움직이게 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이번에 합의한 '2차 고위급 접촉'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는 견해다. 그는 "(2월의) 1차 고위급 접촉이 결국 실패하고, 북한이 그동안 2차 고위급 접촉 제안을 거부해온 것, 더불어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군복을 입고 온 것도 대북전단 살포 즉 심리전 관련 문제 때문"이라며 "이번 회담에서 '대화로 현안을 해결하자'는 데 뜻을 같이 하는 정도로만 거론됐다는 정부 설명대로라면, 핵심 갈등 사안이 여전히 남은 것이기에 2차 고위급 접촉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고 성사돼도 별다른 성과물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대표단이 청와대 예방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도 "북한이 2차 고위급 접촉 제안에 대해 '대북 삐라 문제를 먼저 해결하라'고 거부한 것은 회담 자체보다는 회담 의제에 더 의미를 둬 온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박 대통령이 여러 현안에 대해 분명하게 강경한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에, 오찬회담 때 김관진 실장 등을 통해 남측에 전달할 메시지를 모두 전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과의 만남 그 자체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황병서 "성과가 많다, 앞으로 대통로 열어가자"

한편 북한 대표단은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과 오찬회담을 끝낸 뒤 인천 아시안게임 선수촌으로 이동해 북측선수단을 만나 격려했다. 오후 6시 45분에는 인천아시안게임 폐회식장인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와 14분간 만났다. 이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야 의원 10명과 10분 정도 면담한 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류길재 통일장관 등과 함께 폐막식을 참관했다.

폐막식이 끝난 뒤 이들은 우리 측의 환대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며 정 총리 재면담을 요청했다. 정 총리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 유정복 인천시장 등과 함께 7분간 북측 대표단을 만나 비공개 대화를 나눴다. 황 총정치국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가 사실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가는데 성과가 많다.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를 열어가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대표단은 오후 10시 25분께 인천 공항에서 출발해 서해 직항로를 통해 귀환했다. 이날 오전 9시 52분께 인천공항을 통해 방남한 지 12시간 30여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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