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욕망'으로 지어진 청계천, 시청, 동대문…그 결과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1/03 09:58
  • 수정일
    2015/01/03 09:5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작은것이 아름답다]도시‧① 욕망

 
김영준 건축가 2015.01.02 16:51:08
 
건축이나 도시 공간의 작업을 하다 보면 설계 기준이라는 것을 활용하게 된다. 설계 행위는 예술이나 문화이기 이전에 일상의 삶을 담아야 하므로 그만큼 적절한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계 기준은 규모, 속도, 길이, 폭의 단위 치수에서부터 구조, 냉난방, 조명, 단열, 환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정비되어 있다. 또한 기준은 삶의 조건이나 기후의 차이가 반영되어야 하므로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
 
한동안 호화 논란을 빚었던 공공 건축물의 과다한 모습도 따지고 보면 기준이 잘못되어 있거나 혹은 기준을 잘못 적용한 데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기획 초기 단계에서 집무실 크기, 1인당 소요면적, 적정한 공유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사용 인원에 맞춰 빈틈없이 예측하고 검토해서 정확한 기준이 적용됐어야 할 일이었다.  
 
▲ 현실은 불편한 도시 공간의 구축물이 경쟁하는 환경이다. 너무 많은 엘이디 조명으로 도시 곳곳이 번쩍이고, 가로마다 기괴한 장식의 난간과 가로등이 어지럽다. 삶은 사라지고 과시 욕망만이 발견된다. ⓒ전재원

▲ 현실은 불편한 도시 공간의 구축물이 경쟁하는 환경이다. 너무 많은 엘이디 조명으로 도시 곳곳이 번쩍이고, 가로마다 기괴한 장식의 난간과 가로등이 어지럽다. 삶은 사라지고 과시 욕망만이 발견된다. ⓒ전재원

 
 
흔히 말하는 엔지니어링 기준도 문제가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구조의 기준이 지나치게 많이 잡혀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철제 속성을 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변형 이전 값에서 강도의 기준을 정했다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다른 나라보다 훨씬 강화된 기준이다. 그리고 냉방이나 난방 기준, 조도 기준도 과하다는 느낌이 있다. 온도를 낮추고, 형광등을 하나씩 끄고, 변기통에 벽돌을 하나 넣는 일도 사용자의 선택이 아니라 설계 기준부터 정비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나친 기준이 만들어내는 과잉 투자는 어쨌든 피해야 할 일이다. 
 
치수나 통계로 체감할 수 있는 설계 기준을 넘어서 미의 기준, 기대의 기준, 가치의 기준도 있다. 무릇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환경은 누군가 판단을 내려 구축하는 것이고, 그 판단에는 여러 단계의 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공간 환경은 개인이 하는 창조 작업이라기보다는 사회의 복잡한 체계에서 이뤄지는 삶의 창작이다. 따라서 다양한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도록 낱낱이 설계의 기준이 마련되고 활용되어야 한다.
 
사실 아름다워야 하고, 감동 있어야 하고, 효율성이 있어야 하는 여러 가지 판단의 설계 기준은 정확히 재단하기 어려운 변수이다. 아니 매우 많고 다양한 기준이 뒤따르는 변수이다. 그러기 때문에 일정 부분 불합리한 결론이 쌓이기 쉽다. 많은 사람이 일에 끼어들다 보면 불특정한 책임 소재로 흐를 개연성도 많다. 사회에서 공유되는 기준이 낱낱이 정비되어야 하고, 수많은 도시 제어 수단이 작동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교통, 전기, 통신, 안내, 안전 시설물의 상호 관계를 꼼꼼히 검토하고 서로 연계하여 적절히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도시 공간의 과다한 욕구를 관계성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전재원

▲ 교통, 전기, 통신, 안내, 안전 시설물의 상호 관계를 꼼꼼히 검토하고 서로 연계하여 적절히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도시 공간의 과다한 욕구를 관계성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전재원

 
 
그러나 현실은 불편한 도시 공간의 구축물이 경쟁하는 환경이다. 너무 많은 엘이디 조명으로 도시 곳곳이 번쩍이고, 가로마다 기괴한 장식의 난간과 가로등이 어지럽다. 삶은 사라지고 과시 욕망만이 발견된다. 도대체 누가 어떤 경로로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위해 만들었을까. 이들 도시 공간 시설을 좀 더 근사하게 기품 있게 절제 속에서 만드는 방안은 없을까. 이 사람들을 사회 구성원의 공감 속에서 좀 더 나은 결과로 만드는 방안은 없을까. 몇 가지 명제 속에서 도시 공간 설계의 기준을 생각해본다. 
 
첫째는 장소성이라는 명제이다. 도시 공간의 시설은 항상 장소성을 지향하여 설계되어야 한다. 장소성은 공간적 배경만이 아니라 인문, 역사, 사회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하나의 설계가 복제되어 도시 공간 곳곳을 점령하는 전략이 아니라 장소에 따라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한동안 서울에서는 디자인을 화두로 도시 모습을 일대 혁신하려는 욕망과 함께 청계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서울시청, 오페라 하우스 같은 도시의 상징들이 넘쳐났다. 오랜 논쟁 속에서 결과들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같은 전략의 같은 결과물이 복제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비록 용도도 다르고 겉모양도 다르지만 시대의 인식, 사회의 영향, 도시의 배려, 삶의 터전으로서 전략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조형의 차별화만이 만능 해법처럼 보인다. 장소성이라는 개념에 근거한 가치의 기준이 공유되었어야 했다.  
 
대개는 '이상 모델'을 그대로 도시에 옮겨심으려는 자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도시를 한 번에 바꿔버리려는 과시 욕망에서 비롯된다. 작은 곳부터, 오래 생각하고, 길게 바라보고, 천천히 바꾸어 가야 한다. 그래야 삶이 묻어 들고 사회의 공감이 반영되고 시대 과제가 구현된다. 디자인으로 정리하는 일이라기보다 장소를 만드는 일이라는 인식이 우선해야 한다. 
 
둘째는 관계성이라는 명제다. 도시 공간은 갈래가 다른 여러 분야의 요구가 복합된 곳이다. 효율이 중시되어야 하고, 안전해야 하며, 불특정 대상에게 공평해야 한다. 때로는 멋지기도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욕구가 충돌하기 쉬운 지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쪽의 비중만이 강조될 수 없기에 서로 다른 결론이 경쟁하는 과다한 집적의 공간이 되어간다. 
 
모더니즘 시대 뒤로 문제의 해결안을 절대적이기보다는 관계적인 줄기에서 찾아보려는 시도가 힘을 얻게 되었다. 개별 사안의 독자 결론보다는 연계 속에서 좀 더 나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도시 공간에서도 단독 조형물보다는 여러 요구를 연계한 복수의 불규칙한 다른 종류의 새로운 해결안을 찾고 있다. 조경, 인프라, 건축, 도시의 다양한 관점이 통합하는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도시 공간의 시설은 당연히 다양한 욕구를 적절히 제어하고 조정하는 자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교통, 전기, 통신, 안내, 안전 시설물의 상호 관계를 꼼꼼히 검토하고 서로 연계하여 적절히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도시 공간의 과다한 욕구를 관계성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셋째는 시스템이라는 명제다. 좋은 공간을 만드는 일은 결국은 제도를 넘어 사람이 하는 일이다. 좋은 생각 바른 생각으로 도시 공간의 과제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시 공간의 시설은 작업의 분산만큼 사람의 선정도 분산되어 있다. 좋은 사람이 일하게 하는 유연한 제도와 탄력 있는 운영이 필수다. 
 
ⓒ전재원

ⓒ전재원  

 
 
좋은 도시는 이런 작업을 총괄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예컨대 런던, 바르셀로나, 베를린, 암스테르담에서는 '도시 건축가'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제도 아래에서도 어떤 사람이 어느 때 하느냐에 따라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결국, 좋은 사람을 선택하는 시스템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남미 어느 도시인가를 설명하는 책자에는 도시를 파괴한 주범으로 지진과 허리케인과 함께 전임 시장들을 꼽는 문장이 있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다. 지금의 시대에 우리 도시 공간의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지, 우리가 도시 공간에 어떠한 삶을 담아야 하는지,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선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것이 '시스템'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건축과 도시 공간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도시 환경은 미래만 바라볼 수도 없고, 과거 굴레에만 매달릴 필요도 없다는 얘기이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쓴 <정신착란의 뉴욕>이라는 책이 있다. 20세기 대표 도시가 된 뉴욕의 모습이 역사 시기마다 상업적 욕망에 충실한 결과라는 사실을 규명한 책이다. 수많은 욕망이 충돌되면서 법제 기준으로 결국 지금의 뉴욕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도시 에너지는 물론 욕망에서 시작된다. 다만 이들 욕망을 제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너무 지나치지 않게 너무 모자라지 않게 사회의 욕망을 제어하는 일, 그것이 도시 공간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기본자세여야 하는 셈이다. 
 
*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환경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생활문화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종이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 <작은것이 아름답다> 바로 가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