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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형 생활주택 참사, 규제완화가 ‘불씨’였다

등록 : 2015.01.11 20:10수정 : 2015.01.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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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현장 전날 일어난 큰불로 4명 사망을 포함해 12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의정부시 도시형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11일 오전 소방대원들이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의정부/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28명 사상 부른 의정부 화재
아파트 아닌 원룸형 주택
MB 정부 때 안전 규제 풀어 도입
주차장·건물간 거리 기준 완화 등

1m 남짓 다닥다닥 붙어 있는 10층 건물, 양옆에 주차된 차량들로 소방차가 지나기엔 비좁은 도로. 10층 이하 건물에는 설치되지 않은 스프링클러….

 

지난 10일 128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의정부 아파트 화재 참사는 1층에 주차된 오토바이에서 붙은 작은 불로 시작됐지만 피해는 매우 컸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20~30대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 서민 등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공급하겠다며 ‘도시형 생활주택’을 도입하면서, 저가의 주택 공급을 명목으로 각종 안전 규제를 완화해준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재난안전본부는 11일 “화재 피해가 컸던 10층 규모의 대봉그린아파트(88가구)와 드림타운아파트(88가구)는 ‘아파트’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지어진 24㎡ 안팎의 원룸형 주택”이라고 밝혔다. 불이 시작된 대봉그린아파트 건축물대장을 보면, 2011년 9월2일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허가를 받았다. 2012년 2월20일 착공했고, 그해 10월11일 사용승인을 받았다. 불이 번진 드림타운아파트도 2011년 허가받은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이다.

 

이곳 입주민의 77.3%가 20~30대 직장인과 학생들이었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 35만~40만원 정도의 비교적 싼 월세에다 전철역이 가까워, 젊은 직장인 등이 많이 찾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도시형 생활주택을 확대하면서 싼값에 공급을 하려다 보니 주차 면적과 건물간 거리 등 각종 규제를 풀어줘 사고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는 게 일선 공무원들의 지적이다.

 

의정부 화재 당시 인근 2차선 도로가 좁은데다 도로에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여의치 않아 초기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도의 한 고위 공무원은 “아파트의 경우 1세대당 차량 1대를 기준으로 주차장을 확보하는 반면 도시형 생활주택의 경우 건설비용이 적게 들도록 보통 1세대당 0.4~0.6대로 기준을 완화해줬다. 주차장이 부족해 차들이 주변 도로를 메우는 바람에 이전에도 화재 시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골칫거리였다”고 말했다.

 

보통 아파트는 건물 높이의 0.8배에서 1배가량의 거리를 두고 건물을 짓지만, 상업지역 내 도시형 생활주택은 일조권 적용을 배제해 건물 간격이 50㎝ 이상이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줬다. 이번에 대봉그린아파트에서 발생한 불은 1.6m 떨어진 드림타운아파트로 옮겨붙으면서 삽시간에 확산됐다.

 

또 대봉그린아파트와 드림타운아파트가 건물 외벽 마감을 내부가 스티로폼으로 이뤄진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해, 불이 1층에서 10층까지 상층부로 급속히 번졌다.

 

“소화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한겨레>가 이날 둘러본 서울시내 ‘도시형 생활주택’들도 이런 문제점을 비슷하게 떠안고 있었다. 24개의 원룸이 있는 종로구 숭인동의 9층짜리 도시형 생활주택 앞 도로는 도로 폭이 좁고 전봇대가 연이어 설치돼 있어 소방차가 드나들기엔 버거워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가니 대피용 시설인 완강기와 소화전이 설치돼 있었지만, 10층 옥상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이 건물엔 주차타워가 연달아 이어져 있는데다 옆 건물과의 간격이 1.5m에 불과해 불이 날 경우 옮겨붙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숭인동엔 15·16·17층짜리 도시형 생활주택이 연이어 있는 곳도 있어 큰 화재가 발생할 경우 폭발 등 충격이 옆 건물에 전달될 것으로 보였다.

 

영등포구 양평동4가 일대는 다세대형 도시형 생활주택과 법적으로 ‘고시원’인 미니원룸텔 등이 밀집돼 있었다.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이 가깝고, 집값이 싼 편이라 20~30대 직장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이곳도 이면도로 곳곳에 차가 주차돼 있어 소방차가 드나들기 어려워 보였다. 35가구가 모여 사는 5층 건물은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만 있었는데, 방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데다 층마다 소화기도 없었다. 이곳에 사는 김아무개(32)씨는 “입주할 때 소방시설을 눈여겨보지 않아서 건물에 뭐가 있는지 잘 몰랐다. 옥상에 올라갈 수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다른 도시형 생활주택은 한층에 6가구가 모여 있었는데, 일렬로 출입문이 배치돼 있어, 문이 모두 열릴 경우 한 사람이 지나기 어려울 정도로 복도가 좁았다.

 

동작구 대방동 주택가에 있는 5층짜리 도시형 생활주택(16가구)은 이면도로에서 건물까지 들어오려면 폭 2m 남짓인 통로를 통해 20m쯤 들어와야 해 화재 시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해 보였다. 건물 계단엔 화초가 빽빽하게 놓여 있어 긴급하게 대피할 때 장애물이 될 것으로 보였다. 특히 1층에는 설치돼 있어야 할 화재감지기가 눈에 띄지 않았다. 2013년부터 이곳에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화재경보기가 없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입주자 대부분이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아 보안을 강조하는 탓에 소방안전에 소홀한 곳도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지하 2층, 지상 8층짜리 도시형 생활주택(23가구) 옥상은 출입증을 찍어야만 옥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층마다 소화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정작 주민들은 소화기 설치 장소를 모르고 있었다. 한 여성 입주민은 “불날 상황을 생각해보지 않아서 건물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며 “소화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정부/홍용덕 기자, 박태우 박기용 최우리 이재욱 기자 ehot@hani.co.kr, 사진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도시형 생활주택

 

늘어나는 1~2인 가구나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2009년 2월 국토부가 주택법을 개정해 도입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저렴한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기 위해 △주차장 건설기준 완화 △소음 기준 완화 △건축물 간 거리규제 완화 △관리사무소 등 부대시설 설치 의무 면제 등 주택 건설 기준과 부대시설 설치 기준을 적용하지 않거나 완화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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