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쾌거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쾌거
등록 :2016-05-17 07:14수정 :2016-05-17 09:33

 

‘2016 파리도서전‘에 한국 대표 작가로 초청된 소설가 한강이 18일(현지시간) 행사장에서 프랑스 독자를 대상으로 사인회를 진행했다. 최근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한강은 "진짜 담담하다. 앞으로도 계속 조용히 진지하게 글을 쓰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2016. 3. 18 연합뉴스
‘2016 파리도서전‘에 한국 대표 작가로 초청된 소설가 한강이 18일(현지시간) 행사장에서 프랑스 독자를 대상으로 사인회를 진행했다. 최근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한강은 "진짜 담담하다. 앞으로도 계속 조용히 진지하게 글을 쓰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2016. 3. 18 연합뉴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한국 소설로는 처음
억압 받는 내면 등 인간 본성 다뤄 높은 평가 받아와
“수치·욕망 등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관한 소설”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상을 수상했다.

 

<채식주의자>는 한국 시각 17일 오전 6시(현지 시각 16일 저녁)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에서 터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 중국 작가 옌렌커 등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작가와 번역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공식 만찬 자리에서 올해의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은 영국에서 영어로 출간된 단행본 소설을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 소설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상자 한강과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에게는 2만5천 파운드(한화 약 4천300만원)씩이 주어진다.

 

지난해 1월 영국에서 번역 출간된 <채식주의자>는 극단적으로 육식을 거부하고 차라리 나무가 되고자 하는 주인공 영혜를 주변 인물 세사람의 시선에서 그린 연작 세 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입에 강제로 고기를 집어 넣으려 하자 손목을 긋는 영혜를 지켜보는 남편,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영혜의 몸을 욕망하게 된 비디오아티스트 형부, 정신병원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링거조차 거부하는 영혜를 찾아간 언니 인혜의 눈에 비친 영혜를 통해 작가는 폭력과 욕망, 그리고 그에 의해 억압 받는 내면 같은 인간의 본성을 다룬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원작의 시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도 영국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소설 <채식주의자>는 현대 한국에 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갇힌 한 육체가 다른 갇힌 육체를 이해하려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관한 소설”이라고 수상 사유를 밝혔다.

 

<채식주의자>가 지난해 1월 영국과 올 2월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뒤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등 현지 언론들에서는 이 소설의 시적 아름다움과 보편적 주제의식 등을 높이 평가하는 서평이 이어졌다. 지난달 16일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최종 후보 6작품이 발표된 뒤 아일랜드 일간지 <아이리시 타임스>는 <채식주의자>가 상을 받아야 한다는 칼럼을 실었고, 미국의 해외문학 전문지 <월드 리터러처 투데이> 5월호도 메인 인터뷰로 한강을 다루는 등 해외에서 좋은 반응이 이어져 수상 가능성이 점쳐져 왔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17일 수상 직후 <한겨레>와 통화에서 “한강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문학의 쾌거”라며 “이 수상을 계기로 전 세계가 한국 문학을 주목하게 돼서 노벨문학상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채식주의자>는 세계가 테러를 비롯해 폭력에 시달리며 그에 관심을 지니고 있을 때 바로 그 문제를 다루었다. 전체 3부가 각각 가부장적 폭력과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폭력, 제도적 폭력을 다룬 것이다. 특히 폭력이 인간과 인간 사이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포착한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이 원작자와 번역자를 함께 시상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특히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의 기가 막히게 좋은 번역을 높이 평가한다”며 “<설국>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상 수상 배후에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라는 좋은 번역자가 있었다면 한국문학에는 드디어 데보라 스미스라는 번역자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편 80년 5월 광주를 다룬 한강의 후속작 <소년이 온다> 역시 <채식주의자>를 옮긴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올 1월 영국에서 출간되어 <채식주의자> 못지 않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가디언>은 2월 한강 인터뷰를 실었으며 <파이낸셜타임스>도 서평을 실었다. 20대 젊은 번역자이며 한국어를 배운 지 6년밖에 되지 않은 데보라 스미스 역시 배수아의 <서울의 낮은 언덕>과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번역 중이며 김연수와 황정은 등의 소설 역시 번역 출간하기로 했다.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1993년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어 소설가로도 활동을 시작해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희랍어 시간> 등 장편 6편과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등 소설집 3권을 냈으며 이밖에도 시집 한권과 산문집 여럿을 냈다.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특히 1988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부친과 함께 부녀가 이 상을 나란히 수상하는 최초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관련기사
▶한강 “소설 한강,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자 했다”
▶문학계 “한강 맨부커상 수상은 한국문학 경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