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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강제 연행' 부인했다면 위안부 합의 무효 근거

'한일 위안부 협상' 이면, 그 판도라의 상자 열리나
일본이 '강제 연행' 부인했다면 위안부 합의 무효 근거

  이재호 기자  2017.01.06 17:11:49
 
법원이 외교부에 지난 2015년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한 협상 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합의 이후 통화했던 내용을 공개하라는 소송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김정숙 부장판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송기호 변호사가 외교부를 상대로 '2014년 4월 한일 국장급 협의 개시 이후 2015년 12월 28일까지 한일 외교부 장관 공동발표문을 도출하기 위해 진행한 협상에서 일본군과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의 존부 및 그 사실 인정 문제에 대해 협의한 협상 관련 문서'를 공개하라는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라면 피해자와 국민은 일본 정부가 어떠한 이유로 사죄 및 지원을 하는지, 합의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아베 총리가 공개석상에서 합의 중 강제연행과 관련된 발언을 하는 등 일본 정부는 외교 관행을 져버린 전력이 있다"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본의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평가 및 배상을 다루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보호되는 국가의 이익은 국민의 알 권리보다 크지 않다"고 언급했다. 

외교부가 "(일본과) 서로 비공개하기로 합의한 사항으로 양국 간의 신뢰관계가 깨질 수 있다"며 비공개의 주요 근거로 삼아온 부분에 대해서는 "이 사건 정보가 비공개를 원칙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외교부도 이를 입증할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송 변호사는 그동안 위안부 합의와 관련된 문서를 공개하라는 정보 공개 청구를 진행해왔다. 그는 지난해 2월 외교부를 상대로 위안부 협의 당시 △군의 관여 부분 △성노예 용어 사용 금지 문제 △강제 연행 인정 문제 등과 관련한 협상 문서를 밝히라는 정보 공개 청구를 신청했으나 외교부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송 변호사는 같은달 29일 이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을 진행했다.  

소송에서 승소한 송 변호사는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일본은 위안부 합의 발표 이후 일관적이고 공식‧지속적으로 전시 성노예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강제 연행과 전쟁 범죄를 부인했다"며 "합의 공동 발표에서 '군의 관여'라는 문구가 성병 검사와 같은 위생관리를 포함하는 의미라고 일방적으로 설명했으며, 위안부의 강제 연행에 대해 부인해왔다"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이와 같이 일본이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이후에도 대외적으로 강제 연행을 부인하는 것에 대응하여, 전시 성노예의 본질적 핵심인 일본 군 관헌과 군에 의한 강제 연행에 대헤 한일 협의 사항을 공개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책무인 국민의 기본권 수호 의무를 다하는 것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의 승소 판결은 법원이 한일 위안부 합의 속에서 일본이 '강제 연행'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이는 곧 합의가 무효임을 밝힌 셈"이라고 규정했다. 

송 변호사는 "정부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 문제인 '위안부' 합의 실체를 법원 판결에 따라 즉시 공개해야 한다"며 "만일 정부가 항소하는 방식으로 공개를 거부한다면, 이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 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지난 2015년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부는 그동안 송 변호사의 정보 공개 청구에 대해 "일본의 동의 없이 (합의 과정을) 공개하는 것은 외교적 신뢰관계에 큰 타격을 준다"며 "한일 양국 간 협의 시 상호 비공개하기로 합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또 위안부 합의 과정이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주장해왔다. 

외교부는 판결과 관련, 이날 항소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판결내용 검토 후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편 민변이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양국 정상 간 전화 통화 내용 공개를 요구하며 대통령 비서실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김용철)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정상 회담 내용은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전화통화 내용을 위안부 합의 내용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 두 나라의 입장이 다르다"며 "내용을 공개할 경우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될 우려가 크고 다른 정상회담에서 신뢰성에 흠결을 가져올 수 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민변이 소송을 제기한 공개 대상은 양 정상의 전화통화 내용을 담은 회의록이다. 민변은 지난해 1월 18일 일본이 정상회담 발언을 자국 외무성 홈페이지에 일방적인 내용으로 공개하자 청와대에 발언록 공개를 청구했다. 이후 청와대가 이 발언록 공개를 거부하자 지난 1월 28일 정보공개법상 이의신청을 진행했으나 청와대는 끝까지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지게 됐다.  
이재호 기자 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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