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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모드 다시 돌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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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랩]읽고 싶은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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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벨리의 가면' 중에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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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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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풍화작용- 전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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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차니스트의 남산배경 사진 몇 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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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9/03
    부치지 못한 편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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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모드 다시 돌입

 

 

 

 

또 시작.

현대인의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그리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우울모드.

이젠 술로 달래주는 것도 지치는 중.

 

어떻게 해야할까?

쏟아내기를 하고 싶은데 쏟아낼 그 무언가가 없다는게

참 슬픈일인 것 같다.

 

달려보는 거라고 끝없이 자기 최면을 걸면서도

늘 깨어나는 건 또 나.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일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나.

이렇게 무의미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도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자판을 두들두들 거리는 것도 나.

 

아무도 보고 싶지 않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무덤덤해지는 걸 때론 즐기고 있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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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읽고 싶은 만화

고양이가 돈 벌어오니, 아이고 좋아,  아즈마 가즈히로의 <알바고양이 유키뽕>

2004.06.11 20:04   
  

 
  길고 깊은 경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 대공황 시대 미국인들은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터무니없는 영웅들을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했지만, 지금 동아시아인들은 <신의 아들>이나 <멋진 남자 김태랑>을 통해 성공을 꿈꾸는 일조차 가당찮다고 여긴다. 내 신세 그저 이대로지. 뭘 더 나아지길 바라나? 차라리 처절하게 실업자와 백수 신세를 토로하는 자학 개그가 속편한 듯이 보인다. <행복한 백수> <오이카와 취업 일지> <룸펜 스타> <곰씨와 오리군>…. 마치 새로운 장르라도 만들어낼 기세로 ‘불경기 만화’ 혹은 ‘백수 만화’라 불릴 만한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게으르고 의지박약인 백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는 아마도 <장화 신은 고양이>가 아닐까? 주인은 방구석에서 하는 일 없이 뒹굴거려도 똑똑한 고양이 한 마리가 부와 명예에 미모의 부인까지 얻어다준다. 각종 아르바이트 업무로 작업모 갈아 쓰기 바쁜 <알바 고양이 유키뽕>(북박스 펴냄)은 아마도 <장화 신은 고양이>의 후손으로 보이는데, 주인을 잘못 만나도 한참 잘못 만났다.

유키뽕의 주인인 아케미는 정확한 직업도 없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이른바 프리터(free+arbeiter) 중에서도 꽤나 질 낮은 족속이다. 약간의 돈이라도 생길라치면 술값으로 날려버리고, 괜찮은 남자를 만나면 며칠씩 외박하는 건 예사이고, 남자와 잔다고 고양이 유키뽕을 노숙자 신세로 만들기도 한다. 주인이 하는 짓은 정말 대책없지만, 아니 그 무책임함으로 인해 더욱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듯, 유키뽕은 이삿짐 나르기에서부터 항해 측량 보조와 과외 교사에 이르기까지 아르바이트 전선의 모든 위치로 달려간다.

 
 
 갖가지 사건에도 불구하고 유키뽕과 아케미는 끈끈한 애정으로 엮여져 있는데, 유키뽕의 후덕함은 아르바이트 업계 전체로 퍼져나간다. 자신은 비록 고양이라는 신체적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다채로운 업무의 초보자로 일해 온 만큼 다른 초보 아르바이트생들을 격려하고 일을 도와주는 데는 누구보다 능숙하다. 걸쭉하고 질감 좋은 펜 선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여타의 개그 만화와 질적인 차이를 보여주는데, 유키뽕이 지닌 의외의 사회성에도 탄복하게 된다. 한국에서 돈 벌러 온 권투 선수를 통해 외국인 거주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제주도에 불시착해서 만난 노인을 통해 일본의 불법 한국 점령을 알려주기도 한다. 독자들이 직접 지어 보내는 ‘고양이 하이쿠’도 꽤나 즐거운 코너다. ‘꼬리를 밟았더니 오우 마이 캣’, ‘주인님 미행하니 충격적 추태’, ‘발바닥에 꿀을 찍어 덥석 물었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
 

 영원한 생명을 회쳐 드실까요, 다카하시 류미코의 <인어> 시리즈 박스세트 2004.09.24 20:04   
 

 
 
   서양의 흉포한 용과 동양의 성스러운 용이 다르듯, 유럽의 인어와 일본의 인어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라인 강이나 지중해에서 달 밝은 밤 초록색의 긴 머리를 빗으며 노래를 부르는 매혹의 인어는 일본에 오면 날카로운 이빨에 흉측한 얼굴을 가진 괴물로 둔갑하게 된다. 그래도 닮은 점이 있다면 양쪽의 인어 모두 인간을 유혹해 파멸의 길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서양의 인어가 아름다운 외모와 노래로 인간을 꼬인다면, 일본의 인어는 영생을 보장하는 자신의 고기로 인간을 꼬드긴다.  <란마 1/2> <견야차>의 다카하시 류미코가 안내하는 예상 밖의 공포세계는 인어 고기에 얽힌 단편 연작이다.

  <은하철도 999> <무한의 주인> <잭과 엘레나> 시리즈 등 걸작 만화 중에는 영생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질기고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자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계 몸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를 타고 가는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지만 메말라가는 영혼으로 인해 고통받는 기계 인간들을 만나고, <무한의 주인>에서 끝없이 되살아나는 육체를 얻은 만지는 수백명의 목을 자르면서 점점 무감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다.

    <인어> 연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주 어릴 때 인어 고기를 먹고 영생을 얻은 꼬마는 어른의 몸으로 자라지 못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새엄마를 얻어 이용한 뒤 죽이는 일을 반복한다. 어린 시절 인어 고기를 두고 다툰 자매는 흉측한 몰골로 평생 동굴 속에 숨어 지내거나 그를 감추어두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신세가 된다. 500년 전 인어 고기를 먹고 불로불사의 몸이 된 주인공 유우타는 오늘도 인어를 찾아 떠돌아다닌다. 이미 얻은 영원한 목숨에 또 다른 목숨을 더하려는 게 아니다. 부모도 연인도 잃고 길고 긴 세월 동안 홀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괴로움을 끝내기 위해서는 다시 인어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류미코는 독특하고 시니컬한 태도로 목숨에 얽힌 서늘한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그녀 최고의 장기인 왁자지껄한 유머를 없애고도 단단한 걸작들을 엮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인어> 연작은 <소년 선데이>에 부정기적으로 연재된 시리즈로, 국내에서는 최근 <인어의 숲> <인어의 상처> <야차의 눈동자>, 세권으로 구성된 박스세트(학산문화사 펴냄)로 출간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
 

 


 

나지막하게 미시적으로, 정송희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 2004.07.16 20:04     
 


    우선 익숙하지 않음에 불편할 것이다. 인물들도 이상하고, 배경도 그렇고, 이야기는 무언가 답답한 것 같다. 시각적으로 낯설어서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다. 톤도 없고, 때론 회색도 없이 흑과 백뿐이고, 명확한 직선도 없는 배경까지 모두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정송희의 만화는 무엇보다 작가 개인에 의해 그려진 ‘손맛’을 느끼게 해주는, 만화의 원초적인 힘을 보유한 작품이다.

소박하지만 풍부한 그림으로 정송희는 삶을 미시적으로 바라보고, 기록한다. 표제작인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의 경우 어린 시절 각각 다른 성폭력의 피해자였던 여자와 가해자였던 남자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되돌아본다. <지나 사라지다>는 희생만을 강요당한 한 여자의 이야기다. <유년의 틈> 역시 어린 시절 상처받은 기억을 지닌 두 사람의 회상을 그린다. <누드모델>은 육체적 차이에 대한 타인의 폭력적인 발언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하며, <그게 뭔지 몰랐어>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정송희의 작품들은 대부분 상처로 남은 기억을 되돌아보거나, 바로 지금 당하고 있는 상처를 이야기하는 데 주력한다. 과거의 기억이건, 현재의 상처건 바로 상처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정송희의 작품은 아주 친한 친구에게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는 것처럼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고백한다. “난 이런 상처를 갖고 있어.” 


  정송희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류 만화 주인공들의 (판타지한 욕망으로 디자인된) 상투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백은 내 친구의 고백처럼 받아들여진다. 충격적인 고백이 아니라 감싸 안아주고 싶은 고백이라는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깊은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쓰디쓴 삶의 뿌리를 내비치는 친구의 모습으로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독자들은 거부감 없이 그 손을 잡게 된다. 정송희 만화의 힘이다. 자연스럽게 상처를 내보이는 힘, 그리고 그 상처를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힘, 이 모든 힘의 원천은 인간의 내면에 깊이 내려가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꾸준히 다양한 만화를 창작하고 있는 만화동인 ‘박카스’의 일원인 정송희는 1999년 월간만화잡지 <오즈>를 통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들도 대부분 그 결과물들이다. 기본적으로 드로잉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작화 스타일이지만, 미묘하게 작품마다 그 스타일이 다르다. 예를 들어 <관계>와 <그게 뭔지 몰랐어>처럼 각각 다른 두 작화 스타일을 한권의 책에서 함께 비교하면서 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이다. 내 친구가 내미는 손을 잡아줄 용기가 있다면, 이 만화를 아주 천천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


 



 
우리는 고양이로소이다  <묘한 고양이 쿠로> 스기사쿠 지음 I 시공사 펴냄

 

  개인적으로 2003년에 나온 동물만화 가운데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개와 고양이를 1인칭으로 두고 이야기를 펼쳐가는 만화는 적지 않지만, 그들의 삶을 이렇게 사실적이면서도 귀엽게 그리는 작품은 보기 어렵다.

   쿠로는 자신의 여동생 칭코와 함께 ‘수염’이라고 이름 지은 너절한 싱글 남자의 연립주택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오는 날 놀이터에 버려졌다가 이 남자에게 거두어졌지만, 그를 주인이라고 생각지도 않고 집의 안과 밖을 오가며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만화는 쿠로의 1인칭 일기처럼 그려지는데, 길거리 고양이 세계의 권력 다툼, 발정난 고양이들의 사랑 싸움, 교통사고로 죽은 새끼 고양이의 무덤 만들기와 같은 실제 고양이 세계의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게 펼쳐진다.

어쩌면 나스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유머와 귀여움를 좀더 담은 시점이라고도 여겨지는데, 쿠로의 친구 고양이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도 딱 고양이 발치에서 바라다본다. 못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지만 왕따에 가까운 소년, 커다란 몸집과 못생긴 얼굴로 실연의 상처를 입은 듯한 괴인 여자, 마른 몸에 신경질적으로 보이지만 고양이들을 챙겨주는 여우 여인. 정말 고양이가 인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싶은 이야기들이 계속된다.

 

 

 

 

 

이것 말고도...                      김혜린, <노래하는 돌>   

               

 

 

  

내가 엄마를 먹여살리는 이유, <타무라 유미의 만능캡슐>

 

 

 

김전일의 후계자는,바로 당신!<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

 

 

 

죽은 자는 알고 있다,시미즈 레이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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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가면' 중에서

정세는 다양한 상황을 이루는 요소들 내지는 목록들의 단순한 요약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고 그 역사적 해법을 제시하는

그에따라 정치적 목표와 실천적 과제를 던져주는 모순적 체계이다.

 

루이 알뛰세르, '마키아벨리의 가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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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do - Life For Rent

 

 

Dido - Life For Rent

 

I haven't really ever found a place that I call home
I never stick around quite long enough to make it
I apologize that once again I'm not in love
But it's not as if I mind
that your heart ain't exactly breaking

It's just a thought, only a thought

But if my life is for rent and I don't lean to buy
Well I deserve nothing more than I get
Cos nothing I have is truly mine

I've always thought
that I would love to live by the sea
To travel the world alone
and live my life more simply
I have no idea what's happened to that dream
Cos there's really nothing left here to stop me

It's just a thought, only a thought

But if my life is for rent and I don't lean to buy
Well I deserve nothing more than I get
Cos nothing I have is truly mine

While my heart is a shield and I won't let it down
While I am so afraid to fail so I won't even try
Well how can I say I'm alive

If my life is for rent...

 

텔레비젼 광고를 무심코 보다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찾아봤더니, 역시,dido였다.

옛날에 Thank you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뭔 여자가 집이 헐리는데 계속 땡큐를 외치나 했었는데 그 여자가 이 여자였던 것.ㅋ

음색이 독특한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마지막 가사가 맘에 와 닿아서 계속 듣는 중.

"실패가 두렵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어"

대략 이런건가? 모르겠다.ㅋㅋ

흐음...암튼 이런 단순한 가사가 좋다.ㅋ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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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무렵,    영화관에 냅다 달려갔다.

왕의 남자가 천만을 돌파할 무렵 그 대열에 왠지 합류하고 싶었던  이후로 오랜만에 찾은 극장가.

흥행 신기록이라는 '괴물'에만은 끼지 말자고 다짐한 나.

친구에게 요즘 볼만한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예고편만 봐도 안습!! 인 이 영화는 세상에... 개봉 이틀이나 남아 있었다.

(영화는 원래 보고 싶을 때 봐야지, 기다렸다보면 개박살이다._._ )

 

그래서 요즘 재미있다는 입담이 돈다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낙찰.

결과는? 영화보고나서 영운이(김승우) 개 10 새X가 절로 나왔다.

감독의 의도야 어땠든 상관없이. 나 그리고 안습이 절정에 이른 내 친구는 멋대로 영화를 해석했다.

 

"씨X, 세상 남자 다 똑같애~"

 

연애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 (니들은 안그럴것 같냐? 진짜 연애하기 싫어진다,)

연애를 하고 싶던 사람에게도 요추(요거 추천의 줄임말이다)

이유는? 연애하고 싶은 생각 싹 가신다 효과 즉빵이다.

 

그리고,

감독은 여자들이 궁금해 하는 남자들의 심리라고 밝혔는데,

아니, 이건 남자들이 봐야하는 거다.




영화 줄거리는 대충 그렇고 그런 연애이야기. 룸살롱 아가씨와 갈비집 아들의 로맨스다.

물론 김승우가 옛날에 김정은과 함께 출연한 '불어라 봄바람'류의 로맨틱 코메디는 아니다.

 

이들의 사랑은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끝난다. 아니 끝난 것도 아니다.

이들의 사랑이 순탄치 않게 그려진 이유는?

 요동네 영화들이 뻔하듯이 술집여자라는 이유로 결혼에 골인할 수 없다.

이 남자는 홀어머니 밑에서 갈비집에 붙어사는,  경제력이 있는 위치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남자에게는 요조숙녀에 돈도 많고 나이 어린 약혼녀가 있다.

 

이들의 연애는 연아(장진영)의 농담섞인 진담으로 시작된다.

"나 아저씨 꼬시러 왔어~"(갠적으론 이 장면에서 장진영이 제일 예뻤다.)

분명 보통 사람들이 연애를 시작할 때

이것저것 재보고 떠보는 과정을 생략한 아주 가볍고 다른 연애의 시작이다.

그런데 실은 당차고 쿨한 것 같은 연아의 모습에서,

그런 것 같은 것일 뿐 온전히 그렇지 못한 사랑을 발견한다.

 

"첩년도 좋고, 세컨드도 좋으니까, 그년이랑 결혼해도, 나 버리면 안돼"

 

 

 

이 영화에서 김승우는 한 세 번 정도 눈물을 보인다. 하아~ 남자에 대해 반감이 강해져서 그런가.

난 김승우의 눈물을 보면서 악어의 눈물 같다고 생각했다. 먹이를 잡기 전 거짓 눈물을 흘린다는

그 악어 말이다. 영운이 극 중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늘 상대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건 연아가 사랑을 하면서 흘렸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었다.

 

그런 영운의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연아는 한 마디한다.

"넌 나한테 뭐니?"

 

그건 너에게 있어 내가 어떤 의미냐고 묻는 질문과는 다른 성격이었다.

이미 뭐라고 규정할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존재의 상태. 자조적이면서도 슬펐다.

 

 

 

 

여자와 남자는 연애를 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한다.

난 사실 남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른다.

친구의 말을 빌어서 표현하자면, 남자도 생각이 많은 동물이란다.

다만 생각하는 범주가 여자와 다를 뿐이라고.

 

영화를 보면서 여자와 남자의 연애관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그건 약혼녀와 결혼을 하고 첫날 밤 영운이 연아에게 몰래 건 전화.

연아가 하는 말.

"니가 그 년이랑 섹스하는 건 화가 안나는데, 침대에 누워서 다정하게 얘기하는 걸 상상하면 불이나.

그러니까 얘기는 하지말고 섹스만 하라고"

 

그 전화가 걸려오기 전 연아의 상상 장면이 나온다.

흰 드레스를 입고 멋진 차를 타고 영운과 어디론가 달려가는 상상.

잡으면 부러질 듯한 목을 해 가지고선 하늘거리는 흰 스카프를 바람에 날리며,

연아는 가볍지 않은 결혼을 상상하며 바람을, 자유를 느껴보는 거다.

 물론 상상은 현실에서 영운의 전화로 깨졌지만.  생각해보면 쿨한 듯 그려지는 연아는 실은 로맨티스트인 것 같다.

 

 

 

뭐, 솔직히 이 영화로 건질게 많지는 않다.

특히 김승우가 자신의 결혼 생활을 파탄 지경에 이르게 한 장진영을 개 패듯이 마구 패는데, 그리고 나서 자신의 부인에게 전화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18 자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자 적어두는 이유는,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경우로 환치 시켜보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연애 일면을 찾아낸다.

정말 제대로 된 남자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이 영화에서,

과장된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기도 한 남자들의 모습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집어낸다.

같이 본 친구와 난 연애를 하고 있지 않고, 또 부정적인 시각을 지닌 까닭에 비슷한 결론을 집었다.

 

세상 남자 다 똑같구나.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어떤 남자애가 김승우가 나쁜 놈이라는 말을 하길래,

뒤 돌아서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라고 말하려다 말았는데.ㅋ

왠지 남자들의 항변도 듣고 싶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 보라고 권해보는 중이다.

아, 그리고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도.

그와 그녀는, 그녀와 그는 어떤 시각으로 연애를 하고 있냐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묻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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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풍화작용- 전혜린

시간의 풍화작용

 

 

결별은 쉬운 일, 그러나 그 다음이 항상 문제인 것이다.
사고(思考)는 항상 사실적인 힘임을 믿고 있다.
끊겠다는 의지가 끊는 행위와 같은 것을 뜻하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
한 미소나 한 눈동자, 한 목소리를 기억의 표면에서 말살해 버리는 것은
많은 국가와 시간의 풍화작용의 도움이 필요하다.
잊겠다는 의식만으로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관념이 긍정한 행위를 우리의 감성이 받아들이기에는 또 하나의 훈련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듯이 완전한 자유의지는 아닌 것 같다.

- 1964년 1월  20일 -

 

 

 

 


암흑의 장막이 하늘을 덮고 비가 그칠 새 없이 창문을 두들긴다.
벽난로의 불은 꺼지고 말았다.
독서에 피곤해진 눈을 쉬게 하려고 책상 앞에 하염없이 앉았노라니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절절한 고독감뿐.
이웃 방에서 도란도란 들려 오는 독일어도 나의 쓸쓸한 심정을 한층 북돋을 뿐이다.
마치 두더쥐가 땅속의 온기(溫器)를 탐내듯,
인간은 한 줌의 친절함과 인정(人情)의 필요를 느끼는 생물이었던가.
모든 것이 나에게 무관심하구나, 하는 생각은 아무래도 견디기 어려운 서러움이다.

따스함을, 이해를, 건강을 갖고 싶다.

살고 싶은 의욕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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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스트의 남산배경 사진 몇 장


 

생각해보면 서울 곳곳에 돌아다닐 만한 곳이 많다. (물론, 삶의 여유와 발품은 필수다.)

 2주일에 한번 쯤(몸이 찌뿌둥하고, 도서관도 마침 휴관해주는 날엔-.-;)  바깥 바람을 쐬려고  남산으로 향한다.

서울 도심에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건 꽤 매력적인 일이다.

 

버스가 이끌어주는 대로  남산타워까지 오르는 입구에 당도하면,

그 짧은 코스를 헉헉 거리며 오른다. 운동 부족? 맞다. 

그래도 나는 가파른 경사에 만족하며, 꼭대기에 올라서는

공자가 뭐시기 산을 오르며 느꼈을 호연지기를 상상해본다.

그래, 아등바등하지 말자.  

                                           그 순간, 늘 산통깨는 건 연인들.

'저기요, 사진 좀 찍어주세요'(뷁, 셀카질 하란 말이다.)

 

아이들이 햇빛 받으며 뛰어놀고, 가족과 함께 단란한 오후를 보낼 무렵.

난 그것도 등산이라고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꾹꾹 누르며,

모르는 애들 옆에서 맥주를 한 캔 마셔준다.

그리고 나선?

혹여 산책로를 따라 주욱 걸어 내려왔을 것을 상상했다면, 그건 섭섭.

난 그저 바람 좀 쐬려고 갔을 뿐이므로

 

그냥 버스타고 내려온다. 랄라~

 



p.s)

 

 

 

국립과학원 옆 114계단에서. 이 애들은 전혀 모르는 아이들 .^^;;

 

옛날에 이 계단이 전생, 현생, 내생의 삼세의 인생사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번민이라던 108번민을 상징하는 108계단이 아닐까란 상상을 해봤으나...

실제로 세어본 결과 114개의 계단이었다.

 

 

이 계단은 절대...네버...

내려는 가봤지만, 올라가 본 적은 없다.

더운 여름 이 계단을 오르는 건 자기학대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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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사랑만 그런 것은 아니다.



 

 

 

꼭 사랑만 그런 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사람이 지닌 여러가지 모습 중에

내가 한 가지만을 보려고 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종종 한다.

다른 사람이 나을 볼 때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p.s) 난 다른 사람에게 무슨 색처럼 보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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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다.


(from naver)

 

 

 

raining.

비가 온다.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깥 바람이 시원하다. 바람이 제법 선선한게 정말 가을이다.

빗소리가, 바람이, 날씨가 변했다.

다르게 들리고, 다르게 느껴지고, 그래서 좋다.

 

좋다.

마음 한쪽은 선선하고 텅 비어있는데, 그 느낌이 나쁘지 않다.

아직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담아낼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했다.

그릇이 비어있다.

 

달관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체념과는 거리가 있는

마음의 상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바람과 비가 적절하게 평형을 이뤄주는 느낌이다.

썩 나쁘지 않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오늘은 잠을 아주 잘 잘것만 같다.

 

 

 

 

 

p.s) 문제는 그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주체의 태도이다.

    정말 문제는 "존재"가 아니라 "태도"이다. 그 때 이 말하는 걸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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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부치지 못한 편지     

 

 

내일 모레 그 녀석과 약속을 잡았다.

  말년 휴가때 한 번 본 것 말고는 군대가기 전이나 후나 본 적이 없으니, 대학교 때 몇 년을 붙어다닌 사이치고는 꽤 시기를 두고 만나는 셈이다. 원래 계획은 면회(?)도 가주고, 선물이나 편지도 가끔 보내줄 생각이었지만, 늘 그러하듯 생각은 생각에서 멈추는 스탈.

  이 녀석에게   제대 하기 전.  계획했던 편지 한 통을 부쳐주려고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 발목을 끄는 귀차니즘 때문이다. 두 블럭 떨어진 우체국까지 가서 우표를 사기가 힘이 들었던거다. 그래서 이 편지는 내 방 책상 서랍 속에 고히 모셔진 채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되어버렸다.  (사실 부치지 못한 편지는 이거 말고도 또 있다.)

 

 'F4' 에게 "삼십"으로 통하는 그 녀석에게 줄 이 편지를 얘기 하려면, 말 많고 탈 많았던 옛 기억으로 돌아가야한다.

 

 

내 기억은.

 삼십에 대한 내 기억은 내 운동의 시작과 맞물려 있어서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학생운동을 처음으로 나와 관련지어 생각했던 때. 그 때로 돌아간다.

다른 운동세력은 거의 전멸하고, 민족주의 세력만 몇몇 과를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때,

캠 좌파라는 이름으로 나와 내 동기는 혈혈단신으로 단대 선거에 출마했다.

캠 내에서 그나마 확고한 역사를 가진 세력과 힘 겨루기는 지는 것이 뻔한 승부였다.

 

그래도 우린 의미를 가지고 활동했었고, 승부는 졌지만 꽤 유의미했다고 지금도 평가한다.

물론 이 때의 체험은 나나 내 동기나  '대중운동 경험의 부재'라는 원체험으로 작용해 이후 운동을 하는데 있어서 한 편으로 압박해 올 때도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현재를 다잡을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 된 셈이다.

 

 이렇게 생각하기까지의 과정은.

사실 쉽지 않았는데, 이건 내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거다.

  

2000년대의 대학생활.

취업을 위해 토플 책을 끼고 살아야하고,

너 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해야 살아남는다고 강요하는 환경이 지배적이기 시작한

그 틈에서 살아온 나의 이야기이다.




옛날 기억들.

대학교 2학년 때 나는 '불어'에서 '국어'로 전공을 바꿨다. 여러 요인이 작용하긴 했는데,

직접적 이유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얻은게 있으면 잃는 게 인생사.

내 경우엔 '사람과의 관계맺음'이다. 전과한 나와 내 친구들은 그걸 '알량한 텃새'라고 불렀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에 적응하기 힘든 나에게 단대 선거 출마는

사실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던 거다.

안 그래도 과에서 내 이미지는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그 모든 이유는 '전과'에서 시작했다.

 

  학기 초 학회비를 이중으로 납부하라는 과학생회의 요구에 부당하다는 내용으로

 500여명의 연서명을 받아 선배들 얼굴에 날려줬다.

물론 처음에 논리적으로 옳지 않은 결정이라고 설득했으나, 돌아오는 건

 "다 이해하는데 그냥 너희가 희생해"라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가 화가 났던 거다.

 난데 없는 서명운동에 놀란 학생회 선배들은 우리의 요구에 순응했지만,

대신 우리는 '싸가지 없는' 스타일의 소유자로 무수한 눈초리를 받았다.

  

 여기에 턱없이 부족한 장학금도 한 몫 했던 거지.

한 학년당 40명 정원에 장학금은 고작 네 다섯명. 유감스럽게도 그 장학금은 매번 전과생들이 독차지했다.

국어과 특성상 소문이 뒤로만 도는데, 꼭 돌고 돌아 귀에 들어오는 소문들이다.

내용이야 우리가 어디서 굴러온 개뼈따귀로 자기들 몫을 뺏어가는 것 같아 못마땅하다는 내용이었다.

본의아니게 왕따가 되어버린게다. (ㅠ.ㅠ이게 웬일)

 

그런데 단대 선거에 떡하니 출마하는게 자기들도 당황스런 시츄였나보다.  민족 계열에서 단대 선거 정후보로 평소 과에서 사람좋기로 소문난 동기가 나왔다. 과에선 난리가 났다.

같은 과에 후보가 둘이 나올 수가 있냐며 어떤 선배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나올 수 있으니까 나온거 아니냐' 나야 속으로 몇 번을 소리질렀지만, 한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제길. 그 땐 어렸던거다.

 

 

 선거 기간동안 가늠할 수 있는 득표 수를 세워보는데, 비참했다.

득표수가 적은 것에서 오는 비참함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된 것에서 오는 좌절감이었다.

국어과도 불어과도 어느 곳에서도 속하지 못한 채 둥둥 떠내려가는 '낙동강 오리알'신세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처지를 보고 어느 동지가 농담으로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하니까 좋지?"

평소 내 성격이면 좋게 흘려보냈을텐데, 정색하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딱 잘라말했다.

아직도 그게 기억나는 걸 보면 지대 짜증났던 거다. 지금이었으면 사과하라고 소리질렀을텐데 ㅋ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내부에서 생활하는게 만만치 않았다.

선거에 들어가기 전 이런 생각으로 출마하니 지지해달라고 부탁했던 몇몇 복학생 선배들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네 생각에 동의해. 그런데 앞에서 나서서하기엔 그렇고, 뒤에서 응원하고 있을께"

젠장. 지금 생각해보니 완전 비겁모드. 그래도 그 때엔 그것마저도 고마웠다.

과 전용 게시판엔 상대편이 과선배니 유의깊게 보라는 내용과 우리쪽을 비방하는 글로 가득했는데,

 내가 지금도 용서하지 않는 구린늑대새끼는 공약을 씨부렁거리는 글을 올려놨다.

단대가 사범대인만큼 당시 상대평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이데올로기 공략을 펼쳤는데,

구린 늑대는 어디서 굴러온게 말도 안되는 공약을 내세웠다고 흥분하는 글을 썼다.

 그 때 당시 열받던 건 선거가 끝나고 이듬해 학교에서 정말 인원 수가 적은 과목에 대해

절대평가를 시행하는 걸 보고 (당선된) 학생회의 성과라고, 가능한 일이었다고 글을 쓴 일이다. 카멜레온 같은 놈. 찔리는게 있었던 거다.

 

 

뭐, 준비되지 않았고, 미숙한게 많았던게지.

개인적으로는 만약 여기서 끝이 났더라면 지금의 난 아무 고민없이 잘 살았을텐데,

우라질 학교가 적절하게 탄압을 해준 덕에 이렇게 살고 있다.

그 때 이후 학생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는데, 대신 과에서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후배 하나 만나려치면, (물론 내가 펑크낸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치 내가 사람을 안 좋은 물로 끌어당기거나 조종하려는 인물로 묘사되서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건진 사람이 삼십이다.

이리저리 잘 도망다니던 삼십이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사회를 보려하고 고민하려고 하던

그 때.

내가 겪었던 같은 어려움을 그 친구도 토로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척박한 토양. 그 가운데 지닌 열기. 미숙함. 계속해서 학습되는 무기력감.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다.

 

 

삼십에 대해

 

대학생활동안 건진게 뭐냐고 물으면 내 가치관 그리고 사람이라고 대답한다고 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건진게 뭐냐고 물으면 난 그 중 하나가 '삼십'이라고 말한다.

내가 관계한 사람이 몇몇 되지 않아서^^;;

 

제대를 앞두고 말년 휴가를 나온 삼십은 대뜸 말한다.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난 그러라고 했다.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다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모습만은 보이지 말길.

권력과 타협하지 않기.

 

부치지 못한 편지에 이런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데, 이걸 줄까 말까 고민중이다.

이사하면서 버린 것도 같고...쩝.

뭐, 만나서 직접 말할 수도 있겠지? 뭐가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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