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칼럼 2011/12/01 11:04

성모송 묵상 7-"아멘"

 

은총을 가득히 입으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마리아께 나신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하느님의 모친 되신 마리아여

이제와 임종시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 몸을 던져 '아멘'을 보여준 사람,

순교자 막시밀리아노 콜베.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그는 아마도 현대의 기독교인 중에, 아니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성모신심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알고있는 것처럼 그는 성모의 이름으로 된 공동체를 세운 사람이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그는 '사랑의 순교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나치 정부는 유태인을 보호했다는 혐의로 그의 몸을 감옥에 가두었다. 콜베는 그 곳에서 다른 수감자를 대신하여 '아사(餓死)'형을 선택했고 그 곳에서 길지 않던 삶을 끝냈다.

 

  나는 콜베신부에게서 일종의 '자유'를 본다. 이 자유는 사자굴에 같힌 다니엘의 자유이고 용광로에 던져진 그의 친구들의 자유이며 로마의 감옥에 같힌 바오로와 실라의 자유이다. 나아가 이 자유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건드리지 못하는 이들을 두려워 말라!"고 외치던 예수의 자유이다. 나치는 콜베의 몸을 가두었으나 콜베는 그를 가둔 나치의 권세를 없는 것으로 여겼다. 페르시아 제국의 짙은 먹구름을 뚫고 나타난 하느님의 임재(현존) 앞에 무릎 꿇은 다니엘처럼, 로마제국의 어둠을 헤치고 나타난 하느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은 마리아치럼, 콜베는 나치의 권세를 '없는 것'으로 여기시는 하느님의 전능하신 사랑 앞에 굴복했다.

 

  이것이야말로 "아멘"이다. 성모송에 '아멘'으로 응답한다는 것은 가브리엘을 향한 마리아의 '아멘'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 일이어야 한다. 성서는 교과서의 지식을 밑줄 쳐가며 외우는 식의 아멘을 말한 적이 없다. 성서에 등장하는 최초의 아멘은 "네! 그렇게 살겠습니다!"라는 결단의 표현이었다(신명 27). 이것은 예수의 말씀에서도 마찬가지다. '네'라고 말하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은 첫째 아들과 '싫다'고 말한 후 아버지의 뜻을 행한 둘째 아들의 비유에서 예수는 둘째아들이 진정으로 하느님 앞에 '아멘'으로 응답했다고 말씀하신다(마태 21:28-31).

 

  성모송을 지속적으로 암송하는것, 그렇게 함으로써 마리아의 결단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고난받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축복하는 것. 그것은 하느님을 향한 '아멘'을 연습하는 것이다. TV의 소음과 세상의 지혜들에 길들어버린 우리가 '아멘'을 살기 위해서는 이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수의 길은 마치 오랫동안 걷지 않아 잡초에 가려진 샛길과 같아서, 앞서간 이들을 따라 계속 걸어갈 때에야 다시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p.s.

 

콜베 신부와 더불어 다음의 앞서간 이들을 '아멘'의 모범으로 함께 기억해 본다.

 

성모송에 평생 아멘으로 응답하고 살았던 사람들

: 마틴 루터, 울리히 쯔빙글리, 로메로 주교.

 

성모송을 몰랐으나 아멘은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들

: 더크 빌렘스, 마틴루터 킹.

 

 

200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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