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실내에 흐르는 은은한 음악. 그것은 수천만원짜리 오디오 시스템과 그것을 아끼고 자랑스러워 하는 조르바 같은 주인장이 빚어낸 리얼 오디오일 수도 있었으리라. 손님들은 모두 캐주얼한 느낌을 주는 정장을 하고 한쪽 팔을 탁자에 의지한채 머리를 괴고 음악에 몰두하며, 이순간 자신이 인류가 만든 문명의 최고 정점에서 예술을 향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들에게 주어진 한뼘의 자유를 침해하는 낯선 술꾼-취한 그는 거기가 선술집인줄 알고 있었다-의 고성에 클래식 음악 애호가 주인은 포르테 부분을 진행하는 음악의 볼룸을 최대로 키우는 것으로 응징했던 것일수도 있다. 얼마나 문명적인, 고상한 응징인가? 술꾼이 빚어내는 거친 숨소리와 고함소리와는 판이하게 자신을 구별할 수 있을 그러한 태도.

 

이때 술꾼이 손을 들고 주인에게 말했다. 음악 소리를 좀 줄여 달라고. 주인이 음악을 낮추는 듯 볼륨에 손을 갖다 대었으나, 음악은 오히려 더 커진 듯 변함없는 웅장함을 만들어 냈다.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웅장함. 귀먹은 만년의 베토벤조차 두 손 들 수 밖에 없었을 위대한 사운드.

 

주인이 그 제스쳐를 취한 후 뭐라고 말을 했는지 술꾼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당시에도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이해했는지 알수 없으되, 주인의 말을 들은 술꾼은 곧,

 

"음악이 아무리 좋아도 그건 손님을 위해 있는 것이니, 손님이 원하는대로 해 주시오"

 

라고 말했다. 스스로 속물로 규정한 대상에 대해 자기가 응징할 권한이 있는 문화부 장관이라도 되는 줄로, 술꾼은 착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순간, 조르바를 닮은 주인이 또 뭐라고 했는지 술꾼은 여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마지막 말을 제외하고. 즉, 주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나가 주세요."

 

그런데, 동시에 뒤쪽에서 어떤 또다른 고상한 손님들이 술꾼에게 말했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들은 여성이었다.)

 

"우리는 볼룸 큰 게 좋은대요?"

 

그런데 그 말은 술꾼에게 이렇게 들렸다. 즉, "네가 뭔데 손님을 대표한다고 난리냐?"

 

술꾼은 그 순간 근엄한, '스나브'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자칭의 '역사적 사명'에 도취되어, 저 버르장머리 없는 주인장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주인 앞으로 나가 소리쳤다.

 

"이곳은 당신의 가게이기도 하지만, 손님의 가게이기도 한 겁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음악에 묻혔고, 주인은 "삼만원입니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듯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개를 숙인채 나가는 술꾼의 등 뒤에서 그 고상한 음악애호가들은 어떤 경멸을 마음 속으로 토로했을까. 문명대 야만, 과학과 자연, 현대와 전통, 세련된 것과 투박한 것, 고상한 것과 천박한 것...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1/11 21:39 2006/11/11 21:39
https://blog.jinbo.net/rkpaek2/trackback/172
YOUR COMMENT IS THE CRITICAL SUCCESS FACTOR FOR THE QUALITY OF BLOG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