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괴담 (蹴球怪談)
--- 이 류 / 자유기고가

축구괴담 첫 번째
- 엘리트스포츠와 헝그리정신에 보내는 만가

86,87,88,89,90,91,92,93,94,95,96,97,98,99,00,01,02?

월드컵 개막식과 개막전이 열릴 한국의 서울 상암동축구
장. 새벽까지 개막전 리허설을 하던 여고생에 의해 축구장 화장
실에서 자살한 변사체 발견. 그러나 한일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이 사건을 일체 비밀에 부치기로
결정. 이윽고 다음날 개막전. A조에 속한 전대회 우승국 프랑스
와 월드컵 공동개최국 일본의 대결. 전대회 우승국 프랑스의 졸
전 끝에 무승부. 자국여론의 집중포화를 받던 프랑스대표팀 감
독 자살. 같은 시각, 일본에서 벌어진 B조 브라질과 한국의 대
결. 결사항전의 각오로 게임에 임한 한국대표팀의 승리. 한국은
축제분위기. 그러나 그 날 한국대표팀감독 돌연 죽음. 월드컵
조직위원회와 사건 수사를 맡은 검찰은 우승부담으로 인한 자
살로 추정. 한국 대표팀 감독은 4년 내내 여론과 국민으로부터
의 압력에 괴로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의 수첩에는, "한
국대표팀의 수준은 잘해야 16강에 턱걸이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모든 여론과 국민들은 한국대표팀의 우승을 바라고 있
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그라운드에서 죽어야 한
다..."라고 씌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검찰측에서는 부인
하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대표팀감독의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으로 인해 월
드컵 일정이 일주일간 연기되고, 애초 개막전 전에 발견된 변
사체에 대해서도 두 대표팀감독의 죽음과 관계있을 것으로 보
고 재수사에 들어갔다.
한편, 한국 대표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차범근감독은
부임전 죽은 전감독으로부터 수상한 전화를 받았다. "김진주가
살아있어..." 김진주선수는 도시 빈민가정에서 태어나 라면만 먹
고 죽을 각오로 공을 차, 고졸로 프로에 입단한 입지전적 인물
로, 1986년에 멕시코월드컵 국가대표로 발탁될 예정이었으나 각
프로구단과 한국축구협회의 이해관계로 발탁직전에서 탈락했으
며, 탈락의 충격과, 발탁되기 위해 실시한 무리한 훈련의 후유증
(그는 끝까지 라면만 먹고 그라운드에서 죽을 각오로 뛰었다)
이 겹쳐 죽은 것으로 알려진 선수다. 중국 프로구단에서 활동하
면서 국내 축구계에 대해 다소간 정보가 어두웠던 차범근 감독
은 지난 몇 년간의 대표팀 상비군에서 김진주선수와 같은 얼굴
의 선수를 발견. 그 선수는 계속 상비군에서 대표팀 발탁 직전
에서 탈락했다. 차범근은 김진주의 실체에 접근해 가던 중. 한
국의 최고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이동국과 함께 상암동 그라운
드에서 김진주를 만난다. 경기장 라이트가 모두 터지고, 골대가
쓰러지고 그라운드가 피바다가 된다. 차범근이 김진주에게 말
한다.
"네가 이런다고 바뀌는 게 아니야. 모든 대표팀의 감독이
죽어도, 월드컵은 벌어질 거고, 한국축구협회는 계속 건재할 거
야. 피파가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진주야 네가 할 일은 없어.
이제 네 갈 길을 가. 이제 축구도 바뀔 거야. 축구는 축구일
뿐이야. 제일 잘하는 선수가 공정하게 대우받고, 축구선수들이
모두 좋은 조건에서 축구를 할 수 있게 될 거야. 내가 잘 할게.
제발 너의 길을 가."
그러나 김진주는 조용하고 음산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다만 공을 차고 싶었을 뿐이야.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
는 그라운드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공을 차고 싶었을 뿐이
야.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공을 차는 것 밖에 없었어. 나는 말
을 배우는 것보다 먼저 공을 찼으니까. 내가 어렸을 때 할 수
있는 놀이는 공을 차는 것 밖에는 없었어. 아버지는 공사판에
나가고, 엄마는 파출부로 나가면 나는 할 게 아무것도 없었지.
동네 형들은 본드 불고, 패싸움하고…. 나는 그 지긋지긋한 동
네,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어. 하지만 공부는 과
외를 하는 애들한테 당할 수 없었고, 내 머리도 좋지 못했어.
하지만, 내가 남들보다 좀 더 공을 잘 찬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
죽기살기로 공을 찼지. 그래서 난 성공했어. 하지만, 대표는 마
지막에 축구협회 농간으로 탈락했고, 내 축구에도 자신감이 없
어졌지. 그래, 라면먹고 마구잡이로 배운 축구가 도저히 유럽의
축구를, 남미의 축구를 당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야.
내가 은퇴하면 뭘 하지? 서른만 되어도 새로 축구를 배운 애들
한테 당할 수 없을 거고, 대표팀이 될 가능성도 없고…. 뭘 하
지? 내가 할 줄 아는 건 공차는 것밖에 없는데?… 아아, 한 번
만이라도 태극기를 달고 월드컵에서 뛸 수 있었다면 달라질 수
도 있었겠지…. 하지만 난 이제 대표선수가 되지 못한, 그리고
아무한테도 주목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그라운드를 떠났던 많은
축구선수들을 알고 있어…. 난 지난 몇 년간을 계속 상비군과
실업팀을 전전했지만, 나를 알아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난 그렇게 해서라도 공을 계속 차고 싶었을 뿐이야…."
김진주는 이 말과 함께 그가 소중히 간직하던 축구공 하
나만을 남기고 이승을 떠난다.


축구괴담 두 번째
- 넌 내가 아직도 축구공으로 보이니?

검찰은 2002월드컵 시작과 함께 벌어진 세 건의 사건을 상호
관계없는 개인적 문제로 인한 자살로 매듭짓고, 조직위원회는
일주일동안 중단되었던 대회를 다시 시작한다. 다소 대회의 열
기가 식은 상태에서 대회가 다시 시작되었지만, 개최국인 한국,
일본의 선전과 월드컵 최초출전 중국팀의 선전, 축구 제 3세
계국가들의 돌풍이 이어지면서 대회는 다시 열기를 띄어갔다.
아프리카팀의 절대강세 속에서 유럽팀의 약화, 남미의 현상유지,
아시아의 돌풍이 중단되었던 대회를 다시 열광의 도가니로 몰
아넣었다. 결국 나이지리아와 잉글랜드가 맞붙은 결승전에서
나이지리아가 최초의 비남미, 비유럽우승국, 아프리카우승국이
되었다. 중국은 처음 출전한 월드컵에서 4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함으로써 전대회 크로아티아의 1회 출전국 돌풍을 이어나
갔으며, 한국은 브라질을 꺾는 선전을 보였음에도 16강에 만족
해야 했다.
그런데, 대회가 끝나고 월드컵에 출전했던 각 팀의 선수들이
하나씩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최초의 희생자는
이번 대회에서 야신상을 받은 잉글랜드의 골키퍼였다. 그는
전 시합을 통해 신기에 가까운 골문 방어를 보여줘 최고의 수
문장으로서 평가받은 선수였다. 하지만 대회가 끝나고 귀국 직
후 자신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내장파열. 검시
한 의사는 빠른 속도의 축구공으로 인한 충격으로 인한 내장
파열로 추정했다. 그 다음의 희생자는 중국팀의 수비수였다. 그
의 사인 역시 축구공의 충격으로 인한 내장파열. 그러나 세 번
째의 희생자는 의외로 피파회장이었다. 그의 사인은 두부타격으
로 인한 뇌진탕이었다. 대회 경기를 다시 모니터한 협회와 경
찰에 의하면, 피파회장은 한국과 중국의 경기 관전 중 경기장
바깥으로 튀어나온 볼을 머리에 맞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뇌
진탕을 일으킬 정도의 속도와 강도는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네
번째의 희생자는 미국의 공격수였다. 그는 사망직전 발견돼 목
숨을 건졌으나 발이 심하게 썩어들어가는 병에 걸린 것으로 알
려졌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게 진행되자, 월드컵 참가국은
모두 선수들에 대해 정밀한 종합검진을 실시했다. 실시결과 놀
라운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경기에 한 번도 뛰지 않은 후보선수
들을 제외한 선수단 전원의 에이즈감염이었다.
그러자, 피파는 한국과 일본의 경기장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한국과 일본은 선수단이 묵었던 숙소, 경기장과 모
든 물품에 대해 정밀한 검사를 했으나 어떠한 문제도 발견하
지 못했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동남아에서 처음으로 참가권
을 획득해 예선에서 탈락한 말레이지아에서 축구공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해 그에 대한 면밀한 조사에 들어갔다.
2002월드컵의 공인구는 아디다스가 제작한 '아리랑'과 '가미
가제'. 전대회에 비해 탄력을 높인 최초의 64조각 공인구였다.
막판까지 아디다스와 나이키, 낫소와 미즈노가 공인구를 따내
기 위해 경합을 벌였으나 아디다스의 승리로 돌아갔고, 공인구
의 이름은 대회개최국과 관련시켜 작명하는 전통에 의해 '아리
랑'과 '가미가제'가 되었다.
한편, 밤늦게까지 한국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축구공을
앞에 두고 실험과 조사를 계속하던 이박사는 깜박 잠이 들어
혼자 연구실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잠이 깨 보니 충격실험을
하고 있던 축구공에서 빨간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검사기의 공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그
는 축구공의 가죽을 모두 벗겨보았다. 그런데 그 속에는 놀랍게
도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의 머리가 들어있었다. 그는
도망치려 했지만, 연구소의 모든 문이 잠겨 있었다. 실험실 안
의 모든 축구공의 가죽이 벗겨지고, 그 속에서는 어린아이들의
머리가 나와서 소리를 맞춰 노래한다. 이박사는 그 날 이후 죽
을 때까지 이런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우리들은 노동자. 다섯 살부터 노동을 했네. 난 돈도 못받고
축구공을 붙였지. 먼지나는 작업장, 숨도 쉬기 어려웠어. 아침부
터 밤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우린 축구를 못해. 우린 축구가 싫
어. 우린 축구를 발로 하지 않고, 손으로 하니까. 밤새 축구를
보는 어른들, 밤새 축구공을 만드는 아이들. 너는 아직도 이게
축구공으로 보이니? 아니야 이건 우리들의 피고 우리들의 살
이야. 아직도 호나우두의 가슴에서 빛나는 승리의 마크 나이키
가, 독일 축구팀의 가슴에서 빛나는 환호의 삼선 아디다스가 멋
지게 보이니? 그 속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 피냄
새가 말이야. 이제 우리의 복수는 시작일 뿐이야…."
축구공에서도 어떤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축구공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고, 동남아의 아동노동을 착취해서 생산했
던 아디다스, 나이키 등 다국적 기업들의 축구공 공장은 모두
동남아에서 철수되었다.
하지만, 배구공에서도, 농구공에서도, 축구화에서도, 유니폼
에서도 피는 다시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 이류님은 서울대를 졸업, 자유기고가로 일하고 있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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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7 02:12 2005/06/27 02:12

이나영

2005/06/27 01:45

이나영은 참 예쁘다. 젊은 사람으로 하여금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런 이미지는 마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말의 저 너머에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른 표정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이미지는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어떤 환상 속에서 살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선언하는 오만은 부려서는 안될 것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차원에서 이나영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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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7 01:45 2005/06/27 01:45

장국영

2005/06/27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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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7 01:28 2005/06/27 01:28

[영화] 홍반장

2005/06/14 19:53

 홍반장

- “축적(蓄積)”과 “소외(alienation)"의 논리에 대한 우발적 반항


정확한 제목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다.(매우 길다.) 제목대로 주인공은 홍반장(김주혁)이고, 그의 직업은 반장이다. “통, 반” 할 때의 그 반장. 그러나 그의 직업이 거기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영화의 첫 번째 모티프가 된다.(두 번째 모티프는 상업영화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 곧, 세속적 남녀관계이다.) 영화 속 그의 또 다른 직업, 혹은 그가 종사하는 또 다른 업종들은 다음과 같다.


부동산업

인테리어업

편의점 아르바이트

택배업

중국집 배달

김밥집(구체적인 업무는 알 수 없음.)

주점 주방장

live 카페 가수

사설탐정 혹은 경찰 보조원(이에 따라 “훌륭한 시민상 몇 개”를 탔다.)

정육점

비디오 가게

시골역 안전요원

(이상, 등장하는 시간 순)


홍반장은 이렇게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지만 또한 어떠한 직종에도 종사하지 않는다. 혜진(엄정화)의 말대로,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 모든 일들은 일당(5만원)으로 계산되지 연봉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이 임금에는 “노동자가 노동력 한 단위를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교환)가치” 따위의 개념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비용은 “돈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을 안 갖고, 다음에도 또 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계약관계가 불명확하고, 또 위약(違約)시의 법률관계가 모호한 비용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인간적 비용”이다. 이처럼 인간적인 계약 관계 속에서 일을 하는(살아 가는) 홍반장은, 그러나 현대 사회의 상식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할 일 없는 사람”이다. 홍반장의 인생은 사회의 통념에서 볼 때, “왜 그러고 사는지” “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한” 인생이다.


왜인가? 직업에 관한 현대사회의 상식이 처한 상황은? 곧, 소외(alienation)라는 것.


첫째,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소외. 이른바 “실제의 노동”(labor as reality)이라는 것이 사회 속에서는 의미가 없어진다. 노동에 관한 표상(껍데기)이 그것을 대체한다. 구체적인 작업과정이라든가, 그것의 의미보다는 외형, 곧 사회관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홍반장은 누구보다 훌륭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지만, 동시에 그는 이 사회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격증이 없으니까. 이에 대해 홍반장은 이렇게 말한다. 곧,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둘째, 노동과정으로부터의 소외. 실제의 노동 그리고 노동자는 노동과정으로부터 자아를 실현할 수 없다. 한마디로 일이 싫어진다.(월요일이 싫어진다.) 일 보다는 일의 결과물이 목적이 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노동과정이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적이지만, 여전히 고립된(이른바 “고립된 생산의 산물만이 상품이 된다”고 하는 M씨의 말대로) 사적 소유물로서의 “공장” 속에서 그것이 강요된 작업을 하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다른 것을 꿈꾸는 사람, 혹은 다른, 자기만의 작업과정을 꿈꾸는 사람은 “한심해 보일” 뿐.


셋째, 노동의 결과(곧,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필연적 귀결로서, 상품이라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이 변한 것이기도 한 바의, 화폐라는 상품과 대면하여 물신주의에 빠진다. 이른 바 현대사회의 상품 물신성(commodity fetishism)이라고 하는 것. 결국 화폐상품이라는 것(한마디로 돈)의 축적이 삶의 목표가 되는데, 화폐라고 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 노동의 소외 속에서, 작업한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축적이라는 것은 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이른 바 “자본”(capital)이라고 하는 것은 축적된 상품이다. 소외되지 않은 노동과정 속에서 인간적 능력이 전개되는 것이 아닌, 소외된 노동의 결과물이 축적되는 것으로부터 세상이 움직인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왜 일, 활동, 인간적 행위가 아니라, 그것의 소외된 결과물(화폐)을 추구하는가 왜 그것이 행복이라고 불리는가. 왜 홍반장이 한심한 사람으로 불리는가.


이 영화를 ‘여성 판타지’라는 시각으로 분석한 것에 대해.

(이 글을 쓸 무렵 S씨로부터 이러한 분석이 나왔다.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 준 S씨께 감사한다.)


그런데 위의 분석을 전제할 때, 홍반장이 갖춘 ‘야메’의 능력에 대한 판타지(여성판타지)는 영화속에서만, 현실을 거울처럼 거꾸로 반영하는 영화속에서만, 성립하는 현상이다. 여성들은 영화관에서 홍반장에게서 판타지를 발견하고, 극장을 나서자 마자 “현실적인 남성”을 찾는다.(물론, 정확히는 영화속 판타지+현실적 능력)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진정한 ‘영화’인 것이다. 진정한 판타지인 것이다.

 

감독 : 강석범 / 출연 : 김주혁, 엄정화, 김가연, 기주봉 등 / 2004-3-12 / 108분 /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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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4 19:53 2005/06/14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