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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 - 강주성

 

환자의 눈으로 건강도 권리라고 말하기 

 

 

 

최도영은 정말 좋은 의사일까?


나는 올해 초에 MBC드라마 “하얀거탑”에 푹 빠져있었다. 인터넷 다시보기를 몇 번이고 보면서 며칠밤을 새곤 했었다. 나는 특히 이 드라마의 주인공 장준혁과 대비되는 품성과 환자에 대한 애정을 갖춘 최도영이라는 의사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이선균)의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정말 저런 의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간미 있는 모습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낼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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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영은 매우 신중한 의사다. 오진으로 인해 환자가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수없이 연구하고, 꼼꼼하게 검사결과를 따져본다. 그리고 혹시라도 의심나는 부분이 있으면 환자에게 몇 번이고 양해를 구하면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한다. 그런데 나는 최도영의 그런 모습이 반복될수록 작은 의문이 생겼다. 무슨 병이라고 속 시원하게 알려주지 못하고 검사만 반복하는게 좋은 걸까? 내가 알기론 우리나라는 행위별수가제(개별적 진료행위 하나하나에 가격을 매기는 제도. 반대의 경우로는 각각의 질병을 단위로 비용을 책정하는 포괄수가제가 있다. 의료의 공공성이 잘 구축된 나라일수록 포괄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다.)이기 때문에 검사를 많이 하면 할수록 환자의 비용부담이 늘어난다. 그런데 최도영은 오진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검사를 ‘자주’한다. 드라마에선 최도영이 좋은 의사로 그려지긴 하는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환자들의 건강권을 위한 안내서,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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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최도영은 좋은 의사가 아니라고 시원하게 결론을 내려주는 책이 한권 있다. 바로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그 병원은 당연히 한 번 찍어도 될 MRI를 두 번 세 번 찍자고 덤빌 것이다. 항암 치료 끝나면 ”암세포 다 없어졌나 한 번 볼까요?” 하고 또 찍고, 3개월 있다가 “암은 재발이 무섭습니다.” 그러면서 또 찍고, 6개월 있다가 “암은 추적 관찰과 평상시의 관리가 중요합니다.” 하면서 또 찍고....”(168p) 이런게 대부분 병원들의 행태인데, 문제는 단지 의사 개인의 자질이나 품성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제도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도영은 신중한 의사, 심성이 착한 의사이긴 해도 가난한 환자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병원을 개혁할 수 없는 어찌 보면 ‘소심한’ 의사에 불과한 것이다.

 

저자는 1999년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렸던 환자였다. 여동생이 준 골수를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나긴 했는데, 투병생활을 통해 의료제도의 문제점과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백혈병 치료를 받기 위해 먹어야 하는 초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만든 꿈의 신약 ‘글리벡’은 한알에 2만 3045원, 하루에 4알, 한 달을 먹으면 100만원 가까이나 들었다. 그나마 지금은 이게 보험적용이 되는 형편이지만, 그 조차도 그가 만든 백혈병환우회 환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는 등의 목숨을 건 싸움을 했기에 이뤄질 수 있는 성과였다. 그의 싸움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권보다는 의료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해 애쓰는 병원과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으로 한 발짝 나아간다. 이 책은 다년간의 활동으로 저자가 접하게 된 환자들의 등골을 빼먹는 병원들의 행태와 이에 대한 우리의 대처법, 그리고 점차 시장화의 길을 걷고 있는 건강보험, 한미FTA 의료개방의 문제점 등을 다룬 종합 보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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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질병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상식’ 깨기


이 책은 건강과 의료 현실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게 한다. 특히 그는 책의 앞부분에서 질병도 사실상 사회적 차별과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함을 지적하고 있다. 흔히들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병에 걸리면 ‘저놈은 분명 맨날 술,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았을꺼야’ 라고 쉽게 생각한다. 당뇨병의 경우 이를 성인병이라고 이야기 하다가 최근에 소아 당뇨 환자가 많아지자 의학학회 쪽에서는 ‘생활습관병’으로 고쳐 부르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결국 병에 걸리면 그 책임은 다 개인에게 있다는 식이다. 이런 생각이 더 나아가면 질병에 대한 치료비는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만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병 걸리고 싶어서 걸린 사람 있으면 나오라고 해보시라. 아무도 없다. (... ...) 내가 안 좋은 공기를 안 들이마실 수 있는가? 세계 최고 수준의 공기 오염도를 자랑하는 이 서울에서 난 열심히 공기를 마신다. 열악한 노동시간과 환경,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돈 없는 사람들은 더 병에 잘 걸리고 병에 걸리면 더 많이 죽는다. 이게 우리의 잘못인가?” 실제 2002년도에 수십명의 백혈병 환자들에게 병 걸리기 전의 심리 상태를 조사해 본 결과 약 80퍼센트 정도의 환자들이 병에 걸리기 전에 거의 ‘죽고 싶다’고 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유명한 의사들이 TV에 나와서 “술 담배 줄이시고 운동 열심히 하세요”를 강조하는 것이 만병의 해결책일 수 없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뜩 떠오른 한 가지 사건! 얼마 전에 소고기는 절대 입에도 안대는 한 외국 여성이 광우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한다. 왜? 그녀가 바르던 화장품에 소가죽의 성분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란다. 한미FTA 광우병 논란에 대해 “소고기 안 먹으면 되지”라고 속편하게 이야기하고 말 문제가 아님을, 더욱이 이런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개인의 노력 여하를 보기 좋게 비웃고 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똑똑한 노민국 교수가 왜 선택진료제를 모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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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 얘기를 한번 더 해보자. 이 드라마 초반부에는 장준혁과 외과 과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는 노민국 교수가 등장한다. 그는 후임 과장으로 장준혁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현직 과장 이주완이 스카우트한 해외파 교수인데, 이주완은 노민국을 자신의 사위감으로까지 생각해서 자기 딸과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게 한다. 그런데 이주완의 딸 이윤진은 의료분야에서 ‘운동’을 하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저녁식사 자리가 영 불편했던 이윤진은 “노교수님은 선택진료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으로 기어이 저녁식사의 분위기를 깬다. 그런데 잘 나가는 해외파 노교수님은 “선택... 진료제요... ??”라고 얼버무리며 얼굴이 벌게지고 만다.

 

사실 이 장면은 드라마에서 별로 비중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 의사들의 수준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들의 등골을 빼먹는 선택진료제 문제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그 문제에 대해서 폭로하는 이 책의 저자같은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선택진료제는 환자가 특정 의사를 택한 뒤 그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제도인데, 의학지식이나 권력에 있어서 열세에 있을 수밖에 없는 환자들은 자의에 따라 의사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환자의 사전 동의 없이 선택진료를 하거나 진료비를 부당 징수하는 등 갖가지 편법과 ‘환자 지갑털기’가 자행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선택진료를 통해 병원이 부당 징수한 금액을 돌려받기 위해 3달을 홀로 싸우신 60세 노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의 영웅적(??) 실천으로 비슷한 부당징수 사례가 발견되어 환불받은 케이스가 한 대학병원에서만 1000여명이었다고 한다.

선택진료제의 문제는 가난한 환자들과 거대 병원자본과의 싸움에서 절대 접점이 있을 수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내가 한의원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 병원 접수창구 앞에는 버젓이 환자들에게 선택진료제 폐지 반대 서명을 받고 있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거기에 서명을 했을까? 안타까운 현실이다.

부실한 국민건강보험, 민간의료보험이 대안이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운영하는 4대보험에 대한 불신이 매우 깊다. 하긴 보험료 체납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어야 하는 세상이니 그럴 수밖에... 건강보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이런 불신의 근원은 사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의 부실에 있다고 말한다. 건강보험이 보장해 주지 않는 질병, 즉 비급여 항목이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급여항목의 경우에도 본인부담비율이 만만치 않아서 재수 없게 병에 한번 걸리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인 게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이다. 이런 부패한 토양을 숙주삼아 민간의료보험이라는 곰팡이가 자라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덜컥 큰 병(이런 병은 대부분 건강보험의 비급여 항목이다.)에 라도 걸릴까봐 무서워 너도나도 민간의료보험을 찾아간다. 아니 오히려 TV광고들이 그런 공포를 부추긴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민간보험들은 우리의 미래를 ‘확실하게’ 저당잡는다. 비급여 대상 질병들은 정부가 치료비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수천을 하든, 수억을 하든 의사들 마음대로다. 그뿐이랴? 의료기관들이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시술들을 마음대로 하든 말든, 투약을 제대로 하든 말든 통제할 방법이 없다. 이 틈을 비집고 성장하는 민간보험은 환자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해 거액의 보험료를 전 생애를 걸쳐서 거의 ‘강탈’해 간다. 그런데 실제 병에 걸려도 이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보험료 지급을 ‘뺑끼친다’. 열심히 보험료 걷었는데 환자가 덜컥 병에 걸려버리면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얼마 안가 이 나라도 미국처럼 국민건강보험 없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 결과에 대해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마이클 무어의 <씨코sicko>나 덴젤 워싱턴 주연의 <존Q>라는 영화를 보라고 말한다. 참고로 미국은 의료보험에 아예 들지도 못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16%에 달하고, 돈이 없어서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죽는 사람이 매년 2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아, 그런데 저자가 전해주는 <한미FTA를 찬성했던 노건강 씨의 투병 이야기> 읽고 있자니 우리나라도 미국의 길로 따라들어 갈 것 같아 영 불안하기만 하다.

작은 아쉬움, 그리고 우리가 고민할 바.


이 책은 병원이 병을 치료해 주는 곳이어야지 병에 걸린 사람들이 늘어나기만을 기다렸다가 돈을 벌 궁리만 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런 병원 때문에 환자들이 더 이상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인지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몇 가지 행동요령들을 제시해 준다. 물론 불법 청구된 진료비를 되찾는 법, 우리 동네 좋은 약국 찾는 법 등을 아는 것은 ‘의료소비자’적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유용한 정보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도 반복해서 지적했듯이 대한민국 병원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의료의 공공성을 생각하지 않고 갈수록 금융자본의 이해에 장단을 맞추려 하는 영리법인화에 있는 것이다. 단지 몇몇 소비자들이 병원이 부당 징수한 진료비를 되찾는 것만으로는 이런 의료 공공성의 파괴를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환자들이 이렇게 미시적인 대응을 할 때, 힘의 우위에 서 있는 병원자본들은 매우 거시적으로 관련 법 개악등을 통해 이런 행동을 무력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문제는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가 우리에게 남겨준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병원에서 떼 주는 처방전이 원래는 환자 보관용까지 해서 2장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았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러한 지식들을 이 땅의 수많은 가난하고 그래서 더 아플 수밖에 없는 대중들이 어떻게 활용할지, 그래서 이 책의 후속편으로 <대한민국 병원 변혁 보고서> 쓸 날을 앞당기는 것이 우리 사회운동 세력들이 마주하고 있는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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