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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中

날씨는 대체로 맑았지만 추웠다. 한낮에는 가끔 해가 환하게 빛나기도 했다. 그러나 늘 추웠다. 산기슭 여기저기에 부리처럼 생긴 야생 크로커스의 녹색 열매가 보이기도 했고, 붓꽃이 머리를 내밀기도 했다. 분명 봄은 오고 있었다. 그러나 느리게 왔다. 밤은 평소보다 추웠다. 새벽에 경계 근무를 끝내면, 취사실에서 불을 때고 남은 것을 긁어모아 발갛고 뜨거운 깜부기불 앞에 서 있곤 했다. 군화에는 좋지 않았지만 발을 녹일 수 있어 좋았다. 때로는 봉우리들 사이로 동트는 것을 보기 위해,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서 빠져나오는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산을 싫어한다. 좋은 위치에서 바라다보이는 아름다운 산들조차 싫다. 그러나 이따금 우리 뒤편 봉우리들 뒤로 동이 트면서 가느다란 황금색 빛줄기들이 검처럼 어둠을 가르고, 이어 빛이 밝아지면서 가없이 펼쳐진 구름 바다가 붉게 물들 때, 그 광경은 설사 밤을 꼬박 새고 난 뒤 무릎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고 앞으로 세 시간은 아무것도 못 먹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우울해질 때라도, 한번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이 짧은 전쟁 기간 동안에, 인생의 나머지 기간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일출을 보았다. 바라건대는, 앞으로 살아야 할 세월 동안 보아야 할 것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 본 것이면 좋겠다. (57쪽)

 


흔히 제창되는 구호 가운데 <전쟁이 먼저고, 혁명은 나중이다>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통일사회당 의용군은 그 구호를 진심으로 믿었다. 정말로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에 혁명을 계속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구호는 눈속임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좀더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스페인 혁명을 미루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노동자들은 점점 권력을 빼앗겼다. 온갖 부류의 혁명가들이 점점 더 많이 투옥되었다. 모든 행동이 군사적 필요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졌다. 손쉽게 써먹을 수 있는 핑계였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우월한 지위로부터 점차 물러나게 되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났을 때, 자본주의의 재도입에 저항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될 터였다. 나는 일반 공산주의자들에게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마드리드 주위에서 영웅적으로 죽어간 수천 명의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무슨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 정책의 방향을 잡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 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92쪽)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후방에 적대적인 주민이 있을 경우에는 이들의 통신 시설을 지키고 파업을 진압하는 등의 일을 해야만 전방의 군대도 유지할 수가 있다. 따라서 프랑코의 후방에서는 이렇다 할 저항 운동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프랑코의 영토 내에 있는 인민, 적어도 도시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들이 프랑코를 좋아했다거나 그를 원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민전선 정부가 계속 우익 쪽으로 움직여가면서 정부의 우월성은 점점 빛을 잃었다. 이런 점을 결정적으로 보여준 것이 모로코 사건이다. 모로코에서는 왜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프랑코는 악명 높은 독재를 수립하려 했다. 그런데 무어인들은 실제로 인민전선 정부보다 프랑코를 더 좋아했다! 명백한 사실은 모로코에서는 반란을 선동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전쟁에 혁명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어인들에게 인민전선 정부의 선의를 보여주기 위한 우선적인 조치는 바로 모로코의 해방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랬더라면 프랑스인들이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이 간다! 그러나 인민전선 정부는 프랑스와 영국을 회유하려는 헛된 희망때문에 전쟁에서 가장 좋은 전략적 기회를 날려보내고 말았다. 공산주의 정책의 전쳊덕 경향은 이 전쟁을 평범하고 비혁명적인 전쟁으로 축소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전쟁에서는 인민전선 정부가 극도로 불리했다. 그런 종류의 전쟁은 기계적 수단, 즉 궁극적으로 무제한의 무기 공급에 의해서만 승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의 주된 무기 지원국인 소련은 이탈리아나 독일과 비교해 볼 때 지리적으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어쩌면 통일노동자당과 무정부주의자들이 내건 <전쟁과 혁명은 분리할 수 없다>라는 구호가 언뜻 보기보다 덜 환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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