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토 마나부, 『교육개혁을 디자인한다』, 학이시습

사토 마나부, 『교육개혁을 디자인한다』, 학이시습

 

 

 

훗카이도에 있는 어업이 중심인 한 작은 마을의 고등학교에서도 배움의 네트워크는 펼쳐지고 있다. 이 마을의 고교는 각 학년이 두 반밖에 없으며, 전교생을 다 합쳐도 200명이 안 되는 작은 학교다. 학생수가 더 줄게 되면 폐교로 내몰릴 위험 상황에 놓여 있다. 학교의 존속은 마으르이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학교가 문을 닫아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버리면 어업에 종사할 사람이 없어지고, 결국 마을은 소멸한다. 이 위험에 맞서 교장과 교사들은 지역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1학년은 지역학습, 2학년은 어업의 현재와 미래, 3학년은 학생 스스로 미래 삶의 방식을 디자인하는 학습이 그것이다.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과정은 지역의 지지를 받았다. 지역 어업협동조합으로부터 경비를 지원받아 2학년 전원이 뉴질랜드 어촌을 방문해 바다의 환경을 지키며 어업을 영위하고 있는 젊은이들과 교류했다. 뉴질랜드의 어업은 글로컬리즘—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한다—이라는 환경보호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업의 미래를 생각하기에는 더없이 멋진 장소인 것이다.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과정을 실천하고 나서부터 인근의 마을에서 이 학교를 지망하는 학생이 늘어났다. 학교와 지역의 연대는 이런학교의 화려한 부활도 가능하게 해준다. (57-8pp)

 

 

배움을 중심으로 한 수업 개혁은 교실 커뮤니케이션의 변혁을 기초로 해야 한다. 아이들의 ‘자주성’이나 ‘주체성’이 강조되는 최근의 수업 개혁에서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의 발표력과 표현력이 중시되고 활발하게 의견을 서로 발표하는 교실 만들기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배움을 촉진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들어주는 관계’이며, 말하기보다는 ‘듣기’가 배움에서는 더 결정적이다.

일본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심각한 것은 늘 ‘밝고, 건강하게’ 활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외국의 교육학자나 교사들을 데리고 초등학교를 방문해 교실 참관을 안내할 기뢰가 많은데, 일본의 초등학교 교실에 대한 그들의 첫인상을 물어보면 ‘noisy’(소란스럽다)라는 말이 되돌아온다. 참으로 그러하다. 일본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실은 서구 여러 나라의 교실과 비교하면 아이들도 교사도 목에 힘을 준 채 경직되어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떠들썩한 공간이라는 것이 특징적이다. 교실 인원이 많은 것도 한 이유겠지만, 그 이상으로 ‘밝고, 건강한’ 아이(학교, 교실)가 좋다는 관념을 교사도 아이도 지니고 있기 때문일까? 어딘지 무리가 있는 ‘밝음’과 ‘활달함’이며, 스트레스가 강한 교실이라고 말해야 좋을 것이다. (93-4pp)

 

 

이와 아울러 시급히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과서 무상 배포 제도다. 교육내용이 크게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예산의 부족으로 교과서는 점점 얇고 빈약한 것이 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교과서에 견줘보면 분량 면에서도 5분의 1에서 10분의 1 정도의 빈약한 인쇄물이다. 현재 교과서는 학습 자료 기능은 거의 수행하지 못하며, 아이들에게도 매력있는 책이 아니다. 현재와 같이 아동 한 명 한 명에게 무상으로 배포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학교 도서실의 도서로 비치해 아이들에게 대출하는 방식으로 바꿀 것을 제창한다. 교과서를 5년마다 개정한다고 해도 무상공극ㅂ을 대출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같은 예산으로 적어도 5배 분량의 교과서를 준비하는 것이 가능하다. 학습지도요령 개정 때마다 갱신한다면 10배 이상 분량의 교과서를 구비하는 일도 가능하다. 자녀들에게 자기 교과서를 갖게 해주고 싶은 부모에게는 시판을 통해 구입하게 하면 된다. (111p)

 

 

학교의 자주적인 개혁을 막는 최대의 장벽은 문부성의 통제도, 교육위원회의 통제도 아니다. 교사들을 분열, 고립시키고 있는 교실의 장벽이며 교과의 장벽이다. 이 장벽을 안에서부터 부수지 않고는 교내에서 동료성을 구축할 수 없다. 모든 교사가 1년에 적어도 한번은 동료에게 자신의 수업을 공개해 서로 비평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교내에서 확실한 동료성을 구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1년에 단 한번도 동료에게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지 않는 교사는 엄밀히 말해 공교육 교사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교사는 교실과 수업을 사물화하고, 학교의 공공성을 진작하는 책임을 게을리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교실을 개방하지 않는 교사가 교내에 존재하는 한 학교개혁을 내부에서 원활하게 추친하는 일은 곤란하다. (113-4pp)

 

 

교육개혁에 혼란을 가져오는 가장 큰 오류의 하나는, 인간성 좋고 정열만 있으면 누구나 교사의 일을 하 수 있다고 하는 교직에 대한 안이 한 생각에 있다. 그러기는커녕, 교직은 교육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과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책임, 일본 사회으 lalfo에 대한 책임이라는 높은 지성과 윤리 의식에 기초한 고도의 전문직이다. 오늘날 교사는 교직의 전문직성에 부합하는 양성과 연수르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전문직에 적합한 자율성도 윤리도 미흡하다. (153p)

 

 

양육과 교육의 열린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겪고 있는 일련의 교육 위기의 기저에는 엄마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밀실 양육’이라는 현실이 있다. 엄마에게나 아이에게나 스트레스가 많은 ‘밀실 양육’은 핵가족이 정착된 30년 전에 일반화되었지만, 핵가족은 현재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 도쿄의 35-39세 남성의 30% 이상(전국적으로는 20%)이 결혼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학령기의 아이가 잇는 세대는 전체 세대의 3분의 1까지 감소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는 시대는 이제 그 막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는 일본도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한 번밖에 결혼하지 않는 사람, 몇 번이나 결혼한 사람, 한 번도 결혼하지 않는 사람으로 분할되는 사회가 되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근대 가족의 붕괴와 재편 속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양육할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여성의 사회 진출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과 함께 양육을 지원하는 사회적인 네트워크의 형성이 요구된다. (156p)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