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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옳을 때

지음님의 [대중운동을 목격하다] 에 관련된 글.

좋은 글이 몇개 링크되어 있기도 한 좋은 글이다. melona라는 아이디를 썼던 과갤러의 블로그를 보고는 즐겨찾기에 등록했다. 멋진 사람이다. '아릉~'이라는 사람과 함께 가장 먼저 의혹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사람들.

 

나도 며칠 동안 중독된 것처럼 들락거렸던 브릭(소리마당)과 과갤(디시인사이드 과학갤러리)은 독립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개인들이 교통을 통해서 집단적으로 진실을 인식해가는 멋진 사례를 보여주었다. 어느 과갤러가 말한 것처럼, 이들 공간이 '과학'을 주제로 한 공간이었다는 말도 새겨들을만하다. 대중의 맹목적인 상상이 아니라 과학을 사고하는 사람들의 공간이었다는 것.

 

과학, 과학자 사회이라는 공간도 모순적이라는 것이 다시 드러났다. 얀 핸드릭 쇈의 사기사건에서도 나타났지만, 새로운 산업적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에서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쇈의 연구는 나노기술과 IT와 연관되어 있었고 황우석의 연구는 IT 이후의 성장동력으로 '기대되는' BT분야이다. 이들은 모두 자동차공업을 이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각광받던 IT, 전자공학이 한계에 부딪힌 가운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예상되는 산업들이다. 쇈 사건과 황우석 사건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링크 참고.) 그러나 과학자 사회에 남아있는 진실에 대한 검증 시스템은 다행이도 작동했다. (오히려 이런 검증과정에서 보여주는 과학자 사회의 태도는 20세기에 고유한 것이라기 보다는 19세기의 유산으로 보인다.)

 

다만, 나는 이번 진실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사실과 거짓이 명확히 구분될 수 있고, 거짓에 대해서도 더 이상 어거지로 지지할 수 없는 조건이 있는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을 뿐이다. 유리한 戰場이었고, 정세의 호기를 만났을 뿐이다.

 

실상, 우리는 항상 이런 운이 통하지 않는 사건들에 더 많이 직면한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사건들이 브레이크 없는 광기에 대중을 동원할 위험이 더 크다. 붉은악마의 열정에는 사실과 거짓이 소용없다. 독도문제와 같이 사실이 함께 하는 경우에 오히려 더 위험한 열정이 증폭되기도 한다. '사실'이라는 것조차 대중의 상상에 이용될 때, 그것은 어떤 정세에서는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역설. 사실이 환상을 증폭하고 급기야 사실이 아닌 상상의 요소로 완전히 전환된다.(마치 고대의 신화들로 '해석'된 역사적 사실들처럼 말이다. 사실에 기반했지만 이미 상상의 요소가 된 것들.) 우리는 민족주의적인 역사적 상징들에서 그런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어쨋든, 이번의 작은 승리, 멋졌다. 특히 브릭과 과갤의 그대들, 우리들, 축하한다.

브릭과 과갤 네티즌들은 이미 이 어처구니없는 광기를 불러온 '애국질'을 조롱하고 있기도 하다. 성장동력으로 각광받는 BT연구의 뒷면에는 월화수목금금금, 라면, 40만원의 월급의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것을 주문한다.

이번 승리가 단지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멈추지 않고 애국주의, 민족주의의 대중동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성찰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회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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