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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열렸던 아래 회의에 대한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7월15~17)
Understanding Global Finance, Bulilding International Resistance
국제금융의 이해, 국제적 저항 건설
지난 번에는 주로 중국에 대한 쟁점, 이번에는 금융세계화에 대한 지역적 차원의 대응전략에 대해서 논의된 것들과 시사점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또 이와 관련해서 심상정, 권영길 등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들의 정책을 살펴봅시다.
변화하는 금융세계화
금융세계화의 정세는 변화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10년전 아시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의 형태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고, IMF가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집행기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자본주의도 변할뿐더러 신자유주의도 변화합니다. 심지어는 그것이 만드는 위기의 양상도 말이죠.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위기의 심화 속에서 무엇이 위기인지, 그것에 어떤 대응을 해야할지를 사고하는 데 중요하겠죠. 10년전 남한의 사회운동이 IMF에 대한 의미있는 반대투쟁을 “전혀” 조직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민주노총은 “민족적인 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정합의를 통해서 정리해고, 파견제와 같은 IMF의 요구조건을 자기 손으로 합의해주었고 그 후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IMF 협약이 강제된 다른 반주변 국가들의 사회운동과도 크게 다른 모습이었죠)
우선 IMF의 역할이 크게 약화되고 있고 “금융세계화”와 그것이 강제하는 구조조정의 주도적인 행위자도 교체되는 과정에 있다는 점들이 지적되었습니다. (물론 IMF는 애초에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는 금융자본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이기는 했지만 70년대 이후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금융시장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정책을 국가들이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요구의 제안자로 역할을 전환했죠. 지금은 사실상 정책지원기관으로 변신했습니다.)
(아직도 아프리카나 카리브 지역에서는 영향력이 남아있지만) IMF의 악명높은 구조조정 때문에 많은 주변, 반주변 국가들이 서둘러 구제금융을 상환하고 정책적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 대중적인 저항으로 인해 신뢰성이 약화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주도적인 행위자는 오히려 금융시장의 법칙, 사적 금융자본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각 국가들은 금융시장의 등락에 눈치를 살피면서 정책을 ‘알아서’ 조정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반대투쟁으로서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투쟁은 다른 것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이것은 마치 다자간 무역협상--WTO, GATS 등--이 양자간 무역협상--FTA--로 전환되면서 무역자유화에 대한 투쟁의 대상이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또 한편, 위기의 양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가 통화위기의 형태로 발발한 이후에 지역적인 수준에서 최소한 통화위기는 막기 위한 장치들이 개발되고 강화되고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 같은 경우에도 아세안+3(중,한,일) 틀을 통해서 양자간 외환지원 장치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가 구성되고, 최근에는 IMF의 지역판이라고 할 만한 아시아통화기금(AMF)를 구성하는 것을 합의했다고 합니다.(98년 직후에는 AMF가 IMF를 약화시킬 것을 우려한 미국의 반대로 구성되지 못했는데, 2007년 현재의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는 방증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시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달러화가 각국의 외환보유고로 쌓여있는 만큼(다른 나라들도 경쟁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죠) 다음 금융위기는 외환위기의 형태가 아닌 것으로 닥칠 수도 있다는 점. 그렇다면 그에 대응도 다른 방식일 겁니다.(다음 위기의 형태가 무엇일지는 공부를 더 해봐야할 것같네요;;) 그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같고, 그러한 위기가 운동을 수세에 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세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정세는 머지 않아서 다시 귀환할테니까.
금융세계화에 대한 지역적 대안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CMI, AMF의 창설은 아시아 지역차원에서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의 대응을 의미합니다. 이는 금융세계화의 파괴적인 불안정으로부터 각국의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죠. 예를 들어 98년 직후에는 운동진영의 어느 분파에서도 AMF창설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을 정도로(물론 당시에 김종필도 언급했던 적이 있죠;) 지역적 차원에서 의미있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제어하기 위한 것으로 만들어지기 보다는 “안전한” 금융세계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에 대해서는 IMF가 했던 것처럼 주로 일본자본의 이해에 따라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행위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어떤 구체적인 대안을 내더라도 그것과 유사하거나 심지어 동일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요구할 것인지가 쟁점일 텐데, 최근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흥미로운 쟁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권영길 캠프의 정책
권영길 후보의 정책 중에 유사하게 살펴볼 부분이 있고, 심상정 의원의 정책이 가장 구체적입니다. 노회찬 후보 정책에는 아예 부재한 대목입니다. (국제관계에 대해서는 노회찬 후보 정책에는 언급이 없군요.)
심상정 후보의 경우 “동아시아 호혜경제- ‘Social Asia’를 향해”라는 제목으로 정책이 제시됩니다. “글로벌 경쟁 심화에 따른 국가양극화, 패권국가의 일방적 지배를 방지하고, 호혜적 분업체계에 기초한 지역공동체(regional community) 건설”을 중심으로 “역내평화와 호혜적 경제발전을 꾀하려면 처음부터 차이를 해소해야 하고, 이를 위해 ‘Social Asia’를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 시민사회 교류프로그램과 아시아 사회헌장(Asia Social Chapter) 채택 △ 개발과 인프라구축, 기술발전에서 국가간 공조와 지원을 강화 △ 동아시아 지역발전기금(ODA)을 조성하고, 달러 통화체제를 대신하는 아시아통화체제(AMF) 등 역내 금융체제 구축.
심상정 후보의 정책은 이제까지 단지 국내 혹은 대북관계 정도의 사고에 머물고 무역과 금융에 대해서 사고하지 못했던 운동진영의 한계를 넘어서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특히 단지 지역차원의 통화안정 프로그램 혹은 노무현 정권이 말하는 “동북아시대”프로젝트와 달리 민족국가 사이의 호혜평등한 관계, 사회적 교류를 강조하는 부분은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것은 운동적 요구라기 보다는 국가의 전략적 정책에 가깝다는 것이죠. 이것은 대선이라는 공간의 고유한 효과일텐데, 어떤 후보도 (이미 국가의 정부를 수권하기 위한 후보로 표상된 이상) 국가전략 수준의 정책을 낼 수밖에 없다는 점. 예를 들어 AMF 구상과 같은 것인 현재 구성이 합의된 AMF와 사실상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또 노무현 정권의 동북아시대 전략이라는 것과 사실상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심상정 후보 쪽에 정태인씨가 관계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 그런 맥락일 겁니다.) 그것이 다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이 아시아 지역의 “정세”가 문제가 됩니다.
말하자면 동아시아는 남미가 아니고 따라서 ALBA와 같은 대안이 동아시아에서 그대로 가능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남미의 경우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쿠바가 있지만, 아시아에는 그렇지 않을뿐더러 중국은 그러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죠. 게다가 아시아는 역사적 경험으로 인한 민족국가 간의 대립은 물론, 일본을 정점으로 해서 남한, 대만, 홍콩, 싱가폴과 중국과 동남아시아가 수직적으로 결합된 하청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럴 듯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안이 가능하기 위한 운동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어쩌면 심상정 후보 정책의 문제는 운동이 없는 상태에서 정책대안이 먼저 제시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그렇다면 오히려 운동들이 문제겠죠) 심상정 후보의 정책은, 사회운동의 주체들이 국가전략을 제시하고자할 때 처하는 위험을 드러내주고 있을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안적인 지역협력체제, 대안적 국가 간 관계의 형성의 난점을 드러내줍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부분도 여전히 있습니다. 이번 회의를 주도적으로 이끈 월든 벨로는 이 회의에서 CMI, AMF 같은 것들이 지역차원의 ‘정치의 공간’을 연다는 측면에서, 그것에 개입할 수 있고/해야하기 때문에 의미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라면 달리 생각해볼 지점도 있지요.)
이에 비해서 권영길 후보 쪽의 정책은 더 심각합니다. 많은 부분에서 부르조아 국가전략과 사실상 아무런 구분도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북방대륙 경제권 개척으로 제4의 세계경제권 주도”라든가, 이를 위한 역내 국가들의 외환보유고 공동사용과 같은 정책이 있습니다. 주변, 반주변의 발전을 위해서 외환보유고를 사용하자는 제안이 위기에 처한 금융체계를 정당화하기 위한 스티글리츠(리버럴들)의 것이라는 점은 지난 글에도 언급한 점이 있지만, “북방경제권”을 언급하는 것은 이미 일본 자본에 선점된 동남아가 아니라 다른 경제공간을 찾아가자는 식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최소한 민족국가간 호혜평등한 발전 지원이나 사회적 교류를 전제한 심상정 후보 쪽보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것은 아시아 지역의 금융, 무역의 대안이라기 보다는 아제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발전전략인데, 노무현의 동북아시대 전략에 한걸음 더 다가가 있습니다.
또 “노동중심경제체제”라는 것을 제안하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지식기반경제”를 들고 있는데는 아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기반경제라는 것은 생산으로부터 이탈한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투기운동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90년대 중반 이후 팽창한 IT 산업의 이데올로기이고 따라서 남한에서 98년 이후 짧은 금융적 팽창(~2002년 경까지) 시기에 “빅뱅”을 경험한 IT 벤처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입니다. 우석훈 박사는 권영길 후보의 비전이 “벤처 사장들의 북방 개척론”이라고 비판적으로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그 벤처사장들은 짜증나는 '디 워'의 심형래처럼 이른바 반지성주의 "신지식인"들이죠.)
* 레디앙 기사 참고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7148
지역마다 다를 분기점, 신자유주의 이후
그렇다면 이렇게 아시아 지역에 대해서 제시되는 대안들이 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대안이 뭐냐” 이렇게 비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대안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말인데, 다만 대안들이 “가능한 조건”을 생각해보는 것이 지금 가능한 최대한이라고 할 수밖에요.
앞서 말한 대로 남미의 알바(ALBA 미주대륙 볼리바르대안)와 민중무역협정(trade treaty of people; Tratado de Commercio entre los Pueblo: TCP) 같은 대안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현재의” 동아시아 정세에서는 말하기 힘들 뿐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AMF 같은 것을 이야기해서는 지역적 수준에서도 진행되는 금융화에 대해서 무비판적으로 될 수 있다는 점은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오히려 현재 정세에서 가능한 것은, 각 민족국가의 사회운동들이 지역차원의 대안을 “합의”할 수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 이를 통해서 어떤 전략들이 어떤 민족국가(들)의 발전전략이 아니라 대안적인 지역적 협력체제를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매우 취약한 (특히 남한의 사회운동에는 더욱 취약한) 아시아 지역의 사회운동의 강화된 사회운동 네트워크와 토론이 필요합니다. (아시아 지역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취약한 것은 사실인데, 지역별로 진행되는 세계사회포럼의 프로세스도 아시아가 가장 취약하죠.)
그리고 각 민족국가 내에서 대안적인 지역협력을 논의할 수 있을 만큼의 사회운동의 문제제기, 그리고 국가를 강제하는 실질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남미에서 ALBA나 TCP가 가능한 것은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같은 나라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아시아에서도 그 비슷한 뭐라도 있어야겠죠.
그러나 사실, 그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예상할 수 있는데, 따라서 다소 비관적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는 지역차원의 대안세계화를 위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의 조건과 상황이 각 지역마다 모두 다 다릅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통화통합이 이미 이루어졌고 유럽연합도 신자유주의적인 헌법조약을 통해서 “신자유주의적인 지역통합”을 완성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리고 미국과 “공동지배” 체제를 이루고 있죠. 아시아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직적 분업체계가 구축되어 있고 민족국가 간의 역사적 구원으로 인해서 지역적인 통합이 쉽지 않습니다.(일각에서는 지역통합을 위해서 민족주의도 개조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한반도 자본주의 발전에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해서 논란이 되었던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그 징후일 수 있다는 것.)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합중국과 같은 식의 지역적 통합도 논의되고는 있지만 만성적인 내전과 민족국가의 취약성, 민주화의 지체 등으로 인해서 지역통합이 쉽지 않습니다. 다만 중국의 자본이 그것을 촉진하는 매개가 될 수도 있지만 쉽게 예상할 수는 없는 문제. 대안세계화운동에서는 남미의 경우가 가장 희망적일 텐데,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일반화할 수 있는 정세는 아니죠.
그렇다면 이후에 만약 미국 헤게모니의 자본주의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붕괴하더라도 각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대안체제는 같은 형태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가 모두 다른 형태의 체제에서 (다음 세계체계가 있다면 그 때까지) 상당 기간 경합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역사의 상이한 분기, 어떤 지역적 모델도 절대화할 수 없는 혼란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정세에 맞는 대안들, 운동의 전략들이 필요한 셈입니다. 그것은 민족국가의 변혁과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지만, 그것으로 제한되지 않는 것들이죠. 그리고 (10년전에 IMF 구제금융과 구조조정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미처 사고하기도 전에 불현듯 사활이 걸린 절박한 문제로 제기되고 사고와 실천을 강제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문제가 무엇인지라도 인식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겠죠.
태국에서 열렸던 아래 회의에 대한 이야기.(7월15~17)
Understanding Global Finance, Bulilding International Resistance
국제금융의 이해, 국제적 저항 건설
아래 태국에서 진행되었던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대한 아시아 노동자대회'에 연결된 일정. 주빌리사우스는 이 행사들을 연계해서 참가를 조직하기 위해 앞의 일정을 그렇게 잡았습니다. 방콕 출라롱콘 대학에서 진행.
이 행사는 주빌리사우스 노동자대회에 결합했던 각국의 노조들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의 노조, 농민조직 등 대중조직,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등을 포함하는 지역에서 온 사회운동 활동가, 연구자들이 함께했습니다.(공동주최 :Bretton Woods Project, Eurodad, Fifty Years is Enough, Focus on the Global South, Gender Action, IDEAS, Jubilee South APMDD, Solidarity Africa)
* 관련된 프로그램 소개와 일정은 이곳 링크 참조
이 회의는 Conference on A Decade After : Recovery and Adjustment since the East Asian Crisis(아시아 금융위기 10주년 토론회)라는 (주로 학술) 행사 뒤에 이어졌습니다. 회의 제목 그대로, 여러나라의 사회운동들이 금융위기 10년을 맞아서 그 동안의 금융세계화의 양상을 평가-이해하고 운동적인 대응전략을 논의하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입니다. 여러가지 발제와 토론이 있었는데, 주로 생각해볼만 한 것들을 정리해봅시다.
전체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 운동단체들이 모여서 진행하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깊다는 것.(당연한가;;;) 국제적인 수준에서 자본운동이나 금융기구의 움직임, 그리고 국가간 체제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이고 심화된 토론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국내에서라면 이런 것들은 몇몇 저자의 책에나 언급되거나, 좌파-현장파들은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 혹은 개량주의네 하면서 비난을 일삼을 만한 내용들이죠.(금융세계화의 양상을 강조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강조하는 것을 왜 개량주의라고 비난하는지 그 머리 속을 이해하기가 더 힘든 노릇입니다만.)
몇가지 쟁점들과 생각해야할 지점들.
중국이라는 문제 - 거대한 팽창
먼저, 전체적으로 프로그램 내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중국이라는 쟁점입니다. 앞선 글에서도 참가한 대중운동 단위 중에서 중국의 부재가 가시적이라는 것 등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금융세계화, 따라서 미국 헤게모니 하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운명에 중국이 큰 쟁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외환(달러)보유고는 이미 1조3천억 달러가 넘어서 일본을 넘어 세계최대인 상황입니다. 이러한 거대한 달러는 외국자본들의 상당 부분이 FDI에 기반하는 데, 이 자본은 주로 미국의 재무성 채권과 미국의 해지펀드 등에 투자됩니다. 이렇게 미국으로 순환된 자본은 다시 중국에 투자되는 방식으로 순환합니다. 알려진대로, 이 순환에 있어서 미국에 투자된 외국자본에 비해서 외국에 투자된 미국자본은 두배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러가지 입장과 해석이 있더군요. 일단 중국의 거대한 생산과 미국의 거대한 소비가 불안정한 균형에 있다는 건 대부분 동의하는 데 그 함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등등.
일부에서는 중국이 미국이 아니라 주변-반주변 국가들에 대해서 대안적인 투자를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래 다시 언급하겠지만 중국이 최근 투자를 전략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스티글리츠의 주장과도 공명할 뿐 아니라 중국 체제의 성격을 볼 때 실현가능성도 의문입니다.
포스트-워싱턴컨센서스를 제안하는 스티글리츠는 (중국만이 아니라) 각국이 외환보유고를 개도국에 투자해서 국제적인 유효수요를 확대하자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진보주의자들.. 리버럴들의 대안이라고 보면 될텐데요, 이렇게 해야 장기적으로 현재의 금융체계가 붕괴하지 않을 것이고 글로벌한 통치성도 유지될 것이라는 거죠. 이는 현재의 금융세계화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노선일 뿐 아니라, 중국 자체가 이미 대안세계를 위한 어떤 전망을 갖거나 제시할 수 없는 조건에서 그냥 "좋은 희망"일 뿐인 것같습니다.
한편, 예측에 있어서는, 중국이 "때를 기다린다"는 해석도 있습니다.(중국은 미국 시장 외에 대안적인 투자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안한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죠.)
어차피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일정한 시기에는 중국이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지랫대로 엄청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중국은 시간을 벌면서 (물론 때로는 심각한 신경전을 펼치─는 척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미국 재무성의 요구나 월스트리트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중국이 이미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고, 중국의 지배엘리트들도 그런 지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
따라서 이러한 전망은 아리기나 백승욱 선생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국헤게모니의 위기 이후에 미국-중국의 공동지배(스페인-제노바 공동지배와 같이)로 갈 수도 있다는 예상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군사력과 경제적 지배력이 상이한 지역에서 우세하게 되고, 세계체제는 이러한 국가들의 공동지배에 의해서만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쟁점은 아시아의 운명과 관련해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회의 내내 여러 섹션에서 쟁점이 되었을 텐데요, 그것이 사회운동, 대안세계화 운동-전망과 어떤 관련을 맺을 지는 이어지는 글에서 더 이야기해보는 것으로 하죠. 특히 중국의 외환보유고와 관련해서는 아시아 지역 차원의 대안으로 제시기되는 아세안+3(한.중.일) 차원의 양자간-다자간 통화 스왑 장치로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아시아 통화기금’(AMF) 구상과도 관련됩니다. 그것의 의미와 전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여튼, 이 쟁점은 다음 글에서 더 이야기 해보죠.
(아시아 지역의 대안적 금융체계에 대한 것은 최근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인 심상정 후보캠프에서 관련된 공약을 내면서 쟁점으로 부각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심상정 캠프의 관련된 공약에 동의하지도 않고, 반대에 가까운 입장이지만 그것을 사고하는 것 자체는 매우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의 경우, 국내적인 변혁과 동시에 남미에서 ALBA와 같은 대안적인 지역경제-금융협력체계를 제안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안적인 무역을 시작하는데, 몇개 나라가 석유-의료서비스-콩을 교환하는 망을 만들거나 공동의 지역은행을 창설하거나 하는 것이죠. 변혁의 문제가 국내정치적인 것만 아니라 이미 최소한 지역적 수준의 대안으로 확장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그것에 대해서도 자기 입장이 필요하겠죠. 물론 심상정 후보캠프의 것은 운동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국가전략으로 보인다는 게 문제지만. 여튼 자세한 내용은 담글에서.)
중국의 노동력
이런저런 발제 중에서 강조되는 것은 또한 중국이 세계시장에 편입된 것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 특히 중국의 거대한 노동시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인구로만 보아도 중국의 거대한 인구는 세계 노동력의 1/5 정도에 이릅니다. 이 노동력의 편입이 가지는 의미는, 중국 국내의 노동정치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죠.
중국에서 온 학자들도 발제를 했었는데, 주로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중 한명은 중국의 후진타오 체제가 제시하는 전략으로서 '조화사회'를 언급하면서 노조(공회)설립의 의무화 등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노동친화적인 체제를 통해서 사회적 불안, 계급투쟁의 촉발을 제어하겠다는 전략인데, 어느 정도로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중국의 이러한 전략이 성공한다면 중국 체제의 안정은 물론, 새로운 노동타협체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겠죠.(그러나 그 반대의 가능성이 더 커보이고 따라서 그것은 반대의 방향에서 국제적인 계급투쟁에 엄청난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의 지금과 같은 방식의 거대한 팽창은 에너지 수요에 있어서나 환경적인 측면(특히 co2 배출, 지구온난화와 관련해서)에서 재앙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팽창이 어떤 지점까지 가능할지는 알수는 없지만, 어느 시점에 긴급한 문제로 부각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의미의 "정치적인" 측면은 물론이려니와생산과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기술과 이것의 사회적 조직화와 같은 것들이 정치적 문제로 제기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아프리카
21세기 들어서 중국은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를 크게 확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진타오가 아프리카를 순방하면서 외채탕감, ODA 확대, (주로 에너지 관련 국영기업들의) 직접투자 등을 약속했죠. 이러한 중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지원 확대는 이제 미국에 비슷한 규모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중국이 장기적으로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로 나이지리아나 앙골라 등 산유국에 대한 지원이 중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데, 아프리카는 미국 헤게모니가 배제한 지역이기 때문이죠. 아프리카는 주로 금융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들에게는 변변한 주식시장, 채권시장도 없는 버려진 곳입니다. 전쟁이 나든 인종청소에 학살이 벌어지든 버려두는 것이죠. 그런데 중국이 이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미국의 입장도 애매한 것같습니다. 여전히 금융적인 투자가치는 없지만 석유자원이 문제인 것이죠.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이 지역의 사회운동도 (서로 다른 이유로) 중국에 더 친화적이고 기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일단,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처럼 IMF 협약,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미국, 유럽과 국제금융자본들은 IMF 협약을 통해서 이들 나라의 물, 전기 등의 필수서비스와 에너지, 광물자원을 체계적으로 약탈해왔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러한 조건을 달고 있지 않죠. (이 점은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국제금융기구나 초국적 금융자본과 관련된 비판이 집중되어 왔던 지점이라는 점에서, 중국에 대해서 일단 여기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아프리카의 사회운동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진보적인 입장에서 인권, 정치 민주화와 같은 쟁점에서 조건을 달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는 것같습니다. 최악의 독재국가들에 대해서도 중국이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지역 차원의 대안적인 지역적 협력체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도 우회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물론 중국이 서구의 이러한 명분의 개입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별로 가능할 것같지는 않지만 말이죠.
또 하나는 중국이 이렇게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외채 등의 방식으로) 자국 자본의 우회적인 침투를 위해 활용했던 서구와는 달리 (기술 이전 등을 통해서) 아프리카 각국의 내재적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문제제기도 있었습니다. 역시 중국 정부의 입장이 문제일 텐데요, 여기에 중국은 국내 정치에 있어서 '조화사회'와 마찬가지로 외교에 있어서 '조화세계'라는 전망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 역시 같은 만큼의 한계를 가질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국내적으로 발전주의 정책이 중시되고 아프리카 관계에서도 에너지자원이 중시될 것이라는 점.
최근 미국은 이제까지 유럽사령부가 관장하던 아프리카의 군사작전을 총괄하기 위해한 별도 기구로 아프리카사령부(아프리콤)를 신설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각국들이 미군의 주둔에 부담을 느끼면서 군사기지 설치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자, 일단은 군사기지 없는 사령부 형태로 추진하는 것도 검토되는 것같습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비교하게 하는데, 앞으로도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중국, 성공적인 발전국가?
발제 중에는, 외환위기 이후의 '쇼크요법'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주로 IMF가 "금융위기를 불러온 경제의 구조조정을 촉진해야한다"는 명분으로 강요하는 협약에 의해서 이루어지죠. 대표적이고 극적인 케이스는 오히려 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에 적용된 프로그램들이었습니다. 급격한 사유화와 공공부문의 붕괴.. 이어지는 자신시장의 창출과 급격한 빈곤화, 성장동력의 소실 등이 결과였죠. 물론 IMF는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고, 중국이 이에 비해서 일종의 '연착륙' 모델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더라는 겁니다.(물론 동의하지 않는 토론자들도 많죠.) 베트남 역시 비슷한 케이스로 언급되는데, 발제 중에 언급되는 지표만 봐도 이들의 성장속도는 엄청나더군요. '전성기'의 남한, 대만 등도 앞지르는 속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경제성장은 '질서있는 개방' 혹은 '연착륙'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미 이들 국가가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추진한 80년대말-90년대초 이전에도 민족주의적 발전국가였다는 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중국은 문화혁명의 종료 이후 덩샤오핑 시기부터 그랬고, 베트남도 꾸준히 정책을 전환해왔죠. 그 이전의 역사를 보는데 있어서도, 그것이 본질적으로 다른 제3세계 개도국과 발전주의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세계시장에 재통합되는 과정에서 직업적으로 잘 훈련/교육되었을 뿐 아니라 국가-당의 지시에 순응적이고 규율있는 노동자들은 국제적인 생산 재배치에 아주 매력적인 공간이 되었던 것이죠.
결국 혁명 몇십년 만에 세계시장에 복귀하면서 애초에 혁명가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적 성공을 만들어낸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북한에 있어서도 북한 엘리트들이나 미국-남한의 리버럴들은 이런 방향의 구상을 가질 텐데요.) 그런 점에서는 쿠바가 이례적인데, 지역적인 정세의 차이(아시아와 남미)와 결합해서 정말로 다른 효과들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망도 아마 다를 수 있겠죠.(이 대목은 좀 우울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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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주로 중국 이야기까지만 해야할 것같군요. 국제금융체계 등과 관련된 여러 흥미로운 쟁점에도 중국이 연관되기는 하는데, 그건 그 쟁점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중국이 쟁점이 되는 분위기가, 묘한 점이 느껴지더라는 겁니다. 주로 서구 쪽에서 온 참가자들에게 중국은 뭔가 공포스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같고, 아프리카에는 어떤 희망, 아시아 참가자들에게는 우려와 기대의 양가감정 같은 것. 사회운동에 있어서도 민족국가의 지정학적 운명이 미묘하게 인식에 반영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냥 느낌일 뿐인지 실제로 그런 것인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한가지 에피소드. 태국의 비디오샵 같은 곳에는 한국의 드라마가 많이 깔려 있습니다. 인기가 있다는 것을 보고 느낄 수가 있는데요, 공중파에서도 주몽과 같은 드라마를 해주고 있는 걸 봤습니다. 필리핀 사람과도 이야기를 하다보니 주몽이 인기리에 방송 중이라고 합니다. 너무 민족적인 판타지라 해외 판매는 글렀겠구나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동남아 TV시장에서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도 느끼게 됐죠. 그런데 이들 나라에서 주몽과 같이 중국과 대립하는 드라마가 수용되는 맥락은 뭘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중국과는 어떤 식으로든 갈등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아시아 각 민족들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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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중국에 대해서는 좀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아래 연재가 도움이 됩니다.(백승욱, 사회진보연대 기관지 연재)
[{사회진보연대} 기획연재] 신자유주의 시대 중국 (2002년)
[연재순서]
1. 흔들리는 중국 (1·2월 합본호)
2. 외부의 자극으로 내부의 구조조정을: WTO 가입과 중국의 미래 (3월호)
3. 국유기업 개혁과 중국의 노동자 (4월호)
4. 黑猫白猫: 외국인 직접투자와 대외개방 (6월호)
5. 마오쩌뚱의 유령 (7월호)
아래 포스트에 이어지는 글.
7월 중순 며칠간 태국에서 진행된 회의들에 참석하면서 생각한 것들. 두번째로.
Asian Labor Assembly Privatization Of Essential Service (Focus on Water and Power)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대한 아시아 노동자 회의( 물과 전력)
각국 운동이 가지는 인식의 편차
회의 과정에서 느낀 것은 각국의 대중 운동의 발전정도에 따라서 활동가들의 사고도 제한된다는 점입니다. 앞선 포스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발전정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나라 운동이 처한 정세--국가기구의 역량, 정치제도, 종교 등등--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겠죠. 저나 남한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마치 대단히 '학술적인' 논쟁으로 보이는 것조차도 그 나라의 대중운동의 발전이 영향을 주는 모습들이 느껴지더군요. 그것은 이론(+사상)이 대중운동과 맺는 상호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특히 이론의 입장에서는 대중운동들과 교통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할 수도 있겠죠. ("지성의 명철함과 지성에 대한 대중운동들의 우위" ^^;)
굳이 '발전정도 '라는 말을 쓴다면, 자신들의 운동을 얼마나 보편적인 원칙에 따라서, 국제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기준이 가능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동남아 한 나라의 활동가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빌린 '외채'는 정당하므로 상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발언으로 다른 참가자들이 뜨아,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나라의 참가자는 WTO, FTA 에 대한 토론에서 "물과 에너지를 여기서 제외하도록 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죠. 그러나 문제는 WTO,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연관된 부문에만 집중하는 태도는 설사 연대가 확장되어도 그것이 여전히 다른 '부문'과의 (어떤 점에서는 실용적인) 연대로 사고될 뿐, 전체적으로 이들 자유무역기구-제도를 폐기하는 투쟁으로 나가지 않는 문제를 발생시키게 됩니다.
국제금융기구는 ILO 노동기준을 지켜라!?
한 발제에서 PSI(국제공공노련)는 국제금융기구(WB의 월포위츠까지)에 대한 로비를 통해서 노동친화적인 투자를 요구해야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발제 제목도 CLS Policies at International Finance Institutions 입니다. (CLS = Core Labour Standards)
프리젠테이션 마지막에는 "자랑스럽게" 이런 내용까지. (ITUC는 ICFTU가 전환한 국제노총)
Pres. Wolfowitz announced in meeting with ITUC (Dec 06):
“All WB infrastructure projects in future will come under the new (CLS) requirements, which are aimed at ensuring workers‘ rights to trade union organisation and collective bargaining, freedom from discrimination in the workplace and the elimination of child labour and forced labour.”
월포위츠의 이 말을 보니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픽~ 나오더군요.(하다못해 스티글리츠도 아니고;;) 이런 걸 보면, 국제노총이나 국제산별노련들이 하는 활동이 잘 드러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총회장 만나서 로비하는 셈인데.. 이들이 노동조합(상급단체)인 이상 국제적 연대와 투쟁을 조직하는 것보다는 ILO나 국제금융기구 상대로 로비하는 데 열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발제에서는 ILO 기준에 대한 일종의 "교육"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조항들을 국내 노동정치에 활용하라는 취지였겠죠.
이 발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발언이 많았습니다. 인도, 파키스탄(참가자들이 주로 공산당 당원들) 활동가들의 비판도 있었죠. 국제금융기구에 대하여 노동권보장 요구는 그들의 정당성을 보완해줄 뿐입니다. WTO 각료회담에 '개입'하려고 하는 국제노총이나 신자유주의적인 NGO들 입장의 연장선인 셈인데, 한심한 일이죠.
그러나 다른 조건을 사고할 필요성
한편, 이런 점들에도 불구하고 '다른 조건'들을 역시 고려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부분도 있습니다. PSI가 몰두하는 ILO 조약에 대한 제 비판에 대해서는 필리핀 좌파 활동가들은 동의하지 않더군요. 국내 투쟁에서 노동권을 쟁취하는 데 있어서 ILO 조약이 도움이 된다는 입장입니다. (PSI는 앞서 언급한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CLS준수요구의 연장선에서 ILO와의 관계를 보는 입장이라, 맥락으로보면 문제가 있다는 점을 비판했던 건데;;)
한편으로, PSI의 ILO 조약에 대한 입장과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는 국제적 사회적 합의주의로 비판할 수 있으나 필리핀에서는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입장일 수 있는 것이죠. 한국의 경우에도 91년 ILO 공대위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고, 지금도 여러가지 쟁점에서 ILO 협약도 비준하지 않는 정부를 공격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운동의 국내적 조건과 경험이 국제적인 입장에도 반영되는 데, 이것이 상이한 차이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지반을 확인할 수 있는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구체화되는 것이 필요할 것같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각국 노동자운동이 처한 정세적 조건을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겠죠.(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 남한 노동운동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논쟁의 과잉이 사고에 영향을 주는 셈인데, ILO 조약과 관련해서는 그런 논쟁구도로만은 이해할 수 없다는 점.
주변-반주변 국가에서 사유화의 주체들
그 외에도 이 회의에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국제금융기구들IFIs이나 수출신용기관들ECA, 중국이나 일본, 남한의 공기업들, 국제적인 컨설팅 기업들까지 여러 주체들이 주변-반주변 국가들의 공공부문 사유화에 개입하고 있더군요.(물론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주체는 각 국가들이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투쟁은 이들 국가에 대한 것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컨설팅 기업들 중에는 남한에 합작형태 등으로 진출한 것들도 있는데요, 노무현 정권이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서비스시장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주로 전제하는 것이 이런 금융과 결합된 컨설팅 기업들이라는 점을 상기할 수있습니다. 자본의 초민족화에 적극적인 행위자가 되겠다는, '금융화된 발전전략'이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부분.
특히 중국, 일본, 남한의 공기업들이 초국적인 투자자로 등장하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국적인 차원에서 공기업의 사유화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해당 기업에 대한 주식시장 상장-해외투자의 과정에서 사실상 초민족 자본으로 발전해가는 것에 대한 반대가 필요합니다. 특히 남한의 경우 수자원공사,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등이 이런 방식으로 '진출'하는 데 노조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판단의 문제일 수도 있죠.(민족주의와 경제주의) 그러나 이들 공기업의 사유화를 반대했다면 해외'진출'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물론, 이들이 투자한 나라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중국입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이어진 IMF외환위기 10년 토론회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에 거기서 다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중국의 국영기업들이 초민족적 투자자로 등장한다는 점은 중국과 아시아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중국의 노동자운동일텐데요, 이번 주빌리사우스 노동자회의에 참석한 나라들의 지정학적 분포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참가국들을 나열해보면 남한-홍콩-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인도-파키스탄-스리랑카 등등인데, 동, 동남, 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을 둘러싼 나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간이 빠져있다는 점이 매우 가시적이라는 것이죠. 중국의 자율적인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아시아 전체(물론 그보다는 세계 전체^^;) 노동자운동에 중요한 문제라는 점.
남한 노동자운동에서 국제주의의 취약성
이번 회의를 보면서 계속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남한 노동자운동에게 '국제주의' 혹은 '국제연대'는 무엇일까하는 점이었습니다. 분임토론에서는 공동행동전략도 논의되었는데, 공동행동이 결의되면 실행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동행동'이 국제기구의 회의에 대응하는 이벤트성 투쟁이거나 혹은 참가자들도 조직적으로 책임지지 못하는 아이디어성 발언--일단 아이디어 지르고 보는 무책임한 NGO들은 이해가 안됩니다--이 많아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여튼)
예를 들어서 이번 참가단의 단장이었던 이호동 전해투 위원장이 속한 발전노조. 활동가들도 많고 사유화 반대투쟁도 열심히했던 훌륭한 조직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국제연대는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어서 어려운 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회의에 참가하거나 국제연대사업에 대해서 '외유' 혹은 '사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물론 어용노조들이 노조 간부들 '해외연수'랍시고 놀러가는 행태에 대한 비판 때문인데, 그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거나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
이런 현상은 이른바 '현장주의'가 사업장 경제주의와 연결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활동을 경시하기 때문일 겁니다. 국내에서도 자기 기업밖에 있는 사업장, 노조가 아닌 사회운동과의 연대에 인색한 것이 남한의 전투적 (대기업의) 기업별 노조들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외국의 노동자운동-사회운동과의 연대는 정말 "딴나라 이야기"인 것이죠. 사업장 내 문제, 국내 문제에 몰두하고 국제적 운동에 대해서는 맹목인 건데요, '국제연대'는 오직 투쟁에 대해서 외국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그에 걸맞는 국제연대를 추구하지는 않는 것이죠. 민주노총 정도 되면 국제연대에 나름의 기여를 하고,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네팔과 같이 자율적인 노동자운동이 성장하는 곳의 활동가들에게 지원도 할 수 있을 텐데, 제기하기도 힘든 분위기입니다.
좌파의 경우에도 이런 점에서 보면 현장주의에 불과하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노조 현장파-좌파라고 해도 국제사업담당자나 일부 활동가를 제외하면 국제주의적 사고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 이전 어떤 글에서 남한의 좌파가 국제주의에 가깝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같습니다. 좌파는 反-민족주의에 불과한데 그것은 아직 국제주의자는 아닌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국제주의를 좌파가 수용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좌파들이 민족주의 반대를 쉬운 알리바이로 가지면서, 국제주의를 실제로는 수용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더 "막대를 구부리는" 비판도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제주의라고 해서, 곧장 국제금융기구, 자유무역제도들에 대한 투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그리고 국제주의적인 접근이라고 해서 사유화반대 투쟁에 있어서도 곧장 그런 초국적 기구들을 대상으로 투쟁해야하는 것은 아닌데, 그 나라의 국가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가장 유효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남한 국가가 아닌 동남아 각 나라들의 경우에는 다를 수도 있을 겁니다. 남한은 국가기구가 강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투쟁이 중요할 수 있지만, 국가자체가 매우 취약한 필리핀 같은 경우에는 국제기구들을 직접 상대해야할 수 있죠. 이 점은 남한에서 98년, IMF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이 촉발되지 않았던 부분적인 이유일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운동주체들의 신자유주의와 국제금융기구들에 대한 몰인식에 기반한 것이 더 컷다고 생각되지만 말이죠.)
그밖에.
이 회의는 애초 물과 에너지에서 출발한 회의이지만 투쟁 목표는 계속 확장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투쟁, 자유무역체제에 대한 투쟁 등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제도들에 대한 투쟁으로 논의가 확장됩니다. 그 때문에 논점이 흐려진다는 불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어쩔 수 없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습니다.
WTO, FTA 반대 투쟁에 대한 워크샵만 보더라도, 물, 에너지 사유화를 반대하는 것으로만 사고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자유무역 기구-제도에 반대하는 것으로 논의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참가자들의 사고과 경험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물, 에너지 사유화는 이러한 자유무역 기구-제도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일 것이죠.
회의 마지막 참가자 총회에서는 아시아 지역의 노동자운동-사회운동의 네트워크 형태의 연대조직을 건설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Campagin for People's Rights to Natural Resorce and Essential Service(자연자원과 필수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권리 운둥)이라는 이름이죠. 앞선 글에서 썼던 것처럼 이 회의를 조직한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의 활동이 의미있는 것은, 이렇게 국제적인 수준에서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를 (말로 만이 아니라) 실제도 조직한다는 점입니다.
지역별 운영위원을 호선할 때에는 반드시 여성을 포함시키는 것도 인상적.(아마 이런 방식이 국제 사회운동에서는 일반적인 것같더군요) 지역(남-동남-동 아시아)별로 2인씩 배정한 운영위원에 지역별 1인을 여성으로 했으니 1/2을 여성으로 배정한 셈이죠. 할당제와 관련한 여러 쟁점이 있기는 하지만, 인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다음 포스트는 이어진 회의 "Understanding Global Finance, Bulilding International Resistance "에 대한 글>
7월 중순 며칠간 태국에서 진행된 회의들에 참석하면서 생각한 것들.
아래 일정은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에서 주최-조직한 필수서비스의 사유화와 관련된 노동조합의 회의였습니다. 주빌리사우스는 외채탕감운동단체이지만 중심부 국가들이 외채를 이용해 주변-반주변 국가들을 착취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비판과 반대운동을 전개해왔죠. 집행국도 (필리핀 사람들인데) 다른 국제NGO에 비해서 매우 건강합니다.
특히 외채를 통해 주변-반주변을 착취하는 유력한 방식이 필수서비스(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공공서비스)의 사유화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반대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당 부문에 노동조합들을 직접 조직하려는 시도가 이번 회의였던 셈이죠. 주빌리사우스가 건강하다고 하는 것은, 집행국의 정치적 성향(주로 필리핀의 비공산당좌파들이 함께 하더군요) 때문만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방식의 운동을 국제적인 수준에서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Asian Labor Assembly Privatization Of Essential Service (Focus on Water and Power)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대한 아시아 노동자 회의( 물과 전력)
국가단위를 넘어선 국제적-지역적인 접근
언급한대로 이 회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수서비스 산업의 사유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프로그램은 각 국에서 진행되는 필수서비스의 사유화가 국내적인 사안이라기 보다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집중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서 필수서비스의 사유화 문제를 각 나라 사회운동의 국내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죠.
이런 점은 남한의 공공부문 노동자운동에도 부족했던 측면입니다. 주로 남한의 공공부문노동자운동은 국내정치적인 요소만 고려했는습니다. 물론 국제 금융기구의 직접적 강제보다는 남한의 지배계급이 능동적으로 추진한다거나, 금융위기 과정에서 국가가 다른 주변-반주변 국가처럼 취약해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특수한 지형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는 인식을 계속 국내에 가두는 편향을 낳게 됩니다.
따라서 사유화가 진행되는 직접적 과정은 국내정치적인 제도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국제금융기구, 중심부 국가, 초민족자본, 국제적인 컨설팅 기업, 주반-반주변 국가를 모두 고려해야하고 이 주체들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메커니즘 속에서 움직인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 지역적 관점에서 전반적인 접근을 통해서 말이죠. 남한에서는 IMF 구제금융 이후 (직접적으로 IMF SAPs에 의해 강제된 사유화에 대항하는) 몇년 동안 사유화반대 투쟁을 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IMF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 적이 없을 정도로 국내정치에 대한 대응에 집중해왔습니다.
한편, 이러한 회의가 아시아에서 조직되는 대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산업적 팽창 때문에, 물-에너지도 emerging market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적극적으로 사유화, 주식상장, 지분매각 등을 통해서 금융화됩니다.
필수서비스 사유화에 대한 사회운동의 접근방식
공공부문의 사유화 반대에 있어허 해당 노조들은 주로 고용, 임금,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이러한 문제가 신자유주의의 문제라는 인식정도에서 사유화반대투쟁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특히 사회운동들의 문제제기는 물-에너지에 대한 인민의 권리, 환경에 대한 권리, 정보의 공개-참여 등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이더군요. 인민의 보편적 권리의 한 항목이라는 것으로 말이죠.
노조와 사회운동의 접근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노조에 있어서도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 사유화 반대투쟁들을 평가할 필요가 있을 텐데요, 남한에서는 사유화에 대해서 공공성-국부유출 이런 방식으로 비판하기는 했는데, 그게(국부유출은 민족주의적인 구호고, 공공성이라는 구호는) 인간-시민의 권리라는 방식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꼭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사용하는 개념도 차이가 나는데, 회의 제목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만 남한에서 "공공 public 서비스"라고 부르는 것들을 그곳 논의에서는 "필수 essential 서비스"라고 부릅니다.)
공공성 수호라는 구호는 국가가 이런저런 항목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데 더 중점이 있는데, 인간-시민의 권리라는 것은 인권의 항목으로 바라보는 것으로서 접근 방식이 다른 거죠. 공공성 구호가 남한에서 중심이었던 것은 국가가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기도하고, 따라서 사회운동이 국가와 투쟁하는 것에 비중을 두는 상황에 근거하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이 투쟁이 보편적인 인권-시민권을 확장하는 투쟁으로 나가지 못하고 코포라티즘에 수렴될 위험성도 매우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그런 점에서 저는 "사회공공성" 구호에 대해서는 항상 "?"를 칩니다.) 물론, 국가의 책임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전략적인 함의가 있고 그런 점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여튼 남한의 정세에서 운동에도 그런 효과가 발생한 셈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를 상대화하는 대안까지 함께 고려하고 운동에 기입해야한다는 점.
특히 에너지의 경우 지구온난화 문제와 함께 결합해서 인식할 필요성
이번 프로그램에서 가장 관심있게 들었던 발제는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에너지부문의 노동자운동이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취지에서 배치되었습니다. (옆 사진에서 발제하는 사람은 Red Constantino라는 그린피스 활동가)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는 다른 자료를 참조하면 될 테니 여기서는 생략. 다만 도쿄협정의 CO2 감축 요구는 선진국 정부의 무시는 물론이려니와, 그 자체로도 에너지가격을 높이면서 빈곤층, 노동자에게 고통을 심화한다는 점을 인식해야하고 그런 측면에서 민주적 통제, 세계화반대와 함께 인식해야한다는 접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운동이 체제에 부담을 주고 체제전복적이어야한다는 주장은 월러스틴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그러나 환경과 관련된 '산업'자체가 성장할 수 있고, 자본은 여기서도 이윤을 얻을 수 있죠. 그런 점에서 환경규제가 '체제에 부담'을 주는 것인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다만 자본주의 자체가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도록 하는 물질적 한계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 이것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혹한, 주체없는.. 폭력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류의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다른 운동적 접근이 필요할 것같습니다.)
남한에서도 공공연맹 안에 에너지관련노조들과 환경운동연합 등이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라는 것을 구성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에너지 소유-운영구조에 관심이 집중된 측면이 있고 지구온난화문제 등 보다 넓은 환경운동의제에 대해서는 접근이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도 노조들의 인식이 가지는 편차는 크게 드러나더군요. 환경운동단체들의 주장이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같이 할 수 있냐 없냐가 갑론을박. 인도의 어떤 참가자는 화해불가능이라고 주장하기도. 생태주의를 노조의 이념으로 수용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 에너지 부문 노동자 당사자들, 특히 주변-반주변의 노동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경로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체제 대안이라는 것이 해당 부문의 노동자에 대한 대안을 필수적으로 포함하지 않으면 안되겠죠. 특히 환경운동 진영과 함께 노동자 운동이 고민하면서 공동의 "전략적 합의"를 국제적인 수준에서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너지분야 분임토론에서 이런 주장을 언급하긴 했는데, 다른 참가자들은 좀 시근퉁 하더군요 ─_─;;)
사유화와 젠더
프로그램 중에는 물과 전력의 사유화가 여성에게 특히 문제라는 내용의 워크샵이 있었습니다. 여성이 '가사'유지와 더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인데요, 특히 가정을 유지하는 임무가 여성에게 주어지며, 특히 물의 경우 여성이 획득하도록 요구받는다는 점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가족구조에서 물을 확보하는 것이 여성의 임무로 규정된 이상 여성들은 물을 얻기 위해서 더 힘든 조건에 처할 수밖에 없죠. 또한 생계를 부양하는 빈곤여성의 경우 공공요금의 인상은 더 큰 부담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해고만이 아니라, 필수서비스, 특히 물의 사유화가 여성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전 발제를 했던 PSI--국제공공노련--는 성주류화전략에 입각해서 여성에 대한 구조조정이 국가의 노동력 개발이나 생산성에도 역행한다는 입장으로 이야기하는데 그건 좀 그렇더군요.) 여성노동자의 측면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여성일반의 문제로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특히 정규적인 노동자 인구가 적은 주변부 국가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더욱 의미가 있겠더군요. (남한과 같은 사회라고 예외는 아닙니다만.)
그런데 이런 문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유화 반대운동을 생계부양자로서의 여성의 피해가 가중된다는 식으로 진행할 수 있는가는 고민이 필요한 것같습니다. 여성을 사유화 반대투쟁에 동원할 수 있기는 할텐데, 가족 내 여성의 위치를 당연히 전제하면서 고정하는 효과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주변부국가에서 지역차원에서 여성들을 조직하는데는 의미있는 경로일 수는 있겠군요. 가족 내에서 불평등한 여성의 역할을 전제하고 여성을 조직하는 방식은 꼭 이런 예만이 아니라도 학부모의 역할, 가족 내 돌봄노동의 역할 등 여러가지가 있을 텐데, 어떤 의미일지 어떤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지는 고민해보아야할 것같군요.
<더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 포스트에. 글이 너무 길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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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힘든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부디 힘내시기 바랍니다. 늘 멀리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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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힘든 일들도 모두 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낙관적이려고 하는 중이죠.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