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꿈 꾸고 싶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부정하고 사회주의 사회로 옮아가고자 했던 까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른바 '사회주의적인 인간'이 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닌가요? 사회를 바꾸어내는 것은 마지막 목표가 아닙니다. 스스로 자기를 바꾸어 내는 것이 마지막 목표지요.
-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중에서
혁명은 인간이 이뤄낸다. 인간 자신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서 감히 세계를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가. 도무지 헛점투성이이며 모순덩어리이다. 대다수의 인간들은 자기 입으로 내뱉은 말들을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며 기억한들 행동으로 일치시키지 못한다. 바로 나처럼 전혀 비범치 못한 인간들은 말이다.' 자기 합리화'라는 편리한 도구를 대충 상황에 맞게 둘러대지만 가끔은 진실을 외면하지 못해 '자학'이라는 채찍을 휘두르기도 해보는 것이다. 당연히 늘 같은 자리에서 언제나 고만고만한 자신을 발견할 때, 정말 답답해진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개선시켜 나갈때, 그 변화속에서 위대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소위 운동의 본질이며 활동가의 진면목이 아닐까. 이 대목에서 왠지 서글퍼지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사게 됐다. 변산공동체 하면 떠오르는 것들 - 하층 노동자가 범접하기 어려운 값비싼 유기농 농산물, 자본주의를 역행하듯 자급자족하는 자기들만의 공동체 - 나름 편견들을 제낄만큼 매력적인 제목이었다. 몇년 전 이혼할 때 경제적 빈곤을 걱정하는 지인들에게 '빈곤속의 자유'를 선택했다며 농담처럼 떠들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그것은 또한 지금 어린 아들과 내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난은 내 어린 아들에게 너무 빨리 메마른 현실을 인식하게 했고 철모르는 애들이 흔히 말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씨알도 안먹히는 비현실적인 꿈은 아예 꾸지도 않게 한다. 가난하지만 꿈 꿀 수 있게, 나는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