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시간 2009/02/08 02:16

국가

"사실 '올바름'이 그런 어떤 것이긴 한 것 같으이. 하지만 그것은 외적인 자기 일의 수행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자기 일의 수행, 즉 참된 자신의 일과 관련된 것일세. 자기 안에 있는 각각의 것이 남의 일을 하는 일이 없도록, 또한 혼의 각 부류가 서로를 참견하는 일도 없도록 하는 반면, 참된 의미에서 자신의 것인 것들을 잘 조절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배하며 통솔하고 또한 자기 자신과 화목함으로써, 이들 세 부분을 마치 영락없는 음계의 세 음정(horos), 즉 최저음(neate)과 최고음(hypate) 그리고 중간음(mese)처럼 전체적으로 조화시키네. 또한 혹시 이들 사이의 것들로서 다른 어떤 것들이 있게라도 되면, 이들마저도 모두 함께 결합시켜서는, 여럿인 상태에서 벗어나 완전히 하나인 절제 있고 조화된 사람으로 되네. 이렇게 되고서야 그는 행동을 하네. 그가 무슨 일을, 가령 재물의 획득이나 몸의 보살핌 또는 정치나 개인적인 계약에 관련된 일을 수행하게 될 경우에는 말일세.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이 성격 상태(습성:hexis)를 유지시켜 주고 도와서 이루게 하는 것을 올바르고 아름다운 행위로, 그리고 이러한 행위(praxis)를 관할하는 지식(episteme)을 지혜(sophia)로 생각하며 그렇게 부르되, 언제나 이 상태를 무너뜨리는 것을 올바르지 못한 행위로,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관할하는 의견(판단:doxa)을 무지(amathia)로 생각하며 그렇게 부르네."

 

- 플라톤, '국가' 중에서

 

 

플라톤 하면 떠오르는 것은 고등학교 윤리수업때 잠깐 스치고 지났던 '이데아'나 '철인통치'같은 단어들이다. 처음엔 '철인'의 뜻을 잘못 이해하여 '무쇠같은 사람?' 태권브이같은 만화영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하여튼 잠깐 주워들었던 그 단어들의 진정한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책이 바로 '국가'이다. 앞서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등등 그나마 상대적으로 짧고 쉬운 책을 먼저 읽어 대충은 이해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젠장 '국가'는 어렵다. 술술 읽히지도 않고 이해도 안 가지만 어쨌든 힘겹게 책장을 넘겼고 다 읽고도 한참 멍했다. 다행히 올해 내 수강과목에 포함되어 있으니 '그때 다시 제대로 읽어봐야지' 하면서 은근슬쩍 정리를 미루는 센스를 발휘해본다..

 

이 책에서는 올바름(정의)이란 무엇인가, 정의로운 국가에 대한 정의와 조건 및 타락과정, 예술, 교육 등등에 대한 다양하고 포괄적인 논의가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소크라테스의 질문과 대답 속에서 10권까지 이어지게 된다. 정확한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흥미로운 부분들이 몇가지 있었는데 바로 국가의 타락과정이다. 플라톤은 국가가 타락해가는 원인은 국가를 구성하는 계급 간의 불일치이고, 불일치의 시작은 통치자 계급의 욕망의 변질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아무리 진리를 사랑하는 철학자가 통치하는 이상국가라 할지라도 쇠퇴하기 마련인데 통치자 계급간의 불화속에서 바로 사유재산제에 의한 노예나 농노의 소유가 발생하면서 기개 부분이 우세해져 군인이 지배하는 체제가 되고 만다. 이러한 명예정 국가에서 돈벌이와 금전을 사랑하는 인간이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과두정 국가이다. 두번째 단계인 과두정 국가에서 빈부의 차이가 커지면서 혁명에 승리한 민중에 의해 민주정 국가가 등장하지만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exousia)에서 기인하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다른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 결국 무지한 민중을 이용한 정치적 선동과 혼란속에서 참주제 국가로 전환하게 된다. 극단적인 자유에서 가장 심하고 야만스런 예속이 조성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시대를 훌쩍 뛰어넘는 플라톤의 통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래서 사람들은 고전을 읽나보다. 하여튼 관심있는 부분은 특히 민주정 국가의 이행과정과 변화에 대한 것이다.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 '평등한 사람과 평등하지 않은 사람에게 똑같은 평등' - 기계적인 해석이지만 의외로 우리가 현실에서 쉽게 범하는 오류이기도 하다. 한참 전 군가산점제도의 문제점이 부각되자 가장 많은 남자들의 불만은 '여자도 군대가라'였으니 말이다. 또한 플라톤은 민중의 선도자에서 참주로 바뀜의 시초가 부당한 고발, 추방, 살해의 시작이며 사람에서 늑대로 바뀌는 것으로 규정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곳곳에 있다. 여성과 관련해선 여자와 아이들을 공동의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과 자질이 충분하다면 여성 통치자들 또한 가능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가족의 해체와 남녀 평등을 주장한 것일까? 또 유익한 혼인에선 최선의 남자들은 최선의 여자들과 가능한 한 자주 성적 관계를 가져 최상급의 아이를 탄생시켜야 하는데 단 통치자 외에는 아무도 몰라야 한다. 특히 열등한 부모의 자식들이나 불구 상태인 경우 은밀한 곳에 숨겨 두는데 이것은 곧 영아 유기를 짐작케하는 것으로 신체적 조건을 중요시했던 것 그 당시 현실을 엿볼 수 있다.

 

혁명을 꿈꾸면서 국가에 대한 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거나 진짜 무식한 거겠지. 나는 후자이다. 무식한 것이다. 중국과 소련을 보면서 쓰레기사회주의라 생각났고 아직 쿠바엔 물음표를 갖고 있다. 또한 국가라는 말 자체가 억압으로 느껴져 싫고 무섭다. 국가는 언제 내 뒷목덜미를 낚아채갈지 모르는 깡패xx이며 얄팍한 월급명세서를 갉아먹지만 도움이 필요할 땐 눈감는 도둑x이라는 감정적 인식이 지배한다. 시스템에 의한 피해의식,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반성한다. 나는 이런 공부를, 아주 다양한 세계와 주제에 대한 깊고깊은 고민을 진작에 했어야 했다. 말로는 남발했으나 체계화 되지 않았던 내 상상들 - 그 허상을 진작에 발견했어야 했다. 어쨌거나 머릿속을 맴도는 각종 의문부호들을 남겨놓고 이 책을 덮기로 하자. 혼자 읽기의 한계이다. 또다른 책읽기를 통해 또는 자문을 통해 차차 채워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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