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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야기 2-어른들의 구박

하여튼 어른들 많은 데 가면

참 구박을 많이 받습니다.

 

"이거 봐, 이거 봐~애를 맨날 누워만 키우니까

다리에 힘이 없지..얘가 이럴 애가 아니야..어이구, 어이구~그래, 그래~"

 

처가집에서 이틀째날 어른 세 분이서

미루를 세워서 들었나 놨다 합니다.

 

"자기들 힘들다고 계속 눕혀서 키우면 되나,

인제 보행기도 좀 태우고 그래야지..."

 

우리가 공부하기로

보행기를 태운다고 애가 특별히 빨리 걷는 건 아니랍니다.

 

"하여튼 8달 되면 걷기 시작해야 하는데

계속 이러면 안돼..."

 

주선생님은 어릴 때 8달 돼서 걸었답니다.

 

동물들은 태어나자 마자 걷고

사람은 좀 늦게 걷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주선생님은 좀 일찍 걸었습니다.

주선생님 집안이 다 그렇습니다.

 

대개가 8달, 9달째에 걸어서

자기 돌잔치 날에는 떡들고 날랐답니다.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같은 말을 세번 들으니까

슬슬 속이 타들어갑니다.

 

미루는 아빠 닮아서

남부럽지 않은 허벅지를 자랑합니다.

 

이쁘다고 얼르다가

다리에 얼굴 한방 맞아 보면

다리 힘 없다는 소리 안 할텐데

아쉬웠습니다.

 

저는 맞아봤습니다.

 

그렇게 어른들과 한참 놀던 미루가

두 눈두덩이 빨개졌습니다.

 

저녁 때 실컷 잤지만

아침 나절에 실컷 놀고 또 잘 시간이 됐습니다.

 

얼굴에 피곤이 가득합니다.

 

"아~밤새 재워놓고, 뭘 또 재울라고 그래?"

 

주선생님,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피곤해 해서 재워야 돼요..."

 

겨우 재웠습니다.

밖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에 10분만에 깼습니다.

 

"거 봐라~! 안 잘려는 애를 재우니까, 금방 깨잖아.."

"아니야, 할머니~재워야 돼요..."

 

우는 미루를 장모님이

안고 나가셔서 왔다갔다 하십니다.

 

"저게 무슨 졸린 애 표정이야..안 잘려는 구만..."

 

주선생님의 외할머니

재차 주장하십니다.

 

"저 눈 초롱초롱한 거봐..근데 뭘 재운다고..."

 

장인어른이 가세하셨습니다.

 

주선생님 더욱 완강하게 반응합니다.

"재워야 한다니까~~~!!!"

 

저도 입술을 굳게 다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

 

TV를 켜고, 미루한테 보여줍니다.

 

"TV도 잘 보네...잘만 노는구만.."

"아빠~!! 안 그렇다니까...재워야돼요..."

 

저는 더욱 입술을 굳게 다물고

주선생님을 응원했습니다.

 

"............"

 

 

5분이 지났습니다.

 

미루는 피시방에서

이틀밤샌 청소년 얼굴이 됐습니다.

 

모두가 TV에 집중하고 있는데

장인어른이 가볍게 한 마디 하십니다.

 

"저렇게 잘 노는 애를..뭘 재운다고..."

"........................"

 

"이리와 봐~할아버지가 안아줄께..어이차...

어이구..울지도 않고, 이런 애를 왜 재워..."

 

저는 입술을 굳게 다물어서

주선생님을 응원하는 거 말고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심호흡을 깊게 한 다음에

같은 소리를 몇 번 들었는지 세어봤습니다.

5번째인가 6번째입니다.

 

이제 미루는 울기 시작합니다.

"흐으..흐으..으..흐응..흥..으아..으아.."

 

"야~미루 오줌 쌌나보다..기저귀 좀 봐주라.."

 

장인어른,

결정적인 순간에 미루를

우리한테 떠넘깁니다.

 

"아이구, 인제 나가봐야겄다.."

 

미루를 못 재우게 하는데 선봉에 섰던

할머니께서 인제 나가신답니다.

 

"나도 요 앞에 좀 나갔다 와야 돼.."

 

장인어른도 일어서십니다.

 

두 분이 나가시고 나서도 한참 동안

미루는 계속 울었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마음 속으로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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