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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야기 6-어머니 이야기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

무릎 수술을 하신 할아버지

 

두 분 저녁 식사를 위해서

예순이 다 돼신 어머니께서 매일 저녁 마다

큰 집에 가십니다.

 

할머니는 젊으셨을 때

어머니한테 참 시집 살이를 많이 시키셨는데

 

지금은 그 커다란 집에 두 분만 계시니까

어머니가 기다려지시나 봅니다.

 

올해 초 쯤의 이야기입니다.

 

퍼붓는 눈을 뚫고

어머니가 겨우 큰 집에 도착하자

할머니께서 "아이고, 왔냐~~" 하시면서 반갑게 맞으셨답니다.

 

그 뒤에서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 추워~문 닫어~!!"

 

어머니는 이런 분위기에서

한 끼에 30인분씩 밥을 하시면서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어머니 몸에 익은 건

'끝까지 참고, 다 해내기'입니다.

 

이런 성격이 일은 잘 하지만

자기는 몸도 상하고 마음은 더 상합니다.

 

그 짓이 십년 넘어가면

인생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지금도 이러고 계십니다.

 

이번 추석에는 어머니와 함께 항상 손발을 맞추던

작은 어머니 한 분이 암 수술을 받으셔서 못 오시게 됐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이번에 작은 어머니가 못 오시게 될 것 같은데 큰 일이라고 이야기하니까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답니다.

 

"그럼, 혼자 장만하면 되지 뭐.."

 

여기서 혼자 하시는 분은

저희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가 30몇 년 전부터

속에 차곡차곡 키워 놓은 숯덩어리가

이번 추석에도 역시 조금 더 커졌습니다.

 

인제 몸 안에는 더 쌓아 놓을 데가 없어서

요새는 자꾸 몸 밖으로 나옵니다.

 

추석날 저녁에 우리는 집에 모여서

어머니가 할아버지 험담하시는 걸

열심히 들어줬습니다.

 

이럴 때 하는 험담을

속세에서는 물론 뒷다마라고 합니다.

 

뒷다마는 영혼을 맑게 해주는 기능을 하지만

현재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기능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날 어머니의 뒷다마를 신나게 들었습니다.

 

"내가 진짜 스트라이크를 하고 싶어.."

 

느닷없이 영어를 쓰십니다.

그냥 파업이라고 하지.

 

스트라이크로부터 시작된 어머니 이야기는

이번 추석을 둘러싸고 진행됐던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과 투쟁으로 번지면서

정말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습니다.

 

저는 맞장구를 쳤습니다.

 

"파업 한 번 하세요..정말 한 번 해야 돼..."

 

주선생님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러게 왜 이 집안에 시집 오셨어요..."

"그땐 결혼하면 그렇게 되는 지 몰랐지..."

 

결혼하면 그렇게 되는 지 몰랐다는 건

몇 달 전에 결혼한 제 바로 아래 동생의 부인

그러니까 제수씨가 추석날 주선생님한테 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에 추석 때는 친구들이랑 영화 보러 다니고 그랬었는데...

결혼하면 이렇게 달라질 지 몰랐어요...진짜 힘드네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나아진 게 없습니다.

 

1시간 넘게 진행됐던

어머니의 뒷다마는

예전에도 몇 번 그랬던 것처럼

행동으로 이어지는 어떤 계획을 세우진 못하고

그냥 끝났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기차가 광명역을 지나는 데

갑자기 저녁밥 어떡하나 걱정이 됐습니다.

 

"안 그래도 어머니가 저녁 때 먹으라고 묵 싸주셨어.."

"어..그래? 히히.."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 묵 주시면서?"

"뭐라고 하셨는데?"

"밖에 나갔다 오면 여자들은 저녁 걱정이 제일 먼저 든대...그러면서 묵 가져가라고 하시더라.."

 

주선생님이 산모인 동안에는

제가 식사 당번이니까

그런 얘기는 저한테 했어야 했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절대 안 그러셨을 겁니다.

 

오랫동안 며느리의 고통을 당하셨지만

그렇다고 아들이 밥하는 꼴은 못 보십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어머니 얘기를 좀 더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뭔가를 제대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주선생님은 벌써 시작한 게 있습니다.

 

명절때 마다 주선생님은

양말이나 덧신 같은 걸 사가지고 가서

숙모, 외할머니, 어머니 등등 여자들끼리 모인데서 풀어놓습니다.

 

주선생님 특유의 '여성끼리 연대하기' 작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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