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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이번 주 토요일은

제 막내동생 딸의 백일 잔치날입니다.

 

식구들이 토요일날 다

서울로 올라오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어머니, 아버지가 올라오시는 거라서

저희들은 한달 전에 딱 한번 죽는 소리를 했습니다.

 

"지난 번에 준 반찬 다 떨어졌어요..."

 

그날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아주 자주 전화를 하십니다.

 

"야..니네 깻잎도 다 먹었냐? "

 

"양구네 가게 옆에서 김 파는 데 진짜 맛있더라, 좀 사갈까?"

 

이제 전화는 매일 아침이면

어김 없이 옵니다.

 

"미루 자냐?"

 

"미루 뭐하냐?"

 

"어제 아버지가 안 좋은 꿈 꿨는데 미루 아프냐?"

 

반찬 얘기는 인제 더 안 하시고

매일 미루 얘기입니다.

 

처음에 임신했다고 전화로 말씀드렸을 때는

의외로 시큰둥하셨었는데

요새는 미루한테 거의 열광하십니다.

 

"음...상구.."

"왜?"

 

"미루, 그거 되겠다.."

"뭐가?"

 

예전에 아는 분이 가난하게 살면서

아이의 활약으로 부모님한테 용돈을 얻어썼다는 걸

주선생님이 기억해내셨습니다.

 

그때 그 분은

아이한테 "할아버지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를

연습시켜서, 결국 소고기값을 받아냈었답니다.

 

"어머니가 미루 저렇게 이뻐하시니까..통할 것 같애...

미루야~~!! 연습하자!!"

 

주선생님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아주 의욕적으로 외칩니다.

 

"할아버지!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미루야 따라해!!"

"할아버지!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

 

전 그 순간 뭔가 좀 고결함을 유지해야 할 것 같아서

거실로 나왔습니다.

 

외침은 계속 들립니다.

 

"할아버지!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

"할아버지! 소고기가! 먹고 싶어요!"

 

문득 구호가 바뀌었습니다.

길다고 느꼈나 봅니다.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 소고기!"

 

전 책상에 앉아 있다가

나즈막히 되뇌었습니다.

 

"소고기..소고기..소고기.."

 

계속 연습시키다 보면

엄마, 아빠 보다 소고기를 먼저 말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구차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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