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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전화

"두두두두두두두두"

 

저녁 9시 30분

전화기를 진동으로 했더니

책상 전체가 울립니다.

 

미루 재우다가

완전히 낙담합니다.

 

한 시간 가까이 실랑이 끝에

겨우 잠들기 직전이었습니다.

 

"여보세요"

"오~!! 전화 받네.."

 

"아...난 또 누구라고.."

 

사무실 사람입니다.

 

"근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작아요"

 

건너편은 아주 시끌벅적합니다.

 

"애 재우다 나왔거든요.."

 

"하하하..그래요? 지금 어딘대요?"

 

술취했습니다.

취한 인간의 전형적 대화법을 구사합니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화가 났습니다.

 

"어디긴 어디야..집이지.."

 

"집이 어딘데?"

 

집은 또 왜 묻나 싶은데

무슨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집은 왜 물어? 대방동이야.."

 

"오호, 대방동~"

 

도저히 저의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말투입니다.

 

"근데 왜 이 시간에 전화했어!!!"

 

버럭 화를 냈습니다.

하루 내내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잘 됐습니다.

 

저쪽에서 미안해하면서 통화하면

화도 못 내고 괴로웠을텐데

화 내기 딱 좋게 말을 합니다.

 

"아..미안해요.."

 

화내고 나니까 미안하다고 하더니

옆 사람을 바꿔줍니다.

 

"오랜만이예요"

 

미루가 옆으로 기어오더니

본격 사운드를 내기 시작합니다.

 

"애 옆에 있어요?"

"네..근데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예요?"

 

"늦긴 뭐가 늦어요. 인제 9시 30분이구만.."

"그건 일할 때 얘기죠...하, 진짜.."

 

"알았어요...근데 이번 주 토요일날 시간 있어요? MT같이 가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있는대로 화를 냅니다.

36년의 내공을 담은 온갖 욕설을 패키지로 보내줍니다.

저쪽에선 안절부절 못하다가

백배 사죄를 합니다.

다시는 밤에 전화 안 하고

낮에도 먼저 문자를 날리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계속 화를 내볼까 했지만

소심해서 그만뒀습니다.

 

전화를 끊고

미루가 자기까지 3시간 걸렸습니다.

 

12시 20분

겨우 재우고 시계를 보니까

다시 온몸이 화 덩어리가 됩니다.

 

육아휴직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아하는 사람 처지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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