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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쯤에는 역사는 발전한다고 믿었었습니다.
요즘엔, 사람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에 전쟁 직후의 아프카니스탄에 갔을 때,
'부르카'로 온 몸을 가리고 다니는 여자들을 봤었습니다.
70년대 말만 해도
긴 파마 머리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던 그곳에서
저는 아주 지독한 역사의 후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미루는 아주 열심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주선생님과 저의 관심사는
미루가 과연 엄지손가락을 언제 입속에 넣느냐였습니다.
이 과정이 참 어렵습니다.
손을 입으로 가져가긴 하는데, 주먹을 통째로 입에 넣을려고 합니다.
한 일주일 넘게 이랬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일주일 동안, 주먹이 엄청나게 큰데, 입은 더 엄청나서
그 큰 주먹이 입속에 들어가는 걸 가끔씩 보여줬던 학교 때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끔찍했습니다.
그러다가, 미루는
손가락 중에 엄지 손가락말고, 그 다음 손가락을
입속에 넣고 빱니다.
주먹을 쥐는 법도 달라졌습니다.
엄지손가락을 네 손가락 안쪽에 넣어서 쥐더니,
며칠 전부터는 바깥 쪽으로 내놓고 쥡니다.
이런 걸 발견하는 제 눈썰미도 참 대단합니다.
사실은, 주선생님이 발견해서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미루가 엄지손가락을 빨기를 기원하면서 가끔 응원을 해주었습니다.
"니~손 빠라~" "쪽쪽~쪽 쪽 쪽" (응원구호에 대한 설명은 이 글 끝에)
그리고 결국
우리의 응원에 힘을 얻은 미루는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힘차게 빨기 시작했습니다.
주선생님은 이 장면을 기록해야 한다면서
옆에 있던 캠코더를 들었습니다.
테잎이 다 돼서 더 이상 녹화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미루는 딱 3초만 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 꼬마는 느리지만, 아주 열심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응원구호에 대한 설명>
축구선수 박지성이 네덜란드에서 뛰던 시절,
그 동네 사람들이 박지성을 응원했다던 '위~송 빠레' 를 응용하여 우리가 만든 구호
남자 중에는 이 구호를 아는 사람이 좀 있을 듯함
엄지손가락을 빨라고 응원해야 하는 판에 대충 '손을 빨라'고 외쳤으므로, 그다지 정확한 구호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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