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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7

 

 

 

 

 

뜨듯미지근한

부유물이 떠다니는 고인 물처럼

세월은 갇혀있고

나는 잘 하는 것이 얼마 없고

가족들은 나이를 먹거나 늙어가고

출퇴근, 잠,

밥, 그리고 출근을 해야하는 초조

...책이 많이 왔다

풀어야할 문제들도 많이

욕심을 부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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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를 나는

 

 

 

 

 

어제는 휴무 첫날이었지만 어떤 좋지 못한 사건으로, 회사 내 새마을금고까지 다시 들어가 두어장의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오후였고, 은행 업무 시간에 쫓겨 복지관과 가까운 후문이 아닌 정문만 경유하는 버스를 탔고, 정문에서부터 한참을 걸었다. 며칠째 후텁지근한 날이 이어지고 있었고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어느 지점에선가 확장공사 중이었고 뒤집어진 아스팔트 사이로 매캐한 먼지가 흩날렸고 커다란 트럭은 내 옆을 지나갔다. 내가 삼교대 노동을 하며 일조하는 이 세계를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음 힘든 일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소설책을 사고 싶어진다. 새마을금고 옆, 터미널 가판대 수준의 서점에서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을 발견했다. 누군가 이미 판독을 마친듯, 앞표지에 길게 줄이 간 채였다. 나는 이 한 권밖에 남아있지 않느냐 물었지만, 그 책은 본래 그렇게 우둘투둘해요, 라고 사장은 답했다. 내가 구입하는 정이현의 신작 소설집으론, 어울리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은희경 신작을 던져버렸던 기억이 난다. 태어나서 책을 던져버리기까지 한적은 없었는데, 겨울 가고 봄이 올 무렵이었는데, 회사와 회사 사람 일이 어려워 당신이 말하는 위악이란 게 뭔가, 내 공장생활을 견디게 할 처세술이라도 될 수 있겠는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해대던 유치한 제목의 책을 자못 공격적인 자세로 구입했던 것인데, 아니,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아직까지 정이현의 신작을 던져버리진 않고 있지만, 그대는 왜 이렇게 곱게 자란 표를 못 내 안달일까.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책의 안쪽 날개에 박아넣는 제 사진을, 이루 말할 수 없이 세련되게 찍는 작가들을 믿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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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 쓰기/대상으로서의 나/housekeeping

 

 

 

 

 

나는 많은 것들을 뭉뚱그려 파악하고, 덩어리진 채로 사용하며 살아왔다. 지금 일을 하면서 조금 나아진 쪽이 있다면...시간이겠다. 거의 반나절 단위로 흘리던 시간들을 의지만 있다면, 반시간 단위로까지는 쪼갤 수 있게 되었다. 입사한지 일년에다 두달 가량 더 지나고 있다. 오늘 나는 돈을 쪼개보겠다 다짐해본다.

 

지금껏 나는 궁핍하였고 사치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외양을 의식하는 사람일수록 속은 허하고 결핍되었을 공산이 크단 걸 안다. 자주 바뀌는 옷과 잡화를 통해 스스로 들추어지는 열등감, 오래 묵어 힘도 센 그것을 잊고지낼 수도 없다. 그런데 고작 차림새에 신경을 쓰는 그짓이 나에게는 자존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유난스런 일도 아니지만 남편이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 방법까지 잃어질까봐 많은 돈을 들여 내 옷장의 빈 조각을 채워넣었다. 그 퍼즐은 채울수록 이가 빠져버리지만, 나는 몇번이고 오늘의 직전까지 채워넣었다. 그러니까 나에겐 새 방법을 찾는 한때를 버텨낼 상당량의 헌 방법이 저장되어 있다...내가 나였던 적이 있기는 할까? 나는 매일 울상으로 출퇴근을 반복한다. 나는 제품을 실장 테스트한다. 내 어떤 세계는 PASS와 FAIL로 갈린다. 나는 십육진수를 십진수로 바꾸어 더하거나 뺀다. 그것을 다시 십육진수로 바꾸어 뒤에서부터 순서를 매긴다. 나는 해당 순서값을 구해 적는다...나는 가계부를 쓸 것이다. 나는 많은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울 것이다. 술은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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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펌)
- 미안하다고, 기억하자고 말하는 광주 영화 -

 

 

1980년 5월 전라남도 광주는 군부의 계엄령 확대에 항의하는 시위로 술렁였다. 공수부대의 잔혹함은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고 시위대 주력은 5월20일을 기점으로 학생에서 시민으로 옮겨갔다. 5월21일 오후 발포 명령을 기해 비무장 시민 학살에 대응하여 시민군이 결성됐고 광주의 싸움은 민중 항쟁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항전한 이들은 5월27일 새벽 도청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긴 모욕과 고통을 겪었다.

  

영화가 역사를 재현하는 길은 여러 갈래다. 기록필름을 재구성할 수 있고 생존자의 증언을 경청할 수도 있으며, 허구를 빌려 과거를 극적으로 재연하는 법도 있다. 세 번째에 해당되는 <화려한 휴가>는, 평범한 서민을 거리로 나서게 한 힘이 무엇이며 그들은 어떻게 스러져갔는지 상상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연두색 포니 택시가 그림 같은 가로수 길을 달린다. 운전석의 강민우(김상경)는 행복한 얼굴로 초여름 미풍을 음미한다. 청년 가장인 그는 공부 잘하는 동생 진우(이준기)를 애지중지하고,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박신애(이요원)를 사모한다. 동생의 서울대 법대 진학에 큰 희망을 거는 형의 모습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보았던 것이다. 신애의 아버지 박흥수(안성기)는 정치 군인들과 뜻을 달리해 퇴역한 대령으로 민우네 운수회사 사장이다. 구변 좋은 동료 인봉(박철민)은 민우의 연애 카운슬러다. 영화 중반에 닥쳐올 지옥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일까. <화려한 휴가>의 도입부는 항쟁 전 시민들의 일상을 오붓한 낙원처럼 묘사한다. 배우들은 과장된 매너로 선량함을 표현한다. 민우의 연애 고민을 상담하던 인봉은 TV뉴스를 아예 꺼버린다. 1980년 5월이라는 시점을 고려하면 어색할 정도로 극중 시민들은 정치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며칠 뒤 이들은, 혈육의 죽음에 가슴이 찢기고 반인륜적 참극에 넋을 잃은 채 총을 움켜쥔다. 애국가를 ‘반주’ 삼아 저질러진 5월21일 오후 금남로 학살을 재연한 시퀀스는 우리를 얼어붙게 한다. 조금 전까지 대치한 군인들에게 농담을 던지던 시민들이 쏟아낸 피는 삽시간에 대로 위에 시내를 이룬다. 광주를 풍문으로라도 접한 관객이라면, 이 장면은 단지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니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는 학살의 경악에 자연히 뒤따르는 “누가? 왜?”라는 질문은 멀리까지 좇지 않는다. 강경 진압을 종용하는 전두환 일파 장성(극중 최훈기 준장)의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비극의 전체적 윤곽을 더듬는 유일한 대사는 “가만히 있는 개를 걷어차서 짖으면 매질해서 쓰러뜨리고, 시끄러운 걸 막아줬으니 나머지 모두 말 잘 들으라는 격이지”라는 김 신부(송재호)의 비유 정도다. 대신 <화려한 휴가>는 권력욕이 낳은 야만이 수많은 삶을 어떻게 일거에 부숴버리는지 보여준다. 잘못된 역사는 포악을 부려 간호사가 살인하게 만들고 신부에게 무기를 쥐어준다. 파릇한 소년, 방금 사랑을 시작한 젊은이, 젖먹이를 둔 아버지는 반문할 틈도 없이 사지에 뛰어든다.

  

<화려한 휴가>는 함께 통곡하기를 권하는 데에 머문다. 웃음과 로맨스, 가족애를 안전하게 배합한 연출은, 5·18의 역사적 특수성과 이 사건이 드러낸 인간성의 양극단을 담기에 너무 작은 그릇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인물과 일화, 긴장이 떨어지는 전개는, 아직 차갑게 식지 않은 역사를 소재로 취한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 처음 광주 항쟁의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화려한 휴가>는 소재의 파괴력을 이용하는 데에 소극적이다. <화려한 휴가>는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는 외침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이 당연한 외침은 영화에서 더이상 구체화되지 않음으로써 은연중에 5·18의 정치적 성격을 지워버리는 효과를 낸다. 무장 항쟁은 정당방위였다. 또한 “계엄 철폐”와 “전두환 퇴진”을 애초부터 요구한 광주 시민들은 분명 정치적이었다. 광주 시민의 명예는 그 정치성을 포함한다. “가족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영화”로 요약되는 <화려한 휴가>의 마케팅 슬로건은, 정치를 금기시하고, 연루되어선 안 될 음습한 것으로 간주하는 한국 대중영화의 두려움을 내비친다. 과연 광주는 가족을 잃은 자에게 가장 깊은 상흔을 남겼으나 동시에 5·18은 시민들이 자기 가족만 생각했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역사를 그린 영화는 싫건 좋건 집단적 기억의 밑그림이 된다. <화려한 휴가>는 이미지의 몸을 입지 못한 채 구천에 떠돌던 역사를 스크린에 불러낸 것만으로도 값진 위로가 될 것이다.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라는 신애의 절규는 바로 관객에게 날아드는 간청이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는 그들을 기억하되 어떻게 기억할지, 역사의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질을 주지 않는다. 역사의 영화적 재현은, 어느 편에 서느냐를 선택하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까다로운 사실을 <화려한 휴가>는 일깨운다.

 

(글) 김혜리 vermeer@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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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루하고 단선적인 영화는 또 처음인 듯. 가족 멜로의 클리셰들로 넘쳐난다. 그것이 오히려 생경할 지경이다. 만들면서 고민도 많았겠구나 짐작하지만, 한국 사람들 수준이 그토록 낮아 친히 맞춰주는 전략을 쓴 건가...싶기까지 했다. 영화 보느라 쓴 시간과 돈이 아깝다가도, 머리가 아프고 불쾌하다가도, 그래도 의미가 전혀 없진 않을 거라고... 그러나, 이 안이한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라고, 영화보다 영화를 둘러싼 현실이 더욱 영화적이라고 내 힘으로 상기하며 보충 감상하기엔 영화에 투입된 자본과 인력이 너무 아쉽다. 어떻게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가둘 수 있는 걸까. (그 모든 걸 차치하고라도, 주인공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느낌만 꾸준히 가질 수 있었더라도 좋았을 것을. 그 사람들 분노와 눈물과 사랑과 정의가 가슴에 잘 밀착되지 않았다. 과도하게 정치성을 제거한 데에서 온 부작용 같은데. 더군다나 내 고향은 광주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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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돌 사진을 찍고 보관해둔, 인형 상자 속에 담긴, 한살인 채로 늙어버린... 죽거나 썩기 직전의 거무스름한 나를 엄마가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남편이 그걸, 상자에서 꺼내 키우자고... 팔다리가 종이기둥에 와이어선으로 묶여있는 것을 그냥 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런 남편이 너무 이상했지만, 그러자... 설득 당했다. 우리는 아이를 꺼내 이불 위에 뉘였다. 멍이 든 것처럼 검푸른 빛이 돌던 아이는 조금씩 하얗게 생기를 되찾아갔다. 그 다음은 선명한 기억이 없다. 나는 이래서는 안 된다, 아이를 다시 넣자고 했던 것 같다. 남편이 반대를 했던가. 나는 아이를 들고 욕실로 가서 샤워기를 들었다. 수채구멍에 재 같은 것들이 투두둑 떨어졌다.

 

열흘간 명치께가 답답했고, 나의 명치가 다시 아플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다시 살아야 한다. 아니 처음부터 다시 살고 싶다. 이제 나는 속이 후련할 것 같다. 우리가 다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휴무 둘째 날이다. 많은 잠을 잤다. 오늘 고등학교 수학 문제집을 한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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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회사의 나도, 나야. 

 

가만 보면 목소리 작고 힘 없는 것들에만 정이 간다.

서로 잘 놀지도 못하면서 놀아보려고... 자꾸 말 걸어본다.

싱겁게,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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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5

 

 

 

에이조 '막날'이다. 엿새 내내 출퇴근이 힘들었다. 아침을 먹는 시간마다 나는 거르고 혼자 쉰다.  숲은 미친듯이 담배를 피우고 나는 습관적으로 맥주를 마셨다. 어제는 집중호우였다. 물이 틈새로 빠져나가기 전 비는 거푸 내려 불어났다. 나는 비에 갇힌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장마 치고 너무 말랐었다. 갑자기 거짓말처럼 물이 사라졌다. 온몸은 축축해져 근질거렸다. 모기들이 달라붙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버티다 잤다. 뜨거운 죽이 먹고싶다. 감자나 옥수수거나 ...숲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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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7

 

 

 

 

 

일터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나...

 

취향이나 이견을 드러내는 일 없이, 말 없이, 없는 존재처럼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최소한의 돈 생각만 허용하면서

 

내앞에 떨어진 일을 한다. 내게 도움은 어렵게 바라야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조금 조금씩 오그라든다. 발랄함은 내 몫이 아니다. 이곳이 막막한 내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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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음악의 원초적인 힘을 생각하면 좀 질리는 기분이 되기도 하고, 배경음을 귀에 꽂고 드라마처럼 살자 덤벼들기엔 배알이 약하다.

무엇에건 애정보단 흑심이 많아, 욕심부려 취하다보면 골이 아파 못 버틴다.

 

음악을 듣거나 사진 찍는 기계에 관심을 가져본 적 있지만 곧 이건 내게 안 맞다, 버리다시피 했고

그러다 다시 갖게 된 게 연초에 동료 언니가 하나 남는다며 건네준 엠피쓰리 플레이어다.

가끔, 받은 물건에 잘 밀착한다. 지금껏 그 기계가 괴로운 출근길의 위로, 몽롱한 퇴근길의 치하 정도 되어주고 있다.

 

클래식은 나이 들어서도 못 들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취향은 대부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데, 클래식은 그 만드는 과정이 가장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장 만만한 게 elliott smith와 portished, blonde redhead...등인데 숲 표현대로 칙칙한 노래들만 나는 들어줄 수 있고, 듣던 걸 다시 듣기 때문에 얼마 필요하지 않다.

 

문학을 향한 얼마간의 열정을 제하면, 싱겁게 산다. 열일곱에 학교 관두고 한두해를 책보다 영화와 음악에 더 신경 쏟았는데, 영화에도 워낙 이상한 집중을 해서 하루에 한편을 넘어가면 두통이 생기고 속이 메슥거린다. 그러고도 많이 흘리며 보고, 그마저 마구 보고 싶지 않다. 누구누구의 신작이 나오면 한번, 혹하는 영화가 걸리면 다시 한번. 잘 해야 그쯤일 거다. 그리곤 어릴 때 봤던 걸 다시 들추겠지.

 

어쩌다 카메라 하나 주워올 일 있다면, 소박하고 무의미한 사진을 몇장 찍어보고 싶기는 하다. 충동적으로 드로잉 입문서를 사뒀지만 미술도 사실 데면데면...내 기계적인 도식을 내가 못 깨 그런다. 조금만 무리해도 신물이 넘어온다.

(다행히 숲이 사진을 잘 찍는다. 사진 찍히는 걸 나는 도저히 좋아하지 못하지만 숲이 찍은 내 사진만은 그게 가능하다.)

 

내가 탐미를 불편해한다면, 그건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일까? 예술이란 단어가 고깝지만, 그쪽에서 그나마 덜 노골적으로 탐미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생각에 가장 해볼만하다 여긴걸까? 내가 아름다운 몸이었다면 글 같은 것 쓰지 않고, 어릴 적 티브이로부터 조금씩 배당받았던 배우 기질이나 발휘하며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단순하고 찜찜한 마무린데, 내가 지금의 나인 걸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면 일단 가망 있으려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포즈에 대해 나는 그리 너그럽지 않다, 다시 말해 깐깐하다. 그걸 하나쯤 제대로 취해서 이 미끈덩거리는 부식의 직전을 벗어나는 것이, 내 당장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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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5

 

 

 

 

 

부팅 여부를 확인 않고 갔다고, 더러는 전원도 꺼져있다고, 장비 신고를 생략한다고, 생산reject자재를 먼저 해결하지 않았다고

 

나도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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