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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 이야기

어린 시절

경상북도의 점촌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영화를 처음 보았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삼일극장에서..

 

삼일극장은  "하춘화쇼" 같은 대형 버라이어티쇼(?)를 볼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한데

미성년자라 관람석에서 쇼를 즐길 수 없었던 나는

아버지의 든든한 빽으로 무대 위 커튼 뒤에 따로 마련된 의자에 앉아 

진행자와 가수, 무용수들이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분주하게 무대에 오르고 난 후에 

태연하게 노래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음 보았던 영화가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문화교실로 눈물 꽤나 쥐어짜는 영화를 본 것 같은데

다른 친구들이 손수건을 적셔가며 울며불며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왜 그 영화를 보며 친구들이 우는 지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삼일극장에서 본 영화만 해도 수십 편은 족히 될 듯하다.

그 시절 성룡이 출연한 영화는 빼놓지 않고 보았고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 트로이카라 불리던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도 대부분 다 보았다.

공포물도 꽤나 열심히 보러 다녔는데 '월녀의 한'이라는 영화는

두 번 연거푸 보았더니 아직까지 제목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부터 버릇이 된 것 같다.

영화를 두 번 이상 보지 않으면 제목도 기억하지 못하는..

 

칼라TV를 일찍 들여놓으셨던 아버지 덕분에

78년엔가 한국에서 최초로 판매되었던 칼라TV를 볼 수 있었는데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 심지어는 외화시리즈까지 놓치지 않고 보았다.

 

고등학교부터는 대구에서 다녔으므로

그다지 많은 영화를 보지 못한 것 같다.

더구나 한참 연극에 재미를 붙여 동아쇼핑문화센터 관극회원으로 등록하고

거의 매달 연극을 보러 다녔으니

영화 볼 비용이 충분하지도 못했을 테다.

 

그래도 남들만큼은 극장을 들락거렸는데

한일극장, 아카데미극장, 만경관에서 주로 영화를 보았다.

어느날엔가는 문화교실을 땡땡이치고

플래쉬댄스를 보러 갔는데

지금도 what a feeling하는 음절이 흥얼거려지는 걸 보면

영화음악에 꽤나 심취했었나 보다.

그 시절 기억에 남는 영화는 플래쉬댄스 외엔 E.T. 정도

 

대학시절엔 정신없이 지내느라 영화를 본다는 건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함 포템킨이나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파업전야 같은 영화들을 볼 기회는 있었던 것 같다.

파업전야는 어떤 학교 대강당 쯤에서 본 것으로 기억되는데

영화 상영 자체가 문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영화보는 취향에 변화가 생긴 건 

블루벨벳을 보고 난 후였던 것 같다.

언제였던가.. 어느 영화관에서였던가..

누구와 함께 봤던가.. 어떤 내용이었던가..

이런 것들은 기억나지 않는데 출렁이는 푸른빛이 강렬하게 남았다.

후에도 그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래도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왕가위감독의 첫 영화, 열혈남아는 아마도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본 것 같다.

입덧과 함께 찾아온 영화에 대한 갈증으로

매일 영화 두 세 편을 보고 잠이 들었는데

어느 날엔가 비디오가게에 들렀더니

안 본 영화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 때만 해도 왕가위 감독에게 그다지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중경삼림으로 왕가위 감독이 유명해지고 난 후에도

내겐 그저 독특한 느낌이 있는 감독 정도로 다가왔다.

그런데 해피투게더를 보고 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소재가 "사랑" 이야기에 머물러 있고

시대적 배경처럼 이미지 배경이 암울하지만

그의 사랑 이야기와 암울한 이미지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아픔이 있는 사랑.

그는 영화를 통해 사랑을 부정하면서 아픔을 들추어낸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라 아니라 아픔을 통해 변화한다고 강변하려는 것 같다.

 

화양연화에서 어둠 속을 타고 오르는 담배연기는

마치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의 다양한 이미지적 시도는

기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물의 정신적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서만 사용된다.

그래서 난 그가 좋다.

 

최근에 난 다시 많은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려고 애쓰고 있다.

영화에 담긴 감성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감성까지..

 

그 영화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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