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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정치는 진보적인가(2)

 

⑵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정치활동은 진보적인가?


당 지도부의 정치활동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당직/공직 겸임금지제도에 대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산불이 나면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불을 꺼야죠? 얼마 전 양양에서 난 큰 불은 초대형 헬기로 물을 쏟아 부어야 불길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동이로 물을 퍼다 나르다가 지친 사람들이 “산을 깎아버리자.”고 주장한다면 옳습니까?

당 간부들의 지도력 문제를 당직/공직 겸임 금지제도에 손을 대 해결하려고 하는 시도는 마치 불길을 잡으려고 산을 깎아버리려는 것과 같습니다. 


당직/공직 겸임금지제도는 전적으로 올바릅니다. (후에 ‘민주노동당의 조직은 진보적인가?’ 라는 주제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산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민주노동당의 조직운영에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공직자가 어떻게 당직을 수행합니까? 작은 지역도 아닌, 전국적인 정치조직을 대표하고 정치행동을 조직해야 하는 당직을 공직자들에게 맡긴다면 그야말로 “명함용” 감투를 씌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좋은 제도를 실행하는데도 왜 당 간부들의 지도력이 형성되지 않느냐” 또는 “공직자들의 정치활동에 어떻게 당의 생명력을 불어넣느냐”(이 문제는 당원들의 정치활동 부분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하는 것입니다.



[지도력 부재의 원인]


그런데 왜 엉뚱하게도 당직/공직 겸임금지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직자들의 지도력을 당 간부들이 따라잡을 수 없었던 이유가 가장 클 것입니다.

대표, 부대표2인, 사무총장, 대중조직의 지도자들이 공직으로 진출한 상황에서 몇 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치신인으로 채워져 있는 최고위원회가 어떻게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민주노동당의 비극은 당직자들이 공직후보로 대거 진출한 그 때 이미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총선 이후 더 커졌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하더니, 정치신인들이 줄줄이 알사탕처럼 엮여 최고위원의 자리에 오르더군요.  그 대단한 자신감이란!


일반적으로도 공직자들은 당직자들이나 당원들보다 빠른 속도로 정치적으로 성장(반대급부로 제도정치권에 포섭될 가능성도 높습니다)하게 됩니다. 관청이나 의회가 다양하고도 항상적인 정치적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직자들이 공직자들에게 지도력을 행사하려면 최소한 2배 이상의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지도부는 어떠했습니까?  각종 행사, 투쟁에 얼굴도장 찍으러 다니는 일 말고 노력하고 실천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최고위원 중 누군가는 평가에서 당을 “통합”하느라 일을 추진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통합이라.. 독식에 대한 양심적 반대급부인가요? 그렇다면 그 양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도부가 당을 통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불거지는 문제를 무마시키는 일 외에는 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통합이란 “논쟁을 통한 설득”이 가능한 조건에서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에서 건강한 논쟁이 이루어졌습니까? 상대에 대한 흠집 내기, 눈치 보기, 다수결로 밀어붙이기가 가능할 뿐 논쟁과 설득은 시도조차 힘든 일 아닙니까? 민주노동당은 마치 단일 정치조직이 아니라 정치조직들의 한시적 연대모임 같습니다. (이 문제 역시 조직운영에 대한 글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최고위원님, 불가능한 일에 매달려 당력을 소모하셨군요.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정치활동은 진보적인가?]


민주노동당은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정치조직입니다. 따라서 당 지도부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목은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킬” 의지와 능력입니다. 자본주의적 잣대(자본주의적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규범)로 강요하는 도덕성 따위가 아니라..


지도부에게 부여되는 가장 기본적인 임무가 정치방침을 마련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선장이 뱃머리를 좌현으로 돌려야 할지 우현으로 돌려야 할지 모른다면 어떻게 배가 제 갈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 캄캄한 밤에...


중앙당직자들의 사업수행을 점검하고 지원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상적 활동에 대한 평가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주변의 정치부 기자들에게서 당이 하는 일이 없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반박할 말이 없을 정도로 사업이 미진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그간 몇 차례에 걸쳐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했던 사건들에 대하여 지도부가 취한 태도는 심히 우려할 만 합니다.


먼저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지도부의 태도를 봅시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는 너무 일찍 튀어나왔습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운영하는 국가에서조차도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동운동이 자본에 포섭되는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사회를 개량하는 것만으로는 자본에 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본의 아가리에 노동운동을 던져 넣은 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와의 논쟁은 뒤로 미루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요.)


개인적 의견은 물론 반대이지만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노동운동이 일정한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겨우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정당의 기반이 되는 대중조직이 사회적 합의라는 함정 속으로 빠져드는데 민주노동당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아니면 가담하고 계신가요?) 1/30의 의회권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지, 정권을 잡은 열린우리당을 우호세력이라고 생각했는지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의원대회 결의도 거치지 않고 무리해서 진행하는데도 말입니다.

자본주의“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건 민주노총의 양보입니다. 다른 사안도 아니라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달린 비정규직 노동법개악에 대한 양보 말입니다.

 

기아자동차 노조간부의 뇌물수수 행위에 대한 당의 태도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자본가권력의 하수인인 검찰에게 수사권을 내맡기고,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언론이 “도덕성” 운운하면서 노동운동을 대중으로부터 유리시키는 동안 민주노동당은 그저 손놓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당사자가 당원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한편, 민주노총 등에 진상조사단을 제안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노조간부(혹은 당원)가 자본에 포섭된 사실이 확인되면 징계절차를 진행함과 동시에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했던 것 아닙니까?

노동조합의 경영․인사권에 대한 참여가 현장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는 목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도록 노동조합 간부들의 정치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계획을 제출하는 등의 정치적 행동은 왜 생략된 것입니까?

노동위원회나 노동부문 최고위원(넓게는 당 지도부 전체)이 민주노총의 한 모서리를 채워주는 장식품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왜 민주노총(농민회와의 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에 대한 지도․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중국고전에 ‘마음이 없으면 보고도 안보이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답니다. 지도부에게 진보적 정치의식(혹은 마음)이 없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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