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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7/13

서평]미국 예외주의: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

Lipset이라... 학부 시절 전공 공부하면서 본 것 같다.

아래 8가지 이유가 있는데 1번 및 4번은 내가 지적한 것과 같다. 그외 이하 글에서 본좌는 매카시즘의 영향을 든 바 있다.

http://blog.jinbo.net/sickduck/?pid=1068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왜 실패했나
[서평]미국 예외주의: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

미국 정치, 미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꼭 참조해야 할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S. M. 립셋이 쓴 <미국 예외주의: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 (문지영외 옮김, 후마니타스, 2006)가 그것이다.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했거나 아니면 정치학 개론이라도 수강했던 사람에게 립셋은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20대에 <농업사회주의>와 <유니언사회주의>라는 책으로 주목받은 그는 30대에 쓴 <정치적 인간>이란 책을 통해 세계 정치학계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고 정치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론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1960년대 말 슈타인 로칸과 함께 쓴 논문은 정당과 사회갈등 분야의 한 패러다임을 개척한 것이기도 했다.

민주주의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뤘던 2004년의 책 <민주주의의 세기>의 완성을 못보고 쓰러질 때까지(이 책은 그의 마지막 제자 래킨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가 쓰거나 편집한 100권 가까운 책 대부분은 학자로서의 그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미국의 정치학회와 사회학회 회장을 모두 역임한 유일한 사람일 정도로 그는 미국 사회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꼽힐 수 있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학자로서의 그의 업적 때문이었다.

   
 
립셋의 평생 연구는 크게 두 주제 분야를 갖는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탐색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마르크스의 논거를 적절히 활용한 1959년의 논문(“민주주의를 위한 몇 가지 사회적 조건”)이 대표적으로, 이 논문을 통해 그는 이른바 ‘근대화론’을 대표하는 정치학자가 되었다. 이 분야의 연구는 주로 제3세계 후발국가들을 대상으로 했다.

또 다른 연구 분야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 핵심은 민주주의가 왜 여러 다른 유형과 경로로 발전하게 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왜 다르고 유럽의 민주주의는 또 왜 다르며 일본과 캐나다의 민주주의는 왜 다른가를 묻는 것이다. 이 주제를 집약하는 주제가 바로 ‘미국 예외주의’이다.

사회주의 없는 민주주의의 모델, 미국

미국 민주주의의 예외성은 여러 내용을 갖지만, 그 중에서도 핵심은 왜 미국만이 사회주의 없는 모델을 갖게 되었나 하는 데 있다. 따라서 미국 예외주의라고 하면 대체로 사회주의 없는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로 이해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립셋은 미국 예외주의를 훨씬 넓게 다루고 있다.

사회당, 노동당, 사회민주당, 공산당 등 명칭은 다르더라도 진보적 이념이나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정당이 해당 국가들의 정치, 경제, 사회체제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유독 미국만이 매우 다른 정치체제를 발전시켜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선진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시장의 절대적 역할을 숭배하고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 부정적이며 개인의 거의 무제한적 권리에 기반을 둔 물신화된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정도에 있어서도 미국은 독보적인 나라이다.

저자인 립셋도 예를 들고 있듯이, 유럽의 기준에서 보면 지극히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한 클린턴의 복지정책조차 결국 좌절될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대체 왜 미국은 다른 것인가? 어떻게 이런 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었고 존립할 수 있었을까?

마르크스와 엥겔스 시대부터 사회주의자들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더 강한 노동운동을 가진 미국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에서 맨 선두에 설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메이데이’가 1886년 5월 1일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비롯되었듯이 19세기 후반까지 미국의 노동운동은 매우 강력했다. 당시 내로라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서 미국의 사회주의로의 발전 경로에 대한 확신에 찬 언급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메이데이의 기원이 된 헤이마켓 시위를 묘사한 당시 그림
 
마르크스는 미국에서 계급의식의 징후들을 지속적으로 탐색하였으며, 엥겔스는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이 문제에 답하고자 했다. 베른슈타인은 “우리는 곧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시작되어 뿌리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했고, 카우츠키 역시 “미국은 우리의 미래”라고 말했으며,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힌드만은 “미국은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독일 사회민주주의 지도자 베벨 역시 “미국은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도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고, 마르크스의 사위이자 프랑스 대표적 사회주의자였던 라파르그 역시 “가장 선진적 산업발전 수준을 가진 미국이 역사발전의 사다리를 맨 먼저 오를 것”이라 말했다. 레닌과 트로츠키 역시 미국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적어도 미국에서 사회주의의 실패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게 된 20세기 초까지 그랬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이 빗나가면서,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깊은 회의가 뒤따르게 되었으며,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도전적인 문제로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왜 사회주의가 실패했는가? 미국은 왜 예외적 경로를 발전시키게 되었나?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에 대해 알고 싶거나, 그 역사적 경험을 반추하면서 21세기 오늘 척박한 역사적·지적 풍토를 지닌 이 땅에서 새로운 진보정치와 진보정당 실현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깊고 넓은 사색을 위한 좋은 소재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는 왜 실패했나, 립셋의 설명

사회주의 없는 미국의 발전경로에는 과연 어떤 힘들이 작동하고 있었을까? 1851년 엥겔스가 강조하고 그 이후 40년간 반복적으로 지적된 조건, 즉 노동운동의 등장을 방해하는 미국의 특수한 조건은, “부르주아적 조건을 마치 자신의 멋진 이상인 양 생각하게 만드는, 이 나라의 필연적으로 급속한 그리고 빠르게 증가하게 있는 번영”(106쪽)이며, “미국적 신조로서의 (개인적) 성취와 기회 균등 및 능력주의에 대한 강조”(109-110쪽) 등이 그 배경에 작동해 왔다는 것이다. 즉 상대적 풍요로움의 효과가 부르주아 계급의 자산 증대를 넘어 노동자들에게까지 미쳤다는 것이다.

립셋은 미국에서 사회주의 정당의 실패에 대한 기존 설명들을 차례로 검토하면서, 이를 상호배제적이지 않은 두 범주, 즉 사회적인 변수와 관련된 것과 정치체계의 내재적인 변수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가 지적하는 사회적 요인은 다음 여덟 가지이다:

① 새로운 사회로서의 미국, 즉 계급 구분에 따라 정치를 구조화하는 봉건적 전통의 계급 관계 부재(‘봉건주의 없이는 사회주의도 없다’ /No feudalism, no socialism ), ② 사회주의의 대용물로서 미국주의 그리고/또는 지배적인 공공철학으로서의 자유주의 전통, ③ 미국 프로테스탄트의 종파주의적 과거와 혁명적 가치로부터 파생된 개인주의와 반국가주의 가치에 대한 강조 ④ 생활수준, 특히 노동자 계층이 영위하는 생활수준의 꾸준한 향상이 미친 영향―좀바르트의 표현에 따르면 “모든 사회주의적인 유토피아는 구운 쇠고기와 애플파이 앞에서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 ⑤ 주변화된 집단의 정치적 고립화와 낮은 투표율, ⑥ 생산성이 증가하고 교육기회가 확대됨에 따라 계층 상승의 기회가 증대, ⑦ 계급의식 형성의 방해 요인으로서 지리적 이동 성향과 안정된 공동체적 기반의 결여, ⑧ 다민족·다인종·다문화적 이주민 사회 형성에 따른 결과 등이다.

이에 덧붙여 정치적 요인으로 다음 네 가지를 지적한다: ① 거저 얻은 선물로서의 투표권―이와 관련해 레닌은 “사회주의는 선거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을 통해 성장한다”고 언급한다 ② 행정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만 부여되고 그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연합적인 양당 구도로 전개되도록 만든 헌정 및 선거체계, ③ 대체로 대중운동 그리고/또는 제3의 정당 형태로 명백하게 표출되는 만연된 불만을 흡수하거나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연합적인 야당체계의 유연성, ④ 급진적 운동에 대한 정치적 탄압 등이다.

미국 예외주의의 실체는 무엇인가

19세기 말 이래로 사회주의자들을 괴롭혔던 이 수수께끼,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회의와 곤혹스러움은 ‘미국의 특이성’과 그 차이의 속성이라는 문제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우리를 인도한다. 이 영역은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이른바 ‘예외주의 미국’의 실체와 관련된 것이다.

‘미국 예외주의’는 그동안 두 가지 코드로 읽혀왔다. 앞서 본 사회주의 운동의 부재와 관련된 것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미국이 그 독특한 기원과 국가적 신조, 역사 발전과정, 정치 및 종교 제도로 인해 다른 서구 선진국들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관념으로서의 미국 예외주의이다.

립셋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도 이 후자의 영역이며,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 운동의 부재를 설명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립셋은 미국 예외주의를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다양한 측면을 통해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거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덜 복지 지향적이고, 덜 국가주의적이며, 더 방임주의적이고, 더 권리지향적이고 더 애국적이며, 더 도덕주의적이고 종교적이라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그는 이러한 특성이 ‘미국적 신조’라고 불리는 미국인의 가치체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미국적 신조란 자유, 평등주의, 개인주의, 포퓰리즘, 자유방임주의 등 다섯 개념으로 압축되며, 이러한 미국인의 가치체계는 미국의 독특한 기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즉 미국은 무엇보다 “혁명적 사건으로 출발한, 그리하여 독립에 성공한 최초의 식민지, 최초의 신생국가”라는 점에서 ‘예외적’인 나라이며, 결국 미국 예외주의는 새로운 사회로서 미국이 봉건적 구조, 군주제 및 귀족주의 문화, 사회적 위계를 유산으로 물려받지 않았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 예외주의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미국적 가치는 매우 복합적이라는 진단과 함께 립셋이 그것을 ‘양날의 칼’과 같다고 거듭 강조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예외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낫다거나 우월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단지 다른 나라들과 질적으로 ‘다르게’ 발전해왔음을 의미할 뿐이라는 것이다(4부 8장 결론).

그에 따르면 미국 예외주의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전의 양면처럼 모두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특성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미국은 최선이 되기도 하고 최악이 되기도 한다.

미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바로 이 다양한 가치관들, 최선과 최악의 공존과 갈등을 통해 오늘의 미국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립셋은 미국적 가치의 다양하고 이중적인 측면을 부정하고 오히려 국민적 ․ 국가적 합의를 강조하는 것은 갈등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가령 소득불평등, 높은 범죄율, 낮은 수준의 선거참여, 모든 것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려는 강력한 경향들, 그리하여 때로 정치적 · 윤리적 소수자들에게 거의 관용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경향과 같이 오늘날 미국사회를 특징짓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개방적인 민주사회의 규범 및 행태와 내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7쪽)이며,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정치적 분위기와 자유로운 시장질서에 기반한 경제적 풍요는 미국적 신조를 기반으로 성취된 미국적 예외주의의 가장 밝은 면모라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 예외주의는 높은 수준의 개인적 책임감, 독립적인 진취성, 자원봉사 문화를 함양하는 반면에, 이기적인 행동과 원자론적 분열, 공동선에 대한 경시와 전통적인 형식의 공동체적 도덕에 대한 위협 역시 조장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립셋의 신보수주의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그의 이러한 이중적 접근은 그것이, “미국인의 강한 자민족 중심주의의 표현이자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도 우월하다는 노골적인 정치선전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을 다분히 의식한 결과이다.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강조가 미국 엘리트들뿐만 아니라 보통의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미국 우월주의로 나타나 미국 패권주의와 긴밀히 연결되곤 했기 때문이다. 즉 세계 최초의 순수한 민주주의 혁명을 거쳐 탄생한 국가이자 자유세계의 수호자로서 미국은 ‘민주주의의 전파’라는 세계적 사명을 갖고 있다는 우월적 의식 등을 가진 존재로 나타났던 것이다.

   
 ▲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이와 관련해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 이래 미국 공화당의 대내외 정책 기조로 알려진 신보수주의에 대한 그의 진단이다. 저자는 신보수주의가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실체라는 것을 특히 강조한다.

립셋은 이른바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제1세대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신보수주의 지식인으로서 립셋은 급진적인 트로츠키주의자에서 반공적 자유주의자로 전향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책에는 이러한 그의 지적 편력이 잘 반영되어 있다. (네오콘의 사상적 대부라고 불리는 어빙 크리스톨도 한때는 극좌파 지식인이었다가 1960년대 베트남전 반대운동의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전향한다. 네오콘의 1세대라고할 수 있는 네이던 글래이저, 다니엘 벨 등도 모두 트로츠키주의에서 우파로 전향한 인물들이다.)

“야만인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자연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주장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스트라우스를 사상의 기원으로 삼는 신보수주의라는 용어는, 흔히 “국내 쟁점에서는 고전 자유주의적 반국가주의를, 외교정책에서는 강경노선을 견지하는 미국 내외의 광범위한 범위의 전통적 보수주의”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립셋은 이러한 용어 사용이 오류라고 말한다. 즉 “하이에크, 프리드만, 레이건, 대처는 고전적 자유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들이지 신보수주의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프로테스탄트 종파주의에 기반을 둔 신보수주의의 기본 입장은, 정치적인 쟁점에서 개인주의와 능력주의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경제적으로는 사회보장 및 복지정책의 확대를 지지하며, 사회․문화 분야에서 전통과 권위를 존중하고, 미국식 민주주의의 보존과 전파를 위해 외교·군사적으로는 개입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프리드만적인 자유시장경제를 계속 거부하는 것이며(297쪽), 공화당 내 전통적 보수주의자들과 구별된다는 것이 립셋의 설명이다.

신보수주의에 대한 립셋의 이러한 설명은 그 타당성 여부에 대해 따지는 것을 잠시 멈춘다면, 광적인 냉전반공주의와 개발독재의 향수에 깊게 물든 사이비 보수만 판을 칠 뿐 진정한 보수주의가 실종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추진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인 상황에서, 보수의 실체가 여전히 모호한 것이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뉴라이트 역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신보수주의의 출현 배경과 의미, 그 갈등과 타협의 궤적을 미국의 역사적 맥락에서 추적하는 립셋의 시도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의 제자리 찾기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할 것이다.

미국 중심적 사고의 문제

한편 립셋의 글 내용 가운데는 헌팅턴과 같이 노골적으로 미국을 편드는 식의 오만함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헌팅턴에 따르면 1970년대와 80년대 미국은 민주화의 중요한 촉진자였는데, 민주화에 대한 미국의 기여는 미국의 힘과 영향력의 의식적이고 직접적인 행사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즉 “전세계 민주주의 운동들은 미국이라는 사례에서 영감을 받았고 이를 모범으로 삼았다”는 것이며, 미국이 앞으로도 이러한 역할을 계속 수행할 지 여부는 미국의 의지와 능력,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 대한 모델로서 매력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Samuel P. Huntington의 The Third Wave: Democratization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 Norman and London: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91).

   
 ▲ <자유의 여신상> 너머로 보이는 화염에 휩싸인 세계무역센터 빌딩
 
그러나 헌팅턴의 생각과는 달리, “미국의 민주주의를 칭송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19세기 혹은 20세기 초반까지의 미국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또끄빌(Tocqueville)이 보았던 미국, ‘제국’으로 등장하기 이전의 미국이다. 그런데 오늘 미국 내의 양심세력과 유럽과 미국 외의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보는 미국은 그런 미국이 아니다”(김동춘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2004). 이런 점에서 헌팅턴이 보여주는 것은 세계적 명망성과 학자로서의 양심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지적 진지함 등에 비춰볼 때, 립셋은 헌팅턴류의 사람들과는 달라 보인다. 그럼에도 ‘미국식 도덕주의’와 ‘교리적 열정’에 근거한 미국적 신조, 이른바 “평등과 자유의 이상에 뿌리박고 있는 미국 사회의 강력한 도덕체계”를 미국 예외주의의 뿌리로 인정하며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립셋 역시도 미국적 신보수주의로 철저히 무장한 지식인의 면모를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미국식 가치와 질서를 기준으로 ‘악의 축’을 설정하고, 이라크 침공을 하느님과 악마 간의 싸움으로 평가하면서 일종의 ‘성전’으로 정당화하는 미국 행정부의 일방적 태도가 섬뜩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립셋의 결론은 많은 것들을 생각게 한다.

보편성에 대한 성찰이 없는 상태에서 여타 나라들에 미국식 도덕주의의 잣대를 강압적으로 들이밀며 미국의 ‘신성한’ 임무의 범위를 확장할 때, 미국 예외주의는 일방적인 미국 우월주의이자 제국주의적 발상으로 억압적 기능을 행사하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그의 언명에도 불구하고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경계심과 경각심을 늦출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립셋의 이 책이 비교정치학적 연구를 통해 미국 예외주의를 미국의 특성으로 분석하고 입증할 뿐, 그에 대한 진지한 반성적 성찰은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의 예외적 특성이 갖는 억압성과 배타성, 그로 인한 고통과 피해에 대한 고민이 함께 진행되었더라면 립셋의 노작은 그 의미를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이 책은 미국의 신경제가 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1990년대 중반에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미국적 모델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문제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소득양극화, 빈부격차의 확대, 사회적 이동성의 하락 등은 신경제 10년 이후 미국사회의 초라한 목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세계체제의 정점에 위치하여 ‘게임의 규칙’마저 변경할 수 있는 ‘패권’국가이자,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갖고 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배타적인 특권적 지위와 그로부터 비롯된 ‘오만과 편견’을 분석하지 않음으로써, 미국 예외주의가 작동할 수 있었던 국제정치경제적 이면의 동학을 간과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미국과 미국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자 훌륭한 참고서인 이 책의 가치와 함의를 떨어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이 책을 넘는 문제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야만의 물결이 미국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한미 FTA의 국가적 추진 등을 통해 미국 사회를 따라가기 위해 질주하는 한편에서 그것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적 군사주의가 세계를 반(反)평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미국이 여전히 한반도 위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실체라는 점에서 ‘미국 바로 보기’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과거 로마제국보다도 더 막강한 제국으로 떠오른 미국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어쩌면 미국보다 더 심한 미국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는 한국사회를 되돌아보고, 전 세계에 확산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위기와 그 대안을 함께 고민하자”는 김동춘 교수의 지적(2004)에 대해 립셋의 이 책은 일정하게 응답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전히 이 책의 독해에는 “불완전한 사회가 주도하는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민족과 인류의 미래상을 설계하고 전망하기 위해서는 자기도취된 현실주도세력의 세계인식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그것과 언제나 지적 긴장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삼성 교수의 지적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삼성, <미래의 역사에서 미국은 희망인가> 1995)

2006년 07월 13일 (목) 09:04:34 조현연 /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정치 redian@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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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폭우에 패하다, '을씨년스런' FTA 지지 집회

요런게 전형적인 명실상부한 세계 무대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후진국이다.

사진에 드러난 저 구태의연한 인적 구성을 보라

 

 

우파 폭우에 패하다, '을씨년스런' FTA 지지 집회
"김정일이 반대하기 때문에 저는 찬성합니다"…허겁지겁 30분만에 끝난 집회

돌아갈까 싶었다. “모이자! 한미 FTA 추진 지지 국민대회로!”라는 큼지막한 일간지 광고를 보고 찾아간 집회장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노인네들 뿐이었다. 비가 와서 집회가 될지 모르겠다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있자니 괜스레 심란해진다. 우익이든 좌익이든 제 목소리는 내야 하는 거 아닌가? 비 온다고 데모 안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 서경석 목사
역시 왕년의 운동권 서경석 목사의 힘찬 목소리가 좌중을 모은다. “좌파들은 10만 명이 모였답니다. 저희는 비록 1천 명 뿐이지만, 끝까지 투쟁합시다!” 운동권을 떠났으되, 운동권식 과장법은 여전하다. 종로 5가 좁은 인도에 우산 하나씩 받쳐 들고 모인 사람들을 아무리 세어 봐도 1천 명은커녕 그 절반도 안 돼 보인다.

참가자 평균 연령이 FTA 반대 집회보다 두 세 배쯤은 되겠으니, 대강 그 정도로 계산해주자. 환갑 정도는 애 취급받을 집회장 분위기를 보고 있자니, 역시 FTA보다는 노인복지 문제가 더 절박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또 다른 연사가 외친다. “김정일이 반대하기 때문에 저는 찬성합니다.” 김정일이 반대한다는 얘기도 금시초문이지만, 이거 해도 해도 너무 치졸한 거 아닌가. 어느새 우리 나라 우익이 이처럼 퇴락했던가? 박세일 교수(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이석연 변호사(전 경실련 사무총장) 등이 공동상임위원장으로 있는 ‘선진화국민회의’에서 뿌린 유인물에는 “우리의 자동차 휴대폰 반도체 선박 섬유 완구 가죽제품 등이 미국 시장에서 세금 없이 팔리게 되어 한국 제품들이 미국 시장을 석권하게 될 것”이라는 나름의 경제적 논리가 적혀 있었지만, 정작 집회장에서는 “한미 FTA는 제2의 한미동맹”, “사이비 좌파, 한미 FTA 정치적 이용 규탄한다” 같은 정치성 구호만이 난무한다.

   
 
30분 만에 허겁지겁 집회를 마치고, 미국 대표단이 묵고 있는 신라호텔을 향해 행진을 시작할 즈음 연단에 섰던 사람들 사이에 고성이 오간다. “쓸 데 없는 소리 하고 있어. 그딴 소릴 하면 어떡해!” 뭔가 안 맞는 게 있는 모양인데, ‘대한민국 국민, 서울시민’ 앞에서 안쓰럽기 그지 없다.

사무실로 돌아 오는 길, 종로 청계천 을지로 명동 서울역에는 “한미 FTA 반대. 위 집회로 인하여 교통을 통제합니다”라는 경찰 안내판이 서 있었다.

   
 

2006년 07월 12일 (수) 19: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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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 국민전선 르펜 '나치 전쟁범죄 부인' 혐의 기소

이런게 선진국이다. 단지 경제대국 뿐만이 아니라

 

 

프, 국민전선 르펜 '나치 전쟁범죄 부인' 혐의 기소
"독일 점령 특별히 비인간적이지 않았다"…한국 우익 발언과 닮은꼴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 당수가 2차대전 기간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 나치의 전쟁범죄를 부인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르펜은 지난해 한 극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55만 평방킬로미터나 되는 나라에서 어쩔 수 없었던 몇 가지 실책이 있었다하더라도 독일의 점령이 특별히 비인간적이지 않았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이따금씩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한국 우익진영과 비슷한 맥락의 발언이다.

르펜의 발언이 기사화된 이후 당국이 수사를 요청했고 2차대전 당시 추방된 유태인 자녀들도 소송을 제기했다.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던 유태인 7만6천여 명이 2차대전 동안 국외로 추방됐고, 그 중 상당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다. 전쟁 이후 2천5백명만이 프랑스로 돌아왔을 정도다.

내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르펜은 이미 인종주의, 반유태주의로 6번이나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2006년 07월 13일 (목) 1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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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운동권, 사교육 시장 '완전정복'

94년 수학능력시험으로 입시제도가 바뀌고, 논술 비중이 높아지면서부터. 운동권들은 비판의식과 종합적인 사고를 요하는 언어영역과 논술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386 운동권, 사교육 시장 '완전정복'
[실태 보고] 생계형으로 시작해 기업형까지 성장... 뜨거운 찬반 양론
텍스트만보기   박수원(pswcomm) 기자   
"386운동권이 사교육 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나 그에 대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386운동권 출신으로 사교육 시장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강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 6월 김진경 전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운동권386들이 사교육시장을 장악했다"며 "사회를 변혁시키겠다던 사람들이 이제는 학원 장사를 해서 떼돈 버는 세상이니 도대체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일부에서는 '운동권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라며 박수를 보냈고, 일부에서는 '망발'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운동권들의 사교육 시장 장악은 업계에도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얘기다. 386운동권의 사교육 시장 장악은 현재의 입시제도와 한국적 학벌주의가 만들어 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 말은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들은 왜 사교육 시장에 강자로 등장했나

▲ 서울 강남의 학원가 모습.
ⓒ 연합뉴스 한상균
386운동권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94년 수학능력시험으로 입시제도가 바뀌고, 논술 비중이 높아지면서부터. 운동권들은 비판의식과 종합적인 사고를 요하는 언어영역과 논술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입시 경향이 통합교과형으로 바뀌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2008년 입시부터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이 통합교과형 논술을 대학별 고사로 선택하면서 사교육 시장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송파구에서 논술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L씨는 386이 사교육 시장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수능의 주요 출제자들이 80년대 중후반에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교수들이다. 그들의 논문주제는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언어 시험에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나오고 민중정서를 담은 이규보나 정약용의 작품이 자주 출제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386이 겪었던 비판정신과 출제 경향이 유사하다."

사실 386운동권들의 사교육 시장 진출은 생계형에서 출발했다. 80년대말과 90년대초에 사회에 나가 마땅히 뿌리내릴 곳이 없었던 이들은 운동에 한 발을 걸치고 밥벌이를 위해 학원강사로 뛰었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돼 사교육 시장으로 진출한 이들도 적지 않다.

386운동권들이 사교육 시장에서 입지를 넓힌 결정적 계기는 90년대 후반 강남 대치동 학원가가 커지면서부터다. 여기에 2000년 대학 수시 시장확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386운동권 출신들이 주도하고 있는 학원은 조동기논술학원, 유레카논술아카데미, 초암논술아카데미, 플라톤청솔학원, 학림학원, 청산학원 등이다. 이들은 소규모 학원에서 출발해 영역을 전문화하면서 규모를 확장시켰다.

이들 학원 대부분은 현재는 100명이 넘는 강사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출판부·논술연구소·어학원을 부설로 두고 기업형으로 움직인다. 인터넷 강의가 일반화된 지 오래다. 이들 사교육 시장의 정점에는 코스닥 상장기업 메가스터디가 있다. 이들 학원들은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 그물처럼 연결돼 있다.

사교육시장에서 돈 벌어 비정규직운동... 정치권 진출도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을 역임한 황광우(서울대 77학번)씨는 플라톤청솔학원에서 논술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황씨가 지은 <진리는 나의 빛> <황씨 아저씨네 논술 서리>는 논술교재로 유명한 책이다. 도시형 대안학교 '이우'의 교장인 정광필(서울대 78학번)씨도 플라톤청솔학원에서 논술 강의를 했다.

<르몽드 코리아>의 대표이사인 박승흡(서울대 80학번)씨는 국어교사 출신으로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가 논술강사를 시작했다. 그는 학원강사로 뛰면서 번 돈으로 비정규직센터를 만들었고, 노동전문지인 <매일노동뉴스> 발행인을 맡기도 했다.

전대협 2기 출신인 조동기(고려대 85학번)씨는 강남 대일학원에서 국어과목으로 스타강사 대열에 들어선 이후 97년말 대치역에 '조동기국어논술학원'을 열어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핵심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현재는 전국에 19개 분원을 마련하고 올해 매출목표를 400억원으로 잡고 있다.

강동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청산학원을 이끄는 쌍두마차인 최원극(외국어대 84학번)씨와 박영재(서울대 84학번)씨는 주체사상쪽 조직이던 자주민주통일(자민통) 소속으로 골수 운동권이었다. 91년 속셈학원 수준으로 출발한 청산학원은 과학고, 민족사관고, 외국어고 전문학원으로 성장해 매출 100억원대의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논술과 구술 면접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고 22개 분원을 두고 있는 유레카논술아카데미의 대표강사 장민성(서울대 81학번), 박홍순(성균관대 82학번)씨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계로 분류된다. 박홍순씨는 민주노동당 중앙당 기획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에는 구로갑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노원구에 있는 학림학원의 채광석(성균관대 87학번)씨는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으로 운동권의 유명한 시인이었다. 학림학원에는 성대 운동권 출신들이 강사로 다수 포진하고 있다. 초암논술아카데미 대표강사인 이윤호, 송재인씨도 80년대 초반 학번으로 운동권 출신들이다.

과학탐구 영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연봉18억원을 기록한 이범(서울대 88학번)씨도 좌파 운동권의 이론을 제공했던 <학회평론>의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학원 사업을 하다가 정치권으로 진출한 경우도 있다. 열린우리당 정청래(건국대 85학번)의원과 정봉주(외국어대 80학번)의원은 길잡이학원과 외대어학원을 운영하다가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경우다.

▲ 생계형으로 시작된 386 운동권들의 강의는 이제 전문학원을 거쳐 기업형으로까지 발전했다. 학원 홈페이지에는 명문대에 합격생을 많이 배출했다는 광고문구가 올라와있다.
ⓒ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총학 집행부 회의같은 마라톤 강사회의

운동권들의 사교육 성공비결은 끈끈한 연대감과 네트워크, 조직관리능력, 친화력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철저한 친분과 인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한 학원의 경우 강사 회의가 총학생회 집행부 회의와 비슷하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들린다.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회의도 학생운동 시절 마라톤회의를 연상케 한다.

초암논술아카데미의 경우 일요일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교사 80여 명이 각 학년별로 세미나를 진행한다. 아이들이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과연 그것이 강사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토론하고 고민한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시험에 나올 법한 문제'를 찍어낸다. 철저히 경쟁시스템이 도입된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앞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미나가 끝나면 뒤풀이가 진행된다.

이러한 386출신의 사교육 시장 활약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 사회 변혁을 외칠 때의 모습과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교육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공교육 취약성과 입시 중심 체제에 대한 진단없는 비판은 현실과 동떨어진 감상에 불과하다는 의견이다.

386출신 학원 관계자들은 인터뷰 요청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지금 구조대로 가면 공교육은 사교육 시장에 먹힐 수밖에 없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이들은 공교육의 상징이 된 전교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386출신의 한 학원장은 "전교조가 아니라 전개조(전체가 개조대상이라는 의미)"라면서 "변화하지 않고, 교원평가제에 부정적인 모습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한만중 전교조 전 정책위원장은 "사교육 업체들이 교과서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공교육을 포위할 정도로 성장한 상태에서 공교육의 취약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면서 "사교육을 이기는 공교육은 현실 조건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386은 이미 중산층, 비판은 무의미하다"

한편에서는 사교육을 통해 제도가 담아내지 못하는 새로운 내용을 담아내겠다는 목소리도 있다. 초암논술아카데미 이윤호 대표강사는 "학교교육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그 한계를 21세기 대안적 교육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초암논술아카데미는 '풀로 엮은 집' 등의 문화사업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386운동권 출신이자 대치동 전문학원1세대인 김찬휘(서울대 83학번), 한석원(서울대 83학번), 이범(서울대 88학번)은 무료인터넷 강의를 통해 교육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올해 3월 인터넷 공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죽음의 삼각형 : 누가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2008년 대입이 내신-수능-대학별 고사로 이뤄진 최악의 균형이라며 혹평했다. 이 동영상은 학교-학원-대학을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2008학년도 대입은 논술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 시장을 팽창시키고 있다. 지난 4월 <대우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사교육 시장 규모는 현재 16조8000억원에서 계속 확대될 전망"이며 "향후 5년은 고등학교 학생수가 증가하는 황금 시기"라고 규정했다. 이 때문에 언론사와 학원이 손잡고 논술강사 양성 아카데미를 개설하고 강사를 확보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결과적으로 학교-학원-대학의 균형보다는 사교육 쪽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크다. 시장질서에서 철저히 살아남아야 하는 386세대에게 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교육 약화의 책임을 돌리기는 힘들다.

논술강사를 하고 있는 J(서울대 인문대 박사과정)씨는 "이미 중산층에 편입돼 있는 386운동권들을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면서 "예산을 가지고 정책을 움직일 수 있는 국가가 국립과 사립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고, 차별화된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지역 특목고의 한 교사는 "교사 1인당 학생수를 현재 35명에서 20명으로 낮추고, 학교조직 슬림화를 통해 운영의 자율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면서 "다양한 방식의 공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실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386 강사 비판... 이유도 잘 알지만"
[인터뷰] 잘나가는 논술강사 이윤호

▲ 초암논술아카데미 이윤호 대표강사.
ⓒ 오마이뉴스 박수원
초암C&C 이윤호(44)대표는 잘 나가는 논술강사다. 81학번인 그는 대학시절을 뜨겁게 보냈다. 대학을 3군데나 옮겨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했고, 90년대에는 문화운동을 했다. 잡지 <리뷰> 만들 돈을 구하기 위해 13년 전 처음 학원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대표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일정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사교육과 공교육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분법적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다.

"현 제도 속에서는 공교육이 아무리 개혁을 외쳐봐야 틀을 깨고 나오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교육주체 만들기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이윤호 대표가 공개한 자신의 월급은 비수기인 요즘 200만원 내외. 물론 한참 잘나가는 입시 시즌에는 하루 15시간 강의를 해서 한 달에 몇 배를 번다.

사교육 시장에 진출하면서 고민이 많았지만 그는 대안적 교육을 지향하는 것으로 그 고민을 해결하고 있다. 시장적 질서와 가치적 질서의 균형을 부여하려고 애쓴다.

'풀로 엮은 집' 운영은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이곳의 다양한 강좌는 민예총 문예아카데미를 연상시킨다.

초암논술아카데미는 94년 출발해서 직영학원 5개를 포함해 서울과 경기에 8개 학원이 있다. 홈페이지에 밝힌 내용을 보면 2005년 1월까지 약 2300여 명이 수강하고 있으며 140여 명의 강사가 있다.

강의배정이나 수익배분에 있어서도 스타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는 함께 나누는 방식을 중시한다. 매주 일요일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진행하는 80여명의 학원강사 세미나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토론하는 자리다.

21세기 새로운 교육 모델 지향이 이들의 목표다. 이 대표는 386운동권의 비판과 자유로움이 조직을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도 알고 있다. 사교육 시장이 결국 양극화나 신자유주의적인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아니, 양극화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사교육이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교육 시장에 진출한 386이 비판도 많이 받고, 왜 그런지 이유도 알지만 나름대로의 건강성도 있다고 봅니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일정한 합리적 인식이 있다는 것은 교육을 합리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2006-07-10 14:03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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