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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드화가 넘쳐나야 평화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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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화가 넘쳐나야 평화로운 세상

누드화가 넘쳐나야 평화로운 세상
'김흥수화백의 열정의 세계전' 미술관 가는길에서 12월 31일까지
김형순 (seulsong)
 
 
  
김흥수화백 열정의 세계전 축하공연과 미술관가는길 입구 포스터(오른쪽). 배경그림은 '모린의 나상' 1977. 미국 대학교수시절 제자를 모델로한 작품
ⓒ 김형순
미술관가는길

 

하모니즘을 선포한 지 30주년 기념 '김흥수 화백의 열정적 세계'전이 12월 31일까지 종로구 경운동 미술관가는길에서 열린다. 이번 특별전은 제주현대미술관 김흥수관 개관을 축하하는 뜻도 있고, 내년 90주년전을 기리며 미리 선보이는 전시회 성격도 있다.

 

김흥수 화백(89)은 아직도 현역으로 예술가가 아니라면 발휘할 수 없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몸 상태가 좋을 땐 하루에 5시간 이상도 작업한단다. 이게 가능한 건 수호천사처럼 그를 보필하는 부인 장수현씨(46·화가 김흥수미술관 관장)가 있기 때문이다.

 

평화와 공존의 미학, 하모니즘

 

그는 초기 리얼리즘을 추구하다 과도기 현실을 담아낼 수 없자, 추상과 구상을 하나로 묶는 하모니즘을 제창한다. 이는 음과 양은 물론이고 추상과 구상, 동양과 서양, 현실과 이상, 정신과 육체, 주체와 객체 등 서로 상반된 두 요소를 한 화면에 담는 것이다.

 

이는 원효가 제창한 화쟁사상의 핵심인 '회통(會通)'을 회화적으로 현대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회통은 가장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는 두 모습이 하나로 통일되는 세상으로 도무지 소통될 수 없는 것이 소통하는 단계를 말한다.

 

이는 또한 동양에서 음이 양이고 양이 음이라는 독특한 일원론과도 통한다. 예컨대 나의 선 속에도 악이 있고 상대방의 악 속에도 선이 있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이처럼 포용적인 평화공존사상은 없을 것이다.

 

김 화백은 이런 독보적 미학으로 세계 미술계에 충격을 준다. 이런 아이디어는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온 것이다. 식민지 체험, 해방 이후 첨예한 이념대립과 좌우익 간 진저리치는 테러와 공포 그리고 분단에서 6·25까지 그에게는 그림에서나마 그걸 씻어낼 평화와 공존의 미학이 절박했다.

 

내 예술의 모체는 여성

 

  
'나를 찾아온 천사' 유화 복합매체 102×100cm 2004. 2002년 3번째 척추수술 후 힘들 때 부인의 헌신적 노력으로 재개한 후 그가 감격하여 아내에게 바친 그림이다.
ⓒ 김형순
김흥수

 

김흥수 화백은 "내 예술의 모체는 여성", 혹은 "여체가 미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가 늙지 않는 비결도 여성에 대한 찬미와 여성을 아끼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고, 구순의 나이에도 자신은 서 있고 아내를 의자에 앉히는 배려의 마음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그에게 한국의 피카소라는 별명이 붙은 건 장수한 데다가 여자를 너무 좋아한다는 풍문 때문일까. 하긴 피카소도 이렇게 말했다.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위 '나에게 찾아온 천사'를 보면 그에게 여성은 남성을 구원하는 존재이다. 사실 이 작품은 근작으로 김 화백이 3번째 척추수술을 받은 후 붓을 들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를 일으킨 아내에 대한 사랑이 모티브다. 분명 그에게 여성은 엄청난 열정과 영감의 원천이다.

 

그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사랑법이 서툴고 촌스럽다고 나무란다. 그의 저서 <나의 체험적 여성론>에서 사랑의 행위는 세레나데를 연주하듯 해야 하고 여인의 육체는 계란을 다르듯 조심스럽게, 보석을 취급하듯 소중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계급 없어 누드, 평화의 상징

 

  
'두 포오즈' 유화 혼합매체 320×14cm 1981. 여인의 정신적 심경과 육체적 열정을 누드(구상)와 붉은색 계열의 오방색(추상)으로 그렸다
ⓒ 김형순
김흥수

 

'여인' '나에게 찾아온 천사' '두 포오즈'에서도 보듯 김흥수 화백의 그림에서 누드화가 없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그는 누구보다 누드화를 즐겨 그렸다. 이는 그가 창시한 평화와 공존의 미학인 하모니즘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김 화백은 누드화에 대해 모 일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혼이 담긴 누드화에 대한 선구적 의지를 가진 제가 토양을 제대로 닦아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전에 비해 누드화에 대한 생각이 좋아졌어요. 누드는 그 자체가 평화입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평화롭고 안정되어야 비로소 누드화가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김 화백에게 있어 누드는 계급이 없는 평화의 상징이자 완전한 이상세계다. 누드를 아직 야하거나 상스럽게만 본다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전쟁의 피해의식 속에서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궁색하다는 뜻이리라. 그는 그래서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평화를 상징하는 작품을 의뢰받았을 때도 역시 누드화를 그렸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애착

 

  
'추석' 유화 혼합매체 331×128cm 1969. 하늘과 땅과 조상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추석을 기원하는 춤(구상)과 이를 액션페인팅 풍으로 자유분방한 색채와 무늬(추상)로 표현했다
ⓒ 김형순
김흥수

 

그의 그림소재는 위 작품 '추석'에서뿐만 아니라 '바구니를 이고 있는 여인', '강강수월래' 등에서 보듯 지극히 한국적이다. 그렇다고 서양적인 것을 배격하는 건 아니다. 그도 파리 가서 자신의 색감이 촌스러움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다만 남의 좋은 점은 수용하되 우리만의 고유한 미를 발굴하자는 제안이다.

 

그래서 그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왜 남의 것을 무턱대고 모방하느냐?", "왜 외국작가만 대우하느냐?" 한국사람이 서양 걸 아무리 잘해봐야 2등밖에 못하는 법, 한국적인 것은 한국사람이 세계 1등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가 작품을 할 때마다 문화재를 만드는 심정으로 한다는 말은 이런 점에서 납득이 간다.

 

미륵불, 그의 또 하나의 아이콘

 

  
'염(Thought)' 유화 복합매체 200×91cm 1977. 반가사유상에서 영감을 얻은 붓다의 무아지경(구상)과 불교 세계관을 그린 만다라(추상)의 이상향을 조화롭게 용해했다.
ⓒ 김형순
김흥수

 

 

1977년 하모니즘(Harmonism) 공식문서로 선언

김흥수화백은 1977년 워싱턴 IMF 미술관에서 '조형주의 선언전'을 열면서 음양조형주의(Harmonism)를 세계 최초로 발표했다. 다음은 그 내용전문이다. 올해가 김화백이 '하모니즘 회화'를 주창한 지 꼭 3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추상과 구상의 용해 - 조형주의 예술의 선언>
음과 양은 서로 상반된 극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세계 어울리게 될 때 비로소 완전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의 세계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추상미술의 등장 이후 세계의 화단은 구성주의와 추상주의는 서로 반목적인 상극을 이루어왔다. 사실적인 표현은 틀 속에 얽매여 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추상적 표현은 우연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다는 것은 완전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울려 완전을 이룩하듯 사실적인 것과 추상적인 두 작품의 세계가 하나의 작품으로써 용해된 조화를 이룩할 때 조형의 영역은 넘는 오묘한 예술세계를 전개하게 된다. 이것은 궤변이 아니라 진실인 것이다. 극에 이른 추상의 우연적 요소들이 사실 표현의 필연성과 조화를 이를 때 그것은 더욱 넓고 싶은 창조의 예술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1977년 7월 7일

 

김흥수 화백은 스스로 불교신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누드화와 함께 미륵불은 또 하나의 그의 아이콘이다. 박생광 화백도 그렇지만 김 화백도 불교적인 것이 한국미의 정수임을 안다.

 

세계도 불교를 경쟁력 있는 미술아이템으로 받아들인다. 그 중 여성성이 강한 관음보살이나 미륵불이 많이 등장한다.

 

위 작품 '염'은 미륵불을 그린 것으로 그의 대표작이다. 또 한국미술의 최고봉인 반가사유상과 추상적 만다라를 하모니즘 기법으로 융화시켜 성속(聖俗)을 떠나 높은 이상향을 추구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하모니즘을 공식선언한 1977년 작으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하모니즘의 본령을 보여주길 바랐는지 모른다. 그는 이렇게 최상의 종교세계와 최고의 예술세계가 만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의 독보적 미술, 세계도 인정

 

  
199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쥬박물관에서 개최된 김흥수화백 작품전 포스터
ⓒ 김형순
김흥수

 

연지곤지 찍은 한국의 여인들이 등장하는 위 작품은 1993년 세계3대 미술관 중 하나인 러시아 에르미타쥬 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초로 초대전을 연 김흥수 화백의 포스터이다. 이런 전시가 가능한 건 그가 세계 최초로 하모니즘을 제창하여 독자적 길을 걸었고 모방만으론 남의 문화적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미술평론가 신항섭도 그가 없었다면 세계미술사에 우리가 뭘 내놓을 수 있었으며 한국의 서양미술사 70년은 남 좋은 일만 한 꼴이 되지 않았겠느냐고 되묻는다.

 

처음 국내에서 그의 하모니즘이 소개되었을 때 엄청난 야유와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의 예술적 위상과 가치를 차치하고라도 이런 기발한 발상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그는 후배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는 결국 세계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부부애도 하모니즘 예술처럼 꽃피다

 

  
그의 화집에 사인하는 김흥수화백과 그 옆 그의 분신처럼 그를 돕는 부인 장수현씨. 김화백은 턱수염, 우주가 그려진 팬턴트 목걸이, 중절모는 노신사의 심벌이다
ⓒ 김형순
장수현
 
김 화백은 그림 이상으로 1992년 43살이나 어린 제자 장수현씨와 결혼하여 장안에 화제를 뿌렸다. 여성을 남성의 구원자로 보는 그에게 젊은 아내는 잘 어울린다. 그의 수발 역할을 하는 장수현씨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고 그녀의 맑은 미소가 주변을 환히 밝혔다.

 

사실 귀찮아할 법도 한데 김 화백은 사랑이라는 단어와 하트 표시가 들어간 저자서명을 손이 닮도록 써준다. 옆에서 아내가 그렇게 사인을 많이 해도 손 하나 떨지 않는다며 은근히 남편의 건강을 자랑한다. 뭐든 자기주도적으로 열정으로 사는 것이 그의 건강비법이란다.

 

결혼생활에서 싸움은 서로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라며 안 맞는 부분을 서로 맞춰가며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다고 말하는 김 화백, 그의 하모니즘처럼 그의 인생도 불협화음 같은 화음을 융화시키며 멋지게 꽃피고 있다.

  
'여인' 유화 혼합매체 240×92cm 1978. 여성의 현재, 과거, 미래를 한 화폭에 담았다. 가슴 아픈 과거의 상처를 딛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한 여인의 연대기를 그린 것이다.
ⓒ 김형순
김흥수

덧붙이는 글 | 미술관가는길 서울 종로구 경운동 63-7 이양원 빌딩 1층
전화 02)738-9199 www.gomuseum.co.kr(작가약력, 약도 등 참고) 입장무료
개간시간: 오전10시부터 오후7시까지 이메일: go-muse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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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87년 체제는 가라!

낡은 87년 체제는 가라!
  [시론] "'이명박 시대'의 진보진영, 지나친 절망도 금물"
 
  2007-12-20 오전 11:18:42
 
   
 
 
  이변은 없었다.
  
  "내가 BBK를 만들었다"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자신의 동영상도 민생파탄을 가져온 민주화정권, 특히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고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민심의 분노를 막지는 못했다.
  
  역시 신자유주의와 노무현 대통령의 힘은 역시 위대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은 사상 유례없는 양극화를 가져옴으로써 민심의 보수화를 가져왔다. 게다가 노대통령의 독선과 품격 없는 언행은 국민들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었다. 결국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정동영 대 이명박의 선거의 아니라 노무현 대 노무현의 선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객관적 조건 못지않게 이번 대선의 결과를 가져온 것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대변되는 정치권의 자유주의진영, 그리고 재야원로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민주화운동진영의 잘못된 선거 전략이다. 정동영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진영이 그나마 선거에서 살아남는 길은 그간의 신자유주의정책에 대해 발본적으로 자기비판을 하고 문국현 후보처럼 반신자유주의적 대안을 제시하며 다시 민심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대북정책을 중심으로 한 낡은 반수구 논리로 한나라당을 공격하는 한편 BBK '한 방'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민심의 헛다리나 집고 있었던 것이다.
  
▲ ⓒ프레시안

  재야원로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민주화운동 진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화운동 진영의 대선 전략과 관련해 "멍청아, 문제는 평화가 아니라 경제야"(<프레시안>2007년 7월 23일) 등의 글을 통해 이미 이 지면에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듯이 우리 사회는 97년 경제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적인 97년 체제로 변했으며 우리 사회의 주모순은 이를 둘러싼 반신자유주의의 문제이지 87년 체제의 유제인 민주대 반민주가 아니다.
  
  그러나 원로들과 시민사회의 일부 민주화 진영은 이미 사라진 87년 체제의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라는 낡아빠진 동아줄을 붙잡고 반수구, 반부패, 반한나라당 전선에 참여하라고 국민들에게 목소리나 높이고 있었다. 그 결정판이 이명박 후보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리자 광화문 촛불시위를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민심을 모르니 대선의 참패는 당연한 결과이다.
  
  민심의 핵심인 민생과 반신자유주의 문제의 경우 진보적 자유주의자인 문국현 전 유한컴벌리사장이 정치에 입문하며 의제를 선점하고 나섰지만 너무 늦게 경기에 뛰어든 데다가 조직적 열세 등으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진정한 패자는 진보진영
  
  그러나 정작 이번 대선의 최대의 패배자는 정동영 후보와 자유주의진영도, 문국현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이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대선보다 오히려 후퇴를 해 3% 득표에 그쳤고 이회창, 문국현 보다 못한 5위로 밀려났다.
  
  2002년 대선의 경우 민주노동당은 원외정당이었을 뿐 아니라 노무현, 이회창 간의 박빙승부로 인한 사표심리, 막판의 정몽준 해프닝으로 인한 노무현 동정표의 이탈 등으로 아주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경우 원내 제 3당이 됐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따른 민생파탄으로 진보정당 성장의 호조건이 만들어졌으며 어차피 이명박 후보의 독주체제로 인해 사표심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한 마디로, 2002년에 비해 너무도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는 자유주의자들의 패배이상으로 자업자득이다.
  
  우선 이는 내가 다른 글("손호철의 정치논평: 진보의 세대교체", <한국일보>, 2007년 7월 30일자)에서 이미 경고한 바 있듯이 권영길 후보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세대교체를 감행하는 대신 노욕을 버리지 못하고 출마함으로써, 그것도 당내 다수파이기는 하지만 대중적 정서와는 거리가 먼 자주파의 지지를 받아 승리하는 순간 이 같은 결과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게다가 대선과정에서 정치적으로도 옳지 않을 뿐 아니라 대중적 정서와도 거리가 먼 코리아 연방공화국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아니 세상에 북한과 같은 세습왕정을 민주화하지 않고 '세습왕정'과 (대한민국과 같은) '공화국'이 어떻게 연방을 한단 말인가? '코리아 왕정-공화국 연방'이라굽쇼? 소도 웃을 이야기이다.
  
  한국사회당의 경우 사회적 공화주의라는 담론을 가지고 새로운 진보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대중적 지지를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노동자의 힘을 비롯한 제도 정치권 밖의 좌파들 역시 선거정치를 넘어선 반신자유주의 전선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목소리 높여 외쳤지만 별 의미 있는 투쟁을 전개하지 못 했다.
  
  그동안 이문열을 비롯한 냉전적 보수세력들은 한국사회의 대립구도를 수구적 좌파 대 진보적 우파의 대결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해왔다. 수구 대 진보를 단순히 변화에 대한 태도로 단순화시키는 이 같은 용법은 문제가 많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되돌아보면서 이 같은 용법이 그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냉전적 보수 세력은 박근혜와 같은 낡은 보수로는 민심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해 이명박과 같은 실용적 보수, 새로운 보수에 배팅을 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진영과 진보 진영은 수구적 좌파라는 표현이 공감이 갈 정도로 변화하지 못하고 낡은 87년 패러다임에 매달려 있었다.
  
  신자유주의에 의한 민생파탄이 문제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진영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느니 "개성동영"이라는 구호 아래 대북정책을 중심으로 수구 대 개혁의 구도에 매달려 있었고 시민사회의 원로들 역시 철 지난 반수구 반한나라당 로고송이나 부르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역시 낡은 주사파와 민족해방파의 논리에 의해 코리아연방 운운하고 있었던 것이다.
  
  87년 체제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
  
  문제는 이제 이번 대선을 계기로 자유주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얼마나 자기개혁을 하고 새롭게 태어나느냐는 것이다. 정동영 후보는 대선 막판에 가서야 그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민생에 고통을 주었는지 절감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자유주의진영은 지금이라도 그간의 신자유주의정책에 대해 발본적인 자기비판을 하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위기를 다시 한 번 봉합하려 할 것이 아니라 재창당수준의 대수술을 해야 한다. 핵심은 북한에 대한 태도이다. 더 이상 북한은 진보적 체제가 아니며 시대착오적인 세습왕정임을 인정하고 북한 문제를 세습군주인 김정일 체제가 아니라 고통 받고 있는 북한민중의 입장에서 다루는 방향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면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친북적인 조선노동당과 그렇지 않은 민주노동당이 분당을 해야 한다.
  
  주요한 또 다른 사안은 BBK 특검문제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의 지도부가 정치적 주도권을 잡고 한나라당을 압박하기 위해, 나아가 대선결과에 대한 당내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지나치게 이에 매달려고 공세를 펴는 것은 잘못이다. 그 많은 의혹에도 민심은 압도적으로 이 당선자의 손을 들어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이며 이를 검찰이나 특검의 사법의 논리로 대처하려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오는 총선, 그리고 그 이전이라도 노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적 분노의 폭발과 같은 사태가 다시 터져 나올 수 있다. 특검보다는 맑스가 <자본론> 서문에서 지적한대로 이명박에게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에서 뛰어보아라"로 해야 한다. 검증의 핵심은 BBK가 아니라 민생해결이다.
  
  확실한 것은 이명박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 정권, 아니 노무현 정부보다 더한 신자유주의 정권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가 현대시절의 신화를 되살려 총량기준으로 경제를 되살려 낼지는 몰라도 사회적 양극화와 민심파탄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지지한 많은 민초들은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한나라당의 집권에 따라 예상되는 일정한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위에서 지적한 자유주의진영과 진보진영의 내부개혁은 미룰 수 없는 또 다른 과제이다. 더 늦기 전에 죽은 87년 체제에 대한 미련은 빨리 던져버려야 한다.
  
  이 같은 과제들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이명박의 집권이 일회성으로 끝날 수도 있고 아니면 길고도 긴 어둠의 시대가 지속될 수도 있다. 지난주 이 지면의 컬럼("묻지마 지지, 5.18 너마저"<프레시안>)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이명박의 집권은 근본적으로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정권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너무 절망하거나 호들갑떨 필요가 없다.
  
  게다가 스타일면에서도 이명박은 노 대통령을 닮은 또 다른 노무현이라는 점에서 사고를 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나친 낙관도 문제지만 지나친 비관역시 지나친 낙관만큼이나 위험하긴 매한가지다.
   
 
  손호철/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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