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8/10/24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0/24
    고전다시읽기]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그가 아니다/이진경
    HelterSkelter
  2. 2008/10/24
    '금융위기 주범' 그린스펀, 때늦은 반성
    HelterSkelter

고전다시읽기]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그가 아니다/이진경

 

 

고전다시읽기]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그가 아니다/이진경

한겨레 | 기사입력 2006.05.19 16:56



[한겨레] 고전 다시읽기/알튀세르 < 맑스를 위하여 >

이 책은 원래 1965년에 출판되었지만, 우리가 이 책을, 그나마 영역본으로나마 처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알다시피 그 시절은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아니 책을 구하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 맑스를 위하여 > 라는 제목에 놀라거나 충격을 받지 않는 게 가능했을까? 아니, '마르크스를 위하여'라니! 일단 숨겨서 몰래 봐야할 것 같은 긴장을 주는 책이었다. 마르크스를 위하여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이듬해(1966년)에 알튀세르가 제자들과 함께 또 하나의 책을 출판한다. ' < 자본 > 을 읽자!'는 말로도 번역될 수도 있는 < 자본 읽기 > 였다.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 허, 책 제목을 이렇게 지을 수가 있다니!

그러나 < 자본 > 이란 책이야 그 전에도 읽었던 것이고, 그 책이 출판된 당시에도 다들 읽던 책이 아니었던가? 그랬을 것이다. 안 읽는 책을 "이젠 좀 읽자"고 말하려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이제까지 읽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자는 말이었을 게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의 고식적인 독서, 그 상투적 독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읽는 것,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를 위하여' 그가 하고자 했던 것일 게다.

'이론적 반-휴머니즘' 견지

그래서 이 책의 서문은 자신들이 마르크스를 읽던 시기에 대해서, 그 독서의 방식을 제한하던 조건들에 대해 쓰고 있다. 그 글의 제목에 '오늘'이라고 붙인 것도 이런 점에서 아주 탁월한 작명이었다. 당에 의해 독서와 해독의 방식이 결정되고 제한되던 시절,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적 진리' 내지 '프롤레타리아 과학'이란 이름으로 "오류를 그 모든 서식지에서 쫓아내던 무장한 지식인들의 시대"였고, "세계를 단 하나의 칼로 갈랐던, 예술·문학·철학 및 과학들을 계급이라는 가차 없는 절단으로 갈랐던 철학자들의 시대"였다. 스탈린은 죽었어도, 스탈린식의 진리가 사유를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정작 겨누고 있는 일차적 대상은 뜻밖에도 스탈린식의 실증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던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고, 마르크스를 휴머니스트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물론 그는 휴머니즘이 실증주의의 짝이고 보충물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그가 휴머니즘을 겨냥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로 만든다는 점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자 자신을 위한 이데올로기. < 경제학·철학 초고 > 라고도 불리는 마르크스의 < 1844년 초고 > 의 출판 이후 크게 유행한 이른바 '소외론'의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스탈린의 '비인간적' 비극을 비판하며 등장한 '휴머니즘적 사회주의'가 그것이었다. 그가 자신의 입장을 '이론적 반-휴머니즘'이라고 명명했던 것은 이러한 태도를 좀더 극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러한 독해의 강력한 지지자는 헤겔이었다. 그래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헤겔과 절연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한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의 소외론이 헤겔보다는 포이어바흐에 기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소외론자로서의 마르크스를 '청년 시절'의 미숙함으로 돌리고 성숙한 마르크스와 다시 떼어놓는다.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을 이용해서, 역사과학이라는 대륙을 발견한 과학자로서 성숙기의 마르크스와, 그러한 과학을 알기 이전의, 당연히 이데올로기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청년 마르크스를 분리한다.

이러한 비판 속에서 그는 '인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관념을 '사회적 관계'라는 과학적 개념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즉 인간이란 그가 어떤 관계 속에 들어가는가에 따라 다른 본성을 갖는 존재고, 따라서 그런 구체적인 관계와 무관한 인간의 본성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마르크스는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노예가 된다." 그 특정한 관계가 달라지면 그는 노동자가 될 수도 있고,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지'가 아니라 '어떤 인간인가'를 구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란 목적지 모르는 기차

그는 또 모순의 개념을 헤겔적 관념에서 끄집어내고자 한다. '과잉결정(중층결정)'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모든 관계의 본질에는 모순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전개 양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본질적으로 다양한 현상들은 모순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에 따르면 사회란 '기본모순'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동심원적 구조를 갖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수준의 외부적 조건들이 기본모순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모순은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지만, 어떤 때는 농민들과 지주의 모순이, 또 어떤 때에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인민의 모순이 사회 전체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다른 모순들이 그 모순에 응축되고 그것의 작동을 통해서 작용하게 된다.

또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에 깊이 침윤되어 있는 '목적론적 사고방식'과 평생 동안 집요하게 대결한다. 가령 '공산주의'나 '절대정신의 실현' 혹은 '인간성의 실현' 같은 역사의 목적/종말을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진행되는 것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목적론적 역사관념이 그것이다. 그가 보기에 역사란 "기원도, 목적도 없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출발지도, 목적지도 모르는 채 역사라는 기차에 올라타고 내리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된 또 하나 중요한 명제는 "이데올로기 없는 사회란 없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란 원래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통상적 관념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상식'이 바로 그런 것에 속한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1845년에 한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피지배계급의 입장에선 당연히 거짓된 의식, 허위의식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지배/피지배가 사라진다면 그런 허위의식도 사라질 것이고, 허위의식으로서 이데올로기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란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포함하여, 이런저런 생각(표상)들을 방향짓고 미리 규정하는 무의식적 '표상체계'라고 본다. 그런 한에서 그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없다면, 개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결정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을 사회가 요구하는 주체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이데올로기인 것이고, 따라서 어떤 주체도 이데올로기 없이는 불가능하며, 어떤 사회도 이데올로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개념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과 결합하여, '호명'이라는 흥미론운 이론으로 이어진다. 가령 "모세야" 하는 신의 호명에 "예"하고 답함으로써 모세는 히브리 인민을 이끄는 '주체(subject)'가 된다. 신이 알려준 주체의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고 인정하고 동일시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이나 부모, 혹은 사회라는 큰 주체(Subject)가 지정한 자리를 나의 자리로 오인하는 것이며, 그를 통해 그 큰 주체의 신민(subject)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데올로기 없는 사회란 없다

이처럼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바슐라르나 프로이트, 라캉, 혹은 그가 피하면서 받아들였던 '구조주의' 등의 이질적인 요소들을 섞어서 새로운 얼굴의 마르크스를 만들어낸다. 고답적인 형태의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그리고 그것을 마르크스에게 돌려준다. 그것이 그가 '마르크스를 위하여' 하고자 했던 것이었을 게다. 마르크스가 그의 선물을 반가워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배적인 마르크스주의의 고답적인 사고에 지쳤던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 선물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상이한 사유들이, 새로운 사유가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사유 자체를 마르크스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가르쳤고, 마르크스의 사유가 다시 살아 있는 사유와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다시금 새로운 형태로 마르크스적 이론을 창안하여 마르크스에게 돌려주려는 또 다른 사유를 촉발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지키고 유지해야 할 또 하나의 마르크스주의가 되는 순간, 다른 종류의 차이를 배제하는 절단의 칼날이 된다는 점을 잊지 않는 한에서지만 말이다.

서평자 추천 도서

맑스를 위하여
알튀세르 지음, 이종영 옮김, 백의 펴냄(1997)
아미엥에서의 주장
알튀세르 지음, 김동수 옮김, 솔 펴냄(1998)
(알튀세르의 사상 전반에 접근하기에 좋은 책. 쉽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알튀세르 지음, 권은미 옮김, 돌베개 펴냄(1994)
(부인을 죽인 뒤 금치산자로서 유폐된 상태에서 씌어진 알튀세르의 자서전)
◇ Mjspinaza(인터넷서점 예스24 회원리뷰)="비록 마르크스주의의 실추로 인해 이제는 널리 읽히지 않고 논의되는 빈도도 훨씬 줄어 들었지만, 알튀세르의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일종의 논문모음집임에도, 놀라운 이론적 통일성을 보여 주고 있다."

◇ 익명="프랑스 공산당에 속해 있었던 알튀세르는 이러한 복잡한 정치적 사태에 정치적으로,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맑스에 대한 인간주의적 해석 전체를 비판의 도마 위해 올려놓게 된 것입니다."

◇논장="이 책에 내포된 세적, 정치적 담화들은 시대의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현 시기 새롭게 번역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책이 갖는 탁월한 인식론적 가치 때문이다."

▽ 다음주 이후 고전 < 죽음의 수용소에서 > < 한국사신론 > 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bonbon@hani.co.kr

[책속으로] 쁘띠 부르주아 출신의 지식인들이 인간주의적 청년 맑스로 변장시켜

"당에 들어왔던 쁘띠 부르주아 출신의 지식인들이 정치적 행동주의나 적어도 순수한 행동을 통해, 프롤레타리아로 태어나지 않았기에 지게 된 상상적 채무를 변제할 수 있다고 느꼈던 것 또한 우리 사회 역사의 한 특징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동류들 속에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자를 갖지 못하였다. …자신의 가장 뛰어난 대화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말을 듣게 하기 위해 몇몇 맑스주의 철학자들은 …언젠가는 가면이 진짜 얼굴이 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를 변장할 수밖에 없었다. 맑스를 훗설로, 맑스를 헤겔로, 맑스를 윤리적 내지 인간주의적 청년 맑스로 변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 맑스를 위하여 > , 이종영 옮김, 22~23쪽)

"모순은 자신이 그 속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신체 전체의 구조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자신의 존재의 형식적 조건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층위들로부터도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순은 그 자체가 그 핵심에 있어서 이 층위들에 의해 영향받고 있으며, 하나의 동일한 운동 속에서 규정적인 동시에 규정받고 있고, 자신이 추동하는 사회구성체의 다양한 수준들과 다양한 층위들에 의해 규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순은 원리상 중층결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같은 책, 116~17쪽)

"인간사회들은 이데올로기를 마치 호흡하는데 필수적인, 역사적 삶에 필수적인 요소나 공기인 것처럼 분비한다. 오직 이데올로기적인 세계관만이 이데올로기 없는 사회들을 상상할 수 있고 …이데올로기가 과학에 의해 대체되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세계에 대한 유토피아적 관념을 받아들일 수 있다. …도덕이건 예술이건 '세계의 표상'이건 간에 역사유물론에서는 이데올로기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를 상상할 수 없다."(278쪽)

<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금융위기 주범' 그린스펀, 때늦은 반성

 

 

'금융위기 주범' 그린스펀, 때늦은 반성
  "내 경제이론에 허점, 파생상품 규제완화는 잘못"
 
  2008-10-24 오전 9:32:50
 
   
 
 
  현재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월스트리트 금융업체들의 탐욕스러운 영업행태와 규제완화의 복합적 산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금융업체들이 주택담보대출과 연계해 판매한 파생상품을 제대로 규제하지 않은 정책적 실패는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무려 20년 가까이 역임(1987~2006)한 앨런 그린스펀의 책임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이런 비판에 대해 당사자인 그린스펀은 결코 수긍하지 않았다. 지난 9일 <뉴욕타임스>가 장문의 기사를 통해 그린스펀에 대해 칼날을 들이대었을 때도 그는 "파생상품 자체가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탐욕이 문제였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그린스펀은 '물신(物神)의 사제'인가)
  
▲ 그린스펀 전 의장이 23일(현지시간) 미 하원 청문회에서 금융위기에 대한 추궁을 받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그린스펀 "부분적으로 잘못했다"
  
  하지만 23일(현지시간) 그린스펀은 하원 청문회에서 자신의 시장경제 이론에 허점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그는 "허점을 발견했다"면서 "40년 이상 경제이론이 아주 매우 잘 들어맞고 있다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파생상품 규제에 반대했던 것에 대해서도 "금융기관들이 내가 기대했던 바와 같이 주주들과 투자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면서 "부분적으로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이런 답변은 헨리 왁스먼 정부개혁위원회 위원장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초래한 무책임한 대출관행을 제지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을 것"이라면서 "지금 우리 전체 경제는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그린스펀을 비판하면서 나왔다.
  
  물론 그는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신용 쓰나미(credit tsunami)'"라며 정책결정자가 예상하기 어려운 극히 예외적 사태였다는 점을 강변했다.
  
  이와 함께 그린스펀 전 의장은 이날 미리 배포한 청문회 자료에서 "현재까지 금융시장의 손실을 고려할 때 일시적 해고와 실업률의 현저한 상승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실업률 상승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이번 금융위기를 끝낼 수 있는 필요조건은 주택가격 안정이지만 앞으로 여러 달 동안 주택가격이 안정될 것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주택가격이 안정되면 그때부터 시장 경색이 상당히 풀리고 겁에 질린 투자자들도 다시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에 나서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그는 주택가격이 안정될 때까지 정부가 공세적으로 금융시장을 지원하는 조치는 올바른 일이라면서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계획은 이같은 필요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이며 이번 조치의 효과가 벌써 시장에서 느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린스펀은 "(이번 금융위기는) 내가 상상했던 어떤 것보다 더 광범위하게 나타났다"면서 "신용평가 기관이 비현실적으로 높게 평가한 서브프라임 증권에 대한 국제적인 수요가 은행과 헤지펀드, 연기금에 의해 급증한 것이 이번 문제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전지전능하지 못했던 탓일 뿐?
  
  그린스펀이 이번 청문회에서 예전보다는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지만 "규제감독 당국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며 완벽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면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절대적인 확신이나 전지전능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끝까지 자신을 옹호했다.
  
  한마디로 마지못해 자신이 잘못을 인정한다고 했지만,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까지 막을 정도까지 자신의 경제이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시인했을 뿐이다. 그나마 파생상품 규제를 제대로 못했다는 점에 대해 '조금' 잘못을 인정한 것이 이번 청문회가 얻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재임 기간 중 보여준 언행을 되짚어오면 그가 어떤 신념에 충실한 나머지 의도적으로 규제 완화를 회피했다는 정황이 역력하다. 만일 그가 '경제이론'에 대한 확신으로 그랬다면, 금융업체들에게 봉사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이론'으로 포장했을 뿐이라는 의혹이다.
  
  는 "그린스펀은 금융시장에 참여하는 개인들도 책임있게 행동할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보여주었다"면서 "그린스펀이 금융규제와 파생상품에 대해 지난 20여년에 걸쳐 어떠한 언행을 해왔는지 조사한 결과, 그가 그런 신념을 위해 조국의 경제를 볼모로 잡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오랜 기간에 걸쳐 그린스펀은 시장을 움직이는 힘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내버려두는 야심찬 미국적 실험이 가능하도록 지원했으며, 이제 미국은 그 결과에 직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지낸 아서 레빈 주니어도 "그린스펀은 정부를 근본적으로 경멸하기 때문에 파생상품 규제를 반대한다"면서 그린스펀의 '위험한 사상'을 증언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린스펀이 재임 중 다른 식으로 대처했다면, 현재의 위기는 피하거나 제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린스펀은 지난 10여년에 걸쳐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철저하게 반대해 왔다. 그는 지난 2003년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파생상품은 위험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그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려는 자에게 넘길 수 있는 놀라운 수단"이라면서 "파생상품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린스펀 재임 중 FRB 부의장을 역임하고 현재 프린스턴대 교수로 있는 앨런 블라인더는 "조금이라도 규제하려는 제안이 있으면, 그린스펀과 재무부의 많은 관료들이 싹을 잘랐다"면서 "그린스펀은 꿋꿋하게 파생상품의 치어리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1994년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2년의 조사 끝에 내놓은 "파생상품의 규제감독에 상당한 허점이 있다"는 보고서도 묵살했다.
  
  당시 GAO 원장 찰스 보셔는 하원 청문회에서 "파생상품을 취급하는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이 갑자기 파산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시장에 유동성 위기가 닥칠 수 있으며,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은행을 포함해 금융시스템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면서 "사태의 심각할 경우 정부가 개입해 납세자가 부담하는 구제금융이 불가피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14년전에 파생상품 규제를 적절히 하지 못할 경우 현재 전세계가 목도하는 미국의 금융위기 사태가 일어날 것을 정확하게 경고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린스펀은 "파생상품 시장을 포함해 금융시장의 리스크라는 것은 민간 영역에서 자율 통제되고 있다"면서 "시장 자율규제보다 연방 정부의 규제가 우월하다는 증거는 없다"고 장담했다.
  
  더욱 심각한 사례가 있다. 그린스펀은 옵션과 선물거래를 규제하는 연방기관 선물계약거래위원회(CFTC)가 파생상품 규제를 하려들자 아예 그 권한을 박탈하는 일에 앞장섰다.
  
  당시 CFTC 위원장 브룩슬리 본은 "통제받지 않고, 불투명한 거래는 연방기관도 모르는 사이에 시장뿐 아니라 경제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거래에 대한 보다 투명한 절차와 손실에 대비한 더 많은 충당금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월가의 현인'이라는 워렌 버핏이 이미 2003년에 파생상품을 '금융 대량살상무기'라면서 경고했어도, 그린스펀은 파생상품이 대량살상무기로 변할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이유로 어떠한 규제도 막았다는 것은 '경제이론의 허점'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승선/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