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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중도정치'를 아느냐?

 

 

 

너희가 '중도정치'를 아느냐?
"그들의 '중도'... 사이비 개혁세력의 '우익투항'일 뿐"
텍스트만보기   심상정(713sim) 기자   
 
 
▲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요즘 '중도'라는 말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요즘이랄 것도 없이 선거철만 되면 우리 정치권은 마치 마술에라도 걸린 듯 '중도'의 스펙트럼으로 자신을 치장하기에 바쁘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중도를 자임했고, 정운찬 전 총장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중도로 규정했다. 손학규 전 지사 역시 마찬가지다. 아울러 실패한 정치세력인 범여권은 '중도개혁세력 대통합'을 명분으로 패자부활전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을 빼고는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자신을 중도로 포장하지 않는 이를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중도정치의 역사적 기원

중도정치란 역사적으로 좌파정치세력의 노선변화를 가리키는 게 대부분이었다. 근래의 대표적 사례로는 영국노동당의 '신노동당' 선언의 이념적 근간이었던 '제3의 길'(the third way), 독일사민당의 '새로운 중도'(Neue Mitte)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중도노선은 좌우세력의 비판 속에서도 최소한 당대의 논쟁을 담고 있었다. 서구 복지국가의 한계, 사민주의냐-신자유주의냐,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혁신, 근대와 탈근대 즉 노동 대 자본의 근대적 정치구도에서 탈피해 성찰적 탈근대 정치로 이동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 '중도'는 철학도, 실체도 없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한국정치에서 중도는 좌파가 아닌 우파가 제기하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사실 이는 '중산층과 서민을 지지기반으로 한다'고 떠벌이는 보수야당의 선거전략에 불가하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집권 냉전세력의 '좌익용공' 공세를 피하기 위해, 최근엔 실정의 면피용으로 중도가 이용되고 있다.

평화개혁, 중도실용, 중도개혁 등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쓰는 '중도'는 그 자체로 완결적일 수 없는 불구의 개념이다. '무엇에 대한 중도인지'가 분명해야 하는데 그와 관련한 차별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이비 개혁세력이 그냥 좋은 개념, 절충적 개념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적 실패자, 정치적으로 방황하는 미아들의 정치노선, 그것이 한국정치에서 중도의 실체다.

"무엇을 하겠다는 중도인지" 답하라

책임정치, 정치철학, 정치노선 차원에서 중도를 들먹이려면 적어도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논리적 전제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무엇을 하겠다는 중도냐'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의 핵심의제인 'IMF 경제위기 10년의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중도를 부르짖는 정치세력은 바로 그 이름으로 '양극화 강화정책'과 '신자유주의'에 순응하거나 밀어붙여왔다. 그것이 바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근본원인이다.

눈여겨 볼 것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실패한 정책에서 둘 사이에 어떠한 긴장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정책에서는 같은 방향을 지향하면서도 정작 서로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유지된 것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관계다. 이런 상황에서 제기되는 중도론은 이러한 허구적 긴장관계마저 해소해 보자는 것이다.

범여권에서 나오는 중도론은 한마디로 말해 '우익편승론'일 뿐이다. 장사 되는 곳에 좌판을 벌이겠다는 발상, 나는 이것을 '떠돌이 약장사 정치'로 규정한 바 있다. 국민이 개혁을 요구할 때는 개혁장터에 좌판을 벌이고, 국민이 잇따른 실정에 절망하고 한나라당 쪽으로 옮겨가자 이제는 재빨리 중도란 이름으로 좌판을 벌이고 우익편승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한미FTA와 원포인트 개헌 등의 의제는 "나도 괜찮은 보수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다. 한나라당, 보수언론 등 우파 헤게모니에 편승하기 위한 적극적 구애행위인 것이다.

실체없는 말의 성찬이자 정략적 알리바이

한국의 중도주의는 전통적인 좌표를 수정한 게 결코 아니다. 무엇에 대한 중도란 말인가. 평화개혁, 중도개혁, 중도실용은 말의 성찬일 뿐 개념도 아니고,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지난 반세기의 한국정치에서 끊임없이 중도론이 제기되었지만 현실정치에서 그것은 존재한 적이 없다. 실체가 없으니 당연히 좌표에도 없다.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지점을 찾아가다 보면 길 잃은 부랑아가 될 수밖에 없다. 한미FTA 추진, 비정규직 개악법안 강행통과, 부동산정책 실패 등 정치와 정책에서 실패한 세력이 선거승리라는 정략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알리바이가 곧 중도론이다.

중도정치가 성립하려면 좌우의 균형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정치는 보수독점 구조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가 '극우-중도-극좌'로 재편될 가능성은 없다. 이 점에서 '보수-중도-진보'는 추상적 이념 속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구도다. 오로지 선거공학적 레토릭으로서 기능할 뿐이다.

참여정부의 실정을 경험한 국민은 이제 레토릭을 넘어 정치의 실질적 내용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말뿐인 중도주의는 더 이상 한국에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사이비 개혁세력의 우익투항, 정치개혁 실패를 고백하는 과정일 뿐이다.

"한미FTA 찬성이냐 반대냐" 대선 핵심쟁점

한미FTA 추진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무현-한나라당-보수언론의 3각동맹 체제는 우익편승론을 본질로 하는 중도의 귀결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한미FTA는 올해 대선의 핵심쟁점이 될 것이고, 따라서 나는 FTA를 둘러싼 정치구도 재편에 주목한다. 개혁세력이니 평화개혁이니 하는 지난날의 어정쩡한 정치 슬로건은 한미FTA 전선에서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오직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분명한 태도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나는 한미FTA를 일관되게 반대해왔고, 무효화해야 함을 역설해왔다. 그것은 졸속으로 시작해 미국 퍼주기로 끝난 협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동차 세제개편이라든가 투자자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보장하는 독소조항에서 볼 수 있듯 서민의 삶을 희생양으로 대기업과 소수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한미FTA는 결코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는 3각동맹체 내부의 자리바꿈일 뿐인 정권교체를 뛰어 넘어야 한다. 부자들의 시대에서 서민의 시대로, 냉전의 시대에서 평화와 통일의 시대로, 신자유주의 약육강식 시대에서 호혜협력의 시대로, 보수정치시대에서 진보정치의 시대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찾아가야 할 좌표이자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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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가 대선구도 흔들 다크호스?

 

 

 

'개인주의'가 대선구도 흔들 다크호스?
[여의도통신] '블런델-고스초크 모델' 한국적용 가능할까
텍스트만보기   여의도통신(ytong)   
 
 
 
ⓒ 여의도통신
 

진보-보수-중도 등 이념적 척도를 가지고 유권자의 성향을 분석하는 방법론은 서구에서 이미 그 한계가 드러났다.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레드 콤플렉스 등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볼 때 이념적 성향에 따른 유권자 분석 방법론은 서구보다 도리어 한국에서 유권자 분석틀로 한계가 많다고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분단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이념지형 자체가 형성되지 못했는데도 이념 지표를 사용하는 것은 그 출발부터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진보 vs 보수 이념 지표의 한계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좌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탄압해 왔다. 19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진영에서 발생한 자생적 좌파세력 역시 사회주의 국가 붕괴 이후 소멸되다시피 하면서 이념지형 자체가 거의 형성되지 못했다.

용어적으로도 '좌파'라는 말이 금기시되면서 '진보'나 '개혁' 등을 혼용함으로써, 이념지형 형성에 있어 많은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 등은 '좌파'로 분류할 수 있으나 이들 역시 '진보' 라는 용어를 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인은 이념적 태도에 의한 정당선택 경험도 없다. 1970~1990년대 한국의 사회운동은 민주주의 세력, 자유주의 세력, 사회주의 세력 등이 당면과제인 '민주화'를 성취하기 위해 보수정당(민주당 등)과 연대하는 양상이었다. 사회주의 세력의 독자정당 창당 시도는 현실법의 한계에 부딪혀 좌초했다.

이에 따라 일반 국민들은 좌파정당 vs 우파정당의 대립을 경험해 본적이 없으며, 정당 지지 역시 우파들의 보수정당 중에서 선택해 왔던 것이다. 다만,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은 이념적 선택을 하는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이념지형이 거의 형성되지 못한 한국사회에 진보 vs 보수라는 이념적 분석틀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보수주의자라 할 수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이 유권자들에게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의 이념분석틀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서구에선 새로운 이념지표 사용

서구 사회는 뚜렷한 이념 대립 구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유럽은 경제에 대한 태도로서 좌파 vs 우파의 기본 대립 구도를 형성해 왔다. 유럽의 정당들은 이러한 이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유권자도 이념에 따라 정치적 태도를 갖거나 지지 정당을 결정해 왔다. (그림1 참조)

 
ⓒ 여의도통신
 

이러한 대립 구도는 맑스의 '공산주의' 제창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공산주의 운동 경험이 척박한 미국의 경우는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보수정당의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유럽은 계급구성 변화 및 '개인주의' 신장에 따른 정치지형 변화에 조응하고자 전통적 좌우 구분을 뛰어넘는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해 왔다.

1997년, 영국의 존 블런델(John Blundell)과 브라이언 고스초크(Brian Gosschalk)는 전통적 좌우대립 축(경제적 태도)에 개인주의 축을 추가한 모델을 적용했으며, 이후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블레어의 노동당 현대화 프로젝트, 기든스의 제3의 길,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 노선, 전통적 가치관 붕괴에 주목한 잉글하트 모델 등은 기존의 좌우 구분을 뛰어넘고 '개인주의'를 적극적으로 수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서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블런델과 고스초크는 영국에서 사회적․정치적 태도에 따라 보수주의적, 자유지상주의적, 사민주의적, 권위주의적이라고 일컫는 네 집단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림2 참조)

 
ⓒ 여의도통신
 

경제적 자유, 즉 자유시장에 대한 신념이 한 축에서, 그리고 개인적 자유가 다른 한 축에서 측정되는데 기존의 좌파 우파 구분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유권자 태도 변화나 현실 설명이 가능하게 됐다. 위 모델에 따른 각 유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보수주의적(conservative)] 신자유주의적인 것으로 시장의 자유에 찬성하지만 가족, 마약, 낙태와 같은 쟁점에서는 강력한 국가 통제를 원한다.

[자유지상주의적(libertarians)] 모든 방면에서 개인주의와 낮은 수준의 국가 관여를 원한다.

[사민주의적(socialists)] 보수주의자들과 반대로 경제생활에서 더 많은 국가 관여를 바라고 시장을 불신하고 있으나 도덕적 쟁점에 관한 한 정부관여에 회의적이다.

[권위주의적(authoritarian)] 경제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양자를 포함하여 모든 영역에서 정부가 강력한 통제를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핵심은 '개인주의'의 급속한 신장

블런델-고스초크의 조사 및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정의에 따라 영국 인구의 약 3분의 1이 보수주의자이며, 20%에 약간 못 미치는 사람들이 자유주의자이며, 18%가 진보주의자, 13%가 권위주의자, 그리고 기타가 15%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선거 직전에 토니 블레어에 의해 재건된 노동당은 보수주의적 집단을 제외한 다른 집단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보수당에 투표하겠다는 사람들 가운데 84%가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집단에 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새로운 방법론 도입의 핵심에는 '개인주의'의 급속한 신장이 자리 잡고 있다. 개인주의란 집단적인 삶의 방식 우위라는 전통적 관념 대신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 신장을 추구하는 흐름을 말한다. 2차 대전 이후 베이비 붐업 세대가 주도하고 있는데 그 분포를 보면 젊고, 교육수준이 높으며, 소득도 높은 층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개인주의 세력은 42% 수준이며(2006년 갤럽 조사결과), 영국은 38% 수준(1997년 IEA 조사결과)을 보이고 있다. 인용한 영국의 수치 38%는 1997년 자료이기에 현재는 미국의 경우처럼 40% 수준으로 확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개인주의의 신장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사회분석틀을 주창한 사람으로 미국의 데이비드 놀란(David Nolan)이 있다. 놀란은 1971년, 기존의 단선적인 좌우 이념축에 개인주의 축을 추가한 '놀란 차트'를 만들었다. 놀란 차트는 이후 많은 변형과 개념이 추가되기도 했으나 개인주의 축을 유지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고 있으며, 위의 블런델-고스초크 모델 역시 놀란 차트의 변형이다.

한국 사회 역시 '개인주의'가 매우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개인주의적 성향의 국민이 상당수에 놓여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에 대한 사회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어 구체적인 수치는 확인된 바가 없지만 말이다.

한국 사회 적용할 경우 주목할 것들

그렇다면 이러한 '블런델-고스초크 모델'이 한국 사회 적용될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현재의 이념대립 구도는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에 대한 태도로서 진보 vs 보수의 이념 구분에 따라 한국의 유권자 및 정당의 지형을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림3 참조)

 
ⓒ 여의도통신
 

자본주의 발달 및 세계화에 따라 시장자유적 측면이 강조되면서(이는 전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국가관여의 표현인 '규제' '분배' '복지국가' 등은 소수의 위치로 몰리고 있다. 유럽 등 복지국가들조차 이러한 흐름을 받아들여 복지규모를 줄이는 추세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참여정부가 복지를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복지수준이 서구의 복지국가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기에 이를 확충해야 한다는 논리는 '맞는 말'이지만 현재의 이념구도 속에서는 '좌파적' 혹은 '사회주의적'이라는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명박 전 시장과 한나라당 후보들의 시장자유 주장이 마치 '개인적 자유'를 포함하는 듯한 착시효과를 일으키면서 '개인주의적' 유권자 다수를 포섭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2007 대선 역시 이념대립 구도로 치러질 경우 한나라당 승리 가능성이 높다. 현재 대선구도는 이념적 프레임에 의해 각종 담론이 생산, 유지, 강화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전 시장 등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사례1] 시장자유를 주장하는 한나라당 및 한나라당 후보들에 비해 국가관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마치 반시장주의자로 인식되고 있다.

[사례2] 시장자유에 대한 주장은 개인자유까지 옹호하는 듯한 착시효과를 일으키면서 시장자유에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참여정부 및 열린우리당 그리고 대선주자들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례3]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라는 구분법 역시 이념적 대립축의 변형으로 경제발전을 주도한 산업화세력에게 다시 한국경제 재건을 맡겨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이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도에서 범여권이 '반한나라당 연대'를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소수자'를 자임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며, 결국 이러한 구도가 유지되는 한 한나라당의 승리가 예상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적용되면 대선구도 아성 흔들릴 수도

그러나 새로운 분석틀을 적용할 경우 선거구도에 변화가 예상된다. 실제로 블런델-고스초크 모델에 따른 한국의 유권자 및 정당의 지형을 예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4 참조)

 
ⓒ 여의도통신
 
이념적 대립구도 축에 '개인자유' 축을 추가해서 펼쳐보면 각 정치세력의 입장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우선 한나라당은 보수주의자로 시장의 자유에 찬성하지만 개인적 자유 옹호보다 국가규제를 선호하는 지형에 위치하게 된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역시 개인자유 측면에서는 뚜렷한 입장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국민을 계도하려는 권위주의적 요소가 다분한 지형에 위치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개인주의적 성향의 유권자 다수가 위치하고 있는 상단 지형에 적합한 정당 또는 대선후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탈정치화 되어 있는 이명박 전 시장이 이들을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범여권의 입장에서 이러한 블런델-고스초크 모델을 차용할 경우 실천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블런델-고스초크 연구보고서는?  
 
 
영어로 쓰여진 이 연구보고서의 원제는 이다. 기존의 이념적 방법론 대신 개인주의 축을 추가한 새로운 프레임을 적용, 영국 국민의 의식을 새롭게 규정한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기든스의 유명한 저작, <제3의 길>에 인용되었는데, 그 조사결과 및 분석내용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P&C리포트(pncreport.com) 홈페지에서 영어 원본을 다운받아 볼 수 있는데, 주요 목차는 다음과 같다.

-Foreword by Robert M. Worcester
-The authors
-Introduction
-Beyond Left and Right
-Voting Intentions by Ideology
-Party Vote by Ideologies
-Ideologies by Social Characteristics
-Questions by Social Characteristics
-Where do you fit?
-Appendix I: Summary Data 21 Questions
-Appendix II: Grouping by Voting Intention
-Appendix III: Group Classification
-Technical Note
-Endnotes / 여의도통신
 
 
 
 
정리=여의도통신 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 이 기사는 국내의 가장 권위 있는 정치분석기구 중 하나인 P&C글로벌네트웍스가 제공한 < P&C리포트 >를 여의도통신이 가공한 것이며 입법전문 정치주간지 <여의도통신> 6호(4월 9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07-04-1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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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혹은 지루한 스톡홀름

 

 

 

연재기사 |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 종합
 
조용한 혹은 지루한 스톡홀름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26] 스웨덴 스톡홀름 1
텍스트만보기   강병구(kbk81) 기자   
 
 
준비 없는 도착이 가져다준 당황스러움

 
▲ 도착해서 처음 본 스톡홀름 시내의 한가로운 모습.
ⓒ 강병구
 
머무는 내내 한기가 충분히 느껴지던, 바다 밑에 잠긴 공짜 방은 결국 나에게 감기 기운을 선물해 주었다. 심포니호에서 얻은 마지막 선물이랄까? 으슬으슬 추워지는 몸에 더해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도착한 스웨덴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아침시간이 지난 오전 10시쯤, 배는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몸이 괜찮은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곳에 도착함에서 오는 막연한 즐거움은 이곳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막상 배에서 내리고 보니 내 수중에 단 한 푼의 스웨덴 돈이 없는 관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배가 도착한 여객터미널에는 현금인출기도 없었고, 터미널의 위치도 스톡홀름 시내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가지고 있는 유로는 적어도 터미널의 빠져나가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다행스러운 도움을 찾을 수 있었다. 어제 심포니호에서 만난 분들과는 다른, 단체관광객들을 만나 그분들이 사용하시는 버스를 얻어탈 수 있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출발하려는 버스에 올라타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잠시 뒤 스톡홀름 시내까지 태워주시겠다고들 대답해주셔서 버스를 얻어 타게 되었다.

 
▲ 스톡홀름 중앙역의 모습, 중앙역 근처에 주요시설이 몰려있다.
ⓒ 강병구
 
하지만 현지에 와서 구하려고 한 숙소는 더 문제였다. 으슬으슬한 감기 기운이 느껴지는 상태에서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는 숙소를 찾고 싶었지만, 연고도 아무것도 없는 스톡홀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고민 끝에 택한 방법이 한국에 연락해 인터넷으로 이곳 민박집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우선 도시의 중심이라 할만한 중앙역을 찾아가 전화카드를 구매하여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한국으로의 몇 번 통화 끝에 알아본 민박집 전화번호로 한인민박집에 방을 구할 수 있었다.

통화를 해서 위치를 안내받고, 그곳까지 찾아가고 보니 어느덧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하던 상황에서 말이 통하는 주인 아주머니를 만나고 나니 마음이 푹 놓였다. 새삼 준비 없이 떠나온 내 여행이 너무 힘들게만 느껴졌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스톡홀름의 풍경

 
▲ 중앙역 앞에서 본 반가운 한국차의 모습.
ⓒ 강병구
 
짐을 풀고, 씻고, 간편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나니 본격적으로 내가 도착한 스톡홀름이란 곳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여태껏 스웨덴의 수도라는 객관적인 사실과, 어릴 적 즐기던 부르마블 게임에 등장하던 도시였다는 것 이외에 특별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오래된 도시로서 왕궁 같은 건축물이 유명하겠지만,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보게 될 다른 유럽의 오래된 도시와 특별히 다르지 않을 듯했고, 스톡홀름만의 특별한 무엇인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전지식 없는, 제목처럼 무작정하게 도착한 스톡홀름의 첫인상은 참으로 조용하고, 차분하다는 느낌이었다. 여객터미널에서 고생하다가 스톡홀름 중심가에 도착하여 시내를 돌아다니던 시간이 한참 점심때쯤인 낮 12시였다. 서울 같았다면 1시간이라는 쫓기는 시간 안에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과 시민들로 매우 분주해야 할 시간이었다.

 
▲ 중앙역 인근의 쇼핑거리의 붐비는 모습.
ⓒ 강병구
 
하지만 스톡홀름의 점심시간은 그런 종류의 분주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쫓기듯이 어딘가로 향하는 직장인들도, 정신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시민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보다는 여유롭고 느긋한 모습의 점심시간이었다.

물론 이런 느낌이 스톡홀름에서만 느낀 것은 아니다. 유럽의 도시들이 대부분 이런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스톡홀름 시내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북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만큼 백화점과 쇼핑가가 주를 이루는 중심가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행자로서 느끼는 여행지의 주된 느낌이란 것이 있다. 그런 점에서 스톡홀름의 그것은 조용함과 여유로움이었다. 러시아의 모스크바가 서울과 비슷한 분주한 느낌을 주었고,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고풍스러움을, 에스토니아의 탈린이 중세풍의 만화 같은 젊은 느낌(영화 <기사 윌리엄> 같은 느낌이랄까?)이었고, 헬싱키가 평화로움을 주었듯이 말이다.

아마도 스톡홀름에서 겪은 몇 가지 경험들이 이런 인상에 쐐기를 박았을지도 모르겠다. 스톡홀름 여행 둘째 날 국립미술관에서 점심을 먹었을 때의 일이다. 민박집에서 같이 묵고 있던 부부와 함께 그곳을 둘러보다 점심시간이 되어 미술관 안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조금은 넘은, 오후 1시가 조금 덜되었을 시간이었다.

 
▲ 너무나 여유로운 스톡홀름 모습.
ⓒ 강병구
 
같은 시각의 서울이었다면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직장으로 혹은 다른 곳으로 돌아가려고 분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식사를 여전히 여유롭게 하고 있었고, 식사를 마치고는 차 한 잔을 두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테이블도 있었다(이 테이블 사람들은 우리가 밥을 다 먹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야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급한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모두 같이 온 사람들과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식사를 하고 있었고, 시계를 보아가며 서둘러 먹는 사람은 시간도 여유로운 여행자인 우리가 유일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이 미술관 관람객일 수도 있다. 혹은 종업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건 다들 미소를 머금고 식사상대들과 이야기하는데 시끄럽지 않았으며, 그런 그들 누구도 시간에 쫓기듯 먹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다음날 시내의 다른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유롭다 못해 지루하다면?

 
▲ 가장 번화한 세르옐 광장의 붐비는 모습 - 이 날 저녁 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었을까?
ⓒ 강병구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른만 못한 것인지 정신없는 한국인의 삶에 너무 익숙한 때문이었는지, 너무나 조용하고 여유로운 스톡홀름의 풍경은 차츰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지루하다 못해 신물이 났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그것도 3일 만에 말이다.

술을 좋아하고 밤에 노는 전형적인 한국인으로서, 황금 같은 주말 저녁 시내중심가 술집도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열려있는 곳이 눈 씻고 찾기 힘든 점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 민박집에 같이 머물던 다큐멘터리 촬영팀 형님들과 함께 술을 한잔 먹으로 시내 중심가로 나왔지만, 밤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임에도 시내에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여행서에 소개된 몇 안되는 술집들도 한산하거나 영업이 끝났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주말저녁 술도 안 마신다는 건가? 그런 것에 비하면 새벽 3시까지 운행하는 지하철은 너무 생뚱맞았다.

민박집이 있던 곳은 시스타(Kista)라는 스톡홀름 외각의 신도시였다. 그곳에 위치한 30년된 아파트가 민박집이었는데, 어찌나 동네가 조용한지 조금 늦은 시각 길거리에서 떠들기라도 하면 주민들이 밖을 내다볼 지경이었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스톡홀름. 마음 한 쪽에서는 이런 곳에서 편히 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지만, 다른 한편 이런 곳에서 살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무래도 나에겐 스톡홀름에 살기엔 부적당한, 음주가무를 즐기는 동이족의 피가 너무 많은 듯했다.

 
  [여행팁 19] 스톡홀름에서  
 
 
 
▲ 너무나 조용했던 민박집 아파트 모습
ⓒ강병구
작년 5월 필자가 도착했을 당시 스톡홀름의 한인민박은 두 곳이 있었다. 사전정보 없이 유스호스텔 숙박을 생각하고 도착한 곳이라 한인민박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행에 따른 피치 못 할 사정으로 급히 한국에 연락을 하면서까지 알아보니 한인민박이 있기는 있었다.

혹여 스톡홀름을 가시려는데 한인민박의 존재를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지 몰라서 필자가 묵었던 민박의 홈피 주소를 남긴다. 민박집은 깔끔했고 머물기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필자가 있었던 기간이 비수기라 성수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한인 아주머니와 스웨덴인이신 아저씨 두 분 다 매우 친절하셨고, 한국말을 잘하는 아들분이 인상적이었다.

민박집 홈페이지 : http://www.stockholmminbak.se

환전에 관한 팁 : 유로권을 여행하다 북유럽에 와서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점이 환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편하게 유로가 통용되던 곳을 여행하다가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덴마크에 도착하면 환전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또 나중에 소개할 비유로권 동유럽과는 달리 시내에서 유로가 통용이 거의 되지 않는다. 유로로 지불하려고 하면 환전소에서 바꿔오라고 한다.

시기마다 환율이 어떻게 다를지 모르니, 북유럽에서 쓸 돈을 모두 미리 환전할 필요는 없지만, 도착해서 수고롭지 않을 정도의 돈은 미리 환전해오자. 적어도 교통비를 지불할 50유로 안팎의 돈은 미리 환전해 오는 것이 좋다.

그리고 동유럽과 또 다른 점은 북유럽 화폐가 남아도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동유럽화폐가 남으면 서유럽에서는 거의 재환전이 불가능한 것에 비해, 북유럽 화폐는 그럴 걱정은 없으니 남는다고 다 쓰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환전을 여러 번 하는 것에 따른 손해는 있지만 말이다. / 강병구
 
 
 
 
개인적인 사정으로 예고된 날짜에 기사를 올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지난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4월 16일(월요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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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취재 결과] 은행 업무시간 단축, 금융노조의 헛다리

단지 흥미로운 글

 

 

댓글취재 결과] 은행 업무시간 단축, 금융노조의 헛다리

 

 

이 글은 오늘 오전에 올린 글

 

[댓글취재] 다른 나라 은행, 언제 끝나나요? [블로거 뉴스] [블로그 글 보기]

 

의 후속기사이며 결론입니다.

 

 

 

 

불행의 시작 - 그들만의 발표

 

 

 

이 발표는 어제와 오늘, 인터넷을 온통 화풀이 장소로 사용해도 될만큼 많은 누리꾼(네티즌)들의 분노를 끄집어냈고, 그 결과는 수많은 댓글과 토론이 증명해준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이들의 주장을 "냉철하게" 듣고 싶었고, "사실"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의 은행에 대한 지식은 미천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세계의 은행이 몇 시에 문을 열고 닫는지, 주말에는 일을 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했다.

 

 

댓글 취재 - 인터넷의 힘

 

기존에 다른 분들의 댓글취재를 익히 보아왔던터라, 오늘 아침 무심코 댓글 취재 제안을 했고, 그 글이 다음 메인에 걸리면서, 정말이지 나는 하룻동안 (지금 이 시간까지도) 엄청나게 많은 취재원들의 홍수속에 빠져서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이 글은 전세계에서 댓글을 달아주시거나 "마음껏" 비판해주신 모든 누리꾼들의 공으로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선진국은 주5일 근무제에 우리나라보다 더 빨리 은행문을 닫는다"는 금융 노조(편하게 이렇게 부르자)의 말을 믿었고, 사실은, 그들의 억울함을 좀 풀어주고 싶었다. 돈 많이 번다고 무조건 비난 받는 그들의 처지가 참 측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으니 저랬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댓글 취재 결과... 나는 어느 누리꾼보다 더 큰 화가 나고 말았다.

 

선진국의 은행 중에는 밤 늦게까지 근무하는데다 토요일과 심지어 일요일에도 일하는 은행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로 그 범위를 바꿔도 결론은 비슷했다.

 

 

 

금융노조의 보도자료 전문 소개

 

 

먼저, 각종 언론에 배포한 금융노조의 보도자료 전문을 공개한다. 이 자료는 오늘 내내 다운 사태를 빚었던 홈페이지에서 간신히 건진 것이다.

 

 

 

출처: http://kfiu.inochong.org/bbsmenu/BBSView.html?SID=9&BID=612

 

은행창구 영업시간 단축과 관련한 금융노조 최초의 보도자료입니다.


금융노조, 은행창구 영업시간 1시간 단축 해도 고객불편 최소화
     -‘극심한 노동강도’, ‘최악의 퇴근시간’ 줄여보자는 취지
     -법정 기준근로시간은 변동 없어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 김동만(金東萬), 이하 금융노조)은 올해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은행 창구영업 마감시간을 현재 오후 4시30분에서 오후 3시30분으로 1시간을 앞당기는 ‘창구영업시간 단축’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경우 영업시간 이후에도 창구 마감업무와 함께 고객관리, 마케팅 활동 등 영업시간외 연장 근로가 이뤄지고 있는데, 창구영업시간을 단축시켜 실제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다소나마 완화시켜보자는 취지이다.


■ 창구 영업시간 단축요구 배경


● 금융노조가 은행 창구영업시간 단축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현재 은행간 과당경쟁으로 인해 은행원들의 노동강도가 살인적일 정도로 극심하고 과로사의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어 일선 현업의 요구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대주주 (주요 시중은행의 외국자본 지분율 76%이상)를 위한 단기 업적주의와 실적강요를 동반한 성과주의 문화의 확산, 여기에 더해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스톡옵션도 노동강도를 부채질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 금융권에서는 극심한 노동강도를 줄이고 평균 밤 10~11시에 퇴근하는 최악의 근무시간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왔다. △퇴근시간 정상화 운동△ 대규모 비정규직으로 대체된 적정인력의 유지 △ 중식시간 동시사용 △업무프로세스 개선 △ 평가제도의 공정성 등이 그것인데 실효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실효성이 가장 큰 ‘창구영업시간 단축’을 정식으로 제기하게 된 것이다.


■ 창구 영업시간 단축의 필요성 및 가능성


●  금융노조가 지난해 금융권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현재의 노동강도를 외환위기 이전시기와 비교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7.1%가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노동강도가 강화되었다고 답했으며, 노동강도가 강화된 이유에 대해서는 업무량 과다가 61.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노동강도가 극심해지면서 최근 한 은행에서 1년에 10여명이상 과로사로 숨지는 사례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 또한 금융노조의 실태조사 결과 주5일노동제 실시이후에도 월간 휴일근무 일수 2일이상인 사례가 75.9%, 주당 초과근로시간도 15시간 이상이 31%로 제일 많이 나타났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평균 저녁 10 에 퇴근하는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 반면에 창구영업시간을 단축한다해도 영업력 저하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금융노조의 판단이다.  최근 외환거래 시간이 종전 오후 4시에서 오후 3시로 단축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자동화 기기 이용[ 인터넷 41.5%, CD/ATM기 24.6%, 텔레뱅킹 11.2%, 창구 22.7%]이 확산돼 은행 전체업무 중 내점 고객에 대한 창구응대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어 창구 영업시간 단축에 대한 현실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또한 외환거래 시간이 종전 오후 4시에서 오후3시로 단축하여 시행됨에 따라 대기업이나 큰 기관들 역시 외환으로 인한 은행거래에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사용자 측으로서는 직원의 근무시간 중 마케팅 활동 등에 보다 많은 업무가 할애될 수 있어 은행 경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 무엇보다도 일본(오후 3시 마감), 캐나다(오후 3시 마감), 영국(오후 3시30분 마감)의 사례처럼 해외 선진국에서도 영업시간 단축이 확대되고 있는 점도 설득력이 있다.


■ 창구영업시간 단축에 따른 대고객 불편 최소화 관건


● 하지만 창구영업시간 단축에 따른 대고객 불편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최대의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금융노조는 다양한 대안을 사용자측에 요구하고 대고객 대국민 설득에 나설 예정이다. 2002년 은행영업업무의 주5일제 시행도 초기의 우려보다는 정착단계에서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우선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자동화기기의 확산 및 수수료 인하 요구이다. 은행창구영업시간 단축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자동화기기 이용율이 높아지는 추세에 맞추고, 자동화기기 이용에 따른 수수료 인하도 검토해야할 대상이다.


● 무엇보다 창구영업시간 1시간단축은 “법정 기준근로시간단축”이나 일부 언론에 보도된 “임단협 협상에 유리한 카드 운운”과는 전혀 무관하다. 창구영업마감 시간 단축에 따른 사용자의 인건비 부담 상승 압력은 거의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핵심적인 관건은 최악의 퇴근시간을 줄이고 업무과정 및 평가제도 개선 등의 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 향후 어떻게 추진하나


● 금융노조는 36개 금융기관 노사가 공동으로 산별중앙교섭을 진행한다. 금융노조는 2007년 산별중앙교섭 단체협약 요구안을 금융기관별 지부대표자 회의를 통해 심의 의결했으며 4월 26일 개최예정인 중앙위원회를 통해 최종확정된다.


● 최종 확정된 요구안을 4월말에 사용자측에 제시하면 5월중순경 본격적인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이 안건이 다뤄질 예정이다. 구체적인 시행시기와 방법은 산별중앙교섭 종료 후 각 금융기관별 보충교섭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금융노조는 2007년 산별중앙교섭 요구안중 그 어느때보다 이 사안을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끝)

 

 

 

 

 

 

그들의 약삭빠른 <선진국 인용> - 주말에도 영업하는 선진국은 뒤로 숨기고?

 

 

● 무엇보다도 일본(오후 3시 마감), 캐나다(오후 3시 마감), 영국(오후 3시30분 마감)의 사례처럼 해외 선진국에서도 영업시간 단축이 확대되고 있는 점도 설득력이 있다.

 

우매한 국민들이 일순간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던, 위 문장은...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들은 댓글취재에서 보듯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이 평일에도 늦게까지 하는 영업을 한다든지, 오히려 주말까지 영업을 하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숨겼다.

 

댓글의 통계를 어떻게 낼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은 <평균값>을 내보기로 했다. 각 나라별로 시작시각과 끝시각을 적고 그 개수만큼 나누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렇게 해놓고보니..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8:43분에 미국의 은행이 연다는 뜻이 아니라, 다 합해서 나누어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뜻임)

 

 

구분

여는시각(평균)

닫는시각(평균)

토요일 영업할경우
닫는시각(평균)

비고

미국

08:43

오후 5:32

오후 1:46

지역에 따라 다름

일본

09:00

오후 3시

영업안함

우리나라 금융노조가 모델로 삼는 곳

캐나다

08:54

오후 4:11

오후 3:00

일에 따라서 영업 시간이 탄력적인 곳도 있음

유럽

09:26

오후 4:31

12:00 (거의 안함)

국가별로 다름

호주

09:15

오후 4:34

 

지역에 따라 다름

뉴질랜드

09:00

오후 4:30

오후 1:30

지역에 따라 다름

중국

09:08

오후 4:48

오후 12:50

지역에 따라 다름

한국
(현행)

09:30

오후 4:30

영업 안함

 
 

 ※위의 조사결과는 누리꾼들의 댓글의 시작시각의 평군값, 끝나는 시각의 평균 값을 계산한 것으로, 절대적인 평균값은 아니나, 대체로 우리나라 은행의 업무 시간이 선진국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나타나는데는 충분하다.

 

 

금융노조는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보다 적게 영업하는 <일본>을 앞장세웠고, 캐나다나 영국의 경우는 <일부 은행>이라는 전제를 달지 않았다.

 

미국 등지의 은행들이 주말에도 영업을 하도록 방침을 정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주 5일제가 선진국의 지름길>이라는 식으로 "우매한 백성"들을 가르치던 시기에 일어난 것이다.

 

 

 

[관련기사 1] KOTRA 무역투자정보포탈 글로벌 윈도우 2002.9.12 (박동욱)

호주 은행들 주6일 근무 시작 - Westpac은행, 시범실시후 전지역 확대

 

[관련기사 2]

미국 은행들 ‘주7일 영업’ 확산 - 마켓·오피스 빌딩가서 일요근무 

국정홍보처. 2003.10.06  
 

 

 

<누리꾼들의 소중한 댓글들 - 계속 덧붙여지고 있음>

 

가장 최근 댓글 정리는 http://blog.daum.net/wwwhangulo/4476115 를 참조하세요.

 

[미국 중부] 동글이님 여긴 미국 중부인데 chase 은행 lobby는 윗분이 말한 시간대로 열고 drive-up 은 7시30분(AM)에 여네요.

 

[미국] 웅가이야님 미국최대은행이자, 세계최대 은행 중 하나인 Bank of America는 창구의 경우 오전 9시 에 열어서 오후 6시에 닫으며, 토요일에도 오후 1시까지 창구를 엽니다. 창구직원은 대부분 높 은 의자에 거의 걸터앉아서 근무하구요

 

[미국 동부 뉴욕] 허현진님 commerce bank 일요일 오후4시까지 합니다. 그리고 bank of america나 city bank등 미국 은행들 문닫는 시간이 각각 다릅니다. 그만큼 요일별로 시람 많이 오는것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지요. 거의 5-6시 기본이고 빠르더라도 4시이전은 못본듯하네요

 

[미국] 박영근님 미국은행들의 업무시간은 평일에는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이고 주말에는 토요일은 오전9시부터 오후1시까지 업무

 

[미국] 블루엔젤님 우리집 앞에 있는 Bank of America는 아침 8시에 열어서 7시에 닫습니다.. 텔러들은 모두모두 서서....일을 하지요....  

 

[미국] Byoungjin Kim님 미국 애리조나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주로 이용하는 미국에서 두,세번째로 크다는 Wells Fargo 은행은 식품점안에 있는 지점은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열고요. 단독 건물로 있는 지 점은 5시에 닫는 곳도 있지만 금요일은 6시까지 열고 어떤 지점은 토요일도 오후 5시까지...

 

[미국 하와이] 마키키님 저는 하와이 사는데 이곳은 은행 건물에서는 오전 9시 부터 오후 5시 까지 마감하지만 대형 마트에도 은행 창구를 설치해서 저녁 7시에 닫습니다... 한마디로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수 있도록 되어있지요. 문닫는 시간두 모두 같지않고 탄력적으루 조정하구여...

 

[미국 중부] 윤성재님 미국 중부 캔사스 시티 Bank of america 4724 West 60th Street Mission, KS 66205 Tel)816.979.8247 Lobby Hours(창구직) Monday~Friday: 9-5 Saturday: 9-12 Sunday: Closed Drive Up Hours: Monday~Friday: 8-6 Saturday: 8-12 Sunday

 

[미국 에너하임] JIN님 Bank of America는 창구의 경우 오전 9시 에 열어서 오후 6시에 닫으며, 토요일에도 오후 1시까지 창구를 엽니다.  높은의자에 걸터 앉아 근무합니다. Wells Fargo 은행은 마트안에 있는 지점은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열고요. 단독 건물로 있는 지점은 6시까지 열고 어떤 지점은 토요일도 오후 5시까지 엽니다. 마트안 지점은 보통의 낮은 의자에 앉아 근무하고, 단독건물점은 서서 근무합니다.

 

[미국] JSland님  미국은 지역에 따라 은행의 개.폐점 시간이 약간씩 다르군요. 미국 북가주의 대도시는 남가주의 LA와 같이 아침 9시에 개점하여 오후 6시까지 이고, 토요일 은 오전 9시에서 부터 오후 2시까지 입니다. 미국은 대도시 혹은 활발한 상권지역은 늦게까지 열고 그렇지 못한  ..

 

[미국 캘리포니아] 태평양님  캘리포니아 우리 동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는 평일은 5시? 6시?까지, 토요일은 1시까지 하구요 / 웰스파고 뱅크는 토요일도 4시까지 영업합니다

 

[미국 중부] 바다님  미국 중부에서 사업을하고있는데요 제가거래하는 두곳중 하나인Bank of America는오전9~오후4시까지.Arvest Bank는오전7시~오후8시까지영업하고 은행간 경쟁이심하여 영업시간을늘려 가는 추세입니다.물론 토요일오전은 영업을 다합니다. 

 

[미국] 쟈니윤님  미국 휴스턴입니다. Lobby Hours(창구직) Monday~Friday: 9-5 Saturday: 9-2 Sunday: Closed Drive Up Hours: Monday~Friday: 7-7 Saturday: 7-5 Sunday : closed 창구내에서는 서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은행은 woodforest national bank 입니다.  

[미국] 유미선님 조지아주입니다. Bank of America는 월요일에서 목요일은 9시부터 4시까지, 금요일은 9시에서 6시하구, 토요일은 9시부터 1시까지 입니다. 일요일은 닫구요. 하지만, 자동 이체가능한 기계가 은행앞에 있어서 언제든지 돈 또는 수표(check)를 입금할수 있음. 

 

[미국] 기쁨가득한 나님  여기 미국 LA입니다. 미국 서부 지역의 큰 은행중 하나인 Bank of America 아침 9시 오픈해 서 저녁 6시 close입니다. 물론 토요일 근무하구요. 9시 부터 2시까지.. 한국계 은행은 토요일 에 1시에 문닫습니다. 아 평일에도 5시인것 같내요...5시에 본문 닫고 6시까지 .. 

 

[미국] 꼬마민우님  wisconsin(위스콘신)주입니다. Union Credit Card 은행은 본사는 아침 8시에 열어서 오후 5시 30분에 닫더군요. 토요근무에는 오후 3시까진가 합니다. 조금 작은 곳은 30분에서 1시 간 일찍 닫는 거 같지만 대부분 늦게오는 손님들덕분에 본사와 비스므레 활동하는...

 

[미국] Andy님 예전에 미국에 살때 보면 은행 평일은 오후 5시까지 근무하져. 토요일?..토요일도 오후1시까지는 근무하져. 주5일제.. 미국 알다시피 다 합니다. 안하는 일반회사는 없죠 하지만 은행은 주5일 근무안합니다.
토요일오전까지는 다 합니다..미국시스템 좋다면서 많이들 가져옵니다만 이런건 왜 안가져오는지 모르겠네요

 

[미국] sss 님 미국 와싱턴 D.C. 바로 밑의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평일에는 4시 혹은 5시까지 은행영업합니다. 특히 Walmart 나 Giant 안의 은행 (체비체이스)은 저녁 9시까지 하는데도 있습니다. 또 모든 은행들이 토요일에 오후 1시까지는 문엽니다.

 

 

 

[일본] 김상대님 일본은 오전9시부터 오후3시일겁니다. 제가 오사카살때 그랬던것 같은데...한국보단 빨리 문닫습니다.

 

[일본 도쿄] 신동석님 도쿄입니다. 9시에 오픈해서 오후 3시에 모든 창구영업이 끝납니다. 물론 주 5일제입니다.

 

[일본] suzie님 일본은 평일에는 3시에 문을 닫지만 토요일 오전에는 은행CD기를 사용해도 수수료가 붙지않는답니다..

 

[일본] n4584님 09시부터 15시까지 영업합니다. 주5일제구요..

 

 

 

[캐나다] 천하님 벤쿠버// TD는 토요일날도 하는데 우리나라 은행들은 생각머리가 썩었어. TD 구호가 일찍열고 늦게닫는건데..쯧쯧... FTA도 했는데 어디 한번 은행들 죄다 망해봐야 정신차리지  

 

[캐나다] 나도몰라님 토론토는 9시부터 오후 5시 까지 서서 일하고..또 캐나다 트러스트 은행은 밤 9시까지도 합니 다..특히나 토론토 스파다이나 차이나 타운은 늦게까지 합니다. 2교대로 돌아가면서 한다는군 요~~

 

[캐나다] 상협님 캐나다는 제가 가는 cibc의 경우 월화수는 9시에 열고 4시30분에 닫구요.. 목금은 9시에 열고 5시까지 하더군요~앞에 어떤분 말씀대로 창구직원들 서서 근무하구요..ㅋㅋ

 

[캐나다] Calvin님 제가 이용하고있는 TD Canada Trust Bank는 평일은 9시30분~20시, 토요일은 9시 ~15시까지 영업합니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4시30분까지 영업해서 과로사 일으킨다면 캐나다 은행원들은 은행원들 몽땅 과로사해서 망했겠네요.

 

[캐나다 뱅쿠버] 이경희님 제가 사는 캐나다 뱅쿠버의 TD은행은 평일은 오전 8시에 영업 시작해서 저녁 8시까지 업무를 볼수있고 토요일은 9시부터 3시까지 업무 볼수 있습니다. 캐나다와서 다른건 무지 불편한데 은 행하나는 참 맘에 들더군요. 물론 teller는 내내 서서 고객응대를 하지요. 교대로 ..

 

[캐나다] 꿈이런가님 캐나다..TD Canada Trust Bank는 평일날 8시 이후는 물론이고 토요일까지 근무하는데.. 정말 왕짜증납니다.. 

 

[캐나다] pasia님  캐나다가 3시까지? 냠냠.. 첨들어봐요. 어떤 은행들은 월-화 4시, 수-금-6시 이런식으로 주일마 다 다른 경우도 많구요, TD같은 경우에는 7-8시까지도 하고, 은행 지점마다 토요일날 여는 곳 도 꽤 됩니다. 무슨 3시.  그리고 지점마다 시간대가 많이들 달라요. 여튼 일률적으로 3시에 문닫는건 ... 음.. 

 

[캐나다] Jaelim님  캐나다-벤쿠버 다운타운의 로얄뱅크는 2개지점중 한곳은 월-금 9시-5시 근무이구요(조지아 st), 다른한곳은(Denman st) 화-토 10시-6시근무입니다. 금욜에 시간놓쳐서 이자를 물어야할 것같으면 토요일에 천천히 움직여도 괜찮으니 직장인에겐 최고이지요. 

 

[캐나다] view님 캐나다토론토입니다 은행마다,지점마다 차이가 약간씩은 있지만 아침 8시30분에 열구요. 캐나다은행은 5시쯤, 동양계은행(HSBC, TD등) 저녁7쯤에 닫습니다 목,금요일은 8~9시사이에 닫는곳도 있구요 이곳은 상가나 은행이 목,금요일은 늦게까지.. 리구 월급도 한국은행보다 적어요 제가 아는사람은 MBA출신인데 2주에 한번씩받고 급으로치면 $2,000정도(180만원) 그리고 월급제보다 시간제로 근무하는 사람이 더 많구요 요일도 합니다 차라리 직원을 더 뽑아서 교대근무하는것이 해결책이 아닐까요?

 

 

 

[유럽] 왜날봐님 유럽 대다수의 국가들은 10시에 열고 3시에 닫습니다.

 

[유럽 독일] Westend님 주거래은행이던 슈파카쎄는 월,수,금 9:30~15:00 화, 목 9:30~19:00 입니다.

 

[유럽 독일] 함스님 독일의 경우 4시 30분까지 근무합니다.. 주 5일제로.. 하지만.. 자동화기기에서는 수수료 걱정없 이 돈을 찾거나 계좌이체를 할수 있습니다... 제가 사용한건 코메르츠 방크인데.. 도이치 방크, 포스트 방크등과 연계되어 이 두 은행의 자동 화기기를 통해서도 입출금이...

 

[유럽 독일] HESTHEONE님 유럽 대부분이 무슨 3시? 다른 댓글도 여럿 달렸지만, 독일 4시30분까지 합니다

 

[유럽 독일] 모모님 코메르츠 방크입니다. 월요일(09:00-12:30, 14:00-16:00), 화요일(09:00-12:30, 14:00- 18:30), 수요일(09:00-13:00), 목요일(09:00-12:30, 14:00-18:30), 금요일(09:00-13:00) 입니다. 주말은 당연히 영업하지 않습니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오전에만 문을 열어서 

 

[유럽 독일] Min-Sun Kim님  여긴 독일이구요 작센주의 드레스덴 Deutsche Bank의 시간입니다 월,화,수: 09:30 - 13:00, 14:00 - 18:00 목: 09:30 - 13:00 , 14:00 - 19:00 금: 09:30 - 13:00 토,일:닫음 

 

[유럽 독일] ...님  여기 독일의 경우는 대도시이냐 중소도시이냐에 따라서 은행시간이 틀려집니다. 옛서독 수도였던 Bonn의 제가 거래 하는 Deutsche Bank의 경우 여기 통장뒷면에 영업시간에 의하면 월요일 : 9시~18시; 화,수 : 9시~16시 ; 목요일 : 9시 ~ 18시 ; 금요일 : 9시 ~ 15시에 영업을 합니다. 다른은행은 Spakasse도 비슷합니다. 독일도 평균적으로 대도시 제외하고 보면 빠르면 15시 30분.. 보통은 16시 30분이면 영업을 마추는 편입니다.
토요일은 아예 영업 안하고, 독일 공휴일,토,일은 무조건 은행관련 일(인터넷뱅킹도 해당) 처리 못함. 단 현금 지급기의 돈 인출은 가능함. Citybank도 비슷한편.. 제생각에는 어떤 요일은 영업을 길게 하고.. 어떤 요일은 짧게 하고 하는게 좋을 꺼 같습니다. 무조건 15시까지 영업 한다는건 좀 그런거 같습니다
 

 

[유럽 이탈리아] tango님  이탈리아는 10시 30분-12시30분 그리고 점심시간에 문닫고, 2시45분에 재오픈해서 4시15분까 지 하고 닫아요! 한국 업무시간 길긴하죠^^ 

 

[유럽 스위스] evian2님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10시-3시까지라고 하셨는데 국가별로 ca depend입니다. 스위 스는 은행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8시 반부터 4시 반까지 영업하고 토일은 휴뮤입니다. 물론 중간에 점심시간(12:00-01:00 혹은 12:30-02:00..은행마다 다 제각각)이 있어 은행 업무 보실때 점심시간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습니다만..

 

[유럽 프랑스] evian2님 프랑스는 9시-4시까지 영업하고 토,일요일은 휴무입니다. 물론 마찬가지로 점심 시간에는 업무를 볼 수 없는 곳도 있습니다. 특이하게 샹젤리제에 있는 은행(이름은 기억이 안납니다만..) 한곳만 일요일에도 오후 5시 45분까지 영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럽 프랑스] cinephile님  프랑스에서 가장 큰 두 은행 BNP와 SOCIETE GENERALE 은 지점마다 마감시 간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토요일도 오전 업무 (9시~12시) 하는 곳도 있고 평일도 (9시~18시) 까지 은행업무 볼 수 있게 2교대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오히려 반대로 고객유치...

 

[유럽 프랑스] franc-comtois님 Ca depend이란 말이 맞나보군요. BNP는 점심시간 두시간 빼먹고, 6시까지 하네 요. 점심시간에는 열려있어도 덜렁 한명밖에 없어서 세월아 네월아 기다려야 하고. populaire 나 lyonnais같은곳도 17시까지는 했었어요. 프랑쉬꽁떼 주입니다. poste같은곳은 뭐 8시에 여니까 좋기는 좋더라구요. 학교갈때 체크하고. ^^ 헌데 한시간정도 점심시간을 뚝떼먹는 게-영 맘에 안듦. 솔직히 꽁시간이 젤 남는 시간이 점심시간인데, 열려있는곳이 거의 없으니 한국식하고는 일장 일단이 있겠네요.

 

[유럽 프랑스] 미셀님 주5일 근무(월~금 또는 화~토)며, 아침 9에 시작, 4시 30분까지 은행안에 들어갈수 있으며 , 그 이후는 은행문에 닫히고 4시30 분까지 들어온 사람은 은행일 볼수 있어요. 프랑스 근무형태, 추가입니다. 낮 12:30-2:00 점심시간이며, 각 은행이 구간별 차별 운영( ~금, 화~토)으로 프랑스 국민은 거의 월~토 은행열림 혜택을 가지고 있고, 은행의 일반창구 직이 아닌 매니저(누구든지 한 매니저가 관리하겠끔 되어있음)가 되면 한 고객이 타은행으로 가면 그 이유를 해명하게끔 되어 있어 고객 써비스 정신은 여기, 한국보다 좋습니다. 반면, 이자율이 좋은 상품은 여기가 더 있으나, 수수료등 유료 써비스가 많아 아직은 은행이 고객을 우선으로 하지는 않는듯 하네요.

 

[유럽 영국] 태희님 HSBC, Lloyds, Natwest, Bank of Scotland 등등 보통 9시 30분~10시 사이에 열 어서 4시30분까지 합니다 4시부터는 손님 안받구요. 하지만 ATM기 수수료가 타 은행에서 출금 해도 24시간 전액 무료죠. 

 

[유럽 영국] ssimjul님  누가 영국 3시에 은행 마감한데? 장난하냐? 월~금 5시 마감하거 든.그리고 그 유명한 바클리뱅크나 hsbc 헐 리팍스 등등 대부분의 은행들 토욜12시나 1 시까지 영업하거든.. 아주 한가한 지역은 제외..글구 뱅 크 헐 리데이 즉 쉬는 평일 날...영업하는 은행들 ? 

 

[유럽 영국] 난나나나  영국 만체스터입니다. 대부분의 은행(HSBC, 로이드, 씨티은행...) 이 아침 9시-오후5시 30분까 지 영업하고 주말엔 쉬네요. 대신 어느 은행에서 사용하든 ATM 수수료는 무료입니다. 주말이 든, 타행카드를 쓰든 전부 수수료 면제에요. 

 

[유럽 영국] 만만세님 런던인데요. 9시부터 4시30분까지 합니다. 4시 30분부터 손님 안받고 문 걸어잠급니다. 

 

[유럽 영국] 현석님  저두 런던인데 barclays bank 같은 경우에는 5시까지영업이던데.. 게다가 토요일도 똑같이 영 업합니다 지점에 따라 일요일도 여는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유럽 영국] Joey님 영국에 살고 있습니다,, 영국은행은 거의 5시까지하구요,,, 근데 중요한건,, 5시가 되면 모두 퇴근한다는 사실이죠,,, 빨라야 8시에 퇴근하는 한국은행들,,,, 늦으면 12시,,,, 무슨차이일까요??? 만약 선진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한국은행들 3시30에 퇴근하자는 소리 안나올텐데요,,

 

 

 

[호주] 스쿠버매니아님 호주는 5시에 끝나구요~ 토요일에도 문 열어요^^

 

[호주] 재령님 호주 은행 토요일 오픈하지 않습니다. 대신 쇼핑데이인 목요일에 1시간 연장 업무 하구요. 나머 지 월화수금은 9am-4pm 이 trading hour 입니다. 다만 통장 없이 카드로만 account 운영하니 ATM 만 있으면 7days 거래가 가능한거죠.

 

[호주 시드니] tvbodaga님  호주 시드니인데요, 은행마다 조금씩 달라요,St. Geroge 은행은 월-금 9시30-저녁5시 까지이 고 요, Westpack 은행은 월-목은 9시-4시, 금요일은 9- 5시까지,ANZ 은행은 월-목 9시30 분-4 시, 금요일은 9시 30분-5시 입니다. 

 

[호주] christina ha님 현재 보통 평일에는 4시까지 합니다.ANZ, Commonwealth, Westpac, National 등등 대부분 4시까지 주중하구요 요즘은 ANZ은행이 토요일도 은행을 열고 있습니다.그래서 Commonwealth 은행도 덩달아 시행하더군요. ANZ은행은 토요일 오후 2시까지 Commonwealth는 토요일 오후 1시반까지 합니다. 단, 모든 지점은 아니고 부분적인 실행입니다. 또한 목요일 경우에도 조금씩 연장하고 있답니다. 5시까지 또는 5시 반까지..글쎄요 요즘 호주를 보면 우체국도 토요일에도 하구요 Medicare Centre도 토요일에도 한답니다. 전에는 그런것 없었죠.차츰 토요일도 은행이나 공공기관이 반나절 하더군요.그와 반대로 한국은???

 

[뉴질랜드] choi님  뉴질랜드는 09:00영업시작 오후4:30분 영업 마감합니다. 창구 직원들 서서 일하구요. 우체국은 8시30분에서 오후5시 까지 영업하고 토요일도 오후 1시30분 까지 영업합니다. 

 

[뉴질랜드] Kingmax님  뉴질랜드에서는 4시30분에 닫습니다. 사람이 많은 쇼핑몰에서는 4시 30분이후에도 OPEN하거 나 토요일에도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중국] 띵땅님 중국상하이에 있는 공상은행들은 같은 은행임에도 불구하고 문닫는 시간이 다른데 , 제일 빨리 문닫는곳은 16:30 이고,제일 늦은 곳은 17:00까지 입니다. 주말엔 15:30에 문닫는 곳도 있는데 많지는 않습니다. 아참, 문여는 시간은 8:30 또는 9:00입니다.

 

[중국] 성수님 중국,곤명(쿤밍)은 토요일,일요일도 은행문을 엽니다.왜 그런가??? [

 

[중국] 이용재님 어~근데중국은틀린거같은데 여기중국대련인데 6시에끝나고주말은4시까지하는데 주7일근무 ㅋㅋ

 

[중국 칭다오] pmc님 중국 칭다오는 평일 오후 4시 30분까지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은행의 자동입출기가 대부분 24시간 가동됩니다.

 

[중국 하남성] harambee님 저 중국(하남성 안양)에서 일하는데 애네들 말로는 5시까지 한다고 하는데 일단 들어가면 6시 넘어서도 업무 처리를 해줍니다. 한 번은 송금하는데 서류가 빠져서 6시 10분이 넘어서 송금한 적도 있습니다 

 

[중국 북경] 그날이오면님 오전 9시 영업시작.. 오후 5시에 영업을 마감한다. 토,일요일에도 정상적으로 영업! 그럼, 중국 은행원들은 언제 쉴까? 3일에 한번, 은행원끼리 타협을 해서 휴무한다. 단..개인적인 용무..예를 들자면 송금,입금,출금 그리고 각종 공공요금등..은 토,일요일에 은행에서 차질없이 볼 수가 있으나, 회사를 상대로하는 업무는 토,일요일에는 하지 않는다. (블로그 트랙백글에서 에서 한글로가 옮겨옮니다)

 

[중국 광주] 이동주님 중국 광주 입니다 은행오전 9시에 열고 오후 5시에 문닫습니다 물론 5시전에 들어가면 업무 마 칠수 있습니다 연중무휴이고(구정날도 업무) 토요일 일요일은 지출은 가능한데 입금 불가능 합니다 VIP고객아니면 불편한 점은 있습니다 

 

[중국] 이세영님 중국은 일요일날도 문여는데 아침9시열어서 4시까지 영업하는데.. 우리나라 은행은 배가 불렀구만 ... 수수료도 엄청비싸고 일찍 끝나고 법이 인정해준 공시적인 고리대금 업자들.. 이기회에 외국은행으로 갈아 타버려~

 

 

[홍콩] chrh81님 홍콩: 은행영업창구 근무시간 월-금요일 09:30-16:30 / 토요일 09:30-13:00  /일요일, 공휴일 휴무

 

[홍콩] evian2님 월-금요일 09:30-16:30 토요일 09:30-13:00 , 일요일-공휴일은 휴무로 알고 있습니다.

 

[홍콩] 전직 은행원 님 홍콩같은 곳은 우리처럼 주 5일제는 커녕 아직도 격주근무제도 안하고 매주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출근합니다. 그것도 세계적인 은행인 HSBC, Standard chartered 등...모두가 경영 다각화, 세계일류가 되려고 새벽2시 일하는 데 참으로 우리나라 현실이 안타깝군요.이러다가 선진국 문턱에서 낙오되는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모두들 정신차립시다.

 

 

 

[싱가폴] 한창훈님  싱가폴에서 근무중인데요 여기 은행은 월-금: 오전 9:30-오후 3:30 까지 영업 근데 다른점은 토요일에 오전: 9:30-오후 12:30 까지 은행 영업시간입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을거 같네요. 

 

[필리핀] lucas님 필리핀 은행은 오전 9시에 문열고, 오후 3시에 문닫는 형태하고, 오전11시에 문열고 오후 저녁 7시에 문닫는 형태 2가지로 나누어 진답니다. 한국도 이렇게 2개 형태로 나누라 하세요 ^^* 아 마 은행원들 엄청 좋아? 할꺼예요 ^^*

 

[태국] iamtheone님 태국은 3시 반에 끝나는데 왕짜증 학교갔다오면 문닫아 있고 완전 학생을 *무시하나

 

[스웨덴] singles님 스웨덴.. 10시 30분에 열어서 2시 30분에 닫습니다.. SEB.. 나도 취직하고 싶다..

 

[UAE (아랍에미리트)] 소금인형님 여긴 아랍권이라 금요일이 휴일이고 토요일이 반공일인데. 일요일부터 목요일까 지는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토요일은 아침 8시부터 정오까지입니다. 다른 공공기관이 주 5일(일~목)에 점심먹지 않고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인 것을 감안하면...

 

[헝가리] lovehungary님  헝가리에서는 은행들이 8시부터 일을 합니다. 그리고 오후에 일을 마치는 시간은 월요일부터 목요일 까지는 4시 30분까지 열고 금요일에는 3시까지 엽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특별한 은행만 영업을하지만 대부분은 문을 닫습니다  

 

[그리스] 하늘호수  그리스의 아테네시에 있는 은행들은 3시에 모두 닫습니다. 사실상 2시반부터는 업무보기가 어 렵죠. 단 아침에 여는 시간이 7시반이던가 7시던가입니다. 

 

[페루] 난 나야...님 제가 페루에 있을때는 토요일도 9시인가? 그때부터 1시까지 영업을 하는 걸 봤습니다.. Interbank라는 은행은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영업하는 것도 봤습니다..

 

[미얀마] 바보새님  미얀마 11시에 문열고 30분부터 커피마시고 국수-늦은 아침 -먹다 12시 점심먹고 2시면 끝나는 데.... 월급15000원 지금 10 올라서 150000원... 

 

[파나마] Daniel님  파나마에서는 오전 8시 에서 오후 3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점심 시간이 없다. 그러나 토요일은 오전 8시 부터 오후 1시까지 문을 연다. 제발 정신좀 차리고 일에 열중을 하십시요.. 토요일에 쉬는 것 만으로도 정말 귀족 직업인데 어찌 더 요구를 한단 말입니까... 

 

[말레이시아] klgh님  여기 말레이시아인데요.. 9시에 시작해서.. 3시에 마칩니다. 그런데 ATM은 365일 무료입니다. 한국도 3시 30분에 끝내고 싶으면.. 9시에 시작해서.. ATM 365일 무료가 되어야합니다. 같은은 행에서 ATM 뽑는데로 왜 수수료가 붙는지.. 완전 짱나죠.. 

 

[브라질] sssamba님 브라질 거의 모든 은행 업무 시간 아래와 같음. 오전 10~오후 4시 토요일, 공휴일 모두 휴업. 고객에 대한 서비스 한국과 비교 형편 없이 낮음.

 

[과테말라] 빠블로 님 과테말라입니다. 지점마다 다른데요. 일반적으로 개장은 9시에 하구요 오후 6시까지 열어 놓는 지점도 있구요. 7시까지 고객을 맞는 곳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마트와 같은 할인마트에도 지점들이 들어 있는 곳이 많은데요, 여기는 저녁 8시까지 열어 놓습니다. 할인마트에 들어 있는 지점들은 토요일은 물론이고 일요일에도 정상영업합니다. 총기강도가 난무하는 나라라서 가급적 은행에 가지 않지만 꼭 가야하는 경우에는 할인마트 지점에 갑니다. 사람들로 붐벼서 조금은 더 안전하거든요.

 

[스페인] pauljkt 님 스페인 은행 업무시간 AM 8시 30분부터 PM 2시까지... 4월부터 9월까지 토요일 업무 .... 10월부터 3월까지 토요일 업무없음....바라는게 무었이요?...그래도 스페인에사는 인간들은 잘살고있음....

 

 

 

 

힘든 것은 잘 안다... 하지만, 방법이 틀렸다

 

아직도 금융노조는 자신들이 왜 이렇게 온국민의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도 나름대로 아주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이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해결하고 집을 나와서 하루종일 화장실도 못갈 정도로 시달리다가, 집에가면 밤 11시가 넘는 생활... 얼마나 비참하고 참담하겠는가. 아이들이 깨어 있는 것은 주말에나 볼 수 있고, 매일 매일 왜 사는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남들도 다 똑같다는 것이다. 아니, 남들은 그들이 받는 돈의 반도 못받고도 그 일을 묵묵히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무작정 욕을 먹는 이유를 모를것이다. 그것은 "은행"이란 곳이 우리나라에서는 고액연봉을 받는 선망의 직장이기 때문이다.

 

우스개소리로, 대기업 사원과 은행원, 공무원은 당연한 불평을 해도 인터넷에서 무조건 욕을 먹게 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귀족노조, 고액연봉, 철밥통... 이런 단어 몇개면 모든 논리는 사라진다. 길가던 사람들은 기꺼이 돌을 집어들고 그들에게 돌을 던진다. 언제나 '되고싶은 선망의 대상'이고, '내가 오르지 못해서 참으로 배아픈데' 그 좋은 곳에서 불평을 하다니... 용서가 될리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면 관둬! 내가 해줄게!"

 

이쯤되면... "막가자는 이야기"밖에 안된다. 논리는 안드로메다로 사라지고, 마치 명왕성이 과학 교과서에서 존재를 감추듯이 '토론'의 문화는 태양계 밖으로 사라진다.

 

그런데도, 이번에 금융권 노조는 불을 지고서 화약에 뛰어들었다. 나는 그 분들이 세상 물정을 몰랐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욕을 먹더라도 이슈를 만드려는 "네거티브 전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앞서갔나?)

 

왜 선진국의 영업시간만 가지고 비교를 하냐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영업시간만 가지고서 "선진국은 원래 일찍 끝난다"라고 주장한 것은 노조측이 먼저였다. 외국과는 업무 스타일도 다르고 (서서 근무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네티즌이 많았다), 2교대 3교대를 하면서 늦게까지 근무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부분은 왜 쏙 숨겼을까? 국민은 2교대, 3교대를 하면서라도 더 늦게까지 은행 업무를 하는 은행을 원한다는 것... 이게 진실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임금의 조정은 감수할 수 있을까?)

 

 

 

만약, 이랬다면 국민들은 박수를 쳤을 것이다

 

위의 <보도자료>를 잘 살펴보면, 그들의 처지가 이해는 간다.

 

금융권에서는 극심한 노동강도를 줄이고 평균 밤 10~11시에 퇴근하는 최악의 근무시간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왔다.

△퇴근시간 정상화 운동

△ 대규모 비정규직으로 대체된 적정인력의 유지

△ 중식시간 동시사용

△업무프로세스 개선

△ 평가제도의 공정성 등이 그것인데 실효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실효성이 가장 큰 ‘창구영업시간 단축’을 정식으로 제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동시에 은행을 문을 닫는 '선진국형 서비스'는 <동전을 저금하려면 쫓아내는 은행> 만큼이나 우리에게 낯선 문화다.  퇴근시간 정상화 운동도, 매일 매일 결산을 해야 하는 은행으로서는 결산을 끝내지 않고 퇴근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1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 은행을 먹여 살리는 <고객>을 한 시간 먼저 내 쫓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그들의 논리 전개를 보면... 불쌍하기까지 하다. 은행은 서비스업인데, "서비스"를 포기하겠다는 이상한 논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고라에 실린 <어느 은행원의 고백>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 주장은 은행원들도 참으로 미안한 주장이었다. 노동조합의 오버였는지도 모르겠다.

 

● 우선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자동화기기의 확산 및 수수료 인하 요구이다. 은행창구영업시간 단축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자동화기기 이용율이 높아지는 추세에 맞추고, 자동화기기 이용에 따른 수수료 인하도 검토해야할 대상이다.

 

만약, 이들이 <은행 창구 업무시간 1시간 단축> 보다 위에서 말하듯이 <수수료를 제대로 인하하라>고 외치면서 협상에 임했더라면, 온국민은 금융 노조를 향해 꽃을 던졌을 것이다. 솔직히, 얼마전에 금융권은 선심이나 쓰듯이 은행 수수료를 인하했지만, 그것은 "눈가리고 아웅" 식이었다. 요즘 유행어로 말하자면 "같기도"였다. (이건 수수료를 내린 것도 아니고 올린 것도 아니여!)

 

이 사실을 가장 잘 아는 금융 노조가 자신들의 자리를 걸면서라도 투쟁에 임해서 수수료를 대폭 낮추었다면? 아마도 그들이 격무에 시달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국민은 촛불 시위라도 벌여서 "은행원의 수를 늘려라"고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이 아름다운 일이 언제나 일어날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결과는... 신문에서조차 차가운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 관련기사 : <연합시론> 은행 문을 일찍 닫겠다니 제정신인가  (2007.4.9. 연합뉴스)

 

 

 

그들이 1시간 단축을 주장할 때 - 인천항 수협은행은 토요일 정상영업, 평일 6시까지 영업 선언

 

하지만, 며칠전인 2007년 4월 5일.. 별로 주목받지 못한 뉴스 하나가 지나갔다. 너무 아름다운 뉴스라서 전문을 이곳에 옮겨 싣는다.

 

 

 

해양 수산부 뉴스 2007.4.5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수협은행 휴일에도 영업
이용객 편의 위해 토요일에도 정상영업, 평일도 오후 6시까지 연장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에 개설된 수협은행 전경


인천항 국제여객터미널 내 수협은행이 휴무일인 토요일에도 정상 영업한다.

 

인천항만공사(IPA.사장 서정호)와 수협은행은 업무 협의를 통해 국제여객터미널을 이용하는 국외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4월7일부터 매주 토요일에도 직원을 상주시켜 정상 영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현재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에는 대인훼리(대련)와 범영훼리(영구), 한중훼리(연대) 등 3개 항로와 제2국제여객터미널의 연운항훼리(연운항), 위동해운(위해, 청도) 3개 항로 등이 토요일에 취항하고 있다. 일요일 취항 선박은 없다.

 

토요일에 많은 항로가 운영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1,2국제여객터미널 내에 있는 은행들은 금융권 휴무일인 토요일마다 문을 닫아 주말에 중국행 카페리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큰 불편을 겪어왔다.

 

인천항만공사는 고객들이 환전 및 금융 업무에 큰 불편을 겪자 최근 제1터미널의 입주 은행을 새롭게 선정하면서 은행 측에 토요일 정상 영업을 요구했고, 수협은행이 이를 받아 들여 4월7일부터 토요 영업을 시작하게 됐다.

 

또한 오후 늦게 출항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평일 영업시간도 오후 6시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전에는 일반 은행처럼 오후 4시30분에 영업을 종료했으나 오후 7시경 출항하는 카페리 고객들의 불편을 덜기 위해 영업시간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인천항만공사는 지난해 3월 제2국제여객터미널에 수협은행을 신규 유치해 고객들의 불편을 줄인데 이어 토요 정상 영업을 실시해 보다 업그레이드된 고객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인천항만공사는 이외에도 올 6월까지 총 23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여객터미널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는 등 고객 편의를 최선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관련문의 : 김순철 내항운영팀 과장(032-890-8232)

 

인천항의 미래! 인천항만공사가 약속드립니다. 
게시일 2007-04-05 21:38:00.0 

 

 

 

이 분들, 누가 상 안주나? 혹시 인청항에 가시는 분들 계시면 수협에 가셔서 팍팍 환전하시길! 이런 은행이 <정상> 아닐까? (이 분들, 과로사 안하시도록 충분히 교대 근무를 부탁드린다)

 

토요일 은행 영업을 안해서 얼마나 불편해졌는데... 그런 불편이 없다고 단정하는 그들에게 이 아름다운 기사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창구시간 한 시간 줄여도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단정을 하는 논리를 계속 펴면... 아마 국민들의 "독한 모습"을 보게 될런지도 모른다.

 

선진국을 무/조/건 따라해야 한다고 믿는 분들은 아래의 참고글을 반드시 밑줄 쳐가면서 읽어보시길...

 


▶ 참고기사

금융감독 위원회 금융지킴이 - 한국과 미국의 은행, 다른 것과 틀린 것에 대하여  (2006.12.7)

 

 

 

은행 마감 시간이 갖는 의미

 

은행 마감 시간은 단순히 "은행의 문을 닫고 마감을 시작하는" 시간의 시작의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다. (제발... 은행 문 닫아도 안에서 일하는거 다 아니까 제발 "문 닫으면 집에 가는 줄 아나?" 는 식의 비아냥은 그만해주길!)

 

은행 마감은,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겐 아슬아슬하고 가슴떨리는 순간일 수도 있고, 파산을 눈앞에 둔 가장이 마지막으로 통장 정리를 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누구에겐 처음 집을 사기 위해서 중도금을 인출하는 순간일 수도 있고, 처음으로 전세 대출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순간일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이에게는 복권에 당첨되고도 당청금을 못받는 갈림길의 시간일 수도 있다.

 

그냥 "한 시간 빠르나 마나 한" 시간이 아니다. 그렇게 쉬운 시간들이 아니란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은행도 보통 회사처럼 6시까지 해주었으면.. 토요일과 일요일에 좀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얼마나 큰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줄인다는 말을 하고 <과로사>라는 단어를 내놓는가? 정말 <뇌사>할 지경이다.

 

 

그들의 변화를 기다려본다

 

하루에 몇시간 잠도 못자고 박봉에 시달리는 우리네 근로자들은 수없이 많다. 은행원 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도 야근수당 한 푼 못받는 사람도 정말 많다. 그러니, 좀 그냥 배부른 투정처럼 들릴만한 소리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또 반론에 "니들 돈 못버는게 자랑이냐?" 고 할거다. 하두 많이 봐서 잘 알지만.. 제발.. 자신들의 인격을 깎아먹는 이런 댓글은 화장실 휴지에 쓰고 변기에 버리시길!)

 

그런 소리는 안들리게 작게 하고, 쇼맨쉽이라도 발휘해서 국민들이 박수를 칠만한 여러가지 일을 해보라는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은행원은 어떤 불평을 해도 국민이 곧이 듣지를 않는다.

 

일이 너무 많다면, 인원을 조금 더 늘리는 대신에 약간의 임금이나 복지혜택을 내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선진국> 처럼 교대 근무를 한다든지, 전체적인 일의 양을 줄이든지 하면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 "왜 내가 월급을 깎여야 하는가?" 라고 외치면, 다시 원점이 되고 만다. 어느 은행의 '사측'이 무조건 인원을 늘려주겠는가? 그리고, 이미 말했듯이, 은행은 우리나라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직종이다.

 

막말로 <과로사하는 것보다 월급 몇십만원 덜 받는게 더 낫지 않나?>. 남의 말이라고 쉽게 한다고 하겠지만, 나는 철저히 <덜 일하면 덜 버는> 일을 몇 년째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남의 말만은 아니다.

 

조금씩 월급을 줄이고 그 돈으로 은행 창구 직원을 고용하라는 의견도 있었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선진국에서는 가능하다고 알고 있지만.. ^^)

 

아니면, 파격적으로, 사람을 늘려주면, 일주일에 두어번 7시까지 일하겠다고 해보라! 그러면 사측은 월급을 줄이지 않고도 초과 근무한 시간만큼 이익이 발생할지 계산기를 조금 더 두드릴지도 모른다. (아마 여태 욕하던 국민들이 금융 노조편이 되어 줄것이다.)

 

사실, 꿈같은 이야기지만..  소시민으로서 그냥 바램을 이야기 한 것 뿐이다. 은행에 들어가기가 쉽지도 않으니, 그 분들도 다 아실만한 이야기를 괜히 입아프게 한 것만 같아 죄송스럽다.

 

다시 한 번, 댓글 취재에 동참해 주신 세계의 누리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좋은 글로 그 은혜에 보답하도록 노력하겠다.

 

 

한글로. 2007.4.9.

 

 

* 이 글은 오늘 오전에 올린 글 [댓글취재] 다른 나라 은행, 언제 끝나나요? [블로거 뉴스] 의 후속기사이며 결론입니다.

 

 

 

 

 

[ 한글로의 다른 기사 보기 - 실종자 찾기 연재 기사]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http://www.kfiu.org) 은 앞으로 은행 문닫는 시간을 현재 4시 30분에서 한 시간 앞당겨서 3시 30분에 문을 닫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발표했다.

 

▲ 금융산업 노동조합 홈페이지의 메인 사진

 

 

▶ 관련기사 1: "은행 1시간 빨리 닫자"에 국민 격노 <뷰스앤뉴스> 2007.4.9

▶ 관련기사 2: 금융노조 "영업시간 단축해도 불편 최소화" <머니투데이> 20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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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는 '깨진 바가지' 벌써 '줄줄'

 

 

 

한미FTA는 '깨진 바가지' 벌써 '줄줄'
숨어 있는 '독소조항'들…세부 내용 공개시 속출 가능성
 
 
 

   
  ▲ 한미 FTA 협상 모습 (사진=청와대)
 
한미FTA 협상의 타결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협상 결과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부에 의해 우리측 성과로 주장되는 것은 부풀려진 것이거나 실효성이 적은 반면 미국에 내줘야 할 것은 알려진 것보다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앞으로 협상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이 대거 드러날 경우 여론의 향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규제정책도 '투자자-국가소송' 대상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부동산 정책은 '투자자-국가소송' 대상에 포함되지 않도록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한미FTA 타결 보도자료'에서 "간접수용의 판정 기준을 명확히 제공하고, 공중보건, 환경, 안전, 부동산 가격안정화정책 등 정당한 정부정책은 원칙적으로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음을 명시함으로써 정당한 정부규제 권한을 확보하였고, 조세정책은 일반적으로 수용을 구성하지 않음을 명확히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이번 협상에서 부동산 규제 정책이 투자자-국가소송 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고 있다. 심 의원의 주장은 정부의 공식 발표문을 재해석해 유추해낸 결과다.

심 의원은 "부동산 가격안정화정책 등 정당한 정부정책은 원칙적으로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음"이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이를 뒤집으면 "부동산 가격안정화 정책 이외의 모든 부동산 정책은 투자자-국가 소송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심 의원의 추정이다.

금리정책을 통해 부동산 정책을 펴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여러 공적 규제를 통해 부동산 정책을 수행한다. 예컨데 조림제도, 도시계획제도, 부담금제도 등이 공적 규제에 해당한다. 이번 협상을 통해 이런 정책들에 대해 시비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게 심 의원의 판단이다.

심 의원은 "간접 수용이 규제적 수용까지 포함한다면 엄청난 소송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며 "건교부가 규제 정책을 수립하면서 소송을 피하기 위해선 부동산 소유자에게 막대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 자본주의화 할 때까지 역외 가공지역 인정 않겠다는 것

이번 협상에서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설치키로 한 것도 주요 성과로 홍보된다.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경협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게 정부측 평가다. 이와 관련,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4일 국회 통외통위에 출석해 "(개성공단에 대한) 역외가공이라는 개념을 미국이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국회 한미FTA 열린우리당측 간사인 송영길 의원은 좀 더 나간다. 그는 3일 "개성을 넘어서 북한영토 전체를 대상으로 한 근거 규정을 만든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높다"면서 "동북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통일민족경제의 꿈을 이룰 토대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 직계 라인에는 통일론 차원에서 한미FTA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이런 논리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8월 정국에는 통일담론으로 갈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은 개방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상황 논리"(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라는 전망과 결부해 보면 전략적 의미가 한층 분명해진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미측의 태도는 한국 정부의 기대와는 한참 다르다. 카란 바티아 USTR 부대표는 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은 현재 한미 FTA의 적용을 받지 않게 돼 있다"고 했다. 그는 다만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 원산지 인정은 FTA 협정 발효 1년 뒤 매년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열어 노동환경 기준 충족 여부 등을 심사해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바티아 부대표가 말한 '노동환경 기준'에 대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4일 국회 통외통위에서 "미국의 노동기준은 ILO 기준이며, 결국 노동3권이 핵심"이라며 "만일 노동기준이 ILO 기준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북한이 자본주의화 할 때까지 역외 가공지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득보다 실이 큰 자동차 분야 협상

자동차 분야의 협상 성과도 턱없이 부풀려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은 한국산 승용차에 매기던 2.5%의 수입관세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미측은 자국 자동차업계의 오랜 숙원이던 특소세 인하 및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제 폐지를 우리 정부로부터 따냈다. 이로 인한 국내 세수 감소분만 연 4천억원으로 추정된다.

미측의 관세 인하로 국산차의 가격경쟁력이 상승할 것이라는 게 정부측 논리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5일 지난해 2월 발표된 자동차공업협회의 자료를 인용, "미국 승용차 수입관세 2.5%를 폐지해도 대미수출가격은 2.4% 인하 효과밖에 없으며, 현대차에서 미국 현지공장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관세 인하에 따른 수출 증가효과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미국차 또는 미국산 일본차의 수입증가율이 더욱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커 결국 손익을 따져보면 이번 협상결과는 밑지는 장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 않으면 협정 비준 않겠다"

당초 한미FTA 의제가 아니었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개방 문제도 이번 협상 타결 과정에서 미측에 대폭 양보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2일 대국민 담화에서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를 통해 한국은 성실히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점, 협상에 있어서 국제수역사무국의 권고를 존중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의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합의에 따르는 절차를 합리적인 기간안에 마무리할 것이라는 점을 약속으로 확인해 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미측은 보다 분명한 수입 개방 약속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개방하지 않을 경우 최근 타결된 한국과의 FTA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숀 스파이서 미 무역대표부(USTR) 대변인은 4일 USTR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쇠고기에 대한 명백한 통로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카란 바티아 USTR 부대표도 "광우병 문제가 FTA 협상 틀 밖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한국은 국제적인 기준을 존중해야 한다"며 "한국이 쇠고기시장을 완전 재개방하지 않으면 의회에서 비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국 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숨겨진 독소조항' 속출 가능성

이밖에 우리측은 유전자조작생물체(LMO)에 대한 위생검역절차를 미국의 요구대로 간소화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별도의 합의문을 작성할 계획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숨겨진 독소조항'들은 협상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속출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은 "정부의 공식 발표만 놓고 보면 우리 정부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협상을 잘했다"면서 "(미측에) 밀린 것은 빼고 따낸 것만 강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짐작했다.

 
2007년 04월 05일 (목) 15:39:47 정제혁 기자 jhjung@redian.org
정제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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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생산성 세계 최고 수준

 

 

 

한국 노동생산성 세계 최고 수준
미국 노동통계국, 생산성 대비 실질임금 증가율 일본 절반
 
 
 

경총은 지난 2월 14일 '임금수준 및 생산성 국제비교 보고서'란 것을 내놓은 적이 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임금상승률이 선진국 및 경쟁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을 뿐만 아니라 생산성 증가분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대졸초임은 2,255만 원으로 2,384만 원인 일본의 94.6%에 달한다"며 "특히 10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대졸초임이 일본보다 10.4% 높아 상대임금수준은 110.4%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경총이 같은 달 25일 회원사에 권고한 '2007년 경영계 임금조정 기본방향'의 논리적 근거가 됐다. '임금조정 기본방향'에서 경총은 "전체적인 임금인상률은 2.4% 수준에 맞추고 대졸초임과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의 임금은 지난해 수준에서 동결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경총 보고서의 주장대로 국내 임금상승률은 생산성 증가율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가.

민주노총은 지난 3월 '제조업 노동생산성과 임금인상률 국제비교(2005년)'라는 정책보고서를 냈다. 이는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지난 2월 발표한 '16개국 제조업 노동생산성과 임금비용 국제비교(1952-2005년)'라는 보고서를 요약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 노동통계국의 보고서는 경총 보고서와는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지난 2005년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세계 1위 수준이며, 생산성 대비 임금증가율은 비교 대상 16개국 가운데 10위권 전후로 낮은 편에 속한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보고서를 좀 더 세부적으로 뜯어보자.

   
 
 
먼저 2005년 국내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8.5%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1인당 생산성 증가율도 7.9%로 가장 높았고, 제조업 생산성 증가율도 7.0%로 수위를 나타냈다. 반대편에선 시간당 임금(6.2%), 시간당 실질임금(3.4%), 실질연평균임금(2.8%), 총임금(4.7%) 증가율 등도 가장 높았다.

이처럼 노동생산성이 늘고 임금도 늘었지만, 임금의 증가율보다 노동생산성의 증가율이 더 컸다. 이를 보여주는 게 단위노동비용 증가율이다. 단위노동비용은 산출물 1단위를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노동 비용을 뜻한다.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임금의 증가율보다 크면 단위노동비용 증가율은 줄어든다. 지난 2005년 국내 단위노동비용 증가율(자국 통화기준)은 - 2.2%로 전체 13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생산성 대비 시간당 임금증가율은 72.9%로 전체 11위에 그쳤고, 생산성 대비 시간당 실질임금 증가율도 40%로 9위에 불과했다. 우리와 자주 비교되는 일본의 경우 생산성 대비 실질임금 증가율은 79.2%로 우리의 두 배 수준을 보였다.

1996-2005년 10년간의 생산성 증가율에서도 한국은 16개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중간에 외환위기가 있었는데도 그렇다.

먼저 우리나라의 평균 시간당 생산성 증가율은 9.0%로 1위였다. 2위인 스웨덴(6.9%)과의 격차도 상당했다. 평균 1인당 생산성 증가율도 8.5%로 월등히 높은 수위를 차지했다. 평균 제조업 생산성 증가율도 7.6%로 1위를 나타냈다.

물론 같은 기간 시간당 실질임금 증가율(4.2%), 시간당 실질연평균임금 증가율(3.7%), 시간당 총임금 증가율(6.5%)도 가장 높았다. 노동생산성과 임금이 공히 상승한 셈인데,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임금 증가율보다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비교적 컸다.

이 기간 중 우리나라의 단위노동비용 증감율은 -0.9%로 전체 10위에 해당했다. 그나마 이는 국내 화폐인 원화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미국 달러로 환산할 경우 평균 -2.7%로 떨어져, 일본과 대만을 제외하곤 증가율이 가장 낮았다.

민주노총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성 증가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인건비 증가율만 높다고 하는 재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면서 "경총의 주장은 임금억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2007년 04월 03일 (화) 14: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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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를 기쁘게 내야 하는 까닭

 

 

 

종부세를 기쁘게 내야 하는 까닭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진실
텍스트만보기   이태경(red1917) 기자   
 
 
 
▲ 종합부동산세 자진 신고납부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1일 라이트코리아 주최로 열린 '조세저항 국민운동' 결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15일까지 종합부동산세 납부 거부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힌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방에서 '세금폭탄' 소리가 요란하다. 대부분 중앙일간지들은 '세금폭탄' 기사로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렇다. 바로 종합부동산세(아래 종부세) 얘기다.

주택가격 급등으로 공시가격이 크게 올랐고 이에 더해 과표적용률도 현실화됨에 따라 종부세 과세 대상 및 부과 금액이 크게 늘었고 이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다는 것이 '조중동'을 위시한 수구언론들의 보도 요지이다.

기실 참여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 단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보유세, 그 중에서도 종부세에 관한 것이다. 8·31부동산종합대책이 발표될 시점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종부세 논란은 아직까지 그 위세를 잃지 않고 진행되는 중이다.

답답한 것은 종부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참여정부와 조중동 및 한나라당 사이의 논쟁이 표피적, 감정적으로 흐르면서 국민들이 종부세가 지닌 사회적 함의를 직시하는 걸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삼 종부세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지금 종부세를 둘러싸고 불거지고 있는 여러 사회적 오해가 무엇인지를 짚어보고 그 허실을 따져보는 것은 종부세를 놓고 벌어지는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오해①] 종부세는 징벌적 세금이다?

   오늘의 브리핑
 
전두환, 하루만에
'조종사 착각' 규정
[발굴탐사 ③]
 
 
충격적 사학비리... 이런데도 재개정?
켈리는 왜, 어떻게 말을 바꿔왔나
2900원으로 인천국제공항 가는 비법
"손학규를 찾아라" 기자들과 숨바꼭질
초상집 같은 서울시청, 호떡집 홈피
베이징 대축제, 마냥 즐거운 일인가
논산시가 밑지고 땅 팔려는 까닭은
"생존권 위한 속옷시위가 폭력인가"
"박용성 일가 '책임경영'은 어불성설"
 
'종부세는 편 가르기에 익숙한 참여정부가 강남사람들을 혼내주기 위해 만든 세금이라는 것'이 이 주장의 골자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불순한 의도를 지닌 악의적 선동이거나 무지의 소산일 가능성이 높다. 종부세는 개인이나 법인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일 뿐이다.

강남을 예로 들어보자! 익히 알다시피 강남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높은 이유는 무엇보다 사회적 인프라, 즉 도로, 지하철, 공원, 의료시설, 학교, 상권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기 때문이며 이는 곧 삶의 질이 타지역에 비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남사람들도 자신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곳에 살고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물론 강남에 구축된 사회적 인프라는 대부분 국세로 마련된 것이다.

이와 같이 값비싼 서비스를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강남주민들이 다른 지역 주민들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는 만큼 더 많은 보유세를 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오해②] 세 부담 증가가 너무 급격하고 세액이 과다하다?

'종부세도 좋지만 불과 1~2년 사이에 세금을 몇 배씩 올리는 경우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느냐'하는 것과 '종부세액이 지나치게 과다해 어지간한 봉급생활자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주장의 요지이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합리적 근거가 없다. 물론 종부세 과세 대상자들의 입장에서는 단기간 내에 급증한 세액이 몹시 불만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종부세 과세대상자들이 부담해야 할 실효세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세청이 분석한 2007년도 주택 공시가격에 따른 보유세 부담 현황(추계)을 보면, 공시가격 기준으로 6억~10억원이면 실효세율은 0.3~0.6%, 공시가격이 11억~16억원이면 0.7~0.9% 수준에 그친다. 공시가격이 17억원(시가 25억원대) 이상이 되어야 실효세율이 1%대를 넘어선다.

한편 2005년 9월 21일 재정경제부는 8·31대책의 주택 보유세 시뮬레이션 결과를 일부 공개하면서, 2009년까지 종합부동산세 대상자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89%로, 전체 보유세 대상자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36%로 올라가고, 2017년까지는 각각 1.04%, 0.61%로 올라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현재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선진국에 견주어 한참 낮은 수준임에 분명하다.

종부세 과세대상에 대한 실효세율이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임에도 실효세율이 단기간 내에 급격히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과거의 보유세 실효세율이 터무니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과거의 보유세 실효세율이 비정상이고 지금이 정상이라는 뜻이다.

또한 종부세액이 급증한 데는 지난 1~2년 사이에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탓이 매우 크다. 종부세액이야 부동산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면 저절로 줄어들 것이니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종부세액이 과중해 웬만한 봉급생활자들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이치에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종부세는 소득세가 아니라 재산세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그에 걸 맞는 세금을 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분에 넘치는 재산을 소유하고는 싶고 그에 합당한 세금은 내기 싫다는 논리를 헤아리기는 어렵다. 종부세가 부담되면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 될 일이다. 거주이전의 자유 운운하는 건 어린아이들이 부리는 투정보다 유치하다.

 
▲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 고층아파트 밀집지역.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해③] 종부세 부과 기준이 너무 낮다?

'종부세 부과 기준이 주택의 경우에는 6억원 초과인데 이 기준이 너무 낮아 선량한(?) 피해자가 속출한다'는 것이 이 주장의 골자이다.

물론 개인 주택 분 종부세 대상자가 지난해 23만2000가구에서 38만1000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듯 개인주택분 종부세 과세 대상자들이 늘어난 것은 무엇보다 근래 주택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면 개인주택분 종부세 과세대상자들도 줄어들게 될 것이 자명하다.

개인 주택 분 종부세 과세대상자들이 크게 늘었음에도 올해 종부세 대상 가구는 전국 가구의 2.1%, 전국 주택보유 가구 수의 3.9% 수준에 불과하다.

[오해④] 1가구 1주택 소유자나 무소득 고령자들을 배려해야 한다?

'1가구 1주택자들은 실수요자들인데 왜 이들을 투기꾼 취급하느냐'하는 것과 '소득이 없는 고령자들에게 고액의 종부세를 거두는 것은 가혹하다'는 것이 이 주장의 요지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보유세는 사회적 서비스에 대한 대가이다. 투기목적이건 실수요 목적이건 구분할 이유가 없다. 누구도 1가구 1주택자들을 투기꾼이라 비난한 적이 없다. 단지 사회로부터 받은 서비스에 대해 반대급부를 내라는 것뿐이다.

소득 없는 고령자들을 배려하자는 주장도 합리적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종부세 과세대상에 해당하는 주택의 거래가격은 적게 잡아도 8억원을 크게 상회할 것이다. 8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소득이 없을 리도 만무하지만, 만약 종부세를 납부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을 팔고 공기 좋은 곳으로 내려가 여생을 즐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물론 상속이나 증여, 매매 등 소유권 이전이 발생할 때까지 종부세 납부를 유예해 주는 것은 전향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그러나 노령층이라고 해서 면세나 감세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수혜가 노령층이라고 해서 빗겨가지 않은 것처럼, 공평과세의 원칙에서 노령층도 예외일 수는 없다. 더욱이 종부세는 소득세도 아니고 재산세인 바에야 더 긴 말이 필요 없을 성싶다.

[오해⑤] 종부세는 미실현 이득에 대한 과세라 위헌이다?

과세대상인 자본이득의 범위를 실현된 소득에 국한할 것인가 혹은 미실현이득을 포함시킬 것인가의 문제는 입법정책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아래의 결정을 보시기 바란다.

"과세대상인 자본이득의 범위를 실현된 소득에 국한할 것인가 혹은 미실현이득을 포함시킬 것인가의 여부는, 과세목적ㆍ과세소득의 특성ㆍ과세기술상의 문제 등을 고려하여 판단할 입법정책의 문제일 뿐, 헌법상의 조세개념에 저촉되거나 그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있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92헌바 49 등, 선고 1994-7-29])

[오해⑥] 종부세는 이중과세이고 과세 방식이 '세대별 합산'방식이라 위헌이다?

위의 주장 역시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혐의를 지울 길이 없다.

먼저 종부세의 산출세액에서 과세 대상자가 이미 납부한 재산세를 차감한 후 종부세를 부과하므로 이중과세 지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또한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 과세 방식이 위헌 소지가 크다는 지적도 수긍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공공재산적 성격이 매우 강한 부동산은 일반 소득과는 다르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점, ▲모든 개별적인 경제주체가 부동산을 각각 소유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제현상은 아니며 따라서 혼인을 통해 보유세 부담이 늘어난다고 해도 이는 마땅히 수인해야 하고 이는 혼인한 사람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는 점,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는 것은 헌법상의 기본권이라는 점 등이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 과세 방식이 위헌이 아님을 증명한다.

 
▲ 강남지역 세무서
ⓒ 정연경
 

[오해⑦] 종부세는 전월세에 전가되어 결국 서민들만 피해를 본다?

종부세에 극력 반대하는 조중동 등 수구언론과 한나라당 등에서는 위의 주장을 종부세 반대의 근거로 즐겨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위의 주장도 궁색하기로 따지자면 이미 살펴본 주장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경제학상으로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은 전가되지 않는다. 건물에 부과되는 세금의 일부가 전가될 수 있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작년에 기승을 부렸던 전·월세 가격 상승은 종부세 과세대상자들이 종부세를 전·월세자들에게 전가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장래 부동산 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예상한 시장 참여자들이 부동산 매수를 꺼리고 전·월세를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기쁜 마음으로 종부세를 내시라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종부세에 대한 오해 및 그에 기초한 반대논리는 합리적 근거를 결여한 악의적 선동에 가깝다. 종부세 반대론의 총본산이라 할 조중동 등의 수구언론은 이쯤에서 의도가 뻔히 보이는 악의적 선전선동을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아울러 종부세 과세대상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종부세를 납부하시기 바란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수혜를 입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민주공화국 시민의 기본적 책무임을 종부세 과세대상자들은 잊지 마시기 바란다.
 
 
이태경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 다음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3-17 11:3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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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펌]종합부동산세는 상위 2%만 내는 세금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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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스

 

 

 
  1집 - Deux 1993/04/23  
 
  2집 DEUXISM :: 1993/11  
 
  3집 FORCE DEUX 1995/04/16  
 
 
  RHYTHM LIGHT BEAT BLACK 1994/08/20  
 
  DEUX BEST 1996/8  
 
  DEUX LIVE 199507151617 1996/8  
 
  DEUX FOREVER 1997/3  
 

 

 
  DO 이현도 DOIT / 사자후 1996/??/??  
 
  SAGA CONTINUES... / 미래 1997/??/??  
 
  완전HIP HOP 2000/2/11  
 
 
  D.O FUNK / 폭풍 1998/12/??  
 
  D.O STILL ALIVE ??  
 
 
  D.O 사랑해 ??  
 

작 성 자 pinksjapan
제 목 [과소평가] 너에게만.. 듀스
추천사유 한 달 전쯤 네이버에서 이현도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 어떤 뉴스에서 댓글로 아르헨도 어쩌고저쩌고 달린걸 보게 됐다. '야 이사람 또 무지하게 두들겨 맞네' 혼자 생각하며.. 사실 듀스 이현도는 굉장히 불행한 길을 걸었던 뮤지션이다. 데뷔 초기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뺏기고 후기엔 룰라의 대중적 인기에 가려졌으며 그들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었던 서태지의 음악은 낱낱이 해부되어 하나의 예술로 대접받았지만 이들은 그냥 댄스뮤지션일 뿐이었다. 활동당시 이들의 진가를 알아봤던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거기에 해체 후 김성재의 죽음이란 악재가 이어졌고, 이현도 역시 솔로 데뷔를 하지만 실상 그의 음악적 정수는 김성재의 솔로앨범에서 끝나버렸기에.. 하지만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늦게나마 듀스 음악에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모 평론가는 이현도를 서태지, 조동익과 더불어 90년대 3대 음악감독으로 칭할 정도였다. 언더, 오버를 막론하고 힙합을 한다는 사람들이 이현도를 전설로 추대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으며 2004년에 발표한 앨범에선 초호화 참여진을 거느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대중들이나 병아리 랩퍼들은 이현도의 랩 실력을 문제 삼기도 하고 듀스의 음악을 가지고 가요지 힙합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한다. 싸이월드 사건으로 대중적인 인기도 많이 실추돼 버렸고 국내 활동을 거의 중단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르헨도로만 기억될 뿐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될 부류의 뮤지션이 아니다. 90년대의 전설 듀스. 그 안으로 들어가 보자. 시간을 14년 전으로..

자켓사진
DEUX (듀스) / 1집 - Deux
Comment :  ‘나를 돌아봐’가 차트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들의 데뷔작. 재킷에서도 추측이 가능하지만 음악적 브레인인 이현도는 보컬과 비주얼이 약한 편이기 때문에 (누구 말마따나 발음이 약하고 음색은 탁하다) 상대적으로 괜찮은 보이즈와 외모의 김성재를 선두에 내세웠고 자신은 작곡에 전념한다. 타이틀곡인 ‘나를 돌아봐’는 국내에선 거의 최초로 라임을 시도한 가사를 담은 곡으로도 유명하고 ‘알고 있었어’는 이현도식 발라드의 시작인데 좀 어설프지만 지금 들어봐도 멜로디가 꽤 괜찮다. ‘나의 바보같은 이야기’는 뮤지션의 데뷔작에서만 발견되는 풋풋한 감성이 느껴지는데 90년대 초반의 전형적인 가요 멜로디를 담고 있다. New Jack Swing적인 라인을 가진 '매일 항상 언제나'는 리듬감이 굉장히 뛰어나고, '이제'와 같은 곡은 흔히 말하는 쌍팔년도 비트인데 투박한게 나름대로 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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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X (듀스) / 2집 DEUXISM
Comment :  국내에선 거의 최초 힙합이라고 할 수 있는 ‘無題’의 원래 제목이 ‘힙합’이였다는 건 유명한 일화인데 심의에 걸려서 무제라고 제목을 바꿨다고 한다. 이정도 이었으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끔찍하고 무지했었는지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올스타 팀인 H2o와 함께 한 ‘Go! Go! Go!’는 지금까지도 이야기 되는 명곡으로 댄스 가수가 아닌 스튜디오 뮤지션인 이현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Jazzy한 필링의 ‘또 하나의 슬픔’은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다른 뮤지션들에 비해 넓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곡. ‘빗속에서’, ‘그때’는 대중을 의식한 흔적이 보이는 발라드들인데 데뷔작에 비해서 장족의 사운드 발전을 보여준다. '우리는’은 어두운 두 남자라는 듀스의 이미지를 완성한 파워풀한 댄스 넘버이며 후배 힙합퍼들이 즐겨 트리뷰트한 ‘약한 남자’와 같이 재치 있는 가사도 발견된다. Force Deux 사운드의 전초격인 발라드 '너만을 위한 나'는 숨겨진 명곡이다. 이 앨범의 연타석 성공으로 듀스는 일약 주목받기 시작하고 음악적으로도 인정받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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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X (듀스) / RHYTHM LIGHT BEAT BLACK
Comment :  이것은 당시 국내에서 생소했던 리믹스 앨범이다. 신곡들도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는데 ‘Time 2 Wreck’은 가사의 3분의 2가 영어로 당시로선 꽤나 실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고 ‘영원의 노래’는 다시 한 번 이현도식 발라드인데 좀 지루한 느낌이 든다. 본인도 가장 행복한 순간 이였다고 기억하는 ‘여름 안에서’는 시간을 초월한 멜로디를 담아내고 있다. 연이어 성공을 거두던 외적인 모습과는 별개로 당시 이들은 금전적인 문제와 소속사의 압박 등 20대 초반의 나이로 버텨내기에 힘든 일들이 너무나 많았고 다음 앨범을 마지막으로 3년간의 짧은 비상을 마치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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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X (듀스) / 3집 FORCE DEUX
Comment :  이현도 사운드의 절정으로 90년대 최고의 명반들 중 하나. 간혹 이 앨범이 가사적인 면에서 발전이 없었다고 비난하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Go! Go! Go!의 구성을 능가하는 트랙은 없다) 그것보단 사운드에 초점을 맞추고 들으라 말해주고 싶다. 이들의 드럼 사운드는 지금 활동하는 댄스 그룹들에 비해서 전혀 뒤지지 않고 고차원적인데 멋진 음색의 Hi-Hat과 한 박자 안에서도 쉴 새 없이 변화하는 톤의 Snare는 정말이지 완벽하다. 편곡적인 면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反芻’나 ‘In The Mood'와 같이 짜임새 있는 노래들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음악적으로 고심했는지 보이는 듯하다. 멜로디적인 측면에서도 ‘사랑하는 이에게’같은 킬링 트랙도 있고, ‘굴레를 벗어나’, ‘상처’, ‘儀式混亂’과 같이 뛰어난 Groove를 지닌 곡들도 즐비하며, 룰라를 연상시키는 'Nothing But A Party'와 같은 노래는 여전히 독창적인 사운드이고, 대중적인 면에서 전작들의 발라드를 계승하는 ‘다투고 난 뒤’는 보코더의 활용이 뛰어난 명곡이고 ‘이제 웃으며 일어나’는 누구나 즐겨 부를만한 팝댄스곡이다. 이 앨범은 판매량 100만장을 넘었으며 현재 이들의 위상을 완성해준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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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 1집-말하자면
Comment :  이 앨범이 특히 안타까운 이유는 향후 듀스 멤버들이 보여줄 수 있었던 새로운 활동 패턴의(이현도는 곡을 써주고 김성재는 노래를 하고) 종말이나 이현도 음악인생 캐리어의 하양지점의 시작을 차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곡들은 그룹 시절보다 듣기 편안하면서도 내적으론 날이 잔뜩 서있는 기름진 모습이다. 물론 ‘죽어서’라고 우긴다면 할 말은 더 이상 없지만 당시 나이 40대 후반의 우리 어머니 차에도 테이프가 있었을 정도로 듀스관련 모든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서 대중적으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던 앨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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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도 / DO 이현도 DOIT / 사자후
Comment :  김성재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조금은 뜬금없다는 느낌까지 드는 이현도의 솔로 데뷔작. 이 앨범에서부터 음악적, 외적인 안티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N모 인디 밴드의 기타리스트는 ‘적의’를 가지고 "이현도 입장에선 충분히 하드코어적이지 않을까, 국내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이 너무 제대로 하면 그것도 웃길 것 같다"라고 하기도 했고, ‘성재를 위한 고요함’은 지나친 오버라는 소리도 들었다. 물론 타이틀곡 ‘사자후’가 싱글로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곡임은 확실하여서 앨범을 수렁에서 건져냈지만 모든 것들을 감안해도 김성재의 부재가 아쉽다는 느낌이 떠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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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X (듀스) / DEUX FOREVER
Comment :  해체와 소속사에서 멋대로 발표한 앨범들, 김성재의 어이없는 죽음이후 이현도가 마지막 음반이라고 공언하고 만들어낸 베스트 앨범. 듀스의 곡들은 물론이고 김성재의 대히트 싱글 ‘말하자면’이나 이현도 솔로 1집의 노래도 들어있어서 말 그대로 초심자에겐 최고의 선택이다. 거의 전곡에 걸쳐 조금씩 손을 봤는데 예를 들면 ‘알고 있었어’는 원곡엔 없는 기타가 들어가 있고, ‘여름 안에서’에선 뒷부분을 페이드아웃 다시 인 시키며 라이브 앨범 버전과 이어놓았다. ‘친구에게’는 라이브 버전으로 실려 있으며, 당시 김성재의 목소리를 컴퓨터로 합성해서 화제가 됐던 신곡 ‘사랑, 두려움’은 마지막답지 않게 이들 특유의 어둡고 강인한 이미지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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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usean (지누션) / Jinusean Bomb
Comment :  양현석과 이현도의 합작이라는 것 자체로 대단한 화제였지만 예상외로 훌륭한 내용물을 담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꼽히는 지누션의 데뷔작. 걸출하다고 말하긴 뭐하지만 나름 괜찮은 스타일을 가진 Perry라는 작곡가를 소개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Gasoline'이 양현석 작곡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놀랍다. ‘말해죠’, ‘미행’과 같은 노래들은 몸 흔들기 딱 좋으면서 음악적으로도 떨어지지 않는 뛰어난 곡들이고, ‘Celebrate’의 English Version은 미국의 팝송처럼 정말 훌륭하다. 하지만 지누와 션이 노래와 랩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라 한계가 보이기도 하고, 이 앨범을 계기로 금전적 이득보다 이미지가 나빠졌음을 상기해 본다면, 이현도 본인에게는 득보단 독이 됐던 작업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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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도 / SAGA CONTINUES... / 미래
Comment :  솔로 데뷔작까지가 듀스 시절의 연장선상적인 음악을 보여준 1기라면 조금은 다른 분위기로 무장하고 돌아온 2집은 그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처음으로 대중적 참패를 맛보기도 했는데 그 원인으론 강력한 훅이 있는 곡이 없고 앨범 전체의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는 외적인 이유에 중심이 많이 쏠리지만, 이현도의 보컬이 본인이 작곡한 노래들 안에서도 도저히 제대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별로여서 듣는 내내 감상자를 답답하게 만든다는데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숨겨진 명곡으로 꼽히는 ‘불의춤’, ‘The Accorade’와 같은 트랙들이 (물론 사운드도 제대로지만) 보컬이 안 들어간 순수 100% 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도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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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도 / D.O FUNK / 폭풍
Comment :  한상원과의 조인트 앨범으로 당시 엄청난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는? 역시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뮤지션들은 뭐 하나 새롭게 한다고 해도 대중성(=발라드)에 집착을 하여 그게 앨범의 통일성을 해치면서, 결과적으로 완성도를 마구마구 떨어뜨리는 경향이 상당히 심한데, 이현도 역시 그 딜레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특히 ‘영원히’와 같은 곡은 전혀 Funky하지도 않을뿐더러 무지하게 재미없다. 중간적인 결과물을 원했다면 ‘Boogie Night'나 '왜?’정도에서 끝내는 게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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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도 / 완전HIP HOP
Comment :  ‘이현도’하면 언제나 따라다니는 것이 뛰어난 사운드 making에 비해 랩이 안 된다는 것인데 이 앨범에서부터 화려한 Featuring진을 통하여 그것을 벗어나려 한 것이 보인다. 노장의 부활? 처음 본격적인 힙합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그동안의 부진을 씻으려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 아닌가’란 우려도 들었지만 확실히 그의 작품은 국내 다른 힙합 앨범들과 무엇인가가 틀리다. 곡 하나하나의 아이디어도 뛰어나고 비트도 알차다. 특히 ‘黑熱歌’는 당시 열렬한 극찬을 받았던 노래로 지금 들어도 전혀 떨어지지가 않는다. (뭐 듀스 시절도 마찬가지지만) 아쉬운 점이라면 이 앨범에서 아예 작정하고 키워준 진원과의 대립으로, 음악보다 또 한번 그의 인간적인 치부만 화제가 됐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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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아티스트 / The New Classik And You Don’t Stop
Comment :  完全Hip-Hop으로부터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먼젓번에는 한국에서 시기상조라 하더니 이번엔 어설픈 외국 흉내 내기란다. 리스너들은 귀만 점점 발전할 뿐, 국내에서 이 정도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모른다. 본인의 얘기에 의하면 해외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을 국내에 소개하며 거기에 발전한 후배 랩퍼들의 스킬을 조합하려는 의도로 탄생했다 한다. 다른 가수가 아닌 이현도기에 뭔가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가 아닌 단순소개라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가 90년대 초반의 뮤지션이고 듀스에서 보여줬던 음악들로 신에서 자신의 사명을 다 했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기대는 가지되 더 이상 매달리진 말자. 무엇보다도 참여자들의 색깔에 따라 각양각색 스타일의 곡들이 섞여있는데도 들으면 바로 이현도 작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은 그도 자신만의 소리를 가진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는 게 증명되지 않는지. 많은 사람들이 여기가 미국도 영국도, 그렇다고 일본도 아닌 한국이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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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N EX T

 

 

* 신해철 (신해철)

아티스트사진
한국 가요사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던 신해철은 68년 5월 6일 부산 출생이다. 이후 공일오비를 이끌게되는 정석원과 함께 무한궤도를 결성, 88년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프로 세계로의 길을 튼 그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끝으로 밴드를 접고 솔로로 전향한다. 신해철을 가장 유명하게 해준 두 앨범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Myself]로 일약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션으로 승격된 후 넥스트를 결성하며 그동안 가슴 한구석에 품고 있었던 밴드생활에 대한 미련을 드러낸다. '인형의 기사', '도시인'등을 히트시킨 [Home]으로 데뷔해 04년 [개한민국]까지 밴드를 유지해오면서 영화음악과 솔로앨범, 그리고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병행하는 정력을 과시한 그는 남궁연이 감독한 단편작 '거짓말폭탄'과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등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서의 끼까지 발산한 바 있다. 그 외 라디오DJ, 자유기고가, 방송토론에서도 그의 탁월한 재능은 아낌없이 발휘되었으니 신해철이야말로 쉽게 남용되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02년 96년 미스코리아 뉴욕 진 출신의 윤원희와 백년가약을 맺었고 취미는 만화책과 전자오락, 특기는 요리라고 밝히고 있다. 특별히 친분있는 뮤지션들론 유희열, 윤상, 김동률, 남궁연등이 유명하다. / 김성대 ⓒ chang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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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X.T (넥스트)

아티스트사진
락밴드 넥스트는 무한궤도에서 솔로로 전향한 신해철(보컬)을 중심으로 정기송이 기타를 잡고 드럼에 이동규가 앉으며(베이스는 정식 멤버를 영입 하지 않음.) 92년 결성되었다. 데뷔작 [Home]으로 한국 락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후 정기송이 돌연 탈퇴를 선언하고 임창수(기타)와 이수용(드럼)이 영입되어(이동규는 드럼에서 베이스로 포지션 변경.) 2집 [The Return Of N.EX.T Part 1]이 발매된다. 이 앨범은 하드한 '이중인격자'와 신해철식 감성이 발휘된 'The Dreamer', '날아라 병아리'등을 히트시키며 나름대로 1집의 아성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불안한 라인업은 지속되어 이번엔 임창수와 이동규가 탈퇴하고 김세황(기타)과 김영석(베이스)이 가세, 3집 [The Return Of Next Part 2 - World]를 위한 새로운 라인업이 갖춰지는데 음악적으론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대중적으론 1, 2집의 성공에 미치지 못하여 '힘겨워 하는 연인들을 위하여'와 'Money'정도를 히트시키고 밴드는 2년의 공백기를 갖는다. 親한국적 발라드 싱글 [Here I Stand For You]로 화려하게 복귀한 넥스트는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이자 네 번째 정규작인 [Lazenca- A Space Rock Opera]를 마저 발매하며 골수팬들의 성원에 보답하지만 곪아있던 밴드내 갈등이 불거지면서 신해철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전원 탈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신해철을 등진 세 명은 해체 상태였던 패닉김진표를 프론트맨으로 영입해 노바소닉을 결성하면서 넥스트는 사실상 공중분해되고 만다. 한편 신해철은 자신의 솔로작 [Monocrom]을 발매한 후 음악외 타 분야에 눈을 돌려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고 넥스트는 수 년후를 기약하며 긴 침묵에 돌입하게 된다. 04년, 언제나 넥스트의 재결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신해철은 좀 더 젊은 피를 수혈(데빈(기타), 쌩(베이스), 김동혁(키보드, 기타), 쭈니(드럼))하여 밴드를 부활시켜 대한민국의 사회적 그늘을 사정없이 후벼판 컨셉 앨범 [개한민국]을 내놓고 팬들 사이에 논쟁을 조장한 바 있다.

데빈(기타), 김영석(베이스), 이수용(드럼) 넥스트 탈퇴! (2007/02) / 김성대 ⓒ chang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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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고정관념과 변해버린 세상에 대한 반격
[관련기사] 200자 원고지 110매 분량으로 풀어낸 "2006 N.EX.T"...

 
  신해철 1 집 1990/10  
 
  신해철 2 집 1991  
 
  신해철-정글스토리 1996  
 
  Monocrom 1999/04  
 
  The Songs For The One :: 2007/02/01  
 
 
  The Best Of Shin hae-Chul / Struggling 2002/09/13  
 
 
  91 신해철 MYSELF TOUR 1991  
 
  CROM'S TECHNO WORKS 1998  
 
  Homemade Cookies & 99 Crom Live 1999/11  
 
  99 신해철 MONOCROM LIVE CONCERT VIDEO-CD 2000/1  
 

 
  1집 - Home 1992/05/??  
 
  2집-The Return Of N.EX.T Part 1 1994/05  
 
  3집 - The Return Of Next Part 2 - World 1995/09/15  
 
  4집 - Lazenca (A Space Rock Opera) 1997/??/??  
 
  5집 - 개한민국 2004/06/15  
 
  5집 - 개한민국 -포스터포함 2004/06/15  
 
 
  Live Concert Chapter 1 1995/05/25  
 
  Live Concert Chapter 2 1995/05/25  
 
 
  N.EX.T IS ALIVE :: 1996/02/??  
 
  The First Fan Service 1997/??/??  
 
  5.5집 :: 2006/02/23  
 
 
  Here I Stand For You (Single)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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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

 

 

트로츠키 논쟁을 자주적 사고의 계기로"
  [기고] 역사적 오류와 논쟁의 현실화
 
  2007-02-16 오후 3:16:51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를 계기로 3주 가까이 트로츠키주의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놓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찬반 공방이 진행되는 가운데 불가피하게 국내외 트로츠키주의자의 현실 인식과 활동에 대한 평가도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논쟁과 관련해 모스크바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현재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사회학연구소의 박사 과정에 있는 정다신 씨가 논평을 보내왔다. 정 씨는 소련 몰락 후 공개된 볼셰비키 당시의 비밀문서 등 사료에 입각해 논쟁 과정에서 제기된 크론시타트 반란과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의존하는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시도했다.
  
  
특히 정 씨는 이 글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국 이데올로그가 발행한 교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 대해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자주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며 "과거 혁명가의 주장에서 취할 것은 취하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진정한 트로츠키주의자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편집자>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이러한 논쟁들을 접하면서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단 몇 마디로 '다함께' 류의 역사 왜곡을 교정해 줄 능력이 있는 역사학자들이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여겨서인지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이러한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함께가 '국제사회주의자(IS)'라는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던 시절, 그들은 그나마 학계에서는 유일하게 자신들의 이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정성진에 대해 IS 그룹에 속해 활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만 살아있는 지식인 분자'로 취급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이토록 정성진을 옹호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관념론의 소산이자 자신들의 지주 격인 국가자본주의론을 자신의 조직원도 아닌 이가 풍부하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 분자의 입은 어느새 범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그 누구보다도 저들에게 힘을 실어 줄 이데올로그로 전화하여 칭송받게 됐다. 이번에 <프레시안>을 통해 제기된 논쟁에 이들이 이렇게 핏대를 세우게 된 이유도, 그 동안 타 정파나 집단들이 무시해 오던 다른 때와는 달리,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다함께가 신주처럼 모시는 국가자본주의론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토니 클리프에 의해 발명된 국가자본주의론은 저들이 항상 자신들이 트로츠키 교조주의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애호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자신들이 비판에 열려 있고 심지어 트로츠키주의 그 자체까지도 비판하는 융통성 있는 활동가들임을 보여 주려고 애용하는 부분은 철저하게 클리프와 그 계승자들인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교과서에 나온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누가 진정 역사를 왜곡하는가?
  
  이정구를 비롯한 다함께 그룹, 아니 저들이 암송하는 영국 SWP의 이데올로그들은 러시아 혁명 이후의 모든 혁명을 국가자본주의 혁명으로 만들기 위해, 유일무이한 노동자 혁명이었다는 러시아 혁명을 계속 왜곡해 왔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늘 혁명 계급이 노동자 계급인지, 또 '무슨 무슨 주의'에 오염된 이들인지가 강조돼 왔다.
  
  노동자 계급은 거의 예외 없이 볼셰비키를 지지했고 문맹에 가까운 농민을 비롯한 여타 계급은 철저하게 무슨 주의에 물들고 무슨 주의자들인 양 과장, 왜곡하는 나쁜 습관은 이런 왜곡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 시기 러시아 혁명의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은 볼셰비키 지지 세력이고 농민을 비롯한 여타 계급은 철저하게 반 볼셰비키였다는 특유의 이분법 논리로 역사를 과장, 왜곡하는 일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크론시타트 반란자들이 이전 수병들과는 다른 농민 출신 신병들이 주가 되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이정구는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비밀문서 운운까지 하며 이 점을 무슨 엄청난 일인 양 하고 있다. 바로 그 비밀문서에 나와 있는 당시 노동자 계급 주도의 수많은 반 볼셰비키 파업, 반란 등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하고 말이다.
  
  페트로그라드에는 푸틸로프 공장 하나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반도의 수십 배는 더 되는 러시아에 도시가 페트로그라드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페트로그라드에는 노동자 계급 중에 상대적으로 볼셰비키 지지 세력이 많았다. 그럼에도 심지어 최대의 볼셰비키 지지 기반인 푸틸로프 공장마저 잔혹한 전시 공산주의 기간 내내 반 볼셰비키 파업이 진행된 사실을 이정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이유를 주로 식량 부족에 있는 것으로 축소, 왜곡시키는 버릇도 영국 이데올로그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소비에트 선거에 대한 부분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서 박정희까지 빗댄 부분을 보며 이정구가 진정으로 노동자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인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크론시타트 반란은 일부 반 볼셰비키 세력에 철저하게 조종된 농민 출신 신출내기들의 반란이 아니었다. 그것이 그 당시 전국적으로 줄을 이었던 노동자 계급의 요구였다는 사실은 학계에서는 정설로 인정되었다. 당시 푸틸로프 공장은 친 볼셰비키 노동자들의 주도 하에 간신히 파업이 마무리되었지만, 그 외 수많은 페트로그라드 공장들에서의 파업은 이정구의 주장과는 달리, 크론시타트 반란 당시에도 이어졌었다.
  
  무엇보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이 때 내전은 유럽, 러시아 지역에서는 거의 종결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을 아사 직전으로 몰고 가던 곡물 징발은 계속되었고, 볼셰비키가 주장했던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비롯한 민주주의 약속은 파괴되었다. 크론시타트 반란을 비롯한 일련의 파업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지극히 정당한 노동 대중들의 항의 행동이었다.
  
  지지하기 애매한 집단마저도 '비판적 지지' 운운하는 다함께가 감히 굶어 죽어 가는 생존권과 관련된 항의 행동을 억지로 노동자와 농민으로 나누어 한 쪽을 반동으로 몰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해 당시 여타의 공장에서의 파업과 시위에는 볼셰비키 지지 노동자들의 볼셰비키에 대한 항의 행동이 즐비했다는 것만은 꼭 알아 두기를 바란다.
  
  이정구가 정직한 활동가이고 진정한 유물론자라면 크론시타트 반란은 크론시타트에서만의 일부 농민 출신 수병의 반란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크론시타트 반란은 크론시타트 외의 전 러시아에서까지 벌어졌던 노동자 계급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크론시타트 수병들의 반란은 정당했다. 진압 이후 볼셰비키가 전적으로 전시 공산주의를 폐지하고 수병들의 주장 중 중요한 부분인 농업과 가내 공업 등의 자유시장경제 요구 등의 맥락에서 시장 요소를 도입한 신경제 정책을 채택한 것은 이정구의 말과는 정반대로 그들의 요구가 옳았음을 증명해 준다. 농민뿐 아니라 노동자들 역시 볼셰비키에 대한 실망과 반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완전한 흑백 논리로 이 당시부터 소련 붕괴 때까지 지속되었던 크론시타트 반란에 대한 거짓을 그대로 인용하여 크론시타트 반란을 왜곡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이 트로츠키주의이기는커녕 스탈린주의의 교조에서 한 발 자국도 못 벗어났음을 보여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약 크론시타트 반란의 주역들이 노동자 계급 출신이면 다함께 동지들은 또 무슨 이유를 댔을까? 혁명의 대의를 이해하지 못 한 후진 노동자들, 멘셰비키 영향 하 노동자들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
  
  제발 현실로 돌아오라!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노동자의 군대화, 노동조합의 국가 기관화 등등 명백한 반사회주의적 조치들을 옹호하려거든 똑같은 맥락에서, 아니 맥락은 그만 두더라도 역사적 사실만이라도 알고 주장하기 바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영국 SWP와 같은 외국의 이데올로그가 발행한 교재가 아닌 사료들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며,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 대해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자주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초를 갖는 것이다. 영국에서 내려 온 거 그냥 아무거나 무조건 외지 말고 사료를 근거로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영국 SWP의 이론은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가장 핵심적인 주장들과 거리가 멀다. 트로츠키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였다고 자평하는 클리프의 주장만 절대적으로 따르는 다함께에 그들이 좋아하는 '~주의'를 갖다 붙이자면, 트로츠키주의자라기보다는 클리프주의자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하루라도 빨리 국가자본주의를 비롯한 관념론의 극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들을 클리프주의가 아니라 트로츠키주의라고 치장하는 데에도 조금 더 나을 듯 싶다.
  
  이재영이 틀린 건 단 한 가지다. 저들은 마르크스 훈고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트로츠키주의와도 별 상관이 없다. 그저 클리프 교과서를 암송하는 관념론 집단일 뿐이다. 이미 오래 전에 파산 선고를 받은 국가자본주의론은 그 자체로는 하나의 이론일지는 몰라도 현실 사회주의의 모습과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다.
  
  러시아에서의 70년은 우리가 그리던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만, 자본주의와 닮은 점은 더욱 없었다는 점을 이 땅의 그 누구도 증명할 수 있다. 영국 SWP에서 소련 붕괴 직후 파견한 전문가들조차 소련 땅에 발을 디딘 직후 현실과 맞지 않는 자신들의 관념론을 뼈저리게 깨닫고 자기비판하고 다른 트로츠키주의 조직의 조직원으로 전환하였고, 지금까지도 유독 이들만이 최소한의 뿌리조차 내리지 못 하고 있다. 그 이유를 정녕 모르겠는가?
  
  이정구를 비롯한 다함께는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논쟁에 나서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이번 논쟁이 더욱 많은 활동가들, 연구자들로 하여금 국가자본주의론과 그를 뒷받침하는 역사 왜곡 등에 반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투쟁에 헌신하는 이들은 많다. 문제는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조차 헷갈리는 이들이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투쟁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혁명을 외친다고 해서 운동권적 도덕률에 있어서 우위를 점한다는 착각해도 되는 시대는 지났다. 소련 체제를 지키고자 했던 트로츠키조차 저들의 논리에 의하면, 그저 오류 정도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를 옹호하고자 하는 반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자신들이 트로츠키주의자라고 그의 이름을 빌려서 그나마 '오류' 정도로 완곡하게 표현할 뿐, 사회민주주의보다 훨씬 날선 용어로 비판했을 것은 자명하다.
  
  다함께가 진정한 변혁 운동가 집단이라면 과거 혁명가들의 사상과 주장에서 취할 것은 취하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그들 자신을 진정한 트로츠키주의주의자로 거듭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다신/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사회학연구소 연구원
 
 
 
 
"낡은 '사민주의' 비행기로는 절대로 날 수 없어" 2007-02-12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하나…훈고학은 이제 그만" 2007-02-06
"지금 '역사의 먼지' 속으로 사라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2007-02-05
"무조건 '재'부터 뿌려놓고 보자는 심사인가?" 2007-01-31
"트로츠키주의가 죽어야 트로츠키가 산다" 2007-01-29

 

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
[새책]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눈에 거슬리는 과장들"
 
 
 

책읽기는 즐거워도 책에 대한 글쓰기는 즐겁지 않다. 글쓰기를 작정하고 책을 드는 순간부터 책읽기가 숙제가 되어 버리니, 소란스런 지하철이나 쾌적한 화장실에서 가끔 책 꺼내 보는 소소한 재미는 사라지고, 책상 위에 책 펴두고 밑줄 긋는 고역이 시작된다.

더군다나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 같이 두툼하고 묵직한 책은 족히 반 년 거리인데, 출판사 영업팀이나 언론 편집자의 시간 관념이 그런 ‘장구한 세월’을 용납할 리도 만무하다. 그래서 이 글은 어쩔 수 없이, ‘서평’이 아닌 ‘책소개’다.

경상대 경제학과에 정성진 교수가 내놓은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첫째 가는 장점은 그 필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점이다.

   
 
한국에 트로츠키주의를 소개한 이들은 크리스 하먼, 토니 클리프, 알렉스 캘리니코스 같이 영국 사람들이었는데, 트로츠키가 영국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아는 ‘교양인’이라 할지라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들의 눈으로 번역된 트로츠키보다는 한국 사람이 쓴 트로츠키가 훨씬 손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에게는 나름의 특수성이 있어 마땅하므로 정성진의 책은 공간적 시간적 번역을 해야 하는 독자의 수고로움을 덜어 준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트로츠키』가 한국 경제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적 해석은 아니다. 부지런한 독자라면, 정성진이 ‘영구군비경제론’이나 ‘장기파동론’이라는 방법틀을 이용해 한국 경제를 분석한 『마르크스와 한국경제(책갈피, 2005)』를 이미 읽어 보았을 것이고,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여러 가지 주의(主義)를 다루고 있는 이 책,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를 먼저 읽은 후에 그 책을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1부에서 3부까지는, 요즘은 찾아 보기 힘든 경제사상사 책 삼아 읽어도 훌륭하다. 정성진은, 리카르도, 제2인터내셔널의 이론가들, 레닌, 포스트모너니즘과 알튀세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 네그리의 『제국』, 그리고 신정완, 이병천, 장상환 같은 ‘케인즈주의’ 학자들에 비판의 칼날을 겨눈다. 19세기 초 이래 정치사회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됐던 경제이론을 일별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대학 학부 수준에서 정치경제학 기초를 이수한 분들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쟁점들을 공부하는 ‘고급 정치경제학’ 과정이나, 대학원 수준의 ‘마르크스주의 연구’ 과정의 교재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머리말).”

4부는 트로츠키의 사상에 대한 소개인데, 물론 ‘트로츠키주의’의 눈으로 해석된 트로츠키 사상이다. 이를 위해 정성진은,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해에 태어나 2000년에 사망한 토니 클리프의 생애를 되짚으며, 트로츠키를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열과 투쟁을 통해 ‘트로츠키주의’를 도출해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15장 ‘21세기 사회주의와 참여계획경제를 위하여’에서는 계산 가능성, 기술 혁신 문제 등을 다루며 사회주의 대안 경제의 원칙을 제시한다.

정성진의 책에는 눈에 거슬리는 과장이 적지 않다. “요즘 세계 진보 진영의 화두는 …… 차베스가 제창한 21세기 사회주의”라거나 그로 인해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11장)”는 언급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끼리의 유행인지는 몰라도, 내가 알고 있는 ‘세계 진보 진영’에서는 과히 그렇지 않다.

“스탈린주의는 청산되기는커녕 알튀세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민주주의, 시장사회주의, 자율주의 등 ‘포스트스탈린주의’ 경향으로 변이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진보 학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머리말)”는 인식도 과장스럽다.

그런 조류들이 스탈린주의 흥망성쇠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내게 24시간쯤의 시간만 주어져도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시장사회주의 같은 온갖 조류들과 트로츠키 이론의 연관성도 능히 증명해낼 수 있다. 비판의 대상이 스스로 무슨 주의라거나 무슨 주의가 아니라는 관념에 묶여 있지 않는 한, 무슨 주의라는 낙인은 요즘 시류에서는 비판 논거로 별 쓸모가 없을 듯하다.

여러 진보적 사회운동에 간여하고 있는 진보학자들이 거시적 변혁 전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정성진의 비판은 타당하다. 민주노동당의 대표적 이론가인 장상환 교수(경상대 경제학과, 진보정치연구소장)는 “규모가 크고 복잡한 경제에서는 계획의 한계가 명확하다. 정확한 정보 수집의 불가능과 동기 유발의 어려움, 개인의 개성적 발전의 저해 등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한국경제의 위기와 민주노동당의 대안」, 2005)”라며, 전통적 시각을 고수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정보화의 핵심인 네트워크 경제의 발전에 따라 아래로부터 참여 계획의 실행 가능성이 20세기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11장)”라거나, “가령 모든 기업의 재무제표를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한다면,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을 통해 이를 수집 분석하여 전국적 및 전세계적 규모에서 생산과 투자를 계획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15장)”는 정성진의 주장도 장상환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를 계산 가능성으로 치환한 것은 아닌가?

트로츠키뿐 아니라, 혁명적이든 개량적이든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계산 가능성 같은 행정적 요소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경제 제도의 지배적 지위에서 나타나는 자연사적 경제운동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권능을 사회주의의 요체라고 보지 않았는가?

스탈린주의가 트로츠키를 곡해한 것처럼, ‘트로츠키주의’ 역시 읽고 싶은 트로츠키만을 읽는다. 정성진은 후기 레닌을 ‘경제주의로의 후퇴’라며,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과 신경제정책을 예로 든다(4장). 그런데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하에서는 - 오로지 그 밑에서만! - 민주적 문제의 사회주의적 문제로의 성장이행이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러시아혁명사」, 1932)”며 긍정한다.

정성진은, 신경제정책이 “진지하게 장기간에 걸쳐 실시될 것”이라는 레닌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인용한다. 그런데 트로츠키도 “퇴각이되 항복은 아니(「신경제정책과 세계혁명의 전망에 대한 보고」, 1922)”라며 신경제정책을 과도단계로 인정하고, 그 과도기가 “한 세기 또는 반 세기 동안(「코민테른 강령초안 - 기초 비판」, 1928)” 계속되리라는 예측도 제시한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실천적 문제의식에서 신경제정책은 ‘과도단계, 시장요소, 유럽혁명과의 관계’로 동일하게 존재했었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트로츠키주의’와 다르다.

정선진의 책은 그가 비판하는 ‘스탈린주의 교과서’의 문법을 따른다. “참여계획경제에서는 …… 배분할 수 있다 …… 참여계획경제에서는 …… 신속할 수 있다 …… 참여계획경제에서는 …… 귀결될 것이다(15장).” 트로츠키주의 경제이론대로 따르면 다 해결되고, 잘 될 것이다!?

이 인용문의 ‘트로츠키’를 ‘스탈린’으로만 바꾸면 국가사회주의체제론의 자동 해결론과 본원적 우월론에 완벽하게 일치한다. 매사가 그리 잘 풀린다면야 뭔 걱정이 있겠는가?

“트로츠키가 추구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경제학비판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방법과 마르크스주의 역사를 복원하고, 이에 기초하여 최근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지배적 경향들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머리말).”

그래서인지 정성진은 이 책의 초교지를 ‘다함께’에 보내 조언을 구했다. 나는 ‘다함께’가 트로츠키의 주장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그들이 트로츠키를 잘 알고 자주 인용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체사상파와 어울려 논다는 추문이 ‘트로츠키주의’의 반스탈린주의 투쟁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자유게시판도 없는 ‘다함께’의 독특하고 해괴한 문화가 어떤 식으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레닌이나 스탈린보다 ‘아래로부터’를 더 많이 강조한 트로츠키는 크론슈타트 반란과 노동자 파업의 파괴자이기도 하다. 또,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트로츠키는 노동조합과 평의회의 자율성에 반하는 결정과 실천을 했다. 내가 굳이 트로츠키의 과거를 끄집어내는 것은 걸출한 혁명가였던 그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트로츠키주의’ 교과서의 문구들을 신봉하는 것보다는 트로츠키의 실천적 굴절을 연구하는 것이 트로츠키가 꿈꾸었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살려내는 바른 방법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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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노력 전혀 이해 못한 책소개"
[이재영 서평 반론] "너스레보다 정독이 중요하다"
 
 
 

정성진 교수의 책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 대한 서평 형식으로 쓴 이재영 씨의 글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는 그 동안 스탈린주의(NL과 PD)와 각종 포스트스탈린주의(포스트모더니즘, 자율주의, 케인스주의 등)에 맞서 트로츠키를 지렛대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전통을 새로운 대안으로 구체화하려는 정 교수의 노력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정 교수의 문제의식과 논의 과정, 그리고 잠정적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 교수의 노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정도는 할 수 있을 법한데, 이재영 씨가 찾아낸 이 책의 장점이라곤 “한국 사람이 쓴 트로츠키에 대한 책”, 혹은 엉뚱하게도 “요즘은 찾아 보기 힘든 경제사상사 책”이라는 것뿐이다. 그런 다음 이재영 씨는 “서평이 아닌 책 소개”를 하겠다는 자신의 말을 어기고, 정 교수와 그가 지지하는 ‘다함께’를 “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라며 비난하는 것으로 지면을 채웠다.

이재영 씨는 “정성진의 책에는 눈에 거슬리는 과장이 적지 않다”며 먼저 “요즘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는 (…) 21세기 사회주의”라거나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다함께’나 정 교수와 같은 “국제사회주의자들(IS) 끼리의 유행”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동유럽 붕괴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TINA)이 득세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듯했던 ‘마르크스의 유령’이 지난 1997~98년 세계경제 위기와 함께 다시 살아나면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Return to Marx)가 지난 세기말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였음은 이재영 씨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1999년 시애틀 전투 이후 반신자유주의 대안세계화 운동, 그리고 21세기 들어 반전 반제국주의 운동이 고양되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차베스를 비롯한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에서 더 나아가 ‘21세기 사회주의’가 요즘 세계 진보진영의 화두로 되고 있음은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을 조금만 서핑해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21세기 사회주의’를 제창하고 있는 차베스의 인기가 전세계적으로 높은 사실에서 뿐만 아니라, 올 가을 예정된 ‘제5차 국제마르크스대회’(Congress Marx International V)의 대회주제가 ‘대안 세계화/반자본주의’이고, 우리나라 좌파 논객들의 대표적 연합체인 ‘맑스코뮤날레’의 올해 대회주제 역시 ‘21세기 자본주의와 대안 세계화’인 데서 알 수 있다.

게다가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2006.12.28)나 <중앙일보>(2007.1.4) 같은 대표적인 국내외 보수 언론들조차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마르크스주의, 특히 트로츠키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도한 데서 알 수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옛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민주노동당이 등장했다. 물론 '민주적 사회주의'의 내용에 대한 이해는 저마다 다르지만, 한국 사회의 대안 사회 모델 중의 하나로 사회주의가 거론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이재영 씨는 정 교수가 “~주의”라고 낙인을 찍는다고 힐난하지만 정 교수의 책, 특히 제3부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자원들’을 조금만 훑어보아도 정 교수가 자신과 다른 이론적 정치적 입장들에 대해 풍부한 논거에 입각한 논리적 비판을 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재영 씨가 계획경제의 불가능성을 반박하는 정 교수의 주장을 1930년대의 사회주의 계산 논쟁과 비교하고 더 나아가 이와는 무관한 1921년의 신경제정책과 연결시키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그러나 정 교수는 이재영 씨가 주장하듯이 “사회주의를 계산 가능성으로 치환”하고 있지 않다. 정 교수는 오늘날처럼 고도로 발달한 복잡한 현대 경제에서는 시장 없이는 계산이 불가능하다며 시장 폐지(즉, 사회주의)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자본주의 이외 대안 부재론’을 논박하기 위해 시장의 매개 없이도 참여계획경제 방식으로 계산과 경제의 조절이 가능함을 보였을 뿐이다.

또,이재영 씨는 레닌과 트로츠키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신경제정책을 정 교수가 경제주의라고 비판한 것을 거론하며, 트로츠키 자신과 정 교수의 트로츠키주의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20년대 소련의 신경제정책과 관련하여 정 교수가 문제삼은 것은, 이 책 14장에서 보듯이, 신경제정책의 시장사회주의론적(부하린) 혹은 일국사회주의론적(스탈린) 정당화였으며, 당시 혁명의 고립과 노동자계급의 해체의 조건에서 신경제정책과 같은 전술적 후퇴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또,이재영 씨는 “레닌이나 스탈린보다 ‘아래로부터’를 더 많이 강조한 트로츠키는 1921년 크론슈타트 반란의 파괴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 당시 트로츠키는 우랄산맥 지방에 출타 중이었고, 그곳에서 곧바로 모스크바로 가서 제10차 당대회에 참가했다. 진압 책임자는 서부전선 담당 적군 사령관 미하일 투하체프스키였다.

1917년 10월 혁명 당시 혁명의 최정예 부대였던 크론슈타트 수병과 1921년의 수병은 계급 구성이 달랐다. 페트로그라드의 공업 노동자들과 가장 선진적인 농민들로 이루어진 1917년의 수병들은 내전 동안 혁명을 방어하며 전투를 이끌었기 때문에 대부분 죽거나 부상당했다. 반면 1921년의 수병은 새로 징집된 농민 신병들이었다.

1921년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은 반혁명 위협이 사라진 뒤 노동자와 농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소비에트 내에서 볼셰비키를 제거하자고 주장하는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요구는 반혁명 세력의 복귀를 부르는 신호나 다름없었기에, 볼셰비키가 이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더욱이 백군과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계급들은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반란을 반혁명의 발판으로 여기고 있던 참이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을 진압한 것은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노동자 혁명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비극적 결정이었고 불가피한 폭력이었다.

이재영 씨의 논법은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 맥락에서 떼어내 그 자체로만 파악하고 논의해야 한다는 역사적 추상주의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사람이 죽은 뒤 앙상한 뼈만 남은 것을 두고 '같은 뼈조각이니 사람과 원숭이가 같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트로츠키에게도 약점과 실수가 있었고 또 1956년 헝가리혁명에 대한 소련의 진압을 옹호하거나 1989년 톈안먼 항쟁을 진압한 중국 지배자들을 옹호한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국제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 자기해방이라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정수를 보존하고 후대 사회변혁 운동가들에게 전수하려 한다는 점에서 트로츠키와 정 교수는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한편, 이재영 씨는 ‘다함께’가 “주체사상파와 어울려 논다는 추문” 운운하며, ‘다함께’가 “트로츠키의 주장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함께’가 북한을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는 사실과 북한 지배자들의 억압에 반대하고 탈북자들을 환영한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남한의 범자민통 동지들은 대체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고 피착취·피억압 대중의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며 사회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 운동의 일부다. ‘다함께’가 이들의 전략과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이들과 함께 연대해서 투쟁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다함께’는, 이재영 씨의 주장과 달리, 트로츠키가 말한 공동전선 정신에 부합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이재영 씨는 또 “자유게시판도 없는 ‘다함께’의 독특하고 해괴한 문화” 운운하며 ‘다함께’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 것처럼 몰아갔다. 그러나 자유게시판이 없는 것이 ‘다함께’만의 “해괴한” 특징인가? 또,자유게시판이 없다는 것이 ‘다함께’와 그 정치적 청중 사이의 관계가 민주적이지 않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자유게시판이 있는 그 수많은 단체와 기관들이 과연 ‘다함께’보다 민주적인가?  ‘다함께’ 홈페이지에는 대표 연락처와 메일 주소가 있고, ‘다함께’의 주장과 그 청중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맞불>을 발간하고 있다.

오히려,정치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쑥덕공론을 펼치거나 지지하고 연대해야 할 운동을 그 지도 세력의 정치사상을 핑계되며 지지하지 않는 종파주의가 진정한 문제가 아닐까?

물론 진보진영 내부에도 다양한 차이들, 상충되는 정치적 노선들이 존재하며, 이들 간의 비판과 토론은 역사의 진보를 앞당기는 것으로 존중되고 고무되어야 한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가 입장이야 어떻든 우리나라 진보 학계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정말 오랜 만에 나온 역작임은 이재영 씨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영 씨는 자신이 지지하지도 않는 트로츠키의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척하며 너스레를 떨 것이 아니라, 최소한 “24 시간 쯤”은 투자해서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우선순위였을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이 속한 사회민주주의 혹은 케인스주의의 입장에서 '다함께'에 대해서든 정 교수에 대해서든 인식과 대안에서의 차이와 논리적 비판을 분명하게 제기했더라면, 21세기 우리나라 진보의 대안 모색을 위한 토론의 발전에 약간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관련기사
· 트로츠키와 다른 한국의 ‘트로츠키주의’
 
2007년 02월 02일 (금) 08:56:12 이정구
 
2007년 01월 29일 (월) 14:06:38 이재영 기획위원

누가 역사를 날조하는가?
[트로츠키 논쟁] 추락할 것이 뻔한 고물 비행기에 동승하라니
 
 
 

이재영 씨(이하 존칭 생략)는 내가 “악질적인 역사 날조”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누가 그런지 크론슈타트 반란 문제부터 살펴보자.

1921년 크론슈타트 반란과 그 진압은 우익과 자유주의자, 이재영을 비롯한 온갖 사회민주주의 경향은 물론 일부 아나키스트들이 애호하는 쟁점이다. 이 사건이 볼셰비키가 자기 자신의 지지자들을 공격한 대표적 사례이자 러시아 혁명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레닌, 트로츠키 정치와 스탈린 공포정치의 연속성 명제를 가장 잘 뒷받침해 주는 호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재영은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이 ‘농민 신병’이라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말은 거짓”이라고 단정한다. 그런데 내가 크론슈타트 반란자들 대부분이 ‘농민 신병’이라고 말한 것은 실은 크론슈타트 반란 연구의 고전인 <1921년 크론슈타트>의 저자이자 반란군에 호의적인 아나키스트 역사가 폴 아브리치 저작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비밀 문서들은 이 통설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또, 이재영은 크론슈타트 반란 직전인 “2월 페트로그라드에서는 푸틸로프 공장을 비롯한 노동자 파업이 줄을 이었고,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은 파업 노동자들과 연계하며 그들의 요구 사항을 봉기에 내걸었다”고 주장하면서 크론슈타트 반란을 마치 ‘제3의 노동자 혁명’처럼 미화하는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아브리치에 따르면, 크론슈타트 반란이 일어났을 때는 페트로그라드의 파업은 마무리되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반란을 지지하기는커녕 반란 진압에 동조했다. 최근 공개된 러시아 문서들도 크론슈타트 기지의 노동자들이 반란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인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사실, 내전 말기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것은 주로 식량 부족 때문이었는데, 이들이 식량 배급을 더욱 악화시킬 게 뻔한 ‘곡물 징발 중단’을 요구했던 크론슈타트 반란을 지지할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 1921년 크론스타트 반란 당시의 자료사진 
 
이와 관련해, 이재영은 당시 “‘노동자 반대파’들이 트로츠키를 짜르 시대 반동 장군이었던 트레포프에 견주어 비아냥댔”다면서, 그 증거로 바로 그 문장 다음에 “총알을 아끼지 말라” 운운한 <크론슈타트에 관한 진실>을 인용한다. 그런데 이재영은 그 인용문을 쓴 것은 ‘노동자 반대파’가 아니라 크론슈타트 반란 지도부인 ‘임시군사혁명위원회’인 것 정도는 알고나 인용했어야 했다.

또, 이재영은 자신이 크론슈타트 반란군과 함께 노동자 민주주의의 구현체로 애지중지하는 ‘노동자 반대파’조차 크론슈타트 반란 사태가 터지자 당시 10차 당대회에 참석했던 ‘좌익공산주의’ 등 다른 반대파들과 함께 투하체프스키의 진압 부대에 자원 입대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다.

이재영은 또, “크론슈타트 반란자들이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를 주장했다”는 내 주장도 “거짓”이며 “악질적인 역사 날조”라고 공격한다. 하지만 볼셰비키와 공산당에 호의적일 리 만무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반란군이 “경제 개혁 이외에도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와 … 공산당 독재의 종식 … 등을 요구했다”고 서술한다. 실제로, 반란군은 군대, 공장 등에서 볼셰비키 기구들을 폐지하라고 요구했고, 당시 크론슈타트 함대에 있던 볼셰비키 정치위원 등 수백 명을 체포 구금했다.

물론 반란군이 내건 15개 강령에 “소비에트 선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 반란군들이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어떤 초짜 운동가도 어떤 조직이나 운동의 정치적 성격을 그들이 내건 슬로건만을 갖고 판단하지 않는다. 진지한 역사가는 박정희와 공화당이 “한국적 민주주의” 기치를 내걸었다고 해서 그들을 민주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크론슈타트 반란은 다름 아닌 그 크론슈타트 기지의 노동자들조차 반대했던 반란이고, 1920년 노동조합 논쟁에서 트로츠키에 맞서 당시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했던 ‘노동자 반대파’까지 무력 진압에 동참한 반란이다. 그런데 그 반란을 도대체 무슨 근거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향한 ‘제3의 노동자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재영의 주장처럼 크론슈타트 반란군이 “자유로운 소비에트 선거”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요구하고 실현하려 했다면, 도대체 왜 서방 제국주의 열강들, 로마노프 왕조의 복귀를 노리는 러시아 왕당파들, 자본가들의 자유주의 정당인 입헌민주당,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등이 모두 크론슈타트 반란을 지지했을까? 그들이 언제부터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지지자들이 된 것일까?

이재영의 주장은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고 따로 떼어내 그 자체로만 파악하려는 역사적 추상주의의 발로이다. 예컨대 이재영은 내전 시기 트로츠키가 제기했던 노동자의 군대화나 노동조합의 국가기관화 주장과 관련해 이 주장들이 제기된 역사적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당시 출판된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의 구절(트로츠키 자신은 곧 자기비판을 하며 이 주장을 철회했다)을 인용하면서 마치 트로츠키가 내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부정”한 사람인 양 암시한다.

비판 대상에 대한 무지

이재영은 트로츠키가 1920년대 스탈린주의 관료에 맞서 당내 민주주의,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부활을 위해 투쟁하고 1936년 <배반당한 혁명>에서는 다당제를 주장한 사실(이는 정성진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 잘 서술되어 있다)은 피해 간다.

‘다함께’는 물론 정성진도 트로츠키 사상의 적잖은 부분에 대해, 또 다양한 정설파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해 비판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입지하고 있는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이론과 정치에 대해서도 중요한 쟁점들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재영은 이 역시 전혀 “보지 않는다”. 이재영의 억측과는 반대로 “흠집 없는 권위로의 도피”만큼 ‘다함께’의 정치와 거리가 먼 것은 없다.

‘다함께’는 이재영이 주장하듯이 우리와 다른 정치적 입장들에 대해 “트로츠키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결코 매도하지 않는다. 예컨대 정성진은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서 그가 21세기 사회주의의 대안 구상을 위해 중요한 자원으로 고려하는 참여계획경제의 세 가지 모델(‘파레콘’, ‘협상조절’, ‘노동시간 모델’)이 모두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적대적임에도 그들로부터 배울 것은 배운다.

또, 같은 책에서 정성진은 때로 ‘다함께’보다 더 나아가, 소련 국가자본주의론의 이론적 발전을 위해 심지어 알튀세르주의자들로부터도 수용할 것은 수용한다.

정성진과 ‘다함께’는 북한의 사회 체제를 노동자 권력과 혁명으로 타도되어야 할 국가자본주의적 착취․억압 체제로 규정하지만, 남한의 주사파가 북한 체제를 지지한다고 해서 이들을 이재영처럼 하나의 적으로 대하는 종파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이들이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 반전 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한 이들과도 연대한다.

이재영은 “‘다함께’ 같은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한 망명객 시절의 언행에 더욱 주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성진은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에서 트로츠키 사상의 정수는 1906년에 발표한 영구혁명론에 있는가 하면, “망명객 시절”, 즉 1930년대의 “언행” 중에도 ‘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국가’론이나 섣부른 제4인터내셔널 창건과 같은 오류들이 적잖이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반나치 공동전선의 필요성에 대한 글이나 프랑스, 스페인 인민전선 비판에 대한 글은 실로 탁월하다.

이재영은 “스탈린주의라 불리는 체제의 이론적 기초와 정치적 토대의 상당 부분은 트로츠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라는 자유주의자들과 일부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을 반복한다. 그런데 정성진이 각종 자료와 논거를 동원해서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이와 같은 종류의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마르크스-레닌-룩셈부르크-트로츠키)과 스탈린주의 간의 연속성 명제이다.

1989~91년 붕괴된 소련권 사회의 실체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변형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일 뿐임을 논증하는 작업은 정성진의 책이나 ‘다함께’의 이론적 작업의 핵심적 부분인데, 이재영은 이에 대해 완전한 노코멘트이다. 그러고는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실패를 이유로 “실존하는 구체에서 검증되지 않은 추상으로 내려 앉았”다고 주장한다.

정성진이 옛 소련의 국가자본주의적 본질을 논증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를 매개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스탈린주의 간의 질적 단절을 논증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를 기초로 21세기 조건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창조적 발전과 한국적 착근을 모색하는 것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자인 이재영은 물론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왜 어떤 점에서 동의하지 않는지를 논리적으로 근거를 대며 지적해야지, 이런 시도와 모색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애써 간과하며 논쟁을 원점으로 되돌려서는 우리 진보 진영의 이론과 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파주의

한편, 이재영이 ‘다함께’와 범자민통의 “야합” 또는 “연대” 운운하면서, ‘다함께’가 당당하다면 “‘주사파와 어울려 논다’는 지적에 그저 ‘그렇다’ 라고만 답하면 되는 것”이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이재영이 인용했듯이, 나는 지난번 글에서 ‘다함께’가 범자민통 동지들과 “함께 연대해서 투쟁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광범한 대중운동을 건설하려면 자신과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과도 기꺼이 함께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야합’이라면 ‘다함께’는 ‘야합’을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분파주의에 눈이 멀어 연대와 투쟁의 대의를 종파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다함께’의 정치와 거리가 멀다. 게다가 ‘다함께’는 민주노동당 선거에서 범PD 계열일지라도 지난해 하반기 이래 최대 쟁점인 북핵과 일심회 사건과 사회연대전략 문제에서 우리가 보기에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면 그를 지지했고, 민주노총과 현 금속선거에서는 NL계열이 아니라 노힘 등 옛 PD계열 내 좌파를 지지하고 있다.

이재영이 ‘다함께’의 정치를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는 “마르크스 훈고학”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다함께’ 신문이나 홈페이지(www.alltogether.or.kr)를 잠깐 둘러보아도 ‘다함께’가 “마르크스 훈고학”자들이기는커녕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인 정세 분석과 반전․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투쟁에 헌신하는 투사들임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재영 자신이 경멸해마지 않는 “마르크스 훈고학”도 이재영처럼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척하면서도 역사와 사상을 그 전체 역사적 맥락 및 진화 과정 속에서 판단하지 못하고, 뻔히 보이는 것조차 보지 않고, 자기 맘에 드는 것만 골라 보고, 그것도 멋대로 날조해서 진보를 호도하는 사람들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때로 유용하다.

사회민주주의적 본질

이재영은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지평에서 이륙을 위한 가속을 시작해야 한다. … 우리의 이륙이 성공했을 때 그 비행기에 어떤 이름이 새겨질지를 알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재영의 문제의식을 추적하다 보면 이재영이 타고 있는 ‘비행기’의 이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재영은 “지난 150여 년을 거슬러 반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지만,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이 비행기의 이름은 분명히 사회민주주의다.

이는 이재영이 민주노동당의 집권이 “겨우 한두 걸음을 내딛는 것이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의 대장정이 아니다”라거나, 국유화 계획을 “앞으로 오랫동안 가질 필요도 없다”는 말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낡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자”며 이재영이 제시한 것은 전혀 새롭지 않은 사회민주주의행 비행기 티켓이다.

그러기에 이재영에게는 “요즘 세계 진보 진영의 화두”로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는 정성진의 지적이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 파악”처럼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이재영은 글 끝 부분에서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했는가?”하고 자문하고 그 답은 “세상에 대한 무지,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지에 대한 무지”라고 주장하고, “우리는 사회혁명을 이룰 정보와 지식,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어림과 나약함, 무지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이재영은 고전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적 방법을 버리고 계급투쟁과 역사 발전을 지식의 문제로 환원하는 관념론을 채택했음이 분명히 확인된다. 이재영이 이륙을 시도하고 있다는 그 개량주의적 관념론의 비행기는 이미 지난 20세기 동안 무수히 되풀이된 이륙 실험에서 형편없이 실패한 바 있다.

이재영이 글 끝 부분에서 “아직도 멀었다”며 일갈하며 자신의 “무지”를 시인한 것이 진심이라면, 그 이륙은커녕 추락할 것이 뻔한 고물 비행기에 동승하라고 어쭙잖은 말장난과 거짓말로 호객하는 짓은 당장 그만 두고, 먼저 마르크스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한 자신의 “무지”부터 깨쳐야 할 것이다.

 
2007년 02월 12일 (월) 09:03:31 이정구 / '다함께' 회원 redian@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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