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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금보다 더많은 과제 안겨줬다

노조는 여론전에서 졌다. 이렇게 진 이유는 코리아 언론이 '왜'의 문제를 부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성과금보다 더많은 과제 안겨줬다
[평가] 현대차 합의 득실…"회사는 노조 고립화 성공"
 
 
 

차등 성과금 지급을 둘러싼 현대차 노사갈등이 사태발생 20여일만에 노사 합의로 타결됐다. 현대차노조는 이번 파업투쟁을 ‘승리’로 평가하고 자신감을 얻은 모습이다. 보수언론은 “현대차가 강성노조의 ‘생떼쓰기’에 밀려 물러섰다”고 보도했다.

노조는 승리했고, 현대차 측은 파업으로 맞선 노조에 밀리기만 한 것일까. 현대차의 이번 노사분쟁은 표면적으로는 임금협약에 명시된 성과금 지급과 관련한 합의와 별도로, 노사가 구두합의를 통해 생산목표와 관계없이 성과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해온 기존의 관행을 회사 측이 뒤집은 것이 발단이다.

“이번에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해 성과금을 줄 수 없다”는 회사 측과 “약속한 성과금은 반드시 줘야 한다”는 노조가 정면충돌 하면서, 결국 회사 측이 생산목표의 만회를 조건으로 미지급된 성과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사태는 마무리됐다.

   
  ▲ 지난 17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1층 아반떼룸에서 현대차 노사 대표들이 최종 협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회사 무리수와 조합원의 단결이 승리 요인

현대차가 구두합의를 부인하며 차등 성과금을 지급하겠다고 ‘치고’ 나온 데에는, 현대차노조의 주장대로 ▲노조의 민주노총 총파업의 봉쇄 ▲올 해 두 번에 걸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선거에서의 온건노선 지도부 당선 ▲금속노조 산별교섭의 무력화 등의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노조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지급된 성과금 50%를 지급하라는 요구만으로 현장 제조직과 조합원들의 투쟁동력을 이끌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회사가 노조 간부 26명에 대해 고소고발을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강력하게 나오자, 오히려 노조 내부의 단결력과 동력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이번 사태를 성과금 문제를 넘어 노조에 대한 도발로 진단하기 시작했고, 노조가 나눠주는 아침 선전전 유인물을 받아들면서 “수고하십니다”라고 말하는 등 적극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장 조직들 또한 노조 상집위원들에게 고소고발과 함께 손해배상이 청구되자 ‘판’이 커졌음을 직감했고,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서더라도 이 문제를 안고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지부장 선거를 연기하고 파업지도부 구성을 결의한 것도 이같은 상황인식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회사 측의 ‘도발’에 현장조직은 물론이고 조합원들이 단결된 힘을 보임으로써 노조 내부의 동력은 충전됐고, 이는 이번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안현호 현대차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위기 때마다 단결로 극복해온  현대차노조 조합원들의 저력을 이번에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87년 노조를 만든 이후 조합원들은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하면서 노조가 없으면 방어할 힘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노조를 살려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의지를 믿고 싸웠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회사 쪽의 ‘준비되지 못한’ 도발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차가 차등 성과금 지급을 계기로 노사간 힘의 관계를 역전시키기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윤여철 현대차 사장은 이미 지난 15일 오전 노조 사무실을 방문하여 박유기 현대차노조 위원장에게 “미지급된 성과금을 줄 것”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부터 노사는 성과금 지급 시기와 방법, 그리고 고소고발 건 취하 문제 등을 놓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노조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결심공판에 맞춘 규탄시위를 법원 앞 1인 시위 수준으로 축소했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가 노조의 기를 꺾기 위해서는 노사가 둘 다 ‘망하는’ 것을 각오할 정도로 엄청난 준비가 필요한데, 현대차는 노무관리 인사를 자주 교체하는 등 노조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섣부르게 공격했다”고 평가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공금횡령과 비자금 조성에 대한 검찰의 6년 구형, 그리고 김동진 부회장이 이헌구 현대차노조 전 위원장에게 건낸 2억원의 금품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기아차노조의 성과금 투쟁 결의 등도 현대차가 성과금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것을 결정하게 한 ‘돌발변수’로 작용했다.

그러나 회사도 “챙길 것은 챙겼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회사 쪽도 ‘챙길 것은 챙겼다’는 분석이다. 배 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대차는 노사간 이면합의가 아닌 투명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했고, 생산성을 회복시키는 조건으로 성과금을 지급하는 한편, 여론을 통해서는 노조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효과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울산지역 시민사회단체의 현대차노조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 그리고 현대차 불매운동까지도 불사하겠다는 네티즌의 여론은 노조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서보연 현대차노조 정책실장은 “‘집단 따돌림’ 수준으로 여론은 갈수록 노조에 불리하게 전개됐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서는 이미 파업의 본질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노조를 흠집 내기 위한 보도만이 난무했다”고 말했다. 빗발치는 여론의 뭇매 속에서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노조로서도 사태가 더욱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전 참패한 노조, 시민사회 인식 바꾸는 노력해야

노조에 대한 적대적인 여론은 앞으로 더욱 노조를 압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올해 노조가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 파업을 하게 될 때, 여론은 또다시 노조를 비난하게 될 것이다. 금속노조 산별교섭을 요구할 때도, 민주노총 총파업을 수행할 때에도 여론은 노조에 차가운 시선을 보낼 것이다.

여론이 노조에 등을 돌린 이유는 보수언론의 무차별적인 공세가 가장 크지만, 비정규직이 확산되는 추세 속에서 대공장노조의 파업을 ‘배부른 노동자의 이기주의’로 보는 시선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대차노조는 여론전에서는 ‘참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은수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노조는 금속산별노조를 이끈 모범적 노조로서 시민사회를 설득하고 투쟁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과 시민단체가 비난하고 있는 취약점, 즉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배려 없는 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를 외면한 투쟁에 대해 정확하게 노조의 논리를 세워 시민들의 인식을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노조가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성과금 50%를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투쟁 기금으로 사용할 것을 발표한다거나, 지역시민단체를 초청해 노조의 입장을 전달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등 이런 대응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87년 민주노조 운동이 출발한 시점부터 현재까지 노조에 대한 언론, 특히 보수언론들의 악의적 왜곡보도 행태가 달라진 것은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번 교섭과 투쟁 과정에서 노조 집행부에서는 "언론 때문에 교섭 못하겠다"라거나 "여론은 아예 신경을 안 쓴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교섭과 투쟁은 노조의 기본적 활동으로 하기 싫다고 안해도 되는 게 아니며, 여론은 무시하고 싶다고 해서 무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보수언론 기사 먹히는 환경도 주목해야

실제로 노조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 여론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여론을 오로지 보수언론의 보도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보수 언론의 논조가 먹혀들어가는 환경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싸움이 중요하다는 것이 노동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노동자 내부의 분열과 갈등이 자본의 노동유연화 정책의 결과이긴 하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은 노동운동 내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7년 새해 벽두를 뒤흔들었던 현대차노사의 성과금 사태는 노사합의를 통해 마무리됐지만, 노조가 마냥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성과금은 받아냈지만, 과제를 더 많이 안겨준 투쟁이었다”고 금속노조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2007년 01월 18일 (목) 16:03:21 문선영 기자 tathata@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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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나빠 F학점 주면 교수 자질부족?

 

 

 

점수 나빠 F학점 주면 교수 자질부족?
[석궁 습격] '교육자적 자질' 탓한 이정렬 판사에게 묻는다
텍스트만보기   김연기(yeonki75) 기자   
 
 
▲ 성균관대 졸업생들이 법원에 낸 김명호 교수 탄원서.
ⓒ 오마이뉴스 김연기
 

현직 부장판사에 대한 피습 사건으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재임용 탈락 이유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씨가 10여 년간 학교를 상대로 싸워온 사연이 속속 공개되면서 여론의 흐름은 법원이 편파적으로 심리를 진행해 김씨가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점에 모아졌다.

이처럼 여론의 화살이 법원에 돌아오자 항소심 재판부 주심을 맡은 이정렬 판사가 재판 과정에 있었던 일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상세하게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법원 "교육적 자질로 재임용 판단"... 그러나 학생들은

   오늘의 브리핑
 
점수 나빠 'F' 주면
교수 자질 부족?
[석궁 습격 사건]
 
 
<시사저널>, 알고보니 'BBC 표절'
삼성에 유독 약한 법원의 '이율배반'
정체성·정당이 없는 후보 필패한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공간정책은 달랐나
<요코 이야기> 논쟁이 빠뜨린 진실
모유 수유 병원서 왜 분유를 준 거지?
문소리 "참여정부 끝장내는 투쟁한다"
'전무' 이재용, 후계 구도 가시화되나
할머니 성폭행 주한미군 '모르쇠'
 
이 판사는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 "법원이 권위주의적인 재판과 판결을 하였다는 평가에 대해 저는 마음만 아플 뿐이다"며 "특히 (박홍우 부장판사가) 편파적으로 심리를 진행했다고 취급되는 데 대해 재판부는 통분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재판부의 판단 기준이 된 김씨 재임용 탈락 타당성의 기준을 크게 '학자적 자질'과 '교육자적 자질'의 두 가지로 나눴다. 이 가운데 학자적 자질은 인정하지만 교육자적 자질을 인정할 수 없어 학교 측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 이 판사의 주장이다.

그는 "이번 판결의 기본적 구도는 '학자적 양심이 있으나 교육자적 자질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의 재임용 탈락'의 적법성 여부이지, 원고가 학자적 양심이 있다는 점은 쟁점도 되지 않았다"며 "교육자적 자질이 재임용 탈락 여부를 결정지은 주요한 근거가 됐다"고 말했다.

즉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김씨가 교수직을 유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판사의 이같은 지적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김씨가 재임용에 탈락될 당시 성균관대 수학과 재학생들이 작성한 한 장짜리 탄원서는 이 판사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보여준다.

졸업생들 "김씨, 교육적 차원에서 퀴즈 보고 성적 평가"

 
▲ 판결에 앙심을 품고 서울고법 민사2부 박홍우 부장판사를 피습한 전직 교수 김모씨(사진뒤편 오른쪽)와 범행에 사용한 석궁을 15일 밤 경찰이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탄원서를 작성한 학생들은 "(김씨는) 학생들이 요행으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을 제일 경계했으며, 학생들의 비난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교육적인 차원에서 매주 퀴즈를 보고 그것을 성적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김씨에 대한 재임용 탈락과 관련해 그 이유 중 상당한 부분이 '1996년 성대 수학과 졸업 예정자들로부터 받은 불신임'에 기인한다는 사실은 여러 사람을 놀라게 한다"고 했다.

김씨의 강의를 받았던 학생들이 직접 김씨의 교육자적 자질에 문제가 없었음을 인정하고 나선 셈이다.

이는 '제자들로부터 평판 등이 교육자답지 못하다는 점 때문에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김씨가 교수직을 유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이 판사의 주장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이 탄원서는 김씨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직후인 지난 1996년 2월 '김명호 교수의 징계를 반대하는 학생들 일동'이란 명의로 작성됐다. 당시 30여명 가까운 졸업생(전체 70명)이 탄원서 작성에 참여했다.

물론 탄원서가 졸업생 전체 의견은 아니지만 당시 수학과 학생들의 공식 입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법원 심리의 공정성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 내용이 사실일 경우, 이는 '김씨의 교육자적 자질 부족이 재임용 탈락 이유'라고 밝힌 이 판사의 주장과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학생들이 기말시험 거부한 이유는

법원이 김씨의 교육자적 자질을 문제삼은 것 중 하나인 '학생들의 기말시험 거부'와 관련해서도 탄원서는 전혀 다른 내용을 말한다.

당시 학생들에 따르면 체육 특기생 30여명에 대해 학교 측이 점수를 줄 것을 김씨에게 요구했는데, 김씨는 출석일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는 것.

이 부분과 관련해 이 판사는 "원고(김씨)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이 보복을 당하였다는 점뿐이었다"며 "당시 학과장이나 학생에 대한 증인 신문을 할 때 원고는 반대 신문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은 '전문지식을 가르칠 뿐이지 가정교육까지 시킬 필요는 없다'는 진술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씨는 시험을 거부한 학생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재시험을 치루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같은 내용은 성대 학생들이 작성한 탄원서와 지난 2006년 10월 31일 진행된 공판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먼저 탄원서를 살펴보면 당시 학생들은 "1996년 졸업 예정자들은 김명호 선생님이 전공필수과목인 '위상수학'에서 기준 이하의 성적을 얻는 학생에게 과락(F학점)을 줄 수 있다고 하자, 졸업을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집단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시험을 거부하면서 불신임 서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재판 속기록을 살펴보자.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홍우 "30명 정도가 학기말 시험에서 백지를 냈는데, 증인은 당시의 학과장으로서 문제해결을 위하여 원고를 불러서 어떻게 하겠느냐 물어 본적 있었습니까?"
정모 "5명 F를 준다고 공언하고 학생들이 싫어해서…(원고를 불러서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김명호 "반면에 저는 그에 대한 노력을 했습니다. 원칙을 지켜야 했지만, 29명의 4학년 학생들이 졸업하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 더욱이 (내용을 잘 모르는) 학생들이 교수들 간의 불화에 휩쓸리는 것이 우려되어 무마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먼저 아까 정 교수님이 당시의 과대표가 김00이라고 했는데. 당시의 과대표는 유00이었습니다. 그 유00 과대표를 포함한 학생들과 면담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시험 기회를 2번 주었고, 그 증거로 전에 백지 답안지들과 함께 제출한 답안지 중 2명의 재시험 답안지가 있습니다. 그래도 시험을 안 본 학생들에게 중간고사 성적을 기초로 하여 C·D로 주었으나 학생들이 거부하여 F를 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증거는 피고 측이 제출한 성적기록표에 보면, C·D로 주었다가 F로 고친 흔적이 있습니다." (이 때, 이정렬 판사가 박홍우 재판장에게 C·D로 주었다가 F로 고친 흔적이 있는 성적기록표를 보여준다.)

박홍우 판사 "원고는 5명 F를 준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까?"
김명호 "없습니다. 단지 공부를 하지 않으면, '4학년이라고 무조건 졸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만 했습니다."
박홍우 판사 "원고는 학생들을 잘못 교육시킨 것이라는 생각이 없나요?
김명호 "대학은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곳이지, 가정교육을 시키는 곳이 아닙니다. 저의 죄라면 원칙을 지킨 죄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재판 속기록을 살펴보면 김씨가 분명한 기준에 근거해 엄정하게 성적을 평가했지만 일부 학생들이 이를 수용하지 않아 F학점을 받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판결 과정에서 참작되지 않았고, 다만 학교 측이 주장한 김씨의 '교육자적 자질 부족'만 재판부는 받아들였다. 일각에서 이 판사의 글을 접한 뒤 "단순히 김씨의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해 재임용 탈락이 정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씨의 복직 투쟁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상근 한국과학기술원 수학과 교수는 "탄원서는 물론 당시 수학과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재임용 탈락 반대 서명서까지 법원에 제출했지만 이 모두 묵살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학문적 양심의 수난'

그 누구보다 이번 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인 민교협을 비롯한 교수 사회에서는 학문적 양심에 따라 순조롭게 풀려야 할 일이 '석궁 습격'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이유를 되짚어 보자는 데 이번 사건의 본질이 있다고 지적한다.

민교협에 따르면 지금도 수십 명의 교수가 재단측 부당한 재임용 탈락에 맞서 진실 투쟁을 벌이고 있다. 재단의 부당한 재임용 탈락을 막자는 취지에서 지난 2005년 사립학교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교수는 재단의 일방적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쫓겨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김씨의 경우처럼 재임용에 탈락하는 대부분의 교수들은 학교 측의 전횡에 맞서다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번 사건을 사법부와 김씨 간의 문제로 바라볼 게 아니라 재단의 전횡에 맞선 학문적 양심의 수난으로 봐야하는 이유다.
학과장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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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8 11:3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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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이야기>에 쏟아지는 비난

 

 

 

요코 이야기>에 쏟아지는 비난
한국은 과연 전쟁강간에서 자유롭나
[주장] 이 책을 둘러싼 민족주의 논쟁이 빠뜨린 진실
텍스트만보기   김홍주선(pheebss) 기자   
 
 
 
▲ <요코 이야기>
 
<요코 이야기>를 둘러싼 언론 보도로 네티즌들이 '들끓고' 있다. <연합뉴스>에서 지난 17일 <'얼빠진 한국' 일본마저 거부한 요코 이야기>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를 살펴보자.

전범 가족의 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슨이 성인이 되어 저술한 과거사 이야기에는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 여성들을 강간했음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중학교 교재로 채택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 <대나무 숲 저 멀리(So far from the bamboo grove)>가 파문의 근원이다. 한인 사회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따른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상흔이 남은 가운데 이같은 교재를 문제의식 없이 채택한 것에 분노하여 항의하고 있다.

이에 이 책이 한국 출판사 문학동네를 통해 출간된 것이 또한번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후의 보도는 민족감정을 터뜨리며 실제 책의 내용에 대한 확인은 제쳐두고 일단 문학동네와 한국 외교통상부를 향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전쟁이 있는 곳엔 언제나 강간이... 한국이라고 결백할 수 있나

오랫동안 단일 민족을 형성하여 살아왔으며, 굴곡 많은 근·현대사를 거친 한국인들에게 '민족'의 문제는 언제나 뜨겁다. 그렇기에 <요코 이야기>에 등장한 여성에 대한 위협과 강간의 가해자를 한국인으로 설정했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을 뜨겁게 자극하여 분노케 하고 있다.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자행된 역사의 만행 앞에서 한국인을 가해자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피해자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것 또한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기에 앞서 민족의 이름으로 분노를 터뜨리게 하고 있다.

전쟁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강간과 성폭력이 자행되어 왔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인 일본에 의해서 한국과 중국, 심지어 네덜란드에서까지도, 그리고 미군이 주둔하는 한국의 기지촌에서도 미군에 의해 수없이 저질러진 일이다. 또 한국이 베트남에서 수없이 저지른 일이기도 하다.

   오늘의 브리핑
 
노무현과 이명박의
공간정책은 달랐나
 
 
정체성·정당이 없는 후보 필패한다
문소리 "참여정부 끝장내는 투쟁한다"
모유 수유 병원서 왜 분유를 준 거지?
<요코 이야기> 논쟁이 빠뜨린 진실
'전무' 이재용, 후계 구도 가시화되나
<대한늬우스>로 보는 간첩조작사건
할머니 성폭행 주한미군 '모르쇠'
"나는 왜 '고건'을 설득하지 못했나"
수학자는 판사에게 왜 석궁을 쏘았나?
 
한편으로 전시에 여성들을 강간하는 관행은 일부 남성들의 우발적인 행동만도 아니었다. 이는 인종청소를 위한 계획의 하나였고 강간은 여자들을 짓밟음으로써 상대국(상대 민족)의 미래를 짓밟으려는 계획적이고 집단적인 전쟁 작전의 하나였다. 그래서 강간은 어느 전쟁에서나 있어왔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패전국 일본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 남성에 의한 일본 여성의 강간이 '있을 수 없는 일', '과거사 왜곡'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가족 안 과 애인 사이에도 부지기수로 발생하는 '성폭력'이 민족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상대국 여성에게 가해지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과연 누가 할 수 있는가? '순결한' 한국의 남성들이 할 수 있는가?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매체인 <한겨레>에서도 <요코 이야기>가 정확한 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떠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 책이 담고 있는 강간 피해를 일축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증이 없다고? 일본군 성노예도 한때는 '떠도는 이야기'였다

 
▲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황금주 할머니가 지난 2004년 5월 12일 오전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군의 이라크인에 대한 반인권적 전쟁범죄 규탄 및 한국군 파병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규탄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러나 우리는 '사료 중심'의 증거 채택에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현재 그렇게 분노하고 공감하며 지지하는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발굴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이 일이 우리 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국제사법재판소(ICJ)에까지 가게 된 지는 불과 10~20여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때는 한국에서 '성폭력' 자체가 공론화하던 때와 얼추 맞물린다. 여성운동의 성과에 힘입어 성폭력특별법이 제정(1993년)되고 성폭력 비난의 중심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로 힘겹게 돌아서던 때이다.

전쟁 당시의 피해가 있었던 때로부터 50여년이 더 지나, 최초의 할머니가 증언을 시작했다. "부끄러운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다"라는 신념으로 입을 연 것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사회는 '강간' 자체가 피해자 여성의 수치스러움으로 인식됐다. 그랬던 때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화와 강간'은 '떠도는 이야기'였을 뿐, 누구 하나 나서서 증언하려 들지도, 공론화하려 들지도 않았던 숨겨진 이야기였다.

당시 할머니들의 '거짓말 같은 끔찍한 증언'에 일본의 자유주의 실증사학자들은 "구술된 이야기라서 정식 사료로서 가치가 없다"며 사실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역사 기술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는 애초부터 기록된 자료가 부족했다.

공문서와 역사 자료를 기초로 '실증'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정신대 할머니들의 성노예 피해구술 기록(할머니들에게는 무슨 서사구조로 이야기해야할지 참고할 이야기틀도 없었고, 아파서 기억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은 한낱 '어중이 떠중이 헛소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후 같은 피해를 당한 할머니들이 하나둘 입을 열어 증언을 시작하고 '성노예'와 다름없는 참상이 알려졌다. '정신대 문제'는 한국의 뜨거운 민족 감정에 힘입어 '사실'로 기록되어 알려졌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던 당시, 국내외의 여성들을 전쟁에 동원했다. 이 와중에 일본(내지) 여성들은 1차 위안부로 간호사 등의 2차 병력으로 활약하고 한국 여성들은 2차 위안부인 '성노예'로 다루어졌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2차 위안부인 '성노예'로 차출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정신대 문제가 민족 대 민족의 이름으로 공론화할 수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 내에서조차 제대로 발설하기 힘든 문제가 되어 잊혀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성노예' 문제 자체를 없었던 일로 치부하면서 아직까지도 공식적인 해명이나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전쟁강간, 중요한 건 국적이 아니다

네티즌들이 감정적으로 비난을 퍼붓고 있는 문학동네에서 당시 <요코 이야기>를 출판할 때, 한국 번역가와 일본의 저자가 만났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저자는 일본 정부의 잘못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자기 잘못에 대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사과하지 못한다는 것은 창피한 거지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요."

현재 이 기사를 쓰고 있는 피시방에서도 사방에서는 전쟁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재일동포 기사를 썼던 친구 하나는 민족 운동의 진영 내에서 '민족의 순결성'을 강요하며 여성들에게 치마저고리와 모성을 강요하고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끈끈한 '가족애'를 본다.

강간은 일본군이 한국 민간인에게 저질렀던 것인가. 단지 그것뿐인가. 강간의 국적을 따지기 시작한다면 강간 피해자에게는 가해자의 국적이 중요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피해자도 '한 민족에게 당한 강간이기에 덜 상처받는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국의 근·현대사에 휘말려 일본의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나 힘든 삶을 살아왔던 신숙옥씨는 <자이니치, 당신은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대하여>라는 책을 펴냈다. 일본과 한국과 북한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치여가며 만신창이가 된 생생한 개인사의 증언이었다.

신씨는 일본인 남자 의사에게 강간당했던 '조센징 여자아이'의 삶에서부터 시작해 국적 불명으로 학교와 사회에서 당했던 차별과 취직거부로 인한 가난을 겪었다. 지금 그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삶을 살고있지만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자이니치'(재일교포를 뜻하는 일본말)의 존재를 이용할 뿐 제대로 포용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국경을 넘어, 민족을 넘어, 손을 마주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지금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피차별자가 아니면 체험하지 못할, 인간의 '양심'과 만날 수 있는 인생은 최상의 인생이기도 하다. 지금 나는 어느 나라 국가도 부르지 않는다. 어느 나라 국기도 게양하지 않는다. 내게 애국심은 없다. 국가를 사랑하기보다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사람을 계속 사랑하고 싶다."

'민족주의' 이름으로 공론화조차 틀어막아선 안돼

 
▲ 지난 해 8월 9일 낮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앞에서 정대협 회원과 한·일 시민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연대집회'가 제721차 수요집회를 겸해서 열렸다. 세계연대집회는 국제앰네스티(AI)의 제안에 따라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홍콩, 독일, 덴마크 등 세계 27개 도시에서 열린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가 이야기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국가와 민족으로 가려지지 않은 가해와 피해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전쟁'을 일으킨 정부는 민족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수많은 남성을 전쟁터로, 수많은 여성을 강간의 피해자로 내몰았다. 일본에서 우익 정권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거행하고 수업시간에 '히노마루(일장기) 그리기'를 강요할 때 이에 대항하는 '올바른 역사 인식'은 어디에서 와야할까.

한·일 여성 공동역사교재 편찬위원회는 2005년 <여성의 눈으로 본 한일 근·현대사>를 펴냈다. 편찬위는 일본 우익의 역사 교과서가 아시아 태평양 전쟁 동안 일왕이 침략전 수행의 아들들을 위한 하사품으로 선물한 '위안부' 즉 일본군 성노예 등 가해의 역사를 삭제하고 가부장제를 강화해 군국주의의 기초로 삼는 데 문제의식을 가졌다.

물론 일본의 페미니즘에는 전시에 여성을 동원하여 전쟁에 '찬동'시키고 극렬히 선전했던 여성 이치카와 후사에(市井房枝·1893~1981, 1937년 부선획득동맹과 그밖에 8개 단체를 거느린 일본부인단체연맹을 결성해 '후방을 굳게 지키자'며 협력 체제를 만들어 이끄는 등 '국가 총동원' 체제에 적극 부응했다) 같은 '과거사'가 존재한다. 이들 역시 전범임은 분명하다. 그 누구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으며 주어서도 안 된다.

<요코 이야기>를 둘러싼 논쟁도 '가해자 일본-피해자 한국'의 단순구도를 떠나서 복합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한국인 남성에 의해 일본인 여성에게 가해진(가해졌을 수 있는) 성폭력에 대한 공론화를 '민족'을 이유로 틀어막아선 안된다. 이런 시도는 일본 우익이 자국민족의 이익을 위하여 위안부의 역사를 삭제하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요코 이야기>를 비난하고 막는 것은 답이 아니다. 전시 강간과 전쟁 폭력을 이야기하는 증언은 다양한 형태로 터져 나와야 한다. 그것은 어느 한 편에 속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국의 이익과 어느 한 인종이나 민족의 영달을 위해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내셔널리즘은 배격돼야 한다.

불과 몇 주 전 술자리 성매매 방지를 위한 여성가족부 캠페인에 일부 남성들과 네티즌이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자체 캠페인'을 벌이던 한국은 무죄인가. 아직도 '성매매 방지 캠페인'이 필요한 우리 사회,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당당히 거리에 걸릴 수 있는 우리 현실부터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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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2007-01-18 10:0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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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한나라 대선 두번 패배한 이유 아직도 몰라”

 

 

 

윤여준 “한나라 대선 두번 패배한 이유 아직도 몰라”
 
“여권 네거티브 탓만 할뿐, 백서 하나 만든 일 없다” 질타
 
입력 :2007-01-17 10:26:00   김달중 (daru76@dailyseop.com)기자
 
 
   
 
  ▲ 윤여준 전 여의도연구소장.(자료사진)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이달 초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한나라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박근혜 전 대표 역시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러한 북한의 신년사를 두고 “대한민국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정부가 끌려 다니다가는 대선이 여와 야의 대결이 아닌 야당 대 북한·여당의 합작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윤여준 전 여의도연구소장은 16일 CBS라디오 ‘시사쟈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한 자리에서 “박 전 대표의 취지가 어떻든 그 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며 “심지어 그런 가능성엔 동의하지만 박 전 대표가 공식적으로 발언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비판했다.

윤 전 소장은 이번 대선에서 제기될 가장 큰 이슈에 대해 “경제 문제가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이라며 “하지만 막상 선거에 임박해지면 꼭 경제적인 문제만 가지고 태도를 결정하진 않을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민족 문제라든가 미래의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 등 다른 문제가 상당히 중요하게 등장할 것”이라고 그는 예측했다.

“한나라당 후보 검증? 한국정치의 고질병”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의 당내 경쟁이 신년부터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후보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네거티브로 치달아 당 지도부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아름다운 경선’을 하자고 캠프 관계자들을 불러 합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또한 지난 달 29일 당 지도부가 후보들을 불러 경선결과 승복을 다짐하는 자리에서도 ‘줄세우기’를 놓고 파열음이 발생했다.

여기에 박 전 대표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이 언론에서 검증하지 않을 경우 자체적으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검증하겠다고 말해 두 캠프사이의 골은 더욱 깊어가고 여기에 따라 지지자들의 논쟁도 더욱 가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윤 전 소장은 이러한 후보 검증론에 대해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라고 진단했다. “여러 정당이 정책정당을 지향한다고 약속했지만, 정책정당을 지향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그는 꼬집어 말했다.

이어 그는 “더구나 선거에서 늘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정책보다 네거티브”라며 “그러니까 정책보다는 네거티브에 매달리려고 한다”고 개탄했다.

야당의 특성상 정보와 자료에 대한 부족으로 ‘맨파워’가 딸리게 되고 이 때문에 정책보다는 상대방을 흠집 내려는 쪽으로 가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후보캠프들이 네거티브를 선택하게 되는 그의 원인분석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부에서 네거티브가 시작되면 양 진영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선 두 번 패배 원인 분석한 백서 만든 일 있나…왜 졌냐하면”

후보를 검증하자고 말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본적인 이유는 “두 번의 대선 패배에 따른 학습효과”라고 한다.

그러나 윤 전 소장은 이러한 주장을 일축했다. 심지어 두 번의 대선에서 패배한 원인에 대해서도 현 여권의 네거티브 전략이라는 당 주류의 견해와는 다른 해석을 내렸다.

그는 “한나라당은 두 차례의 대선 실패에도 불구하고 패배 원인을 분석한 백서를 만든 일이 없다”며 “늘 말로는 반성의 얘기를 하지만 그에 대한 축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자신들이 무얼 잘못했는지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참고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안 한다”면서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윤 전 소장은 한나라당이 두 번의 대선에서 실패한 이유에 대해 직접적인 원인과 근본적인 원인,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충청권 표심을 잡지 못한 것이고 두 번째는 시대의 흐름을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두 선거 모두 직접적인 원인은 충청도를 놓친데 있다”며 “한국의 선거는 지역구도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충청도가 늘 지역구도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당이 충청도 득표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 충청도를 놓친 것이 대선에서 패배한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시대의 흐름을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건 결국 다수 국민의 희망과 기대로 나타나는데, 당시 국민이 한나라당에 기대했던 건 변화와 개혁이었다”면서 “한나라당이 그런 쪽에 소홀해 희망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서 지지 세력이 많이 이탈했다”고 강조했다.

정권 창출을 위해 당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윤 전 소장은 “대선 준비라는 게 준비를 해야한다는 의욕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선거는 후보 진영에서 알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 후보 진영에서 자기들 후보에 맞는 전략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전략도 있어야 하지만 당 차원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다”며 “그런데 지금까지 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만 봐서는 한나라당이 대선 전략을 효과적으로 세우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건넸다.

개헌에 대한 국민적 신뢰 하락은 대통령의 ‘자업자득’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원포인트 개헌’에 대해 윤 전 소장은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개헌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꼭 금년 안에 헌법을 고치고, 대선과 총선 주기를 맞추자고 성급하게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시대에 맞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왕 개헌을 할 바에는 21세기 한국사회를 지배할 중심 가치를 무엇으로 하는 게 좋은지, 민족통일의 앞날도 내다보면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수용하고 미래에 예측되는 변화도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긴 토론과 국민이 판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대선과 총선의 시기를 맞추자는 주장에 대해 그는 “효율성과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고 얘기하는데, 그렇다면 과거에 대통령이 소속한 정당이 3분의 2 의석을 가졌을 때 우리 정치체제가 효율적이었나”고 반문했다.

그는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를 때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라며 “대통령이 다수당을 차지하는 야당을 진지하게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그는 개헌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무대응 방침을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피해의식 때문에 무대응으로 가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그것이 책임 있는 제1야당, 앞으로 정권을 잡겠다는 야당으로서의 모습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적절한 시점에 개헌 카드를 쓸 것이라는 것을 한나라당도 몰랐을 리 없는데, 그렇다면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했을 때 당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사전준비가 없었던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한 윤 전 소장은 노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에 대한 국민적 반응이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원인이 대통령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걸 포기했다’고 해놓고 며칠 있다가 불쑥 개헌안을 내놓고서는 국민 지지를 바라고, ‘내 충정을 이해해달라’고 하면 어떤 국민이 신뢰하겠나”라며 “아무리 본인은 동기가 순수했다 하더라도 순수하게 비칠 수가 없는 상황을 자신이 만든 것”이라면서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라고 주장했다.

윤 전 소장은 만일 개헌안이 부결됐을 경우 “대통령이 더 이상 국정을 수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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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폭행사건

 

 

 

동물원 폭행사건
  2006-06-04 15:07 | VIEW : 6,655

'동물의 왕'으로 불리는 사자의 한쪽 눈이 검게 되어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이죠?


오랑우탄도 한쪽 눈이 검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에 부딪히거나 맞은 듯 멍든 것은 아닐까요?


흰색의 곰도 역시 한쪽 눈이 검게 되어 있습니다. 각 이미지의 아래쪽에는 'THE KANGAROOS HAVE ARRIVED'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이 이미지는 네이버 월드타운 트랜디리더 게시판에 'hello77'님이 '동물원 폭행 사건'이란 제목으로 올린 게시물입니다. 그는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써 있네요. "캥거루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다들 눈이 파랗게 멍들었군요 ㅋㅋㅋ"란 설명을 달았습니다.

위 이미지들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동물원의 광고입니다.
이에 대해 네이버 'axslayer'님은 "캥거루가 권투글러브를 낀 모습으로 의인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캥거루가 새로 들어왔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눈가에 멍든 모습이 매치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동물원 광고이다."라는 설명을 댓글에 남겼습니다.

출처 : 네이버 월드타운 http://worldtown.naver.com/trendyleader/community.nhn?ncode=wt_trend_tv&nid=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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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행동은 절대로 따라하지 마세요!

 

 

 

위험한 행동은 절대로 따라하지 마세요!
  2007-01-12 11:30 | VIEW : 17,568
위 사진은 최근 일주일 사이 인터넷상에 '개념없는 초딩 뭐하노'라는 제목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 같기도 하고 중학생처럼 보이기도 하는 한 어린이가 신문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왜 저렇게 위험하게 앉아 있을까.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사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면서 "제 아무리 재미로 연출한 사진이라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라는 의견들이다.

▲ 아무리 연출을 했더라도 배우는 어린이들의 교육상에는 위험합니다.
▲ 분명히 따라하는 무뇌아들이 생길거다...그래서 위험한거다.
▲ 허거걱 이런~. 저게 뭐하는 짓이고 지금
▲ 장난이건 뭐건 XX 짓이다. 개념은 어디에 말아먹고 오셨나, 앙?
▲ 호기심의 장난이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제발 정신차리세요

위 사진이 올라온 커뮤니티 사이트들 마다 댓글이 수없이 달리고 있으며, 플랫폼에 앉아 있는 어린이와 찍은 사람을 모두 비난하고 있다. 일부 "합성 아니냐"는 의견엔 "아무리 합성이라도 저런걸 왜 합성해서 퍼뜨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아무튼 다수의 네티즌들은 "호기심도 호기심 나름이고 상상력 나름이지 위험한 건 절대로 안된다"는 주장들이다.

실제로 지난 9일 서울 목동의 중학생 두명이 호기심으로 아파트 옥상에서 던진 돌에 어느 40대 가장이 맞고 사망한 사건을 한겨레가 전하기도 했다. ☞ 관련기사 보기
이 기사에는 2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으며 네티즌들은 "개념없는 저 중학생들을 어찌해야 하느냐"며 한탄했다.

또, 지난달 30일 후세인의 교수형을 두고 전세계적으로 10여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들도 들린다. 모두가 후세인 교수형에 대한 어린이들의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것은 모두 어린이들이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위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은 오래전부터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것으로 지하철이 들어오는 순간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을 찍은 구도상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찍은 것으로 보인다.
누가 찍었는지 그 대상은 밝혀지진 않았지만 어찌됐든 이것도 일부 네티즌들의 "누군가의 호기심이나 장난으로 찍힌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에 크게 틀리진 않는다.

위 사진에 대해서도 네티즌들은 "사진을 찍은 사람의 정신 세계가 궁금하다. 어떻게 저런걸 호기심에 찍을 수 있는지 대단하다고 해야하나"라고 비꼬면서 "정말 무심코 던진돌에 엄청난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전혀없다"고 꼬집었다.

아래 사진은 도깨비뉴스가 지난해 2월 '위험! 어린이 여러분 이런 놀이는 안됩니다'라며 소개했던 것이다. 이렇게 아파트 담벼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어린이들의 사진들 또한 인터넷상에 적잖이 올라온다.


너무 위험하니 절대 흉내내면 안됩니다

이러한 사진들을 본 부모 입장에 있다는 일부 네티즌들은 "호기심에 위험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주변에서 계속 따라다닐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각심이나 안전 교육을 그래서 해야한다"면서 "되도록이면 어린아이들에게 더욱 관심과 사랑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도깨비뉴스 김동석 기자 feelsogood@dkbnews.com

▽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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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소피아는 지적이고 아리따운 백인일까?

 

 

 

과연 소피아는 지적이고 아리따운 백인일까?
  2007-01-14 15:18 | VIEW : 5,938

비에 젖은 소피아 시내

불가리아는 지난 밤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10월 초순의 새벽. 전날 저녁 9시 터키 이스탄불을 출발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로 달리는 나이트 버스는 두 나라의 국경 검문소에서 멈췄다. 앞자리에 앉은 백인 숙녀가 “Passport control”이라고 알려줬다. 우리 일행은 모두 버스에서 내려 국경 검문소 앞에 줄을 섰다.

일행은 버스기사를 포함해 열 명 남짓이었다. 그저 관행적인 검사인 줄 알았는데 젊은 공무원이 내 여권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기다려라”라고 짤막하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나이 든 한 사내가 와서 내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 또한 내 여권을 가지고 휑하니 사라졌다. 그동안 숱하게 국경을 넘었지만 별 설명 없이 이렇게 다짜고짜 세워놓는 푸대접은 처음 받아본다.

꼭두새벽 비 내리는 이국 땅에서 길 위의 국경초소 앞에 홀로 서 있으려니 오만 잡생각이 다 든다. 버스기사가 “노 프라블럼”이라며 내게 말을 건네왔지만 답답한 심정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다시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 나와 내 여권을 툭 건넸다. “땡큐!” 한마디와 함께.


소피아 버스터미널, 지은 지 얼마되지 않았다. 건너편에 중앙역이 있다.

터키와 불가리아. 땅 위에 줄 하나 그었을 뿐인데도 이쪽과 저쪽은 완전히 딴판이다. 이스탄불에서 국경까지는 새로 닦은 듯한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려왔다. 그러나 국경에서 소피아까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차선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고 도로 옆으로는 주택과 상가, 작은 시골 마을들이 연이어 스쳐 지나갔다.

새벽 6시. 소피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터미널은 지방 도시로, 이웃 나라로 오가는 사람들로 한창 붐볐다.


모닝커피 한 잔으로 몸을 데운 후 숙소를 찾아 나섰다. 론니플래닛의 동유럽 편은 소피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배낭여행자 숙소로 ‘아트 호스텔(Art Hostel)’을 꼽는다. 서울로 치면 종로 뒷골목쯤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무엇보다 숙소 분위기가 좋다고 한다. 터미널에서 만난 불가리아 신사의 도움으로 그의 자동차를 타고 숙소까지 갈 수 있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벤츠. 한국에서도 타보기 힘든 고급 자가용이다. 먼 나라에서 온 여행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사치(?)다.

아트 호스텔은 젊은 남녀 3인방이 운영하는, 낭만이 물씬 풍기는 호스텔이다. 건물 일부를 임대받은 숙소의 시설은 그리 훌륭하다고 할 수 없지만 숙소 곳곳에는 이런저런 예술적 흔적이 남아 있다. 거실, 룸, 바깥벽 등에는 아방가르드풍 그림과 낙서들이, 객실로 가는 길의 안뜰에는 꽃·잡목과 함께 파티를 했음직한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호스텔에서 준 식권으로 근처 레스토랑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우산을 받쳐들고 소피아 시내로 걸어나갔다.

빗방울이 더 굵어졌다. 이제 우산을 받쳐들지 않으면 흠뻑 젖을 정도다. 호스텔에서 준 지도는 비에 젖어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가이드북을 펼쳐 들고 이 길 저 길 사이로, 짧은 시간 안에 소피아의 냄새를 흠뻑 맡을 요량으로 걸음을 바삐 떼었다.

소피아. 이토록 예쁜 도시 이름이 또 있을까? 지적이고 아리따운 백인 여인 같은 이름이다. 소피아의 실제 모습도 그러할까? 소피아의 거리는 다른 유럽 도시들의 그것과 엇비슷하다. 그러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정리가 덜 된 것 같고, 작은 듯 아담하고 조금은 어둡다. 게다가 비까지 내린다.


노점에서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는 레닌 두상. 불가리아는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몰락한 뒤 자유화의 길을 걷고 있다.

소피아의 대표적 명소인 알렉산더 네브스키 교회(Ploshad Alek-sander Nevski)를 찾았다. 아트 호스텔에서 쉬엄쉬엄 길을 따라 걸으니 약 20분이 걸린다. 가는 길에 만난 슬라베이코프 광장(Pl. Slaveikov)과 교회 입구에는 중고서적과 기념품을 파는 노점들이 즐비했다. 가게들은 과거 공산정권 시대의 유물을 팔고 있었다. 불가리아의 과거와 오늘이 교묘하게 교차된 느낌이다. 특히 레닌의 두상을 발견했을 때는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알렉산더 네브스키 교회

교회의 금색 돔은 제법 거대한 규모였다. 런던, 파리, 로마 등에서 본 으리으리한 성당들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딱 소피아가 포용할 수 있는 크기랄까. 성당 안은 어두웠다. 촛불들이 실내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성모마리아 상은 서유럽의 성모와는 달리 좀더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교회 한쪽에서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이의 영세 의식이 열리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근엄한 신부 앞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몸을 조아리고 있었다. 19세기에 전사한 20만 군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에서 열린 새 생명의 영세는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유아세례를 받고 있는 가족

교회를 나와 소피아 중심가로 발길을 옮겼다. 소피아의 볼거리들은 이 교회에서 금색의 천사상인 소피아 동상이 있는 곳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소피아 동상 앞의 비토샤 대로는 명품 쇼핑가와 바, 나이트, 성인클럽 등이 모여 있는 불가리아 최고의 중심가다. 당연히 소피아의 나이트라이프도 이 거리에서 시작한다. 가을을 닮은 불가리아처럼 거리의 네온사인과 흘러나오는 재즈, 블루스 음악들도 가을을 닮은 듯하다. 거리를 활보하는 소피아의 청춘 남녀들도 유행에 민감하기는 세계 여느 나라 젊은이들과 마찬가지였다. 미국식 청바지를 입거나 유명 메이커의 운동화, 구두를 신고 화려하고도 다양한 색깔의 헤어스타일을 가진 젊은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시내를 걷다 보면 소피아는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당장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다는 데서도 다른 유럽 도시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차분하면서도 조용한 분위기, 과거 공산 시절과 새롭게 밀려든 자본주의의 공존과 대조를 천천히 음미하며 하루 이틀 쉬어가기에는 좋은 도시다. 무엇보다 도착하자마자 버스터미널에서 만났던 불가리아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 씀씀이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기사제공 = 주간동아 / 글·사진 = 김형렬 www.travelb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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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가를 만들려다가

 

 

 

슴가를 만들려다가
  2007-01-15 16:18 | VIEW : 2,385
만화의 한 장면처럼 눈이 툭 튀어나온 모습의 달걀이다. 네이버붐에 "계란에 뭐가 달렸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사진이다.

달걀 껍데기 밖으로 구슬 모양의 달걀흰자가 눈에 띈다. 달걀을 삶는 과정에서 달걀 껍데기가 깨지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밖으로 나온 달걀흰자를 눈으로 표현하고, 달걀껍데기에 눈썹, 코, 입을 그려 의인화 했다.

게시물을 올린 '팬더핑'님은 "사실 저거 가슴으로 만들려다가 너무 에로틱해서…"라고 설명했다.

네티즌들은 "재치있다", "어떻게 저렇게 삶아졌지?"라며 대체로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는 "가슴으로 만들어주지", "너무 에로틱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메추리알을 붙여서 만든 게시물이 아니냐"는 네티즌도 있었다.

출처 : http://boom.naver.com/1/20070111151705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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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 대한 편견' 조장하는 교과서, 바꾸자&quot;

 

 

 

'노동자에 대한 편견' 조장하는 교과서, 바꾸자"
  노사정위원회, 8차 교과과정 개편에 맞춰 건의문 채택
 
  2007-01-16 오후 4:07:56
 
   
 
 
  노사정위원회가 교과서 개편에 입을 모았다. 오는 2009년부터 적용되는 제8차 교과과정 개편에 맞춰, 노동과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에 있어 현행 교과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해 보자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는 지난 11일 제6차 노사관계발전위원회에서 '일과 직업 및 노사관계에 대한 학교교육 관련 건의문'을 합의하고, 다음달 교과과정의 최종 확정에 앞서 16일 교육부에 이를 공식 전달했다.
  
  "교과서가 일과 노동의 중요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형성하도록"
  
  이번 논의는 한국노총의 제안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현행 교과서가 '진로교육'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일과 노동의 중요성에 대한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정해 왔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다.
  
  현행 교과서가 노동자와 노동3권에 대해 청소년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지난해 여름 한국노동교육원의 송태수 교수의 연구로 알려진 바 있다.
  
▲ '교학사'에서 만든 중학교 2학년 사회교과서 170쪽의 삽화.ⓒ프레시안

  당시 송 교수는 현행 교과서가 노동자들의 법적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혼란'이라고 표현하고 노동자들을 잠재적인 폭도로 규정하는 등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표현이 곳곳에 존재한다고 밝혔었다.
  
  나아가 노동자와 근로자를 혼용해서 사용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노동자는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나 파업 등 단체행동을 벌이는 경우에 사용하고, 근로자는 긍정적 이미지를 주는 서술에서 사용함으로써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고 송 교수는 주장했다.
  
  "근로기준법, 노동3권의 내용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이날 노사정위원회가 교육부에 전달한 건의문은 "'진로교육'은 직업세계의 동태적 변화를 반영해 모든 직업에 대해 장기적 전망과 자긍심을 갖고 부단한 창의적 노력이 경주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정신함양교육'은 학생들이 일과 노동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강화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또 올바른 노동관과 직업관의 함양을 위해서 8차 개정안의 중학교 2학년 도덕과목 가운데 '일과 배움-일의 놀이' 항목에서 "노동과 기능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서술하고 주요 가치덕목에 '일의 중요성'을 삽입하도록 하자"고 건의했다.
  
  더불어 "중학교 일반사회 과목에서 '우리의 생활과 법'이라는 항목에 근로기준법과 노동3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삽입해 학생들이 노동자의 권리와 노사관계의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자"고 말했다.
  
  노사정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건의안은 전문위원 권고문이 아니라 노사정의 합의 사항인 만큼 이행 여부를 점검해야 하는 대상"이라며 "노사정위원회 차원에서 교육부의 향후 진행과정을 자세히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8차 교과과정 개편안은 다음달 확정된다. 학교 교과과정이 개인의 사고체계의 토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문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교육부의 교육과정 개편 자체가 개별 교과서의 구체적인 서술까지 규정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노사정의 이번 합의의 취지가 8차 교과과정에 따라 새로 만들어질 교과서에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정민/기자
 
 
 
 
"교과서가 '노동자에 대한 편견' 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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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짱걸' 최현경

 

 

 

'타짱걸'이 아닌 '연기자 최현경'으로 불러 주세요!
2007-01-12 14:15:51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검색어 순위를 평정했던 이름이 있다. '타짱걸' 최현경이 그 주인공. KBS 웃음충전소 '타짱'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말없이 김준호의 도우미 역할을 하는 그녀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도 커졌다.

  훤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 신인 모델이나 연기 지망생이겠거니 했던 그녀의 이력은 예상 외로 화려하다. 1986년생, 20살의 어린 나이로 '2006 레이싱 모델 오브 더 이어' 대상, 미스 투어리즘 퀸 인터내셔날 대회 아시아 지역 1위. 국내외 미인대회를 휩쓴 그녀를 만나러 가보자.

 

 

- 디시인사이드 아세요?

 최현경 :   네. 인터뷰 이야기를 듣고 찾아봤어요. 재미있는 게시물이 많아서 계속 봤어요. (웃음)

 

- 레이싱 모델로 데뷔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레이싱 모델이 원래 꿈이셨어요?

 최현경 :   '2006 레이싱 모델 오브 더 이어'라는 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그전부터 영화나 드라마로 활동은 하고 있었어요. 제 꿈이 연기자거든요. 레이싱 모델로 데뷔했다기보단 레이싱 모델 대회에 나가서 수상을 한 거죠.

 


<'2006 레이싱 모델 오브 더 이어' 대회 참가 사진>

 

- 레이싱 모델이 꿈이 아닌데 레이싱 모델 대회에 나간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최현경 :   프로필을 만들려고 나갔어요. 제가 아직 준비된 프로필이 많이 없어서 미인대회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러던 중에 레이싱 모델 대회라는 대회가 처음 생겼다고 해서 나갔는데 대상을 타게 된 거죠. 덕분에 제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어요. (웃음)

 

- 미스 투어리즘 퀸 인터내셔날 대회에서도 아시아 지역 1위를 하셨는데요. 이 대회는 어떻게 출전하게 되신 건가요?

 최현경 :   미스코리아 대회처럼 레이싱 모델 대회에서 수상을 하면 세계대회에 나가는 자격이 주어줘요. 그래서 나가게 됐죠.

 

- 미스 투어리즘 퀸 인터내셔날 대회를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최현경 :   미스 투어리즘 퀸 인터내셔날 대회는 다른 대회처럼 합숙을 하면서 합숙 생활을 토대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있는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계속 대회를 치러요. 한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대회를 하나씩 치르는 거죠. 기존의 대회와는 다른 방식이라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신데요? 연기를 하실 생각이세요?

 최현경 :   네. 제 최종 목표는 연기자예요.

 

-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가 꿈이었나요?

 최현경 :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서부터 쭉 이 꿈을 지켜왔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부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연기 공부를 시작했어요.

 

- 처음 최현경씨 얼굴을 알리게 된 건 어디서였나요?

 최현경 :   제일 처음 제 이름이 나간 건 영화 '청춘만화'였어요. 비록 단역이었지만. 그리고 '청춘만화' 오디션을 보면서 '레디액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그때 저한테 첫 팬이 생겼어요.

 

- '레디액션'은 어떤 다큐멘터리였나요?

 최현경 :   '레디액션, 우리는 영화의 미래다'라는 제목이었고요. 연기자를 꿈꾸는 세명의 주인공의 일상생활을 찍으면서 우리가 꿈을 향해 어떻게 가고 있고 꼭 꿈을 이뤄서 영화를 찍겠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꼭 연기자로 성공하겠다고 결심했어요.

 

 

- 지금까지 출연하신 영화나 드라마 등 이제까지 활동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최현경 :   드라마'소울 메이트'에서 작업의 고수로 나온 '정환'의 여자친구 역할을 했었고요. 영화 '청춘만화'에서는 배우 3? (웃음) 이제까진 주로 단역을 했어요. 그리고 현원 모비블루나 동방 광고 등의 CF를 찍었어요.

 

- 이제까지 출연한 방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 있으세요?

 최현경 :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지만 저한테 '방송이란 이런거구나'는 걸 가르쳐 준 '소울메이트'가 가장 기억에 남고요. 또 방송 중에 처음 NG를 냈던 '더 웃긴 밤'이요. NG를 내고 나서 제 눈이 파르르 떨렸다고 다들 놀렸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다 제 밑바탕이 되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종영한 '더 웃긴 밤'의 '데이트 코치' 출연 장면>

 

- 현재 방송을 위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어떤 방송에 출연하고 계세요?

 최현경 :   '더 웃긴 밤'이라고요. 케이블 방송했었는데 얼마 전에 종영했고요. 지금은 KBS 웃음충전소 '타짱'에 출연하고 있어요.

 

- '타짱'은 어떻게 출연하게 되셨어요?

 최현경 :   '더 웃긴 밤'을 하셨던 작가분이 '타짱'을 맡게 되셨는데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을 하셔서 시작하게 됐어요.

 

- 작가님이 '더 웃긴 밤'에서 현경씨를 좋게 보셨나 봐요.

 최현경 :   네. 그런가 봐요. (웃음)

 


<현재 출연 중인 KBS 웃음 충전소 '타짱'>

 

- '타짱' 출연 후 주위의 반응은 어땠어요?

 최현경 :   우선은 제 이름이 검색 순위에 올라갔고요. (웃음) 미니홈피 방문자 수도 늘고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이 갑자기 연락이 오더라고요. 또 타짱 분위기 물어보시는 분도 많아요.

 

-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타짱' 현장 분위기는 어때요?

 최현경 :   음, 컷 들어 갈 때와 안 들어갈 때가 똑같은?  항상 개그가 이어지는 분위기예요. (웃음)

 

- 모니터링 할 때와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나나요?

 최현경 :   장단점이 있어요. 현장에 있을 땐 현장감이 느껴지고요. 모니터링 할 때는 제 자리에서 안 보이는 부분들이 보이니까 '사람들이 이래서 웃는구나' 하게 되죠. 둘 다 재미있어요.

 

 

-  알아보시는 분들도 꽤 있을 것 같아요.

 최현경 :   없던데요. (웃음) 아주 가끔 알아보시는 분들이 계세요. '어? 어? 누구 아니야?' 이렇게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죠.

 

- 지금은 '최현경'이란 이름보다 '타짱걸'로 더 많이 알려지셨죠?

 최현경 :   네.

 

- 검색어도 '타짱걸'로 찾는 분들이 더 많은데 기분이 어떠세요?

 최현경 :   일단은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 주시니까 좋기도 한데 저는 연기자가 하고 싶으니까 '타짱걸' 이미지로 굳어질까 조금 걱정도 돼요.

 

 

- '타짱'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은 누구세요?

 최현경 :   김준호 씨요. 많이 챙겨 주시는 편이예요. 그리고 코너도 두 개를 같이하다 보니 급 친해지게 됐어요. (웃음)

 

- 웃음 충전소에 출연하시는 그룹 'LPG'의 한영 씨와 비교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최현경 :   저도 처음엔 몰랐는데 제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한영 씨가 연관 검색어로 나오시더라고요. 제 측근들은 한영 씨가 더 잘하신다고 하기도 하고요. (웃음)

 

- 기분 나쁘진 않으세요?

 최현경 :   기분 나쁘진 않고요. 저보다 키도 크시고 예쁘시니까 그런 것 같고요. 하지만, 저도 저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웃음)

 

- '타짱'에서 말이 너무 없다고들 하시는데요.

 최현경 :   비중이 조금 커지긴 할 거 같은데 많이 커지진 않을 거고요. 코믹 이미지로 각인되면 아무래도 연기 생활에 지장에 있을 거라는 걱정 때문에 조금 꺼려지기도 해요. (웃음)

 

 

- 최현경씨 미니홈피에 들어가 보니 오전인데도 방문자 수가 300명이 넘더라고요.

 최현경 :   네. 최근 들어 많이 방문해 주세요.

 

- 방명록에 일일이 답변해 주는 편이세요?

 최현경 :   처음에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도로 답변을 했었는데 약간 섭섭해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요즘엔 정성껏 답변해 드리려고 노력해요. 그러니까 팬분들도 더 좋아하시고요. 갈수록 미니홈피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요. (웃음)

 

- 극성팬 때문에 당황했던 적은 없으세요?

 최현경 :   네. 있어요. 일촌 신청 하셔서 수락을 했었는데 그때부터 반말로 쪽지를 보내시거나 '우리 진지한 만남을 가져볼까?' 이러신 분도 있고요. 또 다른분은 어머니가 너무 편찮으셔서 힘들다고 한 번만 만나자고 하신 분도 있었어요.

 

-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세요?

 최현경 :   너무 대답하기 어려운 건 그냥 넘어가고요. (웃음)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한 분께는 힘내시라고 글을 남겼어요.

 

 

- 미니홈피나 검색어 등에서 실감하시겠지만 최현경씨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기분이 어떠세요?

 최현경 :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게 변해가는 걸 저 자신이 느끼고요. 악플이나 댓글에 민감해지고 있어요. (웃음)

 

- 악플도 많이 달려요?

 최현경 :   아직은 많이 없어요. 최근에 달린 악플은 '타짱'에서 말한 제 나이 때문이었는데, 녹화는 2006년에 하고 방송은 2007년에 나가서 보신 분들이 '왜 나이를 속이냐?'고 조금 안 좋게 댓글을 남기셨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서도 팬분끼리 싸움이 났어요. '녹화 방송이니까 그렇게 말한거지, 그것도 모르냐고' 이렇게요. 그래서 한동안 제 미니홈피 메인이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였어요. (웃음)

 

- 댓글에서 옹호해주는 팬들을 보면 기분 좋지 않으세요?

 최현경 :    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시니까 시원하고 감사하죠.

 

 

- 연극활동을 쭉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지금까지 했던 연극 작품은 어떤 작품들이예요?

 최현경 :   이상의 '날개'와 '밑바닥에서', '도덕적 도둑' 그리고 '콩쥐와 팥쥐'를 창작극으로 만든 작품 했었어요.

 

- 그중 연극제에서 수상하신 작품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최현경 :   이상의 '날개'와 '밑바닥에서'로 충북 청소년 연극제와 청주 청소년 연극연합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어요.

 

- 연극을 계속 하실 계획은 없으세요?

 최현경 :   기회가 된다면 연극도 계속 하고 싶어요.

 

- 좋아하는 연극 작품 있으세요?

 최현경 :   우선 제가 했던 '밑바닥에서' 좋아하고요. '삼류 배우'도 감명 깊게 봤어요.

 

 

- 연기자가 최종 목표라고 하셨는데, 어떤 연기를 해보고 싶으세요?

 최현경 :   드라마 '마이걸'에서 이다해씨가 했던 톡톡 튀는 역할도 해보고 싶고요. 주변에서는 제가 비련의 여주공이 안 어울릴 거라고 하지만 비련의 여주인공도 해보고 싶어요.

 

- 존경하는 연기자는 어떤 분이세요?

 최현경 :   고두심 씨랑 전도연 씨요.

 

- 특별히 두 분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으세요?

 최현경 :   고두심 씨는 깊은 내면 연기가 느껴지고요. 전도연 씨는 전도연 씨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배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배우만의 매력을 느끼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이 전도연 씨예요. 예를 들어 '너는 내 운명'에서 전도연 씨가 맡았던 다방 레지 역할은 자칫하면 싸 보일 수 있는 역이었는데 전도연 씨만의 매력을 잘 살려서 표현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저만의 캐릭터를 잘 살린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 모 인터뷰에서 '류승범 씨와 꼭 연기해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최현경 :   류승범 씨는 처음 제가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한 사람이에요. 류승범 씨가 출연한 '화려한 시절'을 보고 '연기가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지금은 류승범 씨가 동경의 대상이지만 나중에는 꼭 동등한 위치가 돼서 같이 연기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꼭 이 말을 하고 싶어요. '제가 류승범 씨 덕분에 연기를 하게 되었어요' 라고요.

 

- 꼭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최현경 :   네. 감사합니다. (웃음)

 

 

- 연기자 말고 다른 걸 해보고 싶진 않으세요?

 최현경 :   다른 일이 들어오면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연기를 잘할 수 있다고 믿어요. (웃음)

 

- 평소에 연극이나 영화 많이 보는 편인가요?

 최현경 :   네. 많이 보려고 해요.

 

- 최근에 본 것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으세요?

 최현경 :   '로맨틱 홀리데이'를 봤는데, 잔잔한 감동이 있는 영화였고요. '미녀는 괴로워'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그 영화를 본 주위 사람들이 '너도 영화 속의 김아중처럼 좋은 작품 만나서 꼭 성공하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셔서 특히 기억에 남아요.

 

- 평소 시간은 어떻게 보내세요?

 최현경 :    지금은 영화나 뮤지컬 공연 많이 보고 있고요. 이제 연기 공부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에요.

 

 

- 한국 에이즈 연맹 홍보 대사인데 평소에 에이즈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최현경 :    활동하기 전보다 활동하면서 관심이 더 많아졌어요. 그런데 일부에서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에이즈 걸린 사람들이 활동하는 곳이 아니냐고요. 절대 아닙니다. 에이즈 퇴치 연맹이라고 꼭 기억해 주세요. (웃음)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최현경 :   2007년에는 뮤지컬이나 드라마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연기 트레이닝을 열심히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중국권에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CF를 찍을 계획이고요. 2월에는 한류박람회에 초청되어서 참석할 예정이에요.

 

 

  그녀의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타짱걸' 최현경을 레이싱 모델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오래 전부터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연기자였다. 프로필을 만드려고 나간 미인대회에서 두 번이나 1등을 해 버린 자타가 공인하는 미녀.

  미인대회나 '타짱걸'로 주목을 받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최종목표인 연기자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는 그녀의 눈빛에서 '희망'과 '도전'이라는 단어를 읽었다. '최현경'이라는 이름이 영화나 드라마 제일 첫 줄에 올라가는 그날까지 그녀를 응원한다.

 

 
  김미나 normalhide@dcins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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