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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6/13

<연합인터뷰>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연합인터뷰>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 거론은 넌센스"
"TV통해 독도.교과서 입장 日에 전달 효과적"

    (제주=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와다 하루키(67.和田春樹) 도쿄대 명예  교수는 11일 "북핵 해결책을 모색하는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거론, 협상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핵문제는 일본에게도 최우선적인 사안"이라고 말했다.

    일본내 사회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와다 교수는 이날 제주 신라호텔에서  사흘째 열린 제3차 제주 평화포럼 중 연합뉴스와 가진 회견에서 "핵문제는 한반도외에 원폭 피해를 겪은 일본 국민들에게도 가장 시급히 해결할 문제로 일본인 납북문제는 북한과의 별도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면서 이 같이 주장했다.

    와다 교수는 지난 4월 기미야 타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경영학부  조교수  등과 함께 평양을 방문, 송일호 외무성 아시아 담당국장 등과 만나 북.일 수교, 북핵  문제 등을 논의한 바 있다.

    다음은 와다 교수와의 일문일답.

    -- 북.일 수교협상 재개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6자회담 등 북핵 협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2000년 4월 제11차 협상을 끝으로 중단된 북.일 수교협상이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 또 수교협상 등  북한과 양자대화 채널을 통해 납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를 6자회담에서 거론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북한이 이를 회담 불참 명분으로도 이용할 수 있지 않는가.

    -- 일 정부의 의지만으로 수교협상 재개가 가능한 것인가.

    ▲우선, 북측에 일본 정부가 핵문제 해결시 국교를 정상화하고  경제협력을  할 용의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등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도 일본이 수교할 의지가 있음을 믿게 될 것이며 핵문제 해결은 물론  궁극적으로 납치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일 정부는 특히 과거 식민통치에  대해 사과하는 심정으로 수교 협상과 경제협력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 대북 경제협력 단행 시점은.

    ▲북한이 핵폐기 약속 등 비핵화 절차에 돌입함과 동시에 인프라 건설 지원이나 식량 등 구호 지원을 비롯한 경제협력이 시작돼야 한다. 일 대북  제재는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

    -- 최근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시사로 4차 6자회담의 재개 전망과 더불어 회담이 열려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전망도 있다. 6자회담 재개 전망은.

    ▲4차 회담이 열려 소기의 성과를 냈으면 하는 심정이다. 하지만 북한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회담 결과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 일.북 수교협상 재개 필요성을 제기한 이유도 바로 6자회담의  효율성을  높이고 북핵해결을 촉진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 대북 제재의 실효성 문제를 지적했는데.

    ▲일본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현재 국내에는 납북 문제로  북한을  경제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전문가 다수는 '핵문제 해결'이  아닌  납북문제로 제재하면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북한경제 전문가인 고마키  테루오(小牧輝夫) 코쿠시칸대학 교수는 "일.북 경제교류가 크게 감소, 제재 효과가 없다"고  말하는 등 대북 제제의 실효성 문제도 지적돼왔다.

    -- 교과서와 독도 문제, 고위 관리들의 잇단 망언 등으로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독도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방향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교과서나 과거사 왜곡 문제 등은 장기전을 편다는 마음으로 좀 더 차분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교과서 왜곡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일본인들이 앞장서 싸워야 한다.  한국인들은 우리 일본사람들을 도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대응 방식과 관련, TV 프로그램이나 한류 열풍의 중심에 있는  '대장금'  등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일본 국민들에게 독도 문제 등 한국의 입장을 각인시켜 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기존의 단호한 대일 정책 기조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 '차기 총리 1순위'로 꼽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간사장대리가 최근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총리 책무'를 강조했는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에 이어 아베 정권 출범 후에도 한.중.일간 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 같다.

    ▲아베 간사장 대리는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차기 총리 가능성이  제기돼왔으나 '아베 정권' 출범 가능성은 적다. 고이즈미 총리보다도 강경파인 아베 간사장  대리 보다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이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 그 밖에 유력한 후보들은.

    ▲최근 야스쿠니 신사의 A급 전범 분사(分祠)론을 제기한 바 있는 요사노  가오루(輿謝野馨) 정조회장, 또는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재무상 등이 유력한  후보들이다. 이들이 집권하면 한일, 북일관계 등도 개선될 여지가 많다.

    duckhwa@yna.co.kr
(끝)



연합뉴스 2005/06/13 06: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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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적은 내부에 있다/ 송호창

삼성의 적은 내부에 있다

홍보담당의 아부와 맹목적 삼성찬양 언론이 일류기업을 죽인다

 

송호창 변호사

 

최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까지 나서 삼성이 비난받는 이유를 규명하라는 지시를 사장단에 내릴 정도로 문제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 내부와 재벌 칭송에 여념이 없는 일부 언론은 그룹 총수까지 제기하는 문제를 외면하고 여전히 삼성예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호창 변호사가 본보에 기고문을 보내 왔다. 송 변호사는 앞서 이재용 후계체제를 위해 삼성전자가 삼성카드에 무리한 출자를 감행한 결과 무려 1조 6700억원의 손실을 자초했다는 충격적인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편집자 주>


변호사는 배우와 같다.

배우가 배역에 몰입할수록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듯이 자신을 찾아 온 의뢰인의 입장에 몰입하면 할수록 ‘나쁜 X들’에 대해 공분하게 되고, 상대방을 응징한다.

▲ 송호창 변호사 
의뢰인을 곤궁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온갖 서적과 자료를 뒤져 법률적 보호수단을 찾으면 자연히 소송에서도 승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의뢰인의 입장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갈 데까지 다 가보고 ‘법대로 하자’고 하여 변호사를 찾은 의뢰인들이라 그들이 겪은 고통이 전이되는 순간 그 짐을 짊어지는 것은 여간 고통스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친 짓인 줄 알지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삼성을 고소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못 살겠습니다.” 얼마전 나를 찾아온 한 의뢰인의 눈물어린 호소는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삼성그룹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하청업체 사장인 의뢰인은 손해를 보더라도 2년 동안만 원가보다도 낮은 저가로 부품을 공급해주면, 2년 후에는 더 많은 납품과 정상단가를 보장한다는 삼성측의 약속만 믿었다.

그는 집까지 저당잡히고 돈을 빌려 부품생산과 납품을 해줬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후 삼성은 같은 부품을 더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는 다른 하청업체로부터 공급받았다. 이를 항의하는 의뢰인에게 돌아온 것은 “이 바닥에서 생존하기 싫으냐”는 황당한 답변뿐이었다.

삼성은 저가납품계약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어느 대기업보다 하청업체들에 악명이 높다. 삼성에 대한 하청의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투자를 꺼린다는 증권사도 있을 정도다.

삼성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쩔쩔매던 고려대 당국, 뒤이어진 고위 판검사 출신의 삼성행과 ‘삼성공화국’ 논란, 이런 논란을 적극적으로 그룹 이미지 홍보전략에 사용한 삼성사장단 회의...

여기다 ‘1%의 반대세력까지 포용해서 상생과 나눔경영 다짐, 일부단체의 비판을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라고 삼성사장단 회의결과를 보도하며 삼성띄우기에 열 올리는 언론 등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삼성의 횡포로 인해 피해를 당한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그를 통해 삼성의 본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두고, ‘다른 기업을 죽이고 큰 게 아니다. 정계유착으로 불공정한 게임을 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서 이긴 것’이라며, ‘목소리 큰 소수들의 대안없는 공격에 꾹 참고’ ‘변죽만 울리는 삼성독주론’을 무시하라고 ‘삼성찬가’를 불러대는 일부 언론기사를 보면서 허탈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일부 언론의 찬가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본 모습은 주력품인 핸드폰의 주요부품을 퀄컴 등의 수입품에 의존하는 것에서 확인되듯이 한국경제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현대자동차보다 적다는 것, 하청업체들과 직원들에 대한 악명, 전대미문의 무노조 경영정책, 이재용 씨 체제로의 세습을 위해 온갖 불법과 편법수단을 동원하는 것, 대규모 불법정치자금제공 등에서 발견된다.

삼성의 경쟁자도 아니고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시민단체들이 삼성을 비판하는 이유는 이러한 흠집이 장기적으로 기업을 병들게 하고, 하청업체를 비롯해서 전체 고용의 87%를 감당하는 중소기업들을 줄줄이 문닫게 하는 독소로 작용할 뿐 아니라 삼성의 불투명한 기업경영으로 인해 자정능력까지 상실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스웨덴의 발렌베리와 같은 국민기업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최근 삼성과 언론의 태도를 보고 삼성의 본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은 ‘역시 삼성’이라며 자신에게 한푼 남는 것이 없는데도 괜히 뿌듯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일부 언론이 침소봉대하는 것처럼 '대안없는 변죽‘이 아니다. 삼성 비판은 삼성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고, 삼성이 진정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쓰지만 귀한 약이다.

반면 삼성의 초일류기업화를 가로막는 것은 불투명한 기업경영을 고수하고, 곡학아세형 그룹홍보에만 관심있는 삼성자신이며, 그런 삼성찬양에 여념이 없는 언론임을 알아야 한다.

데일리서프라이즈 2005.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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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화국'의 횡포가 초래할 파국/ 장상환

‘삼성공화국’의 횡포가 초래할 파국


장상환(진보정치연구소장, 경제학)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 대한 고려대의 명예철학박사학위 수여를 둘러싼 갈등을 계기로 삼성의 힘이 너무 커진 것이 아닌가, 이제는 ‘삼성공화국’인가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대해 삼성그룹도 부담을 느껴 지난 6월 1일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한 이상 단 1%의 반대세력이 있더라도 포용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상생'과 '나눔 경영'에 박차를 가하자"고 발표했다. 그러나 ‘무노조 경영’ 이나 경영권 세습과정에서의 불법․편법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오만한 자세이다.


삼성그룹 문제의 핵심은 삼성이 수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국민경제를 지배하고 있는데도 자신은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기업의 성장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첫째, 삼성전자가 10조원이라는 막대한 이윤을 올리는 배경에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기술과 함께 첨단 정보기술 제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과다한 부담과 삼성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다. 자녀들이 수십만원 짜리 휴대폰 신제품을 사달라고 조르는데 부모들은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삼성에서는 수익을 많이 올리는 부서 노동자들에게는 보너스를 넉넉하게 주지만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보너스도 없으며, 심한 경우에는 부서를 아예 없애버리고 노동자를 내쫓아 버린다. 노조가 없으니 회사 마음대로 인력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삼성재벌은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이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승계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있다. 이재용에게 헐값으로 에버랜드 주식을 양도하여 이재용이 삼성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고객이 맡겨 놓은 삼성생명의 돈으로 삼성전자의 주식을 갖고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서 재벌 금융사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했을 때는 반드시 금융당국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는데도 삼성카드는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금융당국으로부터 어떤 승인도 받지 않았다. 지금 금융당국은 은행의 보험업 겸영(방카슈랑스) 허용에 잇따라 보험회사에 은행 업무를 허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삼성은 보험업계의 패권자 삼성생명에다가 삼성은행까지 가지게 되어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와 국민경제에 대한 삼성의 지배는 완성될 것이다.      


셋째, 삼성재벌은 무노조 경영을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노조 결성을 시도하는 노동자를 납치하고 휴대폰을 복제하여 감시하기까지 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감독당국이 확보한 서류를 탈취하고 컴퓨터 자료를 파기하는 등 법을 버젓이 위반하면서 문제가 되면 벌금을 내고 하급자가 처벌받으면 된다는 자세이다. 노동법을 이렇게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가. 법이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행위의 상하한선을 규정한 것으로 지배세력이 이것을 아예 무시하면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고 결국에는 재벌총수의 목숨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노조 탄압에 대응하여 세계 각국 노동자들이 삼성제품 불매운동을 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삼성은 노동자의 원한이 쌓여가는 것을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넷째, 삼성재벌은 중소기업을 압박해서 최대한 이윤을 짜내고 있다. 삼성 계열사 경영진은 수익을 올리라는 그룹 회장의 무자비한 요구에 부응하여 납품 중소기업에게 납품단가 인하를 강요하고 중소기업은 이러한 부당거래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세계 각국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정규직과 동일한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 격차가 확대되는 데는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집단적 이기주의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삼성그룹과 같은 재벌 대기업의 무자비한 초과착취 행위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삼성재벌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돈으로 자행하고 있다. 고려대의 이건희 회장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를 둘러싼 소동은 소중한 가치인 대학의 자유를 돈으로 사버리려고 시도한 것이다. 사법계 인사를 고액 연봉으로 채용해서 탈법 불법을 방어하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삼성의 영향력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을 넘어 행정과 정치, 사법의 영역에서도 작용하고 있다. 삼성가의 사돈인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비리에 대한 처벌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삼성과의 특수관계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삼성재벌은 국회에 상주하는 임직원과 삼성 계열사에 근무하는 친지를 통해 개별 국회의원을 접촉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삼성의 요구를 전달하여 손아귀에 넣고 있다. 최장집교수가 현재의 정부에 대해 재벌이 중심이 되고 하위 파트너로서 국가의 정책이 재벌에 봉사하게 되었다고 비판한 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삼성재벌은 세계 경제사와 미국 경제사를 잘 연구해보기 바란다. 미국에서도 1870-1900년 사이에 이른바 ‘금도금한 시대’(gilded age)가 있었다. 대륙횡단철도가 개설되고 산업화가 급진전되던 시대로서 돈벌기 위해서는 부정직이 당연했고, 정직하면 바보가 되는 시대였다. J. P. 모건의 전신인 루이지에나 시민 은행은 1850년대에 노예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자본가들은 노조 파괴에 온갖 수단을 동원했고, 심지어는 살인청부업자를 동원해 노조 지도자를 살해하기까지 했다. 매튜 조셉슨은 산업계의 거물들을 강도귀족(Robber Barons)이라고 부르는 책을 썼다. 이 시기에 J. P. 모건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같이 경영하고 기업에 이사를 파견해서 지배했다. 결국 미국 경제 전체가 모건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불황기에 기업과 금융기관을 살리고 죽이는 힘을 사적 금융자본가인 모건이 장악하고 대통령이 모건에게 호소하는 꼴이 되었다. 


그 결과 빈부격차와 불황이 심화되었다. 미국 정부는 1913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설립하여 사적 금융자본에 의한 금융산업 조정을 공적 규제로 대신했다. 1929년의 주가폭락과 그에 이은 경제대공황의 배경의 하나로 금융업간의 통합이 지적됨으로써 개혁조치로 1933년 글래스 스티걸법이 제정되었다. 연방예금보험제도의 창설, 예금금리의 상한 설정, 연방준비제도의 강화 등과 함께 기업이 발행하는 유가증권 인수업무는 투자은행에만 허용되고 상업은행에 대해서는 일체 금지되었다. 또한 노조 탄압이 대공황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라고 지적되어 1935년에 와그너법이 제정되어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무거운 처벌을 하도록 했다. 


삼성은 시대착오적인 1970년대의 무노조 경영을 글로벌 경영의 시대에 들어온 지금에는 확실하게 그만두어야 한다. 고 이병철 회장의 유지를 고집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다. 그리고 리스크를 키우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와 금융산업간 통합 시도를 정부의 정책과 관계없이 중단해야 한다. 정부도 이 점을 확실히 해서 삼성의 불법, 탈법과 국민경제에 대한 지배 강화를 막아야 한다. 공룡 재벌 삼성이 시대에 맞지 않는 행태를 고집하면 결국 삼성 자체의 몰락은 물론이고 국민경제 또한 빈부격차 확대와 대공황이라는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이것을 용납할 수 없다. 

 

진보정치연구소 홈페이지(http://policy.kdlp.org/index.html) 2005.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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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화국’ 비판세력이 1%뿐이겠는가/ 김상조

삼성공화국’ 비판세력이 1%뿐이겠는가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이건희 회장의 고려대 ‘철학’ 명예박사 학위 사건 이후 삼성그룹이 연일 곤혹을 치루고 있다. 이른바 삼성공화국 논란이다. 급기야는, 역시 삼성답게, 이건희 회장의 엄중 지시가 떨어졌고, 부랴부랴 구조본 팀장과 계열사 사장 40여명이 참석하는 그룹 사장단 회의인 수요회에서 2주 연속 대책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가 6월 1일 “삼성 사장단 ‘국민기업 정착 방안’ 토의”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보도자료이다.

이 보도자료를 읽으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 삼성의 미래를 진정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삼성공화국 비판을 삼성의 눈부신 성장에 대한 “단 1% 반대세력”의 시기심 어린 투정으로 간단히 치부해버리는 삼성의 오만함 때문이다.

예수님의 12 제자 중에서도 배신자가 나왔거늘(약 8%의 반대세력), 어찌 삼성은 99%의 절대적 지지를 획득한 진리의 담지자임을 자부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다지도 오만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은, 삼성공화국 비판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성과를 시기하는 것도 아니고, 나아가 삼성전자의 성장을 억제해야겠다는 반시장적 정서의 표출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더욱더 성장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더욱더 많은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 또한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더욱더 많이 나와야 한다.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는 단 1%의 반대세력도 없다.

삼성공화국 비판의 핵심은, 삼성이 경제환경에 탄력적으로 적응하는 기업조직의 차원을 넘어, 경제환경을 왜곡하고 오염시키는, 그럼으로써 그 자신의 조직적 탄력성은 물론 국민경제의 동태적 활력마저 질식시키는 경제권력으로 변모하였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금산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문제 등 삼성의 위법행위를 적법행위로 둔갑시키는 법개정안 사례에서 확인되었듯이 삼성의 힘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권능을 이미 초월했다. 국민소득 2만불, 산업혁신 클러스터, 기업도시 등 정책 의제의 선점 사례에서 보듯이 삼성의 기획 아이디어는 정부관료의 머리를 완전히 압도했다. 고위 판검사와 유망한 변호사를 블랙홀처럼 싹쓸이하는 과정에서 ‘삼성에서 전화 받았느냐’가 법조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유일 기준이 되었다.

삼성전자 제품을 선전하는 전면광고 바로 옆에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찬양하는 기사가 실린, ‘사회의 소금’기가 짝 빠진 싱거운 신문만 남았다. 수백억원의 발전기금 기부를 받기 위해 구조본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CEO 대학총장님의 자화상 속엔 ‘비판지성의 빛’이 꺼진 곡학아세의 어둠만이 짙다.

삼성의 요구를 재계 전체의 요구로 포장하는 전경련을 ‘삼경련’으로 부르는 여타 경쟁재벌의 냉소 속에서조차 경쟁질서의 실종에 직면한 두려움이 짙게 배어 있다.

삼성공화국 비판은 바로 입법, 행정, 사법, 언론, 대학, 경쟁기업 등 우리 사회의 감시와 견제의 메커니즘 모두가 예외 없이 삼성의 경제권력 앞에 무릎 꿇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필자가 굳이 ‘정의론’까지 들먹이지는 않겠다. 삼성공화국은 기본적으로 경제문제이기 때문이다. 삼성공화국은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많이 많이 출현’하는 것을 막는 절대적 진입장벽으로 작용함으로써 한국경제의 미래를 잠식하고 있다.

삼성공화국은 이건희 회장 본인의 위기경영론과는 정반대로 위기징후에 둔감한 환경지배자로 군림함으로써 그 스스로의 미래를 잠식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공화국은 한국경제 전체에 대한 위협이자 삼성그룹 및 이건희 회장 일가 그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한편, 필자가 그 보도자료를 보면서 삼성의 미래를 진정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삼성공화국 비판의 연원, 즉 ‘이재용씨 세습 문제’와 ‘무노조 경영 문제’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엿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국민기업’ 운운하기 이전에 주식회사의 실질부터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소액주주와 보험계약자의 돈을 훔치면서, 하도급기업과 노동자의 희망을 짓밟으면서, 어찌 국민기업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는가? 어떻게 이다지도 후안무치할 수 있는가?

삼성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삼성의 미래의 총수 이재용씨를 결코 내려올 수 없는 쓰레기통 위에 올려놓은 것은 그 1%의 반대세력이 아니라 바로 삼성이라는 사실이다. 고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짊어진 그 멍에를, 이건희 회장이 삼성자동차 실패로 짊어진 그 멍에를, 이재용씨는 총수로 등극하기도 전에 주렁주렁 매달고 평생을 가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진심으로 충고한다.

삼성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이건희 회장 일가를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처럼 될 수 없게 한 장본인은 그 1%의 반대세력이 아니라 바로 총수 일가 자신들이라는 사실이다. 노조를 부정하는 발렌베리 가문을 상상할 수나 있는가? 법질서를 무시하고 공권력을 농락하는 발렌베리 가문을 상상할 수나 있는가? 사회의 존경과 신뢰는 결코 돈으로, 그것도 회사 돈으로, 즉 남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진심으로 충고한다.

삼성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진정 삼성의 미래를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단 1%의 반대세력”으로 치부하는 그 오만함부터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재용씨를 총수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법도 적법으로 만들 수 있다고 오판하는 ‘삼성 내부의 단 1%의 가신그룹’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수의 말 한마디면 CEO 40여명이 일사분란하게 복창하는 기업문화를 효율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총수 일가의 세습왕조적 사고방식’부터 위기경영론의 관점에서 재고하여야 한다. 삼성에 위기가 닥쳐온다면, 그것은 내부로부터의 위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 2005.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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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나라② 요람에서 무덤까지 ‘삼성’/ 홍성태

<안국동窓> 삼성의 나라② 요람에서 무덤까지 ‘삼성’

 

홍성태(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삼성 사장단이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고려대 사태’를 계기로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는 ‘삼성 경계론’에 대한 대응책을 찾아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괜히 ‘학위장사’에 나섰다가 꼴이 우습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결과가 재미있다. 삼성 사장단은 ‘상생․나눔경영의 확대’라는 걸 해결책으로 제시한 모양이다. 이런 걸 가리켜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하는 게 아닐까?

보도에 따르면, “삼성 사장단은 삼성경계론의 실체를 사회․경제적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비판여론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똑똑한 사람들답게 ‘사회․경제적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제법 어려운 말을 쓴 모양인데, 쉽게 말해서 ‘삼성 경계론’은 ‘질투심의 발로’라는 뜻이다. 겨우 이런 결론을 내리려고 대책회의까지 열었단 말인가? 이 사람들이 과연 수십억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이 오만한 나르시스트들을 어찌해야 하는가? 돈이 너무 많다 보니 세상이 너무 하찮게 보이는 ‘정신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삼성 사장단은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한 이상 단 1%의 반대세력이 있더라도 포용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한다”고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삼성 사장단은 삼성경계론을 ‘단 1%의 반대세력’의 질투에서 비롯된 무고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진단 위에서 자신의 포용력을 과시하는 것이 삼성 사장단의 결의이다.

참으로 안하무인의 집단이다.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여론을 이상한 쪽으로 몰아갔다. 여기에 삼성 신문이 빠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중앙일보는 6월 1일자에 ‘나눌 줄 아는 거인 삼성’이라는 제목으로 삼성을 엄호하는 기사를 실었다. 삼성문화재단 등을 통해 삼성이 이 사회에 베푸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삼성을 비난하느냐는 주장이다. 이렇게 많이 베풀고 있지만, ‘상생․나눔경영의 확대’를 통해 더 베풀어서, ‘단 1%의 반대세력이 있더라도 포용’하려는 삼성은 참으로 위대한 기업이라는 주장이다.

삼성은 스스로 ‘세계 최고의 기업’ 운운하지만, 과연 무엇에서 ‘세계 최고’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아주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두가지이다.

첫째, 불법증여를 통한 기업상속의 문제이다. 이재용 상무는 불과 16억원의 상속세를 내고 삼성재벌을 물려받았다. 법을 기만하고 우롱한 정도에서 삼성은 ‘세계 최고’이다. 이 사실을 그야말로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삼성재벌만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이건희와 이재용의 삼성이라는 것을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우긴다고 사실이 바뀌겠는가?

둘째, 이른바 무노조경영의 문제이다. 삼성재벌처럼 큰 기업이면서 노조가 없는 곳은 아마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삼성재벌은 이 사실을 아주 큰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깊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노조를 만들고자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 심지어 ‘유령 핸드폰’을 복제해서 자행된 위치추적 의혹에 이르기까지. 삼성재벌의 무노조경영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 최고’의 추문일 뿐이다.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에 삼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그러나 삼성 사장단은 참여연대가 트집을 잡는 것을 빼고는 이 나라의 누구나 삼성을 최고로 여기고 아낀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 이 정도라면 상태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닐까? 사실 이 착각은 ‘삼성 비판론’을 ‘삼성 경계론’으로 읽는 데서 시작되었다. ‘삼성 경계론’은 없다. ‘삼성 비판론’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삼성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삼성재벌은 힘이 세다. 안경환 교수처럼 ‘양심적 인사’로 알려진 법학자가 삼성에 중앙 일간지에 삼성을 적극 옹호하는 칼럼을 쓸 정도로 삼성은 힘이 세다. 이로써 안경환 교수는 법학자로서의 양식을 크게 의심받게 되었지만, 삼성재벌로서는 상당한 원군을 얻어서 크게 기뻤을 것이다. ‘역시 우리가 잘못한 것은 없어’라며 자화자찬의 수렁 속으로 더 빠져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렇게 오만방자한 착각 때문에 ‘삼성비판론’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삼성재벌의 힘은 무엇보다 ‘돈’에서 나온다. 삼성재벌은 힘을 기르기 위해 ‘돈’을 어떻게 쓰는가? ‘돈’으로 ‘사람’을 산다. 먼저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지키고 거대한 잇권을 쉽게 손에 넣기 위해 정치권에 천문학적 뇌물을 상납한다. 이렇게 해서 다수의 정치인을 ‘삼성맨’으로 만든다. 정경유착과 불법상속에 관한 여론의 악화를 무마하기 위해 문화재단을 통해 문화인들에게 돈을 준다. 이렇게 해서 다수의 문화인들을 ‘삼성맨’으로 만든다. 대학에 막대한 기부금을 제공하고 공공연히 학위장사를 벌인다. 이렇게 해서 다수의 학자들을 ‘삼성맨’으로 만든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때는 삼성을 비판하는 방송도 했던 중견 언론인이 삼성의 홍보를 책임지는 ‘삼성맨’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삼성을 위해 자신의 재주를 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맥도 최대한 활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밝혔듯이 퇴직 판검사들을 ‘삼성맨’으로 발탁했다. 모두 수십억의 연봉을 받을 터이지만 삼성재벌로서야 ‘껌값’일 뿐이다. ‘전관예우’의 댓가를 따지면 더욱 더 그렇다. 삼성재벌은 이제 ‘전관예우 특별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것이 ‘초일류기업’ 삼성재벌의 실상이다.

이런 식으로 삼성재벌은 이 나라를 ‘삼성의 나라’로 만들었다. 이제 그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를 지경에 이르렀다. 공정위의 조사를 받던 중에 일개 직원이 증거자료를 들고 내빼는 짓을 상습적으로 저지르지 않나, 금감위는 삼성이 원하는 내용으로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려고 하지 않나, 삼성재벌의 힘 앞에서 나라의 기강이 어처구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번의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듯이 삼성재벌은 이미 이 나라가 삼성재벌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정부고 법원이고 학계고 언론이고 시민단체고 모두 삼성재벌을 떠받들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곧 모든 사람들이 삼성병원에서 태어나, 삼성학교에서 배우고, 삼성기업에서 일하고, 삼성은행과 거래하고, 삼성이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국회의원이며 대통령으로 뽑고, 삼성병원에서 장례를 치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아니, 우리는 이미 상당한 정도로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이 나라가 완전히 ‘삼성의 나라’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것은 ‘돈’이 지배하는 나라, 곧 ‘돈 나라’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인터넷 참여연대 200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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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나라/ 홍성태

<안국동窓> 삼성의 나라

 

홍성태(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2005년 4월 20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의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 나아가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를 뺀 모든 계열사의 이사직을 사임할 계획이라고 한다. 삼성그룹에서 모종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우리 경제에, 곧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우리는 마땅히 삼성그룹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삼성그룹의 운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히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다. 그러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 삼성그룹이라는 말보다는 삼성재벌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훨씬 더 익숙하다. ‘재벌’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의 뜻은 ‘돈 많은 집안’이라는 뜻이지만, 좀더 정확하게는 ‘거대회사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특정 가족’을 뜻한다. 그런데 ‘벌’(閥)이라는 한자어가 시사하듯이 이 말의 뜻은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칠 伐’과 ‘문 門’이라는 글자가 합쳐서 만들어졌다. 여기서 ‘문 門’이라는 글자는 가문을 뜻한다. ‘閥’이라는 글자는 어떤 가문이 문 앞에서 다른 가문의 진입을 쳐서 막는 것을 뜻한다. 독점적인, 곧 배타적인 방식으로 특권을 누리는 가문이 바로 ‘閥’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재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많은 돈으로 특권을 누리는 가문’을 뜻한다. 바로 이 때문에 재벌은 군벌이나 학벌이나 정벌과 같은 다른 모든 '벌족'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착오적인 개혁대상이다.

재벌의 문제는 전근대적 특권의 향유에 그치지 않는다. 재벌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문제와 직결된다. 민주주의는 전근대적 특권체제의 청산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이라는 특권가문의 존재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재벌은 특권을 지키기 위해,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먼저 그들은 적극적으로 정경유착의 구조를 만들어 활용한다. 16대 대선의 불법정치자금 수사에서 그 일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재벌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을 정치인에게 상납했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바친 것은 삼성재벌이었다. 삼성은 152억원을 바쳤다고 주장했으나, 두 배가 훨씬 넘는 372억원을 바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막대한 돈을 비자금으로 조성해서 정치권에 바칠 수 있는 것이 재벌이며, 그 중에서도 최대 재벌인 삼성재벌의 능력은 단연 두드러진다. 정경유착을 없애기 위해서는 재벌을 척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재벌은 ‘승자독식의 사회’를 추구한다. 몇 해 전에 삼성전자는 ‘아무도 2등은 기억해주지 않습니다’는 문구의 광고를 상당한 기간 동안 연속으로 내보냈던 적이 있다. 좋게 보자면, 1등을 추구한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광고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등이 되기 위해서 재벌은 먼저 ‘모든 자원의 독식’을 추구한다. 그 핵심은 인력과 자금이라는 두가지 자원이다. 과정의 문제를 철저히 은폐하고 1등의 결과만을 내세우는 것이 야누스적인 재벌의 실체인 것이다. 나아가 ‘승자독식의 사회’라는 것 자체가 반인간적이며 반사회적인 사회이다. 이런 사회를 공공연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주장하면서 삼성재벌은 자신의 반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 정체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덧붙여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재용 상무는 도대체 무엇에서 1등을 해서 삼성재벌의 후계자가 되었는가?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전근대적 세습에 성공한 삼성재벌이 1등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막힌 역설이고 비웃음거리일 수밖에 없다.

세째, 재벌은 이른바 ‘총수’의 독단에 의해 경영된다. 총수의 취향과 관심에 따라 세계적인 거대기업의 향방이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총수의 전제적 지배는 그 자체로 극히 심각한 문제이지만, 여기서 나아가 기업의 소유와 운영에 관한 인식의 왜곡을 낳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총수는 ‘주인’이고, 임원은 ‘마름’이며, 직원은 ‘머슴’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이같은 잘못된 생각이 불행하게도 이 나라에서는 하나의 ‘상식’으로 통한다. 재벌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는 족벌언론과 언론족벌이 이런 ‘상식’을 널리 퍼트리는 확성기의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점에서도 삼성재벌의 능력은 가장 두드러진다.

이러한 세가지 문제는 재벌을 ‘죄벌’(罪閥) 곧 ‘죄를 많이 지은 가문’, 아니 ‘구조적으로 죄를 많이 지을 수밖에 없는 가문’으로 만드는 가장 일반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삼성재벌은 다른 재벌보다 월등히 뛰어난 두가지 문제를 더 가지고 있다.

첫째, 삼성재벌은 ‘세계 최고의 편법세습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 기술의 개발을 위해 일년 365일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이루어진 것이 이건희의 세습이요, 이재용의 세습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 안에서 삼성이라는 왕국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 삼성재벌은 그 설립자인 이병철 회장 때부터 최선을 다해온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30대 중에서 최대 부자는 말할 것도 없이 삼성재벌의 이재용 상무이다. 그런데 그는 3조원이 넘는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세금이라고는 단돈 16억원밖에 내지 않았다. 30억원 이상을 상속받을 때에는 50%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국민의 복리를 위해 써야 할 1조 5천억원이 이재용 상무의 금고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삼성재벌이 모든 재벌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인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둘째, 삼성재벌은 ‘세계 유일의 무노조경영 대기업’이다. 이병철 회장은 자기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유지를 받들어 삼성재벌은 아직도 노조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의 결성은 노동자의 권리에서 핵심을 이룬다.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노동자를 그야말로 ‘머슴’으로 여기는 것이다. 삼성재벌의 이런 태도는 극단적인 프라이버시 침해사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세상을 놀라게 한 이른바 ‘연예인 X화일 사건’은 그 좋은 예이다. 삼성재벌의 계열사인 제일기획에서 일으킨 이 사건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재벌의 문제가 연예인을 마치 가축처럼 다루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사실 이 사건보다 더 끔찍하고 엽기적인 사건은 2004년 6월에 밝혀진 삼성SDI의 ‘유령폰 사건’이다. 누군가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핸드폰을 구입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삼성SDI의 노동자들을 조직적으로 위치추적했던 것이다. 추적의 대상이 되었던 노동자들은 모두 노조를 결성하려고 애쓴 사람들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에버랜드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은 이재용 상무의 세습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삼성재벌의 개혁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책임을 없던 일로 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성재벌이 주장하는 ‘총수’체제의 개혁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이렇게 배짱을 퉁길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나라가 이미 ‘삼성의 나라’가 되었기 때문인가? 거의 모든 언론이 삼성재벌을 구세주로 미화하는 보도를 해대고 있고, 대다수 정치인이 삼성재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수시로 화장을 고치고 있다. 이제 삼성재벌이 직접 권력을 장악하는 일만 남은 것은 아닐까? 이미 숱한 ‘삼성맨’들이 재계는 물론이고 정계, 관계, 언계, 학계에서 지배적 위치를 굳히고 있지 않은가?

재벌은 화창한 봄날의 황사같은 존재이다. 그것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한, 우리는 세상을 맑고 투명하게 볼 수 없다. 그것이 세상을 계속 뒤덮고 있는 한, 우리는 마치 세상이 언제나 그렇게 흐린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이 흐린 것이 아니라 황사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재벌의 개혁은 정치민주화를 넘어서 사회민주화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과제이다. 사이비 경제위기론과 총수 구세주론을 유포하여 자신의 지위를 더욱 굳히려는 삼성재벌의 개혁은 더욱 더 그렇다. 삼성재벌을 개혁하고 화창한 봄날을 즐기자.

인터넷 참여연대 200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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