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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9/09/07

지워야 할 단어, 지울 수 없는 기억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간 파업투쟁은 많은 것을 남겼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정당한 싸움을 왜곡/비방하는 공격은 멈추질 않고 있다. 또 민주노총 위원장마저 이들의 싸움을 자본과 닮은 논리로 평가절하하는 모습은 씁쓸함을 넘어 너무나 고통스럽다. 짧은 지면에 쌍용차노동자들의 투쟁이 남긴 것을 다 담아내기는 어렵지만, 장면, 장면을 통해 이 투쟁이 남긴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노동자투쟁에 연대하지 못했다. 반성해야 한다. 나가면 정말 열심히 연대하러 다니자”(분반토론) “동지들에게 우리의 강고한 의지와 결의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금속노조 확대간부 파업) “며칠만에 완전 바뀌었다!” (금속노동자)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사상초유의 2,646명 정리해고, 86일 굴뚝농성, 77일 점거농성, 투쟁기간 6명의 죽음. 이래도 해고가 살인이 아닌가?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쌍용차 노동자투쟁은 ‘죽은자’ 대 ‘산자’의 투쟁도 아니고, ‘노노간의 갈등’도 아니다. 이 투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어 투쟁하는 노동자와 자본 간의 싸움이었다.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음식물 중단 21일, 물·가스 중단 18일, 단전 5일, 의료진 차단, 용역·구사대·전투경찰의 합동작전, 최루액, 3단전자봉, 테이저건, 고무총탄, 헬기까지... 구속자 65명. 정권과 자본의 폭력은 정말 ‘순수’했다. 그러나 폭력보다 더 두려운 것은 우리의 절규와 함성소리에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였다.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우리의 아픔. ‘외부세력’ 이데올로기보다 연대의 미약함이 공장 안의 노동자들을 고립되게 만들었다.

 

쌍용차파업 가족대책위. 노동자의 가족들도 투쟁의 한 주체로 누구보다 앞장섰다.

 

파업이 끝나고 한상균 지부장이 담화문을 읽을 때 비가 내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이제 오네요” 

“쌍용차 노동자파업은 정당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진제공 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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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투쟁, 쓰라린 패배, 남겨진 과제

위대한 투쟁

 

77일간의 공장점거파업, 84일간의 굴뚝농성. 그냥 싸운 것도 아니다. 물, 식량, 의료진, 전기 차단이라는 반인권적 상황에서, 구사대-용역-경찰 살인적 진압과 청산 협박 속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싸웠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말잔치뿐인 보잘 것 없는 연대에도 불구하고,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깃발을 결코 내리지 않았다. 도장 2공장으로 토끼몰이 식으로 밀려난 후, ‘죽음이냐-항복이냐’란 무시무시한 협박 앞에서야 그들은 ‘죽지 않기 위해’ 사측 안을 수용했다.

 

그들은 “원하청 공동투쟁이 이뤄진 것 그것만으로도 승리했다”(서맹섭 비정규부지회장)는 말대로, 파업을 통해 정규-비정규간의 강고한 벽을 허물면서 같은 동지(노동자)임을 확인했다. 지도부의 조합원에 대한 확고한 신뢰, 헌신성, 투쟁의지를 통해, 조합원이 주체가 된 투쟁과정을 통해, 예상을 뛰어넘는 투쟁을 조직했다. 쌍용차투쟁이 위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쓰라린 패배 
 
그러나 쌍용차 투쟁은 사측의 정리해고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왜 인가? 우선 상상을 초월한 국가폭력을 통한 ‘죽음이냐-항복이냐’란 강요했기 때문이다. 쌍용차 투쟁의 패배 원인을 놓고 노동운동 안에서조차 ‘옥쇄파업이라는 전술상의 오류’, ‘강성노조’, ‘정리해고 반대라는 반대에 갇힌 투쟁’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이는 정권이 저지른 국가폭력에 면죄부를 줄 뿐이다. 
 

오히려 점거파업전술로 쌍용차투쟁은 거점을 형성해 투쟁할 수 있었으며, 강력한 투쟁으로 ‘해고는 살인’임을, 그리고 국가의 계급적 본질과 폭력성을 만천하에 알려냈다. 쌍용차투쟁을 평택(지역) 문제에서 전국적 문제로 떠오르게 하고, 각계의 연대를 확산시킬 수 있었다. 정리해고 대상을 부분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투쟁 때문이었다. ‘반대에 갇힌 투쟁’ 때문에 사업장에 갇힌 투쟁이 되어버렸고 패배했다는 평가도 어불성설이다. 

 

쌍용차투쟁은 경제공황 아래 ‘구조조정(정리해고) 관철-노조 죽이기’를 통해 자본의 위기를 탈출하고 자본의 천국을 만들려는 정권의 의도에 맞서 정리해고 분쇄를 분명히 함으로써, 오히려 단위사업장 투쟁을 넘어 총노동의 투쟁이 되었다. 그리고 ‘기업과 경제는 자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과 삶을 위해 운영되어야 함’을 제기하였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국가폭력에 맞설 힘이 없기 때문에, 정리해고 분쇄투쟁은 승리할 수 없다.’ 그런가? 만약 쌍용차투쟁이 금속노조, 나아가 민주노총의 투쟁으로 확산되었다면, 진보정당들이 반MB연합전선 형성과 선거에 집중하는 노력만큼 쌍용차투쟁의 엄호와 확산,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면, 이명박정권이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주체 내적으로 볼 때 패배의 원인은 ‘노동자 죽이기-구조조정과 노조 죽이기’를 밀어붙이는 자본과 정권의 공격에 맞서 ‘총노동의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노조운동과 진보정치운동에 있다. 

   

남겨진 과제

  

쌍용차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투쟁 이후에도 정권과 자본의 탄압과 노조 죽이기 공세는 예상을 뛰어넘어 거세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한 즉각적, 총체적 대응이 쌍용차노조를 넘어 전체 운동진영 차원에서 시급히 조직되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발본적 성찰과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쌍용차투쟁을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리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협소한 인식, 이를 알고도 연대투쟁을 적극 조직하지 않거나, 강성노조가 문제며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관료주의적·반노동자적 조류의 확산, 투쟁을 조직하지 않는 지도부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노조의 공식방침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고 내 사업장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선진활동가들의 현 상태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선거와 원내진출에 활동의 주초점을 두고 자본주의 틀 내에서 진보와 개량을 추구하며 중재와 협상에 치중하는 진보정당이 아니라, 분명한 반자본(주의)의 입장에 서서 대중투쟁을 엄호하고 이 투쟁을 확산,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변혁적 투쟁정당(사회주의 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노동운동 내에 반노동자주의·투쟁회피주의·관료주의·조합주의를 극복하는 길과 변혁적 투쟁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바로 선진활동가들이 계급운동과 당운동(변혁운동)의 중심주체로 서나가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이 ‘영웅적 투쟁, 패배’로 끝났으나, 당시 운동진영에 값진 교훈이 남기면서 80년대 변혁운동의 새로운 시작을 열었듯이, 쌍용차투쟁도 계급적 노동운동의 재조직화와 변혁적 투쟁정당(사회주의 정당)건설이라는 과제를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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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일 투쟁이 넘어야 하는 과제

긴 터널을 지나 끝에 다다르면 한 순간 눈부심으로 세상이 안 보인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77일간의 투쟁으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실을 보여줬다. 연대가 무엇인지? 노동자의 투쟁은 어떻게 발전하는지? 우리의 현실은 어떤지? 새롭게 봐라보고 있다. 

 

77일 투쟁이 남긴 과제도 많다. 운동의 과제는 이후로 넘기고 현장의 문제를 중심으로 보자. 

 

첫째는 노동조합의 정상화다. 노동조합 투쟁 단일사건으로 66명 구속은 최대다. 지부 임원과 실장, 상집, 대의원들이 공장에서 감옥으로 옮겨졌다. 유치장에서 임원실장회의를 하는 초유의 탄압이 일어나고 있다. 정리해고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며 조직을 추스르는 동안 또 한 명의 조합원이 연이은 소환조사와 정신적 압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정신과 치료를 위해 받은 2주일치 21봉지 약을 한꺼번에 삼켰다. 이틀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다 간신히 살아났다. 

 

둘째는 투쟁대오의 재정비다. 쌍용자동차지부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민주노총 평택지구협 사무실을 임시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농성대오 조합원들은 여전히 투쟁의 후유증을 안고 있다. 경찰과 검찰은 하루에도 20~30명의 조합원들을 소환하여 조사하고 있다. 아침에 불러서 조사했다가 귀가시키고 다시 저녁에 불러들이는 일도 나타나고 있다. 신종탄압이다. 농성조합원들중 상당수는 공황장애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악몽, 대인기피현상이 발생했다. 지금도 정신과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는 조합원이 존재한다. 

 

회사는 철저히 투쟁대오를 고립시키고 있다. 소위 살아남은 ‘비해고자’들에 대해서도 90여명이 대기발령상태이다. 일부는 8월말로 만료되지만 70여명은 3개월간 철저히 교육시킨후 현장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셋째는 현장과의 소통이다. 농성대오가 나오고 현장이 돌아가고 있다. 2,646명이 공장에서 쫓겨났다. 100명이 대기발령으로 나와 있다. 사내하청은 파업전과 비교하면 1/3로 줄었다. 그런데 공장은 돌아간다. 평택공장 가동되는 두 개 생산라인 중 주력라인인 3라인은 파업 전 17잡(잡(job)은 쌍용자동차에서 사용하는 1시간당 생산대수를 말한다. 17잡은 1시간에 17대를 생산한다는 뜻이다.)에서 22잡으로 생산속도가 높아졌다. 인원은 그대로이다. 아니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현장의 조합원들은 “이제 노동조합이 들어왔으면 한다”는 얘기를 한다. 휴식시간 외에 담배를 피워도 경고다. 관리인이 “빨간 조끼가 나간 뒤 생산성이 두 배로 높아졌다”고 말하듯이 현장은 철저히 바뀌고 있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듯이 쌍용자동차의 투쟁은 치열했던 만큼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이 과제는 쌍용자동차 동지들만의 과제가 아니라 우리 노동운동이 함께 넘어야 할 과제이다. 쌍차 이유일 관리인은 “쌍용자동차만이 아니라 이후 구조조정사업장 문제 때문에라도 구조조정은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본의 연대는 저렇게 강력한데 우리의 연대는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김인식 | 금속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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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진단과 나아갈 방향]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은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강성노조로는 더 이상 안 된다”라는 표현은 강성발언인가, 약성발언인가? 반면에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은 생명과도 같은 존재니 비판보다는 애정과 관심을 가져주십”사던 쌍용차 한상균 지부장의 호소는 강성발언인가, 약성발언인가? 사진출처 민주노총


“강성노조로는 더 이상 안 된다”

 

쌍용자동차 점거(옥쇄)파업 투쟁이 끝나자마자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 첫 일성으로 ‘강성노조로는 더 이상 안 된다’, ‘상급단체에게 교섭권을 위임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 지적하고 나왔다. 민주노총 위원장의 발언이라고는 실로 믿기지 않는, 믿고 싶지 않은 발언이다. 

 

이에 앞서 금속노조 위원장은 투쟁이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인 시점에서 백분토론을 준비하느라 투쟁 현장을 지키지 못했다. 물론 반드시 현장에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준비를 잘하는 것도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지만 그 전에 금속노조가 이번 투쟁에서 보여준 행태에 대한 강한 불만이 짙게 깔려 있었던 때문이다. 

 

이 두 이야기는 지금 민주노조운동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예일 뿐이다. 이번의 경우도 지난 10여 년에 걸쳐 축적된 민주노조운동의 결과를 반영한 것이지 이번 과정에서 새로운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미 한참 전부터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했다. 그러다가 특히 이번 쌍용차 투쟁에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한 역할을 보면서는 노동자대중들로부터 단순한 실망을 넘어 커다란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민주노조운동(민주노총)을 혁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노선과 정파와 관계없이 모두에 의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혁신은 고사하고 상태는 갈수록 악화만 되어왔다. 그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반향도 없는 공허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저 선거 때 등장하는 일종의 단골 메뉴 정도로 전락했다.

 

그렇다보니 그 어느 세력, 그 어느 정파도 독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그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짐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는 노선과 정파를 떠나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한다는 것은 이미 늦어버린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모두에 의해 공공연하게 얘기되고 있을 정도다. 이쯤 되면 민주노조운동 자체가 민주노조운동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연대노조도, 민주노총 분리도

 

민주노조운동 내부적으로 이러한 현상, 이러한 상태에 대한 대응 또는 해결책으로 이미 얘기되고 있거나 모색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른바 사회연대노조다. 이것이 말하는 핵심은 이런 것이다. 기존 민주노조운동은 정규직/대공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지키기에 머물러 있거나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비정규직(불안정고용)노동자가 처한 문제를 해결할 의사도 가능성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민주노총을 분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이것이 말하는 핵심적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다. 민주노조운동 상층지도부의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는 노선과 세력이 이미 민주노조운동의 전통과 역사를 져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영향력이 계속되는 한 지금의 상태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먼저 사회연대노조는 사회연대전략의 연속 위에서 제출되고 있다. 사회연대전략은 기본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투쟁을 통해 그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를 통해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들은 이를 계급형성전략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것은 계급분열/계급해체 전략에 다름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자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내부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분리 의견은 아무리 선의로 이야기해도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회피하거나 다른 문제로 바꾸려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이 역시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현실에서 정파노조는 시도되기 어렵다. 산별노조조차 정착되기 어려운 조건에서 정파노조는 더욱 성공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경험으로도 정파노조 역시 노조의 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미 드러난 상태다.

 

길은 있다

 

그렇다면 민주노조운동 혁신은 끝내 불가능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길은 있다. 아니 최소한 방향은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이번 쌍용자동차 투쟁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번 투쟁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그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말했다. 우리가 눈 크게 뜨고 보아야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바로 쌍용자동차 투쟁이 이끌어 낸 단결투쟁/연대투쟁의 가능성이다. 쌍용자동차 투쟁은 ‘총고용 보장’ 요구에서 알 수 있듯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투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쌍용자동차 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이 처한 현실에 비하면 근래 들어 가장 강력하게 연대투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민주노조운동의 축적된 현실에 비하면 이 두 측면 모두 근래 보기 드문 일이다. 따라서 그를 일반화시키는 것은 성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특수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면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은 바뀔 수 없다. 

 

이번 쌍용자동차 투쟁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방향에서 문제의 해결을 찾아야 한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노조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아마 이번 투쟁에 직접 연대하거나 결합하지 못한 전국 노동자대중의 생각과 심정도 결코 이번에 투쟁한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어 소통하고, 설득하고, 조직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고, 가장 빠른 길이다. 

고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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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은 민주성을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쌍용자동차 노조는 ‘강성노조’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그와는 정반대로 이번 집행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오히려 노사협조적인 노조였을 따름이며 당연히 그들 조합원의 투쟁 경험과 전통도 미미했다. 그런데 무엇이 쌍용자동차 노조와 그들 노동자를 순식간에 변화시켰는가? 그것은 그저 우연일 뿐인가, 아니면 어떤 원인이 작동했던 것인가?

 

이에 대한 진단과 분석은 앞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그렇더라도 여기서 한 가지는 앞서 말하고자 한다. 그건 바로 민주노조운동에 만연한 관료주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이번 쌍용자동차 투쟁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의 문제이다. 

 


 

 

관료주의 

 


 

 

87년 이전의 민주노조운동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87년 노동자대투쟁 시기와 적어도 전노협 때까지만 해도 민주노조운동 속에서 관료주의는 등장하지 않았거나 매우 미미해서 중요한 쟁점이 되지 않았다. 민주노총 건설 이후에도 민주노조운동 내의 전반적 분위기는 관료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국가와 자본의 탄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일으킨 착시 또는 착각 현상이다. 탄압 속에서도 관료주의는 싹틀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또 하나는 노선 분화와 관료주의 문제를 엄격히 구별하지 않은 문제이다. 관료주의의 등장과 그 위험성을 정치경제적 차원이나 노동조합이 갖는 이중적 성격에서 찾는 대신에 노선 문제나 개인의 자질과 성향 문제로 이를 대체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듯이 지금 민주노조운동 내에는 관료주의 문제가 어느 새 극복/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뿌리 깊게 퍼져 있다. 이번에 나타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상층 집행부의 행태가 이를 웅변해 주고 있다. 노조 공식 집행부의 행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장조직 활동가들, 특히 그나마 가장 전통과 경험이 오래되고 조합원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아직도 갖고 있는 자동차 완성사 노동조합의 현장 활동가들조차도 이번 투쟁 과정에서 자기 사업장 조합원들을 거의 조직하지 못했다. 

 

원인과 이유 역시 하나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중 대표적인 하나는 그들 역시 조합원들로부터 노동조합 공식 집행부와 별 다른 차별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거나 인정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현장 활동가들 역시 이미 상당 부분 상층 집행부가 보이고 있는 관료주의적 행태를 부지불식간에 조합원들에게 노출하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조합원들로부터 신임과 신뢰를 잃었다. 그들이 비록 개인(개별)적으로는 이번 투쟁에 열심히 연대/결합했더라도 자기 사업장 조합원을 조직하지 못한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관료주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은 현장조직 활동가를 포함한 상층 집행부 경험을 갖고 있는 제한된 층이 돌아가면서 단위노조와 상급노조의 집행부를 독식하고 있다. 그 누구도 쉽게 이 두께를 뚫거나 깨기 어려운 상태다. 비유하자면 부르주아 정치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 현상이 민주노조운동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경험과 태도, 그리고 의지와 역량이 노동자대중으로부터 진정한 지도력으로 인정된다면 문제는 훨씬 덜 심각할 수 있다. 그러나 노선과 정파를 떠나 그런 경우는 찾기가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사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집행부는 노동자대중과 사회적 압력에 의해 이번에 절차적으로는 연대투쟁을 조직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실제 어느 정도는 그런 모습과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정작 조합원은 따르지 않았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의 지도력을 노동자대중이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민주성

 


 

 

이번 쌍용자동차 투쟁은 노동조합운동에서 민주성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크게 일깨워 주었다. 쌍용자동차 투쟁이 가능했던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이번 투쟁을 이끈 쌍용자동차 노조에 관료주의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투쟁 과정에서의 내부 상태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더라도 이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관료주의가 작동했더라면 점거(옥쇄)투쟁이 끝난 지금쯤 여기저기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거나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노조 집행부와 투쟁에 참여한 조합원 사이에서, 그리고 마지막까지 공장에 남았던 조합원과 투쟁을 하다가 중간에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으로 미리 공장 밖으로 나온 조합원 사이에서도 그 어떤 불협화음이 있었다는 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특히 마지막까지 남았던 조합원들로부터 작은 불만의 목소리라도 새어나왔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투쟁 전 과정에서 민주성이 관통/관철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가장 먼저 짚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알다시피 이번 투쟁을 담당한 쌍용자동차 노조 집행부가 객관적으로 대단한 활동가들이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쌍용자동차 노조 역사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투쟁에서 쌍용자동차 노조 집행부는 그 어떤 활동가들보다 정말 훌륭히 투쟁을 이끌었다. 이들의 의지와 역량이 갑자기 생성되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들 역시 투쟁을 이끌면서 그 과정에서 비로소 훈련되는 과정을 겪었다고 봐야 한다. 집행부와 조합원 사이에 거리가 발생하지 않고, 그들 사이에 믿음과 서로 의지하는 마음이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관료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한 것은 그들 내부에 민주주의가 압도적으로 더 많이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민주노조운동에서 보여 지고 있는 관료주의 문제는 단순히 지도부의 교체나, 나아가 정파의 경쟁만으로는 돌파하기 어렵다. 철저한 민주성의 회복을 통해서만이 관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다. 그렇다. 노동자가 투쟁하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 또한 그렇다. 민주성이 관통/관철되지 않고는 이번 쌍용자동차 투쟁과 같은 완강하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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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문화 기획자 신유아 인터뷰

 

 

 


 


 

문화?  

 

“어디서 활동하냐” 물어봤을 때, “저 문화연대에 있어요” 이러면 아, 거기? 행사 기획하고 예술가들이 모인 집단 그렇게 생각하는데, 저희가 생각할 때 문화가 아트적인 문화도 있지만 앞에 뭔가를 붙였을 땐 다양한 문화가 나올 수 있어요. 노동문화, 교육문화, 뭐 미디어 문화? 굉장히 다양한 문화가 있자나요. 아저씨 문화 아줌마 문화... 

 


 

 

용산 결합  

 

어느날 아침에 뉴스 속보 딱 한줄 보고 너무 놀란 거에요. 설마 사람이 죽었을 거라 생각을 못했는데, 여기 저기 전화를 막 해 봤죠. 확인이 안되더라구요. 그 때는. 그리고 현장에 먼저 왔거든요. 그 때는 문화일꾼으로서 들어온 게 아니에요. 진짜 감정적인 문제로 들어온 거죠. 이명박이 꿈쩍도 안하면서 점점 늘어지니깐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자꾸 잊혀지고. 이 현장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 때문에 문화일꾼들에게 이래저래 요청을 많이 하게 되는 거죠. 

 

용산은 문화일을 하시는 분들이 다른 현장보다 굉장히 많이 들어와 있어요. 이분들에게 요청할 때, “와서 뭐 해주세요” 라고 요청하지 않구요, “일단 현장에 와 보시고 현장 상황을 알아보시고 기획을 해 주세요” 이렇게 요청을 드렸어요. 그래서 본인들이 기획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다고 저희에게 역제안을 하시거든요. 그렇게 여기 문화적 분위기가 더 많이 활성화된 거 같아요. 

 


 

 

기억에 남는 기획 

 

일단 최근에 있었던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가 굉장히 훌륭했어요. 이 공간에 꼬맹이들이 오기가 힘들텐데 부모들이 함께 와서는 저 앞에 글씨 써 있는 거 보고 엄마 여기 경찰이 뭘해? 이렇게 물어봐요. 그러면 엄마가 이 공간에 대한 설명을 해야 되는 거에요. 일단 아이들이 많으니까 사제단도 유가족들도 너무 좋아했고, 길 건너 버스 기다리던 사람들도 꼬맹이들 보러 건너 왔다가 아 여기가 그런 현장이구나 하는 공감대를 만들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 공간이 굉장히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문화예술인 100인 행동 때는 음악하는 분, 미술하는 분, 작가들 다양한 분들이 오셨는데, 운동과 무관한 분들도 많이 오셨고, 다음부터는 개별적으로 찾아오시는 분들도 꽤 되셨어요. 한번 왔다 가면서 부채감을 느끼신 거에요. 또 오시고 다른 분들도 같이 오시고,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물어 보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추모 콘서트. 대중가수들에게 전화하면서 섭외하면서 느낀 건, 시간이 되는 한 오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근데 그 분들이 어떤 식으로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지 몰라요. 본인이 들어와서 그냥 참여하면 된다는 생각을 못할 뿐인 거죠. 전화하면 너무 좋은 기회다라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현장미술 작가 

 

아! 네 저 신작가에요. 스스로 작가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하다보니까 현장 미술하는 작가가 됐어요. 예전에 FTA 때나 광우병 때 스치로폼 작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현장 활동하다 보니까 돈 안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바닥에 깔고 깨지고 뭉개진 스치로폼이 많더라구요. 용산에서는 꽃 작업을 했죠. 꽃 깎아서 펜스에 붙이는 작업을 했는데, 나중에 용역들이 남일당 밑 펜스에 붙인 꽃을 다 뗐거든요. 그거 왜 떼냐? 난 거기 구호도 안 쓰고 아무 것도 안 쓰고 이미지 작업만 했다면서 대판 싸운 적 있었어요.

 

망루전에 낸 건 뭐냐면요, 처음에 사고나고 저 남일당 건물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전투경찰이 어떤 식으로 투입됐고, 용역이 밑에 층에서 뭘 태웠다는데, 그래서 사실확인을 위해서 모형을 만들었어요. 그 망루에 올라가셨던 분에게 설명듣고, 다른 지역 망루 답사도 가고, 망루 내부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남일당 건물도 몇 번이나 확인하고, 실제 사이즈를 축소해서 그대로 만들었어요. 


 

 

신유아 씨가 만든 스치로폼 꽃과 망루 모형

 


 

 

이미지 작업만 했다는 이야기는 집회하면서 문화공연이라 우기는 거와 비슷한 맥락?  

 

좀 다른, 아니 비슷한 맥락인데, 집회 때 문화공연이라고 하는 건 사실은 문화공연이 아닌 거잖아요. 근데 문화제나 추모제나 종교행사 같은 것은 걔들하고 싸우기 위한 하나의 알리바이 같은 거고, 저기서 싸울 때도 비슷한 맥락으로 싸운 거죠. 사실 경찰이나 용역들이 멍청한게, 사실성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 작업은 정치성 있는 거라며 욕을 해요. 추상적인 이미지 작업을 할 경우엔 반응이 없죠. 꽃 작업은 나중에 와서 뭐라한 거거든요. 그 때 전철연 분들이 그랬어요. 용역이 예술을 알아? 깡패가 예술을 어떻게 알아?  

 


 

 

운동권 문화  

 

공연자들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이제 스스로 자기 이야기들을 해요. 공연 중간 준간에 난 용산 참사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고 이명박이 잘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건 경찰이나 정부쪽에서 봤을 때 공연자의 멘트지 발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실제로 집회에 오신 분들 중에 이게 뭐야 발언 하나도 없고 공연만 하냐며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리고 밴드 공연 있죠? 시끄러운 공연. 이 사람들이 공연하면 사람들이 싫어해요. 특히 운동하시는 분들이 싫어해요. 근데 사실 알고 보면 그 사람들도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자기 표현인 거거든요. 근데 그 표현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촛불아 힘내라’ 라고 시청광장에서 페스티벌 한 적이 있었는데 밤새 밴드 공연만 했거든요. 우리는 싸우고 있는데, 너희들 여기 와서 놀고 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밴드들은 자기가 잘 하는 노래로서 그들에게 힘을 주겠다는데 그런 다양한 방식들을 인정해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직 운동판 안에서는 그런 게 좀 약해요. 

 


 

 

다음 기획 

 

이야기 나온 거 중에는 추모 콘서트가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한 번 더 하자 그래서 초기 기획 해 논 상태구요. 여기 공간이 명도와 관련해서 계속 뺏기고 있는 상황이라 저희가 민법을 보니까 점유권이란 게 있더라구요. 실제로 임차인이 아니더라도 그 공간을 점유한 사람이 점유권을 주장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직 남아 있는 공간들을 작가들이랑 모여서 리세팅해서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보자 해서, 그 공간들을 지금 확인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시각예술인들이랑 작가분들이 많이 붙을 거에요. 

 

아, 다음에는 개별작가분들 인터뷰를 했으면... 저는 기획하는 입장이지만 개인 작가분들이 여기 들어와서 이 공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저도 그런 것들이 대단히 궁금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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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세력’과 언어정치

‘대전발 영시 오십분.’ 이전에 가끔 부르던 대중가요 노랫말이고, 이종기 감독이 1963년에 만든 영화의 제목이다. 언뜻 생각하면 ‘대전발 영시 오십분’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대전에서 떠나는 열차의 고유한 이름이다. 고유명사라면 지시 대상이 고정되어 있다고 여겨지는데 과연 ‘대전발 영시 오십분’ 차도 그러한가?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연발착으로 꼭 밤 0시 50분에 출발하지 않을 수도, 객차 수가 일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이는 표현과 지시대상의 관계가 수시로 바뀐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대전발 영시 오십분’에 일정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 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에 따르면 ‘대전발 영시 오십분’의 의미는 ‘대전발 열시 십분’이나 ‘부산발 여섯시 삼십분’ 등과 차이가 있어서 생겨난다. 언어의 의미는 지시대상보다는 언어체계 안에서 어떤 위치에 속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다. 

 

의미가 언어체계에서 나온다는 생각은 언어가 대상, 세계, 현실을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될 수 있다.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라는 언어표현이 지시대상을 소환하여 존재케 하는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담론이론’이라고 불리는 한 부류의 언어이론이 여기에서 형성되었다. 담론이론에 따르면 언어는 독자적인 물질적 효과가 있으며, 그것을 통해 세계와 현실을 구성하고 주체들을 호명한다. 특정한 담론에는 특정한 형태의 주체들만 등장하게 되어 있다. 의료담론에는 수만, 수십만의 개인들이 등장해도 ‘의사’, ‘환자’, ‘간호사’, ‘가족’, ‘간병인’ 등 소수의 주체형태로 분류된다. 

 

파업담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 끝난 쌍용차 사태에서 보수언론은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간 사람들을 ‘외부세력’으로 불렀다. ‘외부세력’은 여기서 보수언론이 장악한 파업담론에서 등장하는 하나의 주체형태이다. 언뜻 보면 ‘외부세력’은 쌍차노동자들과 무관한 세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담론이론과 비판적 언어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외부세력’의 의미는 파업담론에 의해 전제된 ‘내부세력’이라는 또 다른 주체형태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지 정해진 지시대상을 가져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담론이 갖는 효과이다. 진보세력은 자신이 ‘외부세력’이 아니라는 주장만으로는 ‘외부세력’의 의미를 파괴하기 힘들다. 의미는 현실의 진실과 무관하게 언어작용, 담론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담론상의 공격에 대해서는 그래서 담론상의 응전이 필요하다. 파업담론이 지배할 때는 담론 지형 자체를 바꿔야 한다. 담론정치, 언어정치라는 새로운 차원의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이 실천에서 밀리면 우리는 계속 ‘외부세력’으로 호명될 될 것이다. 

강내희 | 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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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여름의 집단 공포

어릴 때 종종 공습 경보가 울린 날 슈퍼마켓에 라면이 바닥나는 해프닝을 9시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난다. 좀 더 가까운 기억으로는 VHS 비디오로 영화를 볼 때면 ‘전쟁, 마마, 호환 보다 무서운 음란물’ 운운하던 공익광고도 기억난다. 신종 플루 감염자가 3천명이 넘어서고, 병원엔 신종 플루 감염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붐빈다는 뉴스를 보며 떠올린 기억이다. 그리고 그저께 몸살 났던 기억이 몸살보다 더 아프다. 신종 플루를 한국 정부가 국민 통제를 위해 개발한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 정부는 신종 플루가 만들어내는 공포를 악용하고도 남을 것이다.

 

Shaun of the Dead란 영화가 있다. 한국에선 ‘새벽의 황당한 저주’로 번역됐다. 좀비 영화면서 코믹 페러디 영화다. 주인공 션은(주의. 스포일러 과다)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친구 에드 때문에 여자친구 리즈에게 채인다. 시련에 고통받는 동안 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은 좀비로 변해간다. 션은 도움 안되는 에드도 리즈도 친구도 가족도 모두 포기하지 않고 좀비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은 좀비로 변하고 만다. 이 대목까지 이 영화는 고전적인 좀비 영화의 법칙을 철저하게 따라간다. 피가 튀고 살이 떨어지는 공포를 웃기게 표현했을 뿐이다. 

 

그러다 후반부에 황당한 반전이 펼쳐지는데, 주인공도 끝내 좀비가 되는 좀비 영화의 법칙을 깨고, 션과 리즈가 정부군에게 구출되고, 사회 재건 과정에서 좀비는 퇴치 대상이었다가 인간의 놀임감으로 사육 대상이 된다. 좀비가 된 에드는 션과 리즈의 신혼집 창고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션의 플스(Sony사에서 나온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상대로 사육되는 장면이 영화의 끝이다. 좀비 영화가 자본주의가 가진 모순을 피할 수 없는 집단 공포로 표현한 것이라면, 이 영화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집단 공포를 우습게 극복해 버렸다. 노동자는 무서운 좀비가 되더라도 자본가의 놀이감일 뿐이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기는 영화지만, 그 의미의 섬뜩함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영화를 떠올리며 가장 무서운 기억은 좀비가 한 둘씩 생겨날 무렵에 일상 속에 보일듯 말듯 살짝 살짝 드러나는 흉흉한 징조들이다. 2009년 한국의 여름 시즌을 장식한 흉흉한 것들은 그 영화와 참 많이 닮았다. 신종 플루의 확산이 그 징조와 비교되는 것이라면, 쌍용자동차 파업이 일단락 된 뒤 사측의 행태는 그 결과와 비교된다. 거기다 두 전직 대통령의 연쇄 사망 사건으로 ‘이명박에 맞서면 다 죽는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떠돈다.

 

‘불신지옥’이란 영화가 꽤 무섭다는데, 쌍용자동차 본관 벽면에 적힌 글, ‘우리는 우리의 내일을 믿습니다’도 떠오른다. 믿든 안 믿은 자본주의의 현실은 노동자에게 이미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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