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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핵 재앙의 불길한 미래와 거대 괴수들

빛바랜 SF영화로 디지털미래 읽기 1

 

핵 재앙의 불길한 미래와 거대 괴수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영 화 󰡔괴물 (2006)󰡕에서 봉준호 감독은 흉측한 물고기 ‘괴물’의 탄생 배경을 용산 미군기지에서 한강으로 방류되어 흘러들어온 독극물의 일종, ‘포름알데히드’로 놓고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괴물 탄생의 일차 책임 소재지를 미국으로 놓고 보면, 화염병을 피해 도망치고 쇠파이프에 찍혀죽던 괴물 장면은 예사롭지 않은 정치적 상징성을 가미한다.

    언제나 그렇듯 SF영화도 시대의 상상물이다. 인간이 처한 한 시대에 대한 위험을 알리고 경종을 울리는 방식에 괴물만한 것이 있을까? 인간이 만든 ‘나쁜’ 과학이 인간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인류의 절멸까지도 심각하게 흔들 때, 상상의 괴물과 괴수의 출현만큼 효과적인 경고 장치는 없을 것이다. 물고기 아귀에다, 메뚜기를 닮은 입모양에, 기형 지느러미와 손처럼 자유자재의 긴 꼬리에 두 발로 움직이는 괴물이 사람까지 덥석 잡아먹는다고 상상해보라. 어류도 아닌, 양서류도 아닌, 정말 기분 더럽게 생긴 괴물이 한 시간 반 정도 스크린을 뒤덮으면, 괴물 탄생을 짓누르는 현실 ‘구조’에 대한 관객의 학습 효과가 상당히 증폭한다. 또 다른 예. 한 제약회사 의약품 폐기물에 기형화되고 너무 커버린 파충류 악어에 힘없이 잡혀먹는 인간들을 그린 󰡔엘리게이터 Alligator (1980)󰡕를 보자. 이 영화는 탐욕에 멍든 과학의 그늘진 모습이 어찌하여 음습한 하수구에 서식하며 인간을 습격하는 괴물 악어를 탄생시켰는지를 관객에게 낱낱이 고한다. 이렇듯 사람 삼키는 기형 물고기와 비정상의 파충류가 인간의 비윤리적 환경 파괴와 오염의 징벌로 등장했다면, 무엇보다 2차 대전 후 핵과 냉전의 위협이 한창이던 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른 취향의 괴물과 괴수들의 출현이 줄을 잇는다. 


냉전과 핵의 시대, 괴수의 시대  

  

1945 년 7월 미국 뉴멕시코에서의 첫 원폭 실험의 성공, 곧이어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로 인류는 핵으로 망할 수 있는 지구를 내다봤다. 또 다시 1952년에 이뤄진 미국의 수소폭탄 핵실험은 남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했던 ‘비키니’라 불리는 작은 섬을 단칼에 날려버렸다. 원주민들을 섬으로부터 강제 이주시키면서 미군은 그들에게 핵에 의한 인류 행복 보장과 구원의 정당성을 호소했다. 결국 비키니섬이 악마같은 핵폭탄의 버섯구름에 사라지자 인간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든 이들이 전율했고 두려움의 눈길을 보냈다. 이후에도 미국, 구소련, 그리고 여타 핵보유국들에 의해 진행된 핵실험 경쟁이 70년대 초반까지 수천 회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전세계 시민들은 인류 절멸의 공포에 집단 노이로제 현상까지 동반하게 된다.

   당시 영화계는 이러한 핵에 대한 집단 노이로제를 SF 괴수영화들로 대중화하며 반응했다. 그 한가운데서 만들어진 최초 괴수 영화 중 하나가 󰡔심해에서 온 괴물 The Beast from 20,000 Fathoms (1953)󰡕이다. 󰡔심해에서 온 괴물󰡕은 캐나다 북부의 북극해에서 미국의 과학자와 군인들이 수소폭탄 실험을 하다 그 영향으로 중생대 해저 괴수, ‘레도사우루스’ Rhedosaurus를 깨워 그 재앙을 인간들에게 고스란히 안긴다는 이야기다. 특수 효과의 대가 레이 해리하우젠Ray Harryhausen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낸 이 괴물은, 머리 생김새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닮았으나 도마뱀처럼 앞발이 발달해 고대 공룡을 연상케 한다. 이 상상의 괴수는 뉴욕까지 내려와 맨하튼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인간에 의해 비참하게 제거된다. 당시 어느 곳보다 핵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팽배하던 피폭국 일본에선, 이 영화를 본 따 미국판 󰡔고질라: 괴수들의 왕 Godzilla: King of the Monsters (1956)󰡕을 만들었다. 일본판 󰡔고지라 Gojira (1954)󰡕의 성공에 힘입어 만든 미국 버전인데, ‘고지라’란 괴수의 제목은 그 거대한 크기와 위력을 지칭하여 고릴라와 구지라(고래)의 합성어로 지었다 한다. 일본의 전설의 괴수 ‘고지라’는, 태평양 바다 속에 잠들어 있다가 미국의 비키니 수소폭탄 실험 때 흘러나온 방사능을 쏘여 다시 살아나 도쿄를 엉망으로 만든다. 최근까지 제작된 󰡔고질라󰡕의 속편들에선 점차 이 괴수가 다른 외부의 괴물들로부터 일본을 지키는 정의의 수호신으로 엉뚱하게 변했지만, 당시 고질라의 첫 등장은 2차 대전 이후 핵기술의 또 다른 재앙의 상징에 다름 아니었다. 한마디로 레도사우루스나 고질라와 같은 거대 괴수들의 출현에는 근본적으로 당시 인간의 핵실험과 인류 절멸에 대한 두려운 미래가 가로놓여 있었다. 

 

거대 괴수들의 최후

소 위 ‘괴수 재난영화’들에서, 인간 핵실험의 촉매제로 잠에서 깨어난 괴수들은 핵폭탄의 위력과 같은 그 거대한 힘으로 거대 도시를 무엇엔가 이끌리듯 찾아가 인간 문명을 거의 말살 직전까지 몰고간다. 아니면 인간들이 돈벌이에 대한 욕망에 이끌려 이 고생대 공룡들과 괴수들을 문명의 도시로 끌어들이려다 도리어 그것이 인간의 재앙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특수효과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윌리스 오브라이언Willis O'Brien이 만들어내고 아서 코난 도일경Sir Arthur Conan Doyle의 소설을 각색한 무성영화 󰡔잃어버린 세계 The Lost World (1925)󰡕에 등장하는 공룡 ‘브론토사우루스’Brontosaurus, 그리고 󰡔킹콩 King Kong (1933)󰡕의 킹콩, 두 괴수 다 인간의 욕심에 이끌려 문명 세계로 잡혀갔다 되려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욕심에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다른 예로, 영국에선 제작된 󰡔고르고 Gorgo (1961)󰡕도 이와 아주 흡사한 내용을 갖는다. 아일랜드 외딴 해변의 ‘나라’섬에서 화산 폭발로 고생대 생물인 공룡 ‘고르고’가 깨어나고, 인간들에 의해 문명의 도시 런던의 서커스 관상용으로 잡혀오는 애처로운 처지에 놓인다. 인간들에 잡혀간 새끼를 찾고자 런던 시내에 출몰한 어미 괴수 고르고의 분노가 런던 다리와 빅벤Big Ben을 한번에 무너뜨릴 정도로 극에 달한다. 또 하나. 󰡔지구까지 2천만 마일 20 Million Miles to Earth (1957)󰡕에서 해리하우젠에 의해 창조되었던 금성에서 날아온 괴수 ‘이미르’Ymir도 자신을 가둔 과학자들의 실험실을 박살내고 로마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핵폭발의 위력마냥 이 거대 괴수들은 인간을 씹어 삼키고 짓밟아 뭉개고 건물들을 무너뜨린다. 영화 속에서 괴수로부터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은 핵폭탄 대피용으로 만들어 놓은 지하철 역사다. 건물이 무너지고 괴수의 발에 밟히지만, 그나마 런던과 뉴욕의 시민들은 땅 밑에서 목숨들을 건사한다. 냉전 시대 핵공격 대비 덕이다. 괴수들은 총, 로켓, 탱크, 비행기 등 군인들의 재래식 무기들에 맞아도 꿈적도 않는데다, 고질라의 경우엔 120미터의 덩치에 입에서 불까지 뿜어대며 도시와 군인들을 공격하니 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마치 큰 전쟁 후의 후폭풍마냥 도심은 불바다에다 난장이다. 영화의 결말을 맺기 위한 이 감당못할 괴수들의 최후도 가지각색이다. 의외로 재래식 무기에 쉽게 쓰러지는 괴수들도 있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장렬히 추락사하는 킹콩과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미국 군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괴수 이미르의 최후는 가장 불행하게 끝난 괴수들의 경우다. 손바닥만한 알에서 깨어나 한번에 쑥쑥 자라서 어지간한 빌딩보다 커지는 속성 성장의 금성 괴물이었던 이미르는, 신상옥 감독의 󰡔불가사리(1985)󰡕의 괴수 성장기와 많이 닮아 있다. 무엇보다 농민혁명의 주역이던 불가사리가, 도저히 그 먹는 철의 양을 감당못해 오히려 인민의 짐이 돼 최후를 맞는 슬픈 운명은 금성 괴수 이미르의 죽음과 느낌상 유사하다. 

    대개 SF영화 괴수들의 운명 도식은 보통 이러하다: 고질라는 일본의 애꾸눈 과학자의 고안물인, 괴수 혈액 속의 산소를 전기 분해해 녹여 죽이는 산소 파괴제, ‘옥시전 디스트로이어’라는 화학병기에 의해 사라진다. 괴수 탄생의 원인만큼이나 인류의 문명이 일반인들과는 동떨어진 첨단 과학자들에 의해 결정난다. 미국의 심해에서 온 괴수, 레도사우루스는 휴양지 코니아일랜드를 엉망으로 만드는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른 응용 핵물리학에 의해 만들어진 병기의 생체 투입으로 결국 쓰러진다. 핵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이 괴수들은 인간들의 또 다른 고도 과학, 핵물리학에 의해 처단되는 불운을 감내해야 했다. 한편 괴수로부터 상처받고 다친 인간들은 또 한번 군과 소수 핵물리 과학자들에 의해 구제된다.

            

'고르고’의 교훈

이 미르, 킹콩, 고질라, 레도사우루스, 불가사리 등의 괴수들이 출현하는 SF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극적 최후의 상황 정리와 달리, 고르고 어미와 새끼 괴수는 살아서 런던을 떠나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고르고󰡕엔 괴수들을 죽이기 위해 군인들이 동원돼 폭탄과 총탄을 쏟아붓지만 전혀 소용이 없다. 이 눈 벌겋고 귀 큰 흉한 괴수는 자신의 새끼를 인간에게 빼앗긴 데 대한 분노만 있을 뿐, 그 어떤 다른 목적도 없다. 파괴는 상심으로 벌어졌고, 어미 고르고는 자식을 찾자마자 원래 자리를 찾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물속으로 사라진다. 이 어미 괴수로 인해 마치 핵 재앙처럼 런던이 쑥대밭이 되었으나, 어미의 모정을 강제로 끊으려 하고 새끼 괴수를 돈벌이로 쓰려했던 인간의 욕심을 감안하면 그것은 인간이 자처한 인재였다. 반면 몇몇 군인들과 과학자들이 모여 핵실험을 행하여 잠자던 괴수들을 불러오고, 다시 이들이 고안한 살상 무기로 괴수들을 또 무참히 살해하는 ‘고질라’류의 괴수 SF영화들에선 시원한 끝맺음이나 마감이 어디에도 없다. 이들 영화에선 소수의 과학자들에 의해 고안된 핵 기술에 인류가 절멸의 위기에 이르고 또 다른 위기상황의 관리 또한 엘리트들에 맡겨지는 상황만을 보여주기에, 어딘지 모르게 영화 밖의 세계 또한 불안하다. 그래서 󰡔고르고󰡕의 마지막이 좋다. 원래 거했던 그 곳으로 돌아가는 괴수 모자의 행복한 뒷모습에서 우리는 '지속가능한' 과학의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근대 과학의 거대 괴수를 어찌 다뤄야하는 지 그리고 어찌 접근해야 하는지 감을 잡는데 특별한 힌트를 준다.  (따뜻한 디지털세상 200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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