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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익명권 보호

온라인 익명권 보호 [한겨레]2001-03-09 02판 27면 127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인터넷에서 네가 개인 줄 누가 알겠냐."1993년 미국 잡지 (뉴요커)에 실린 피터 스타이너의 만화에서 컴퓨터를 맞대고 두 마리 개가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인터넷이 지닌 익명성을 조금은 과장된 익살로 표현해, 이제는 네티즌들 사이에 잘 알려진 그림이다. 현실에서 강제하는 서열.지위.연령.성별 등과 무관하게 누구나 자유롭게 온라인상에서 익명으로 글을 올리거나 주고받을 수 있는 평등한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네티즌들의 신원을 확인하려 안달복달하며 인터넷의 익명성을 위협하는 경향이 크게 늘고 있다. 미국의 가장 큰 온라인 서비스업체인 아메리카온라인(AOL)에 지난 한해 동안 법원이 의뢰한 가입자들의 신원확인용 영장만 475건에 이른다. 99년에 비해 40%가 늘어난 수치다. 지난주에는 미국의 유력한 시민단체인 전자프런티어재단(EFF)과 전미시민자유연합(ACLU)이 합세해 네티즌의 익명권 보호에 나섰다. 이들 단체는 실리콘인베스터라는 투자 관련 웹 게시판에 글을 올린 23명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한 닷컴기업의 영장 발부를 취하해줄 것을 시애틀 소재 연방지원에 요청했다. 이 닷컴기업은 99년 회사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증권 사기 혐의로 여러 투자가들에 의해 집단 피소된 상태다. 주가 폭락의 원인을 잘못된 정보의 유포로 바라본 이 기업은 물증 확보를 위해 지금까지 1500건 정도의 자사와 관련된 글을 올렸던 이용자들의 신상 정보를 뒤지려 했다. 문제는 신원조회 대상자들 중 한명은 이 닷컴기업에 대해 전혀 글을 쓰지 않았던 인물이어서 영장 발부의 정당성에 의혹을 더하고 있다. 다행히 이번 사건은 실리콘인베스터가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이 사실을 미리 알려, 이들이 시민단체와 함께 발빠르게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줬다. 대체로 온라인 서비스업체들이 이용자 신원 조회에 대한 법원의 영장에 쉽게 굴복하는 선례와는 크게 대비된다. 네트워크에서는 익명성이 악용돼 잘못된 정보 유포나 직접적인 명예 훼손 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해법으로 개인지 사람인지 구분하려 할수록, 그리고 정체를 폭로하겠다고 위협을 가할수록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네티즌들의 막힘없는 얘기가 좋은 정보를 수확하는 토양을 키우는 법이다. 이제까지 서비스 가입자들의 신상 정보를 기업들에 선선히 내줘 비판받아왔던 아메리카온라인도 최근 주체하기 힘든 법적인 처리 문제로 가입자들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다시 개들도 안심하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고대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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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가면 쓴 미국의 두 얼굴

'인권'가면 쓴 미국의 두 얼굴 [한겨레]2001-03-02 04판 25면 125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한 사회의 통제력에 대한 지나친 욕구는 권력의 물리적 폭력으로 이끌리기 쉽다. 특히 폭력과 억압의 언저리에는 신체 고문의 유혹이 항상 도사린다. 고문은 한 시대의 기술력에 의존해 억압을 도구화하는 기술적 장치들과 공생해왔다. 문제는 디지털사회의 현실에서 이런 구시대적인 고문장치의 개발이 '돈 되는' 사업 모델로 쾌속 성장해왔다는 데 있다.고문 행위에 대한 국제적인 여론을 환기시켜온 국제사면위(amnesty.org)는 이번주 초에 '고문 무역'을 방지하기 위한 50여쪽의 관련 보고서를 내놓았다. 지난해 10월부터 벌여온 사면위의 고문 추방 캠페인의 하나로 발행한 이번 보고서는 다양한 고문 장치와 기술, 고문기술 개발업자들의 사업 동향, 이에 대응한 실천 지침 등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세계 제일의 무기수출국이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미국이 고문장비 최대 수출국임을 밝히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문장비 개발.홍보.판매를 담당하는 미국 업체만 현재 80여곳에 이른다. 미국 기업은 전세계 고문장비 생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고문장비 개발업자의 증가는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공급업자나 마케터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개인 보안서비스 업체들의 새로운 시장 수요도 우려할 만한 것으로 거론된다. 미 국무부는 매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고문 방지를 포함한 전세계 인권 신장을 역설해오면서, 뒤로는 상무부가 '범죄통제장비'란 명목으로 1997년부터 업자들의 고문장비 수출을 이제까지 합법적으로 뒷받침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에서 개발한 고문장비의 최대 수입국들은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대만.이스라엘.이집트로 파악되고 있다. 거래되는 고문 장비로는 족쇄.수갑.엄지수갑.압박의자 등 저급한 중세적인 장비에서부터, 90년부터 지속적으로 개발돼온 첨단의 각종 전기충격 장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전기충격 기술이 급속도로 확산돼 80년대에 서른 남짓했던 개발업체가 이제는 130곳을 웃돌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고문 산업이 전세계적으로 성장하고 부양되는 근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고문으로 돈을 버는 근본적인 커넥션에 대한 개선 없이 인권에 대한 감성적이고 인본주의적인 호소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일깨운다. 인간의 비상식적 잔인성을 등에 업고 개발되는 고문 기술의 고도화도 우려할 측면이다. 신체에 주는 해악이 검증조차 되지도 않은 각종 '쓰레기' 고문장치들이 인간이 이뤄낸 기술적 성과의 건강성을 좀먹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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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정도 벗어나는 검색 사이트들

평론가정도 벗어나는 검색 사이트들 [한겨레]2001-02-23 04판 25면 1276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인터넷의 망망한 바다를 항해하는 데 초심자들이 필히 지참하는 도구는 검색엔진이다. 검색 사이트는 능숙한 네티즌이라도 새로운 정보를 찾기 위해 자주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 사이버공간의 중요한 길잡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개는 20%도 밑도는 유명 검색엔진의 검색률 수준에 의지해 정보 사냥에 나서야만 한다. 그 중 조회 건수의 비율로만 따지면 상업 사이트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그만큼 최상의 검색 조건이 마련되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최근 들어 유명 검색 사이트의 검색 기준이 한층 더 불투명해지고 있다. 정보의 검색 순위에 화폐의 논리가 개입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만, 이제는 도가 지나쳐 검색 사이트들이 검색 결과를 놓고 장사를 벌이고 있다. 검색엔진들의 동향을 조사하는 서치엔진워치(searchenginewatch.com)의 이번달 소식지에는, 잘 알려진 검색 사이트들이 검색 목록의 최상위에 올려주는 대가로 해당 기업들에 매달 적게는 25달러에서 많게는 300달러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야후(yahoo.com)는 비용을 낸 기업 사이트들에 목록 검색에서 기존의 인기 사이트들보다 상위에 강조해 올려주는 대신, 자사 광고국을 통해 `후원 사이트들'의 광고를 끌어들이고 있다. 높은 검색률과 정확도로 야후의 웹 검색엔진으로 채택된 구글(google.com)도 협찬이란 명목으로 검색 결과의 오른쪽에 강조체로 '후원사 링크'를 표기하고 있다. 광고주들을 끌어들이려는 이런 새로운 형태의 시도로 아예 검색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감각있는 디렉터리 서비스로 여러 대형 포털들이 채용하고 있는 룩스마트(looksmart.com)는 해당 후원업체에 관련 웹페이지들의 조회 건수를 늘려주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미 경매사이트인 이베이와 인터넷서점 아마존 등이 룩스마트와 계약을 맺고 검색 결과에 상업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까지 검색 포털들은 주로 배너광고로 먹고살았다. 닷컴 광고주들의 호주머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닷컴 경기의 침체가 온라인 광고 수주율의 하락을 동반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이런 경향은 검색 사이트들이 수익을 거두기 위한 몸부림이라 보기엔 치졸한 감이 없지 않다. 브랜드 이름에 목숨거는 기업들 처지에서 보면 검색 순위에서 밀릴 수 없기에 이를 모른 체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갈수록 네티즌들이 상업적 정보로 인해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다닐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손끝의 마우스 클릭을 좀더 주의해서 할 때다.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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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성'끊는 경매 퍼포먼스

`물신성'끊는 경매 퍼포먼스 [한겨레]2001-02-16 05판 25면 1302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한 개인이 걸치거나 지닌 물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에 대한 대강의 정보를 추측하고, 쉽게 상대를 속단한다. 소비를 학습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매된 상품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물신성에 완전히 사로잡히면 개별적 소유물들이 그 소유자를 정의하는 고약한 상황이 발생한다.몇몇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를 비꼬면서 재미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시연 장소는 인터넷 최대 경매사이트로 알려진 이베이(ebay.com)로서, 실험이 조용히 펼쳐지고 있다. 한때 인간의 장기가 경매 물건으로 올라와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는 이베이는 유무형의 주고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내다 팔고 살 수 있는 사이트로 알려져 있다. 거대한 전자시장 안에서 이들이 펼치는 시연은 이베이의 경매 규칙에 따라 자신이 소유한 물품들을 내다 파는 행위다. 내용물은 다양하다. 사용하던 향수.책.옷가지.사진.엘피음반.교정용 치아 등 잡다한 물건들이 경매 목록에 올라와 있다. 이들이 노리는 퍼포먼스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예술가의 손길이 닿으면 잡동사니도 예술품이 되는 현실을 조롱한다. 아무것도 아닌 물건을 예술가가 만지면 그럴듯한 상품의 지위를 얻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뒤집어보자는 심사다. 물론 그 전제는 온라인 경매를 통해 이들의 물건을 사려는 구매자가 존재할 때만이 예술 작품으로서 인정된다. 구매가 없다면 이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 또 다른 하나는 개인을 상징하는 소유물들을 경매 처분함으로써 물신의 고리를 끊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경매에 내다 판 물건들은 자신의 경매 아이디에 딸린 일종의 긴 목록을 만들어낸다. 예술 관람객이자 경매 소비자인 우리는 계속해서 팔려나가는 긴 물품 목록을 통해 한 개인을 형성하는 배경을 습관처럼 읽으면서도, 동시에 그 물신화한 개인을 구성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기획에 참가하고 있는 존 프레이어는 경매 목록을 자신의 웹페이지(AllMyLifeForSale.com)에도 동시에 제공하고 있는데, 마지막에는 이 페이지마저도 그와 같은 기획을 구상하는 새로운 구매자에게 팔 생각을 갖고 있다. 마이클 맨디버그도 그의 페이지(mandiberg.com)에 가격을 매겨놓은 물품 목록을 전시해놓고, 자신을 구매하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만명이 들락거리는 전자 경매 시장에서 이들의 시연을 직접 마주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은 상혼이 들끓는 닷컴 경매의 논리를 활용해 정반대의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는 법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그리 작은 퍼포먼스로만 비치진 않는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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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신문] 디지털혁명, 신화 그리고 현실

[디지털 혁명, 새로운 대안 찾기는 가능한가-(2)디지털혁명, 신화 그리고 현실] 비역사성에 기초한 디지털 신화, 대중의 탈정치화 불러올 뿐 중대신문 (1998년 11월) 디지털 혁명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에 파급되면서 디지털 혁명은 문화의 생산과 소비, 유통구조를 포함한 일상생활의 전반을 바꾸어 놓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혁명이 가져올 장미빛 미래에 대한 목소리들이 근거없는 낙관론이 아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고찰해 본다. <편집자주> 신화 혹은 이데올로기는 보통 현존하는 권력관계를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믿음과 재현의 체계로 언급된다. 지배력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선전함으로써 정당화시키며, 그들의 신념을 당연시하고 보편화하도록 하여 지배력을 자명하고 형식상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그 과정은 무언의 체계적인 논리틀로 경쟁적인 사고 형식들을 배제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사회 현실을 축조함으로써 완성된다. 그 과정은 실제적인 모순의 상상적 해결로 이끈다. 이렇듯 지배력 혹은 지배 계급이 시대에 따라 그들의 고유한 신화를 유포해왔다고 본다면 현대의 지배적 신화는 디지털한 것(being digital)에서 출발한다. 일반적으로 신화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특수한 계급의 규범이 자연 질서의 자명한 법칙처럼 당연시된다는 데 있다. 디지털 혁명의 신화가 기정사실화 되는데도 '상식'이 가려있는 것이다. 상식은 상식을 말하는 계급의 자의적인 질서 위에서 멈춘 지식, 즉 상대적으로 고정된 국면이다. 하이테크 이론가인 아서 크로커는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주도하는 집단을 가상계급(virtual class)이라 칭한다 가상계급의 주구성인자는 20세기의 변종인 약탈적 자본가들과 신종 테크노 엘리트다. 디지털한 상식의 조건들은 이들 신종계급의 논리 자체를 보편화하고, 더 나아가 다른 목소리들을 이들의 정서로 함몰시켜 나가고 있다. 즉 가상계급의 신화가 21세기 인류 전체의 미래상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거창한 구호에 가려진 상업성 가상계급의 디지털 신화창출의 일차적 조건은 네트에서 정보초고속도로와 글로벌 정보하부구조(GII)로의 이동, 그리고 그 속에서의 신화 구성에서 이루어진다. 즉 가상계급에 의한 인터넷 죽이기. 가상계급에게 있어서 네트는 정보초고속도로의 안티테제이다. 그들은 자유의 인터넷을 격자화된 디지털의 고속도로로 만들고 싶어한다. 유연한 네트워크망을 보다 상업적인 조건에 맞추려는 기획이 정보초고속도로의 의도이다. 자유와 보편의 영역을 글로벌 미디어의 특수한 언어와 의미로 바꾸어내는 것. 디지털 시대의 거창한 슬로건, '대중에게 모든 권력을!'의 밑바닥에는 상품화 논리가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데 정보초고속도로의 기획으로 잡혀있는, 최저 이용요금에서 이용당(pay-per)요금지불 체계로, 정보의 생산에서 소비로, 정보 추구보다는 오락과 쇼핑으로의 전환은 한마디로 인터넷의 상업화 모델을 지칭한다. 인터넷이 더 나은 것, 즉 정보초고속도로로 바뀔 수 있다는 가상계급들의 비전은 물활적으로 움직여 나가는 네트의 본성을 글로벌 기업의 이윤 동기하에 구획화하려는 음모에 가깝다. 네트의 자생을 가로막는 가상계급의 음습한 기도는 인터넷 모델을 역회전하여 새로운 자본 모델로 바꾸려는데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올 것은?' 소니사의 이 광고문구는 '그 이전에 있었던 것들(前史)'을 문제삼지 않는다. 디지털 신화는 이전의 역사를 제거하고 단절시킨다. 전사를 구성했던 모든 사물들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디지털 세계로 올 때, 그 진정한 가치란 부재하다. 역사의 규정적 성격, 즉 희소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제거되고, '역사의 종말'과 함께 디지털 혁명의 한 세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역사의 종말론과 테크놀로지가 결합하면 초월주의적인 '테크노종말론(Techno-eschatology)'에 이르며, 연이어 정치, 사회, 문화 등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역사적 중력장을 극복하기 위한 속도전(escape velocity)'에 돌입한다. 인간의 역사와 운명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세속적 신학의 비전, 그리고 무제한적으로 팽창하는 자유시장과 기술에 대한 믿음이 뒤엉켜서 우리는 또 다른 세기를 꿈꾼다. 탈정치화 부르는 비역사적 신화 구역사의 초월과 청산 논리는 특히 가상계급의 이데올로기들, 예컨데 아톰에서 비트로의 이동을 주장한 네그로폰테, 마이크로코즘의 조지 길더, 지식으로의 권력이동을 주장한 토플러, 경영혁명의 드러커, 후기산업사회론을 주장한 벨 등의 미래학자들에 의해 공고히 되어 왔다. 이들 모두는 '비트뱅(Bit-bang)'혁명의 신화, 즉 제한된 물질과 집중된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인간과 역사 초월의 기술적 서사를 통해, 과거의 구질구질한 역사성을 탈각하여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도래를 맞이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구역사를 청산함으로써 권력관계 안에서 파악된 총체적 인간관계인 정치적(politique) 논의를 중단시킨다. 역사적 맥락의 제거는 자연히 대중에게 역사 개입의 무력감을 동반한다. 디지털 산화의 비역사성이 대중의 비/탈정치화를 낳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계급은 비/탈정치화의 실제적 담론을 '정치적' 신화의 역공세로 내친다. 예를 들어 전자민주주의와 가상공동체라는 정치적 신화를 통해 정치·사회적 영역의 비/탈정치화를 조성한다. 주로 이같은 신화는 디지털 상품을 소비하며 네트에 접속하는 개인들에게 이루어지는 무한한 '권능(empowerment)'의 유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테크노기술의 가능성이 새로운 민주적 커뮤니케이션의 건설과 해방에 대한 언약으로 정치화하는 것이다. 인터넷의 대중화 초기였던 80년대의 신화는 구래의 보수적 정당구조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시킨다면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이었고, 아직도 그 믿음은 여전한 듯하다. 전자민주주의가 자율적 소수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컴퓨터로 매개된 의사소통을 통해 다양한 주장들을 공론화하는 시스템을 지칭하는 반면, 정치 현실에선 버튼누르기식(push-button) 선거과정이 전자민주주의를 가름하는 용어인 양 사용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평등한 참여자들간의 의사소통 및 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결과를 지칭한다면, 구정당 구조내에서의 인터넷 활용이 민주주의를 담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이버 정당' 정치라는 허울은 네트워크 기술을 업은 재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 정도를 디지털 카운터 장치로 환산하고자 하는 욕구일 뿐이다. 최근 정치인들이 홈페이지 등을 개설하여 네트를 대중적 선전장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폭주하는 것을 볼 때 애초의 민주적 가치가 깊이 없이 부유함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준다. 대중의 욕망에 충실한 가상공동체 또 다른 탈/비정치화의 정치적 신화는 온라인 혹은 가상공동체에 대한 믿음이다. 공동체론자들은 육체 이탈의 결과로 현실의 지리/사회/경제적 조건보다는 별명 등 개인사를 보여주는 이름, 프로필, 목소리 등 현실의 주문(mantra)을 벗어난 가상 정체성이 우위를 점한다고 본다. 그러기에 가상의 공동체는 네트워킹을 통해 소속 회원의 다양성과 참여성을 비배타적으로 그리고 평등하게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바라보는 공동체의 정치적 수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들이 가상공동체라 말할 때 게시판, 채팅방, 동호회 등의 느슨한 그룹에서부터 토론그룹, 지역공동체, 글로벌 연합체 등의 보다 정치적인 모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포괄한다. 이같이 공동체에 대한 정확한 계급/정치적 입지점이 불분명함으로써 대개는 모이는 것 자체만을 중요하게 취급한다. 둘째, 현실공동체에 긴밀하게 의존하여 파생된 용어가 가상공동체라고 본다면, 인간적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은 사회적 치유 효과보다는 소외를 상승시킬 수 있다. 현실의 접촉없는 네트워킹은 현실의 목소리를 내는 거리를 차단하고, 비/탈정치화로 가는 지름길을 닦게 한다. 셋째, 공동체적 의도가 온라인 기업의 마케터들에게 놀아날 공산이 크다. 신흥 자본가들은 인터넷 서비스 가입이 곧장 글로벌 온라인 공동체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선전한다. 사적 소비 자체가 공동체의 본질인양 둔갑하는 것이다. 이같이 논의의 과도한 비약을 하이테크 자본가들이 차용하는데는 공동체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적절히 간파하는 그들의 능력에 있다. 대중은 현대의 지시물없는 상실감에서 비롯된 치료제로서 전통적 공동체의 대체물인 가상공동체를 희구한다. 글로벌 사기업들은 명민하게도 이를 이용하여, 온라인 공동체를 인터넷의 물적배경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역할, 그리고 서비스 기술의 수용을 통한 대중의 의식적 통합과 친근성 확보, 최종적인 상품 소비를 원활하게 이루기 위한 촉진제로 활용한다. 결국 전자민주주의와 가상공동체의 신화는 더욱더 구역사의 초월과 정치적인 것의 실종이라는 기획을 확고하게 만든다. 동시에 가상계급은 스스로의 발생학적인 숙명을 은폐하는 효과도 갖는다. 정치/경제적 근원에서 구역사를 경향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옮겨놓고 있는 계급적 모순 말이다. 이로써 대중에 대한 디지털 신화의 1차 유혹인(誘惑因)은 마련된 셈이다. 이광석 <네트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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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술 2001. 11 인터뷰

월간미술 2001. 11 Special Feature | 21세기 신지식학 21세기는 디지털 영상문화의 이미지로 가득찬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바야흐로 이미지가 새로운 미의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처럼 21세기 시각문화는 ‘(디지털) 미디어’의, 미디어에 의한, 미디어를 위하여 존재할 것만 같다. 뉴미디어 비평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디지털 미디어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광석 씨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 = 벅찬 희망을 안고 시작한 인류의 21세기는 ‘뉴욕 테러’와 그에 따른 또 다른 충돌로 인해 ‘불확실성’을 가득 품은 채 시작되었다. 21세기를 전망하기 전에 20세기를 정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당신은 지난 20세기를 어떻게 정리하는가? 또한 이를 바탕으로 당신이 기대하는 21세기는 무엇인가? 20세기는 과학기술에 기반한 ‘도구적 합리성’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 시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발전한 기술문명은 인류 미래에 대해 선인들이 꿈꾸던 상상력을 일정 부분 현실화했다. 하지만 합리주의적 인류의 성과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일궈 나갈 공공 논의의 실종은 대체로 과학기술문명의 방향을 권력과 초국적기업 등에 의해 철저히 ‘도구화’했다. 인류문명의 선택과 방향에 대한 결정권이 소수의 힘있는 일방에 집중될 때 마찰이 발생하고 파국을 불러온다. ‘뉴욕 테러’는 그 권력 집중의 부정적 효과다. 21세기는 20세기의 이런 도구적 합리성에 기댄 강력한 권력이 아래로부터 위협받는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다양한 주장을 지닌 다양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분출할 것이다. 다양한 가치를 담은 목소리가 겉으로는 혼돈의 불확실한 미래를 보여 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억눌린 다수의 주장이 힘을 폭넓게 발휘할 수 있는 ‘글로벌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기술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 네트워크 혁명은 20세기의 가장 큰 기술적 소득이며, 이런 작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는 확성장치로 기능할 것이다. = 인간은 그 지식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는다. ‘뉴미디어 시대’로 기억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주체)의 존재 의미를 채워줄 신지식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체적으로 ‘신지식’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지식간 경계 허물기’의 시대가 될 것임은 확실하다. 그것이 앞으로 ‘신지식’의 모습일 것이다. 근대성의 소산인 학제간 구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징후가 현재에도 속속 진행되고 있다. 현실 관찰이나 미래 예측은 좁은 학문의 틀로는 무리임이 입증되고 있다. 외부의 바람막이로 기능하는 배타적 전공의 기득권 속에서가 아니라, 학제간의 경계를 가로질러 횡단하는 ‘유목하는(nomadic) 의식’의 다차원적 만남에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미래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 21세기는 아날로그의 시대를 지나 디지털 영상문화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평소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보인 당신은 디지털 영상문화 속의 ‘이미지’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디지털 영상은 ‘이미지’의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이 새로운 이미지의 주된 특징은 ‘변형’과 ‘잡종’에 있다. 있는 것의 끊임없는 재구성, 모르핑(morphing), 변화, 그리고 이들간의 새로운 잡종(hybrid)이 주를 이룰 것이다. 디지털 문화의 특성, 즉 빠르게 이동하고, 순식간에 변화하고, 복제되어 붙여지고, 새롭게 재구성되는 특성이 영상 이미지 속에 쉽게 전이될 것이다. ‘가벼운’빛의 이미지는 권력화한 ‘오리지널’과 고정 이미지에 대한 불신을 낳는 긍정적 측면도 지니지만, 존재하는 사실에 대한 의식적인 판단조차 흐릴 수 있는 위험성도 함께 갖고 있다. =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멀티미디어와 인터넷, 게임, CD롬과 DVD, 케이블·위성방송·인터넷 방송 등 다양한 영상매체가 시각문화의 지형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영상문화의 진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라디오·TV·영화를 전공한 당신은 21세기 영상문화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시각 영상문화의 ‘진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매체의 출현과 영상 표현능력의 발전이 진정 ‘진보’일까? 그것이 시작에 불과하든 이미 한참 진행되었든, 중요한 것은 영상문화는 시대의 가치와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영상문화의 가치가 상업적 인센티브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에서 새로운 시각매체의 출현은 대중을 상업적 욕망에 확실히 길들이는 프로파간다로 떨어질 확률이 높다. 물론 영상문화의 발전은 표현수단과 능력의 다양성과 신장이라는 면에서 예술에 영향을 줄 것이다. 형식적 실험의 다양성을 불러오겠지만, 여전히 예술의 ‘내용’은 디지털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고유의 질적 문제다. = 최근 들어 영상문화를 논할 때 단지 디지털이라는 ‘매체’와 ‘기술’에 국한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즉 ‘무엇을’보여 주고, 이야기하느냐보다 ‘어떻게’보여 주느냐가 더 중시되고 있다. 디지털에 의한 21세기 영상문화가 담아내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는 그릇의 차이일 뿐이다. 담을 그릇의 차이가 내용물의 차이를 일부 유도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달리하지는 않는다. 매체와 기술이 중심이 되면 곤란하다는 사실에 적극 동의한다. 문제는 아날로그이건 디지털이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을 가장 적합한 그릇으로 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항상 ‘어떻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스타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21세기 영상문화가 표현방식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달라져야 할 내용은 없다고 본다. = 이미 예술을 바라보는 학문적 패러다임은 예술의 범위를 넘어 문학·철학·커뮤니케이션·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의 혜택을 입고 있다. 이러한 학문과 장르의 ‘크로스오버’시대에서 예술이 안고 있는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크로스오버’ 시대지만 여전히 예술은 수많은 타 학문과의 ‘해석’행위와 별도로 개인 ‘창작’을 예술가적 장인의 배타적 영역으로 남겨 두려 한다. 이 문제의 일부 해결은 수용과 해석 행위를 창작에 적극 개입시키는 방식일 것이다. 디지털이 지닌 창작 주체와 수용자 간의 인터랙티브한 속성으로 일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최근 디지털 예술가 중 수용자와 함께 최종 완성하는 퍼포먼스 실험 등은 관객을 전시공간에서 대상 작품을 수동적으로 해석하는 위치에 남겨 두지 않으려는 적극적 시도로 봐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당신의 관점에서 전공 분야 또는 시각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을 추천한다면?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비주얼 아트의 젊은 교수 레브 마노비치(Lev Manovich)가 쓴 《뉴미디어의 언어(The Language of New Media)》(MIT 2001)다. 우선 필자가 이론과 예술현장을 두루 경험한 인물이기에 뉴미디어를 말하는 데 있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둘째, 그의 책은 이론적 측면에서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미학적 관점과 해석의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셋째, 다루는 대상의 다양성이다. 영화이론·예술사·문학이론·컴퓨터공학 등의 학문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뉴미디어 해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현실 비판의식이다. 첨단기술의 찬사에 이끌리기 쉬운 위치에 있으면서도 뉴미디어 내면을 흐르는 권력의 신화를 하나하나 분석하여 폭로하는 비판적 관점을 잃지 않는다. (윤동희·기자 정리) 이광석 | 뉴미디어 비평가. 현재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라디오·텔레비전·영화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 칼럼(‘@디지털사회’)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사이버 문화정치》, 《디지털 패러독스-사이버공간의 정치경제학》이 있으며, 현재 칼럼집과 ‘디지털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책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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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해지는 전자우편 감청

교묘해지는 전자우편 감청 [한겨레]2001-02-09 04판 25면 1267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지난 5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프라이버시재단이란 신생 온라인 감시단체에서 중요한 발표를 했다. 여러 언론의 관심을 끈 이 발표 내용은 새로운 전자우편 감청 기법에 관한 것이었다.이 재단의 기술팀장인 리처드 스미스는 일부 발신자들이 하이퍼텍스트 형식의 전자우편에 몰래 삽입한 20줄 남짓의 자바스크립트를 이용해 수신자를 감시.추적해왔다고 밝혔다. 이 오염된 우편을 받은 수신자가 이를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송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발신자가 은밀하게 심어넣은 스크립트는 일반 바이러스처럼 정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수신자가 주고받는 정보를 삼켜서 수시로 원발신자에게 토한다. 수신자가 받은 오염된 우편을 다른 이에게 재전송할 때마다 그 사본을 만들어 원발신자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미 3년 전에 컴퓨터 공학자로 알려진 리처드 보스가 이런 감청 '버그' 문제를 발견해 마이크로소프트에 알렸지만, 회사 쪽은 그의 의견을 묵살했다고 한다. 프라이버시재단이 그의 발견을 심각히 받아들여 여러 날에 걸친 조사 결과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감청 스크립트를 일반인이 잡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전자우편 프로그램의 환경설정에서 이의 작동을 막는 것만으로 문제가 간단하게 풀리지 않는 데 심각성이 있다. 본인이 미리 예방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오염된 우편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자바스크립트의 작동을 중단시켜야만 더이상의 감청이 없는 것이다. 자바스크립트 작동이 기본 설정으로 잡혀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웃룩이나 넷스케이프6 버전을 통해 우편을 수시로 주고받는 이용자는 그만큼 위험에 노출돼 있다. 다행히 핫메일, 야후메일 등 웹에 기반한 전자우편은 감청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미 연방 감청법에 따르면 이런 스크립트를 심는 행위는 위법에 해당한다. 이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엿듣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발신자의 정체를 숨기면 추적조차 어려워 감청 혐의로 소송을 걸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위법 행위가 더 심해질 듯하다. 이번 전자우편 감청 발표는 기술적 수단에 의한 개인적 수준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경고하고 있지만, 사실 초점은 오히려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고안해내는 공격적인 마케팅 수단들에 대한 비판으로 넘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판촉을 위해 해킹기법을 불사하며, 사용자 정보를 사냥하는 비상식적 이윤욕이 극에 이르고 있다. 이번 감청 버그 또한 그 비상식성에 기대어 고안된 흉물스런 마케팅 기법으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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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정당한 사용' 막지말라

저작물 '정당한 사용' 막지말라 [한겨레]2001-02-02 01판 25면 1288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지난해 여름 미국 영화협회는 저작권 위반 혐의로 해커잡지 (2600)을 기소해 뉴욕 남부지원에서 승리를 따냈다. 잡지 편집인이 리눅스용 디브이디(DVD) 암호해독 프로그램인 'DeCSS'를 무단으로 홈페이지에 등록 공개한 것이 문제였다. 기소 근거는 1998년부터 발효한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 위반이었다. 영화협회와의 밀약설 등으로 공신력 자체가 의문시됐던 캐플런 판사의 재판은 예상된 각본대로 움직였다.하지만 그의 판결을 비웃듯 암호해독 프로그램은 온라인상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검색의 정확도를 자랑한다는 구글(www.google.com)에서 이 프로그램을 찾으면 현재 6만8천건 이상의 페이지들이 걸려든다. 그만큼 이 판결이 시대의 흐름을 무시한 처사였음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제 사건이 연방 고등법원으로 넘어감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할리우드라는 거인을 상대하는 데 왜소했던 해커들에게 든든한 응원군이 속속 참여하고 있다. 법정 참고인 진술문 제출의 마지막 날인 31일까지 시민단체.언론인.법학교수.컴퓨터전문가 등이 대거 합세해 1심의 판결에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수정헌법이 보장하는 저작물에 대한 '정당한 사용'의 권리뿐 아니라 등록 및 게시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여러 관련 단체들을 동참하게 만들었다. 특히 미시민자유연합(ACLU), 미신문협회, 언론자유를 위한 기자위원회, 온라인뉴스협회 등이 단체 이름을 내걸고 참가함으로써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온라인 시민단체인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은 피고쪽의 재정적.법률적인 지원과 여론을 조성하는 중요한 구실을 수행해왔다. 밀레니엄법을 무리하게 적용하면, 연구자가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컴퓨터 보안 관련 연구물을 발표하는 행위는 위법이다. 동기야 어찌됐든 기술적 보안장치를 우회해 일반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법은 저작권 소유자가 그 내용의 배포에 대한 권한을 완전히 틀어쥐게 만듦으로써, 이용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계속해서 위협해왔다. 캐플런의 판결은 거대 기업들 편에서 공적인 권리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이달 들어 급속히 파급된 여러 시민단체들의 호응은 항소심의 결과를 떠나 정보 이용의 자유로운 흐름에 재차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은 디브이디 암호해독 프로그램 등의 기술적 코드도 다른 형식의 표현물처럼 수정헌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상기시킨다. 이번 관련 단체들의 결집이 말많은 밀레니엄법의 개정 문제도 같이 거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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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노동자의 참담한 현실

닷컴 노동자의 참담한 현실 [한겨레]2001-01-26 02판 20면 117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닷컴 회생의 처방으로 노동자들의 해고가 적극적으로 애용되고 있다. 닷컴 기업들은 질나쁜 구경제의 논법을 그대로 답습해 노동자를 한 명 해고시킬 때 기업이 얻을 수 있는 비용절감의 효과를 논한다. 언론은 연일 어떤 닷컴 기업에서 몇 명의 노동자를 잘라냈는지 그 숫자놀음에만 관심이 있다. 이제 미국민들이 신경제를 통해 이뤄지리라 믿었던 꿈같은 노동 환경은 허튼 소리로 들린다. 추락하는 스톡 옵션의 가치 또한 그나마 닷컴 기업에 기대했던 노동자들의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닷컴 노동환경에 대한 노동자들의 위기감은 자연스레 노조 설립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터넷 서점 아마존과 같은 거대 닷컴의 노조 결성 움직임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가전제품 정보 서비스 업체인 이타운(Etown.com) 노동자들도 노조가 더 이상 공장굴뚝시대의 폐기처분될 유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이타운은 병가 휴가를 이용해 1일 파업을 주도했던 두 명의 노동자를 해고했고, 노조 설립을 기도했던 다른 13명의 서비스 담당 직원도 해직 조처했다. 사업주의 이런 조처는 구경제와 다를 바 없는 신경제의 열악한 노동 윤리관를 정확히 반증한다. 대다수 닷컴 노동자들은 초과 노동에 시달려왔다. 미 산업보고서들에 따르면, 다른 직종에 비해 닷컴 노동자들이 주당 평균 10시간을 더 일한다는 공통된 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닷컴 노동자들 내부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신경제의 많은 업무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을 필요로 한다. 소수 전문 인력과 달리 대다수 노동자는 과잉 업무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해고 위협을 받는 가장 불안한 지위에 놓여 있다. 노동자들에게 닷컴 사무실에 갖춰진 체육관, 오락시설, 간식 제공 등 집안에서처럼 자유롭고 안락한 환경 또한 더 이상 따뜻한 가족주의의 상징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노동 연장을 위한 심리적 전술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이다. 언론인인 질 프레이저는 이런 냉혹한 닷컴 노동현실을 '화이트칼라 착취공장'에 빗대기도 했다 혁신.창의성.유연성.벤처정신 등의 수사가 최대 명제로 군림하던 시절에 몸 축나는지 모르고 일했던 닷컴 노동자들 자신이 이제는 비용 항목으로 처리되는 비운을 겪고 있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현실이 고단해질수록 신경제에 가려진 꺼풀들이 하나둘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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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커지는 신경제 비판론

목소리 커지는 신경제 비판론 [한겨레]2001-01-19 05판 26면 1282자 컬럼,논단 맥없이 흔들리는 닷컴기업들의 줄초상 분위기를 타고서, 신경제 비판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것도 30대 중반의 젊은 두 사람이 비판의 칼을 빼들어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시카고 대학에서 미국사로 박사학위를 딴 토머스 프랭크는 거침없는 독설과 재치있는 입담을 통해 신경제의 새로운 윤리와 지배적인 닷컴 정서에 찬물을 끼얹어 화제의 인물이 됐다. 각종 언론 인터뷰는 물론이고, 지난달에는 (뉴욕타임스)의 비즈니스섹션 첫 장을 장식할 정도로 그의 책 (유일무이한 시장)은 대중적 지목을 받았다. 그는 1990년대부터 피어오른 닷컴 신화가 미국 경제를 병들게 만들었다고 본다. 닷컴 지상주의가 노동생산성에 비한 상대적 임금 정체와 빈부 격차를 심화시켰고, 사회적약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의 안전 장치를 완전히 제거해버렸다고 주장한다. 그의 책이 논쟁을 불러일으킨 데는 신경제의 가치를 선전하는 중요 인물들에 대한 거침없는 실명 비판이 한몫을 했다.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조합어인 '보보스'(bobos)란 말을 만들어낸 보수적인 논객 데이비드 브룩스 같은 이는 정면으로 프랭크에게 맹비난을 퍼부으면서 거북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프랭크가 쓴 닷컴 현실의 단면을 영화로 만든다면 로니 앱티커란 동년배가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제격일 것이다. 그가 올 여름 개봉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는 영화의 제목은 (목적)(Purpo$e)이다. 이 독립영화는 닷컴 혁명의 진원지인 샌프란시스코가 주무대다. 제작을 맡고 각본을 쓴 앱티커는 닷컴기업의 중역 출신으로, 독립영화를 찍은 동기를 자신이 경험한 닷컴기업들의 냉혹한 현실에서 느낀 회의감이라고 얘기한다. 그는 영화 제목에 아로새겨진 달러 표시처럼, 애초 기술 개발의 순수한 동기와 목적 의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탐욕과 금전욕이 최상의 것이 돼버린 닷컴 윤리를 꼬집고자 한다.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재정은 앱티커가 젊은 나이에 닷컴기업을 통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들인 돈으로 충당했다. 두 젊은이의 논의와 함께, 독립 저널리스트 더그 헨우드의 출간을 앞둔 새 책 (신경제?) 또한 닷컴 비판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직까지는 신경제 논의의 양적인 생산 능력에 비교하자면, 이들의 비판이 갖고 있는 현실적 영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한번 물꼬가 트이면 신경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현실 진단이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쏟아질 것이다. 이들의 시작이 지적 형평성의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 작은 동력이 될 것이라는 좋은 느낌이 든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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