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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시대의 러다이트 운동

신경제시대의 러다이트 운동 [한겨레]2001-08-11 05판 10면 122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러다이트 운동'하면 19세기초 영국의 산업혁명기에 실직 위기를 느낀 노동자들의 무분별한 기계 파괴를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일부 논자들은 그 역사적 의의를 진지하게 평가한다. 단순히 자동화 기계의 출현에 반대한 노동자들의 섣부른 폭력을 넘어서서 자본주의의 '혁신' 논리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로 파악한다. 가족을 해체해 여성과 아동을 공장에 내몰고 전통적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사회 관계에 분노한 노동자들의 정치적 저항으로 보는 것이다.지난 1년여가 지나는 동안 다시 러다이트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스톡옵션의 가치를 믿고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다 길거리에 나앉은 실직 노동자들의 분노가 급기야 사내 컴퓨터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밖에서 전산망에 칩입하는 해커보다 사내의 적들을 단속하기 바쁘다. 신경제의 정체가 지속되면서 기업들이 무차별 해고를 벌인 덕이다. 물론 때와 상황은 이전과 현격히 다르다. 이제 작업장의 전자화는 생산수단에 가하는 망치의 위력보다는 키보드 자판의 손놀림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신경제의 신뢰 상실은 노동자들에게 분노의 색다른 표현 방식을 가져왔다. 기업 홈페이지 삭제, 소비자 정보 뒤섞기, 바이러스 심기, 컴퓨터 장비와 기밀정보 손상 등 실정법상으로 이른바 '기업 범죄'에 속하는 다양한 기법들이 출현하고 있다. 특히 직장에서 쫓겨나 기업의 월급명세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이름이 삭제되는 순간 프로그램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소프트웨어 시한폭탄'까지 등장할 정도로 방법이 첨단화했다. 기업 스스로도 잠재적 위협에 대비해 단속과 경계를 삼엄하게 벌이고 있다. 대량 해고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미리부터 내부 시스템 정비에 부산하다. 실직의 분노를 단순히 무법의 '깽판'으로만 본다면 진실과 거리가 멀다. 사회심리학자들은 노동자들이 과잉 노동의 압박과 개인 삶과의 부조화로 인한 심리적 갈등, 갑작스런 직장 상실에 대한 공포감을 안고 산다고 진단한다. 또한 한 보안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부당 해고율이 증가 추세이며, 이것이 적대적 기업 문화를 낳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노동자들의 현실 불안정성이 체계적으로 심화돼왔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신경제의 논리에 더 이상 희생의 제물이 될 수 없다는 노동자들의 거친 반응이 더욱더 러다이트 운동의 현대판 부활로 느껴진다. '후퇴란 상상할 수 없다'는 신경제 혁신의 신화에 대해 아래로부터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분노의 목소리로 들린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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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저작권, 오만과 미련

미 저작권, 오만과 미련 [한겨레]2001-08-04 05판 10면 1309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온나라에 좀도둑이 득실거리니 신경제 시장질서가 엉망이라. 이를 근본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열쇠가게 주인들의 연장을 모조리 폐기하고 거역하는 자는 색출해 가차없이 응징하라!"미국에서 1998년 발효된 이른바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의 서슬이 시퍼런 내용이다. 정보를 '정당하게 이용'하는 이들을 좀도둑으로 몰고 닫혀진 시장 정보를 해독하는 열쇠가게 주인들을 잡아들이고 그 해독기인 열쇠공구(개발툴)까지도 없애려는 것이 이 악법의 음습한 목적이다. 옛 저작권법이 정보도둑을 색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면, 이 법은 복제기술을 개발하는 열쇠가게 주인을 잡기 위해 고안됐다. 책의 복제를 막으려고 모든 복사기를 부수려는 짓과 다를 바 없는 미련함이 배어 나온다. 그런데 지난달 이 악법으로 열쇠가게의 대표도 아닌 한 점원이 구속됐다. 러시아 청년이 이역만리 미국에서 한순간에 디지털 악법의 봉변을 당했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직원이자 대학원생인 드미트리 스킬야노프는 컴퓨터 해킹과 암호기술을 다루는 회의에서 주제발표를 마치고 짐을 싸던 중 들이닥친 연방정보국 직원에 의해 체포됐다. 박사학위 논문에서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어도비의 전자책 리더프로그램의 보안상 허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개발한 암호해독 프로그램을 소개한 혐의였다. 그의 죄라고는 전자책 리더에서만 볼 수 있는 파일을 다른 이름으로 컴퓨터에 저장하거나 복사할 수 있도록 제약을 푼 만능키를 만들었을 뿐이다. 사건은 커졌다.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내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드미트리를 석방하라'는 시민단체들의 시위와 네티즌들의 구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내 악법을 적용하여 외국인인 러시아 청년을 쉽게 구속한 점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인 어도비와 정부의 공조에 의한 계획된 탄압이란 점 #대내외적으로 소프트웨어의 보안상 결함을 지적하는 학술적 논의를 침묵시키려 했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어도비는 아이피업체에 압력을 행사해 드미트리가 일하는 벤처사의 홈페이지를 수차례 폐쇄시켰고, 정보국 직원과 어도비의 기술진들이 만나 사전에 대책을 모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만들어진 각본에 따라 그는 구속됐다. 이제 어도비는 태도를 바꿔 드미트리의 구속을 반대한다고 나섰다. 부정적 여론으로 시장 지분을 잃을 수 있다는 약삭빠른 행동이다. 이번 사건의 맥락은 저작권자에게 거의 모든 통제권을 부여하는 악법에 휘청거리는 최근 영화와 음반계 열쇠가게 주인들의 수난사와 맞닿아 있다.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전자출판 시장에도 저작권의 확실한 쐐기를 박겠다는 업계의 무리수에 애꿎은 한 러시아 청년이 희생양이 된 셈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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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의 나팔수 홍보

MS의 나팔수 홍보 [한겨레]2001-07-28 05판 10면 1289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다른 이의 입을 빌려 네가 원하는 바를 얘기하라.'기업들의 홍보 전략 가운데 '제3자 기법'이란 속임수가 있다. 말하고자 하는 당사자가 아닌 이른바 전문가의 주장을 동원해 어떤 사건이나 사물의 객관적인 신뢰감을 구하는 방식이다.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상당하다. 실재하는 관심사를 위장하거나 포장된 가치를 과장하는 데 제격이다. 지난달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한 분할명령이 기각되자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아예 반독점법의 무위론까지 펼쳤던 한 보수 연구단체가 있다. 일명 '독립연구소'라는 이름의 이곳은 정부의 독점 규제에 불만을 지닌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정책연구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연구소가 명패만큼이나 독립적이기보다는, 엠에스와 손발을 맞추며 '전문가'적 역량으로 기업의 나팔수 노릇을 해왔다는 데 있다. 둘의 밀월은 지난해 엠에스의 천적인 오러클의 폭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건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거대 기업을 비호하면서 반독점법에 이의를 제기했던 240명의 경제학자들은 미국 주요 일간지에 빌 클린턴 행정부에 보내는 공개 서한 형식의 광고문을 올렸다. 재미있게도 이 의도된 기획에 충당된 돈의 출처는 엠에스의 주머니였고, 그 돈은 일을 꾸민 독립연구소로 흘러들어갔음이 드러났다. 연구소 재정의 '큰손'도 엠에스임이 밝혀졌다. 독립연구소는 이를 부당한 음해로 일축했다. 엠에스에 대한 독립연구소의 '사모'는 극에 이른다. 당시 광고 문안에 참고로 인용됐고, 지난 3월에 다시 나온 (승자, 패자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란 책은 기술 독점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데 상당한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독립연구소 연구원이 낸 이 책은 기업 분할이 미치는 소비자 비용부담과 첨단산업의 국제 경쟁력 약화론, 시장 효율성에 기댄 기술 독점 옹호론 등을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신경제 기여도를 고려하면 엠에스의 시장 독점은 전혀 해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엠에스의 자사 이미지 관리 기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국적 홍보대행사들을 이용한 속내가 훤히 비치는 홍보 전술은 기본이고, 비영리 단체나 자유기고가들을 매수해 목표하는 바를 대리 전달하는 비열한 수법도 불사한다. 독점 기업들의 여론 조작을 심층적으로 파헤친 셸던 램튼과 존 스토버의 책 제목처럼, 현대 소비자들은 (믿으시오. 바로 우리가 전문가요!)를 외치는 기업 후원의 명망있는 대리인들의 감언이설에 쉽게 농락당한다. 이것이 시장 독점의 온갖 구린내를 풍기는 엠에스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각 방면의 '전문가'를 사들이는 까닭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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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하는 전자 노동감시

급성장하는 전자 노동감시 [한겨레]2001-07-21 05판 10면 1276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디지털 시대의 작업장 감시에 대한 믿을 만한 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 경영협회의 연례 조사와 온라인 시민단체인 프라이버시재단이 얼마 전 발표한 보고서는 주목할 만하다.경영협회의 조사에서는 1997년보다 갑절 늘어난 미국 주요기업의 78% 정도가 노동자들을 수시로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범위는 전자우편.컴퓨터파일.인터넷접속 등의 신종 감시와 함께 전화.비디오 등 전통적인 방식의 감청까지 포괄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40%의 기업이 인터넷접속 감시 프로그램을 애용하는 등 99년부터 온라인 감시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라이버시재단은 조사 대상을 전자우편과 인터넷 이용에 대한 감시의 경우로 줄였다. 재단의 이번 조사는 정확성을 위해 감시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매출 내역을 같이 활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결과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4천만명의 미국 노동자는 셋 가운데 한 명, 전세계 1억명의 노동자는 넷 가운데 한명꼴로 기업주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전자우편을 감청하는 '미메스위퍼'는 1천만명, 인터넷 접속을 통제하는 '웹센스'는 800만명 이상의 노동자들에게 전자 감시의 눈길을 보내는 것으로 집계됐다. 줄곧 애용돼온 시선에 의한 감독이 컴퓨터에 숨어든 프로그램에 의한 디지털 기록으로 간단히 대체되고 있다. 물론 차곡차곡 쌓인 '부적절한' 인터넷 이용 기록은 노동자에게 불리한 물적 증거로 쓰인다. 이것이 작업장 감시의 전자화다. 감시 방식이 달라지면 이에 공생하는 업체들의 시장이 커지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직원인터넷관리' 사업이란 정체 불명의 야릇한 명칭을 달고 노동자 감시사업이 신종 노다지로 떠오른다. 한 조사는 신경제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전자 감시사업이 현재 연간 55% 이상의 성장률과 1억4천만달러의 매출을, 2004년에는 약 6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점친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노동자의 증가, 저렴한 감시비용, 국제 시장의 수요 등을 고려하면 이 예상치도 쉽게 넘어서리란 추측을 할 수 있다. "단단한 것은 모두 대기 속으로 녹아내린다." 150여년이 흘렀어도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가공할 자기파괴와 번식력을 관찰하면서 비유적으로 내뱉은 이 한 마디는 여전히 오늘에도 유효하다. 뭐든 삼켜 어디에서든 자라고 증식하는 자본의 능력은 신종 노동자 감시사업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이는 자본에 대한 하염없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무섭게 뿌리내리는 그 괴물 같은 기생성에 소름이 돋게 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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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 기업의 구시대 노동관

신경제 기업의 구시대 노동관 [한겨레]2001-07-07 05판 10면 1298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이동통신 산업은 두말할 나위없이 신경제의 한 축을 이루는 핵심 부가가치 산업이다. 미국 경제성장률의 평균치보다 갑절 이상의 속도로 커나가는 것을 보면 관련 종사자들의 혜택도 상응할 것이라고 짐작하기 쉽다.이런 가정을 뒤집고 구경제 노동 통제의 관행으로 회귀하는 기업이 있다. 그것도 동종 업계 안에서 20% 정도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는 최대 통신업체인 '버라이즌와이어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얘기다. 버라이즌의 계열사인 이 이동통신 회사는 지난해 밸애틀랜틱이 '지티이'를 합병하면서 새롭게 공동 출자로 만들어졌다. 이미 노조가 결성된 버라이즌의 다른 계열사와 달리 이 회사 노동자들은 노사협상 창구가 없어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를 감수해야 했다. 내부적으로 노조 가입자의 80%에 해당하는 상대적 임금격차, 초과노동, 질 낮은 의료혜택, 불안정한 고용지위 등이 문제였다. 여성과 소수계 노동자의 경우에는 더했다. 지난해 8월에 있었던 이 회사 9만여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노동조건 개선 약속을 얻어낸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와 함께 미국 통신노조연합의 도움으로 노조 설립의 길을 열게 됐다. 당시 협정의 주된 내용은 이른바 '카드체크'와 중립 원칙을 담고 있다. 카드체크는 단위 사업장내 노조설립 의사를 묻는 일종의 투표 행위다. 정해진 중재기구에서 개표해 노동자들의 거의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노조를 인가하는 방식이다. 중립 원칙은 누구든 노조 가입을 방해하거나 간섭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여기까진 좋았다. 지난달 말 뉴욕 본사를 비롯한 5개 도시의 버라이즌 건물 앞에서 소속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의 존 스위니 회장이 직접 참여할 정도로 사태가 확대됐다. 문제의 원인은 사용자가 중립협정을 깨고 반노조 공작을 집요하게 벌여온 데 있다. 사용자 쪽은 노조 파괴용 웹사이트 홍보, 개별 노동자들에 대한 협박과 회유, 노조의 논의 금지와 감시, 카드체크 협정의 무효 소송 등 반노조 전술을 다양하게 구사했다. 통신노조연합은 버라이즌의 이런 불공정 노동행위에 대해 노사관계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하고, 협정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 흐름을 탄 힘없는 노동자들의 부침이 '만고불변'의 사실이라면 노동자들이 권익을 위한 노조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유독 신경제 기업들이 무노조를 고집하는 태도는 기본적인 자본 운동의 흐름을 무시하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이 그토록 경배하는 지식 기반의 신경제는 버라이즌에 오면 머쓱해진다. 확실히 노동조건만큼은 폭력에 기반한 낡아빠진 지식경제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만고의 경제법칙인가?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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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산업 '야누스 얼굴'

바이오산업 '야누스 얼굴' [한겨레]2001-06-30 06판 17면 1330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컴퓨터의 눈으로 상품 유형을 본다면 크게 세 부류일 것이다. 딱딱한 하드웨어, 몰랑한 소프트웨어, 그리고 축축한 웨트웨어. 하드웨어가 공장의 불길로 구워진 것이라면, 소프트웨어는 자유로운 디지털 정보의 조합을 얘기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한다. 그러면 웨트웨어는? 이는 생물 세포의 유전자 코드에 감춰진 추상적인 정보 패턴을 말한다. 이 새로운 범주는 그만큼 생명기술이 돈되는 사업으로 성장했다는 얘기도 된다.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는 이번주 나흘 간에 걸쳐 기업인과 과학자.정부관료 등이 모인 가운데 국제 생명기술 연례회의인 일명 '바이오2001'이 열렸다. 명목은 전세계 질병과 굶주림을 종식시킬 생명공학기술을 위한 모임이었지만, 내용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효과적으로 상품화하는 방안을 찾기 위한 자리였다. 샌디에이고 시장이 이번주를 '생명기술 주간'으로 선포하면서 외형상 들뜬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거리를 가득 메운 경찰 병력은 사태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회의장 밖에는 1천명 남짓의 전세계 환경운동가.시민단체.지역농민.과학자들이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이들은 수일 전에 모여 안티바이오 집담회인 '생명파괴2001'(biodev.org)을 열고, 회의 개시일에 맞춰 평화시위에 들어갔다. 5년째인 이 대회는 국제적 연대를 통해 생명기술의 위험성을 일반에 알리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번 대회는 유전자조작 식품의 상업화 거부, 특허에 의한 생명체의 소유 철폐, 다국적기업과 세계무역기구에 의한 인류건강 위협 반대, 생명기술의 규제 강화와 공적 여론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회 도중 부근 식료품점 곳곳에 붙인 '유전자 조작식품-독극물'이란 스티커 문구는 인류의 먹을거리를 늘린다는 유전자조작 식품이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고 장기적으로 환경 생태계까지 파괴할 수 있음을 알린다. 물론 그 화살은 지역 농민의 삶터를 바이오기술의 실험장으로 휩쓰는 몬샌토.노바티스.듀폰 등의 다국적 화학기업들에 향해 있다. 대회는 한편으로 생명 특허와 유전 정보의 사유화로 과학 발전의 열린 의사소통을 막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치밀한 로비로 정부 규제를 피해가는 다국적기업들의 영리함을 꾸짖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과학의 존립은 사회.경제적 요인과 무관할 수 없다. 노다지로 각광받는 복제나 유전학에 대한 치중은 자칫 질병의 환경적인 요인을 간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아에 대한 근본적 해결도 인증하기 힘든 생명기술보다는 식량 보급 불균형의 해소가 전제돼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의 밀폐된 실험실을 벗어나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과정만이 미래 생명기술의 긍정적 쓰임새를 마련하는 방도일 것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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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언론 '재갈' 위험한 발상

인터넷 언론 '재갈' 위험한 발상 [한겨레]2001-06-23 01판 12면 1318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언젠가 멕시코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게릴라 투쟁과 함께 네트워크를 타고 흐르는 '비트에서 비트로 연결된 조용한 힘의 축적'이 농민들의 국지적 투쟁을 국제적인 정치력으로 비약시켰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힘없는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사방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데이터를 잘게 쪼개 네트워크로 끊이지 않고 흘러보내는 '스트리밍' 기술은 대역폭에 상관없이 실시간으로 동영상 정보를 구현해 새로운 게릴라 언론의 길을 열었다.디지털 게릴라방송은 1999년 겨울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독립미디어센터'(www.indymedia.org)는 당시 시애틀에 모인 노동자.농민.중소기업인.학생들의 시위 소식과 다양한 의견을 알릴 목적으로 400명 이상의 리포터와 시민단체의 제작자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 방송사이트다. 이 센터는 이제 미국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지국을 갖는 범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이 센터의 쾌속 성장에는 논의의 개방성과 사건의 현장성이 자리하고 있다. 누구나 노동.인권.환경 문제와 관련된 글.사진.동영상 등의 정보를 올릴 수 있는 평등한 접근권과 정보 자원의 탈집중화가 그것이다. 지난 4월 캐나다 퀘벡에서 미주자유무역지대 결성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34개국 정상 모임에서도 이 센터는 게릴라 매체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그 자유 언로에 재갈을 물리려던 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퀘벡의 시위와 집회에 대한 보도를 한창 진행하던 중에, 미 연방수사국과 재무부 산하 비밀검찰국(SS)의 직원이 시애틀의 이 센터에 찾아와 미 법원의 명령서를 전달하면서 시작됐다. 명령서는 이 센터의 웹사이트에 정보를 올린 접속 기록을 제출하라는 것과 법원명령에 관련한 모든 내용의 보도금지를 명하는 것을 뼈대로 했다. 혐의에 오른 익명의 두 게시글을 조사하기 위해 48시간 동안 서버에 기록된 125만명의 접속자 명단을 내놓으라는 억지였다. 혐의는 캐나다 경찰이 지녔던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방문 세부일정과 경찰의 시위대 진압에 대한 계획이 유출됐다는 것이다. 지난주 사건은 종결됐다. 사건이 시민단체들의 여론에 오르고 법정 대응이 준비되기 하루 전에 법원은 발빠르게 명령을 철회했다. 혐의도 분명하지 않은 데다 심각한 언론자유 침해라는 여론이 확산돼 승산이 없을 것을 미리 짚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남는 의혹은 캐나다 정부에 대한 수사 협조라는 명목으로 어떻게 미 정부가 자국내의 한 언론을 조사하려는 넓은 아량이 생겼냐는 점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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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우린 마케팅 '표적'이다

어디서든 우린 마케팅 '표적'이다 [한겨레]2001-06-16 05판 12면 1283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새로 생긴 말 중에 '아우터넷'(outernet)이란 것이 있다. 인터넷이 전자적 네트워크 공간이라면, 이는 반대로 신문.방송.잡지 등의 현실 매체 공간의 네트워크를 지칭한다. 현재까지 바깥에서 '넷'으로 일상을 통합시키는 기제는 광고 매체뿐이다.아우터넷의 개념은 일상의 모든 곳을 잠식하려는 게릴라 광고판들의 구상과 일치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광고들이 일상의 시선을 사로잡는 근거는 디지털 동영상이다. 곳곳에 설치된 화상 모니터의 광고는 잠시도 눈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누군가의 시선을 허공에 쉬게 하는 것은 아우터넷의 광고 개념에서 볼 때는 죄악이다. 인터넷에서도 배너의 크기를 확대하거나 팝업 창을 활용한 웹광고에 이어 뒤에 숨었다 창을 닫으면 튀어나오는 '팝언더' 광고나 웹 페이지를 무시하고 화면을 음악과 동영상으로 덮치는 의도하지 않은 깜짝 광고가 크게 늘고 있다. 최근 시장 상황이 나빠지고 경쟁이 거세지면서 광고의 기법은 점점 공격적이고 첨단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틀을 깨는 파격적인 광고의 출현은 안과 밖의 네트워크 모두에서 벌어지고 있다. 밖의 광고 특성이 주로 어디서든 존재하는 편재성이라면, 안의 경우는 숨어드는 잠복성에 있다. 밖의 일상에서는 물리적으로 외면할 수 없는 광고를 요소요소마다 심으려 한다면, 안의 전자공간에서는 이용자의 삭제를 최대한 막는 디지털 기법들이 선호된다. 어디든 숨었다가 튀어나오는 이런 광고의 특성은 그만큼 소비자 성향에 따른 마케팅 관리가 강화됐음을 의미한다. 온라인 마케팅 회사인 더블클릭의 소비자 추적 프로그램 명칭이 '다트'인 것처럼, 광고가 던지는 화살촉에 각각의 분류된 소비자는 표적처럼 쉽게 쓰러질 수 있다. 광고의 표적 면적이 '우리'에서 '나'로 축소된 지 오래다. 상식적으로도 뭉뚱그려진 대중보다는 다양한 인구통계학적 요인별로 잘게 나누어진 집단과 개인이 맞춤 광고의 덫에 쉽게 걸려드는 법이다. 조지프 터로 같은 광고이론가는 이런 표적 마케팅이 한 사회의 응집력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고 본다. 지역.계층.성.연령 등으로 세분된 소비군이 자연스레 원자화한 사회적 정서로 옮아간다는 것이다. 표적 광고가 미치는 사회 결속의 부정적 구실론까지 들진 않더라도, 공격적 광고의 일상화는 심각하다. 바쁜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짧은 사색의 시간과 장소마저 현란한 상품 광고의 각축으로 찢겨나간다. 디지털 광고의 자유로운 외양은 입맛에 따라 자사의 브랜드를 각인하는 데 제격이다. 아우터넷이란 개념이 요즘 광고업계에서 왜 그토록 각광받는지 그 분명한 이유를 알 만하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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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봇짐장수 '그누텔라'

힘센 봇짐장수 '그누텔라' [한겨레]2001-06-09 05판 12면 1289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서로 연결된 모든 컴퓨터는 동등해야 한다.'인터넷의 처음 마음은 이랬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등의 전자공간에 몰려들면서 사뭇 양상이 달라졌다. 정보를 요구하는 쪽과 제공하는 쪽이 클라이언트와 서버라는 이름으로 확연히 구분되고, 정보가 흐르는 범위도 온갖 성벽과 대문으로 출입이 봉쇄됐다. 성 안에는 각종 돈되는 정보를 가공하는 장사치들이 늘어나면서 '신경제'란 커다란 시장도 형성됐다. 일단 성을 벗어나 대량복제된 정보는 갖가지 저작권의 패찰을 달고 행세하기 시작했다. 위계.독점.집중의 시장윤리가 이곳에도 어김없이 들어섰다. 시장에 골칫덩이가 나타났다. 하릴없이 산천을 떠돌면서 정보를 사고파는 봇짐장수들이 여기저기서 출현했다. 지난해 등장한 '그누텔라'도 그중 하나다. 냅스터와 달리 그누텔라는 중앙의 서버를 거치지 않으면서 사람들 간의 평등한 네트워크를 구현한다. 서버가 클라이언트와 구분되면 서버는 돈벌이용 개찰구로 군림한다. 이에 반해 그누텔라란 봇짐장수가 나타나면서 서버와 클라이언트는 하나가 된다. 봇짐장수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넘나들면서 정보를 팔거나 전하면서 사람들 간의 직접적 네트워크를 짜도록 돕는다. 밥 한술 대접에 선뜻 정보를 거저 내주기도 하면서, 멀리 떨어진 이들끼리 서로 필요한 정보의 교환을 주선한다. 발로 품을 팔며 사람들을 묶어줬던 봇짐장수의 구실은 시장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일대일(P2P) 정보공유 체계인 그누텔라에 그대로 유지된다. 저스틴 프랭클과 톰 페퍼가 단 2주 만에 개발한 그누텔라가 이제는 정보공유의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수천명이던 사용 인구가 현재 4만명 이상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이들 간에 200만개 정도의 음악.영화.문서 파일들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이 속도대로라면 '냅스터 열풍'은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비슷한 기능의 '프리넷'보다 훨씬 유연하고 조작이 쉽다. 봇짐장수는 거래 기록을 남기는 법이 없다. 그저 머리에 기억된 길과 이름들뿐이다. 그가 만드는 네트워크 또한 내닫는 발길에 의지한다. 그누텔라에서 교환되는 정보와 사람은 철저히 익명이다. 누군가 흐르는 정보를 강제로 감시하려 한다면 봇짐장수의 길을 꿰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인터넷 전체를 통째로 가로막을 때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저작권 위반 혐의로 옭아매기도 힘들게 됐다. 지난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누텔라가 새로운 웹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중요한 지적을 했다. 이 신문은 제2.제3의 그누텔라의 등장과 정보 검색기술의 진전이 닷컴 시장모델을 밑에서부터 무너뜨릴 수도 있음을 알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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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래라고 밝을 수만 있나

새로운 미래라고 밝을 수만 있나 [한겨레]2001-06-02 06판 12면 1319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과거를 되돌아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어제의 것을 가지고 오늘을 반추하기도 하면서 내일을 가늠하는 유용한 준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오늘을 합리화하고 내일을 채색하는 도구로 과거를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다. 이때의 과거에는 불순한 현실의 개입이 이루어진다. 누군가 과거의 것들을 걸러내고 취합해 보여줄 때는 흔히 의도적이고 과장된 오늘의 정서가 짙게 깔리기 마련이다.미국 구경제와 신경제의 중심지인 뉴욕과 실리콘밸리의 두 전시회는 과거 유물들을 통해 오늘의 지배적 정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뉴욕역사회의 '20세기 미래설계: 시대를 넘어서'는 '어제의 미래'로 상상했던 일을 오늘의 시점에서 보는 자리다. 전시는 189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과학소설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모아 당시 사람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품었던 낙관적 열망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들은 미래도시.우주선.우주정거장.미래형자동차 등 오늘날에 기술적 영감을 줬던 소재를 다룬다. 하지만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에 압도돼 과학소설의 과장된 미래낙관론에 치우친 작가들의 그림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현실 속의 모순.폐해.마찰 조건들을 반영한 '어제의 미래'를 발견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소재는 다르지만 목적이 비슷한 전시가 하나 더 있다. 실리콘밸리의 명소로 만들겠다는 포부로 96년에 세워진 '컴퓨터역사박물관'은 20세기에 고안된 각종 컴퓨터 하드웨어들의 영구 진열장이다. 이제는 쉽게 찾을 수도 없고 대부분 너무 무거워 옮기기도 어려운 괴물과 같은 컴퓨터의 어제 모습을 한데 모았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이동 타자기였던 이니그마와 60년대 허니웰이 개발한 부엌용 컴퓨터 요리기계 등 초창기의 각종 컴퓨터 장치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 전시는 여전히 지금도 컴퓨터 시대임에도 현재의 컴퓨터를 끊임없이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급변하는 오늘의 시대정서를 드러낸다. 휴대를 넘어서 '입고 차는 컴퓨터' 시대를 살아가는 관람객에게 얼마 안 된 어제의 것들은 벌써 낯설고 우스꽝스럽다. 디지털이 '새로움'이라는 포장과 함께 선사하는 미래 예언에 친숙해진 우리에게 어제의 기괴한 컴퓨터들은 빛나는 오늘과 다가오는 내일을 돋보이게 만드는 무대장치 구실을 한다. 두 전시 모두는 과학기술이 발전적이고 낙관적인 것이라는 환상을 전달하고 있다. 비록 주제가 과거로 향해 있지만 이런 목적을 위해서 과거를 미래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하나는 꿈으로 가득 찬 '어제의 내일'을 우리가 사는 '오늘의 내일'과 동일시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촌스런 어제를 배열해 과거의 흔적들을 약속된 미래를 위한 소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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