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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래라고 밝을 수만 있나

새로운 미래라고 밝을 수만 있나 [한겨레]2001-06-02 06판 12면 1319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과거를 되돌아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어제의 것을 가지고 오늘을 반추하기도 하면서 내일을 가늠하는 유용한 준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오늘을 합리화하고 내일을 채색하는 도구로 과거를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다. 이때의 과거에는 불순한 현실의 개입이 이루어진다. 누군가 과거의 것들을 걸러내고 취합해 보여줄 때는 흔히 의도적이고 과장된 오늘의 정서가 짙게 깔리기 마련이다.미국 구경제와 신경제의 중심지인 뉴욕과 실리콘밸리의 두 전시회는 과거 유물들을 통해 오늘의 지배적 정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뉴욕역사회의 '20세기 미래설계: 시대를 넘어서'는 '어제의 미래'로 상상했던 일을 오늘의 시점에서 보는 자리다. 전시는 189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과학소설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모아 당시 사람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품었던 낙관적 열망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들은 미래도시.우주선.우주정거장.미래형자동차 등 오늘날에 기술적 영감을 줬던 소재를 다룬다. 하지만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에 압도돼 과학소설의 과장된 미래낙관론에 치우친 작가들의 그림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현실 속의 모순.폐해.마찰 조건들을 반영한 '어제의 미래'를 발견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소재는 다르지만 목적이 비슷한 전시가 하나 더 있다. 실리콘밸리의 명소로 만들겠다는 포부로 96년에 세워진 '컴퓨터역사박물관'은 20세기에 고안된 각종 컴퓨터 하드웨어들의 영구 진열장이다. 이제는 쉽게 찾을 수도 없고 대부분 너무 무거워 옮기기도 어려운 괴물과 같은 컴퓨터의 어제 모습을 한데 모았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이동 타자기였던 이니그마와 60년대 허니웰이 개발한 부엌용 컴퓨터 요리기계 등 초창기의 각종 컴퓨터 장치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 전시는 여전히 지금도 컴퓨터 시대임에도 현재의 컴퓨터를 끊임없이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급변하는 오늘의 시대정서를 드러낸다. 휴대를 넘어서 '입고 차는 컴퓨터' 시대를 살아가는 관람객에게 얼마 안 된 어제의 것들은 벌써 낯설고 우스꽝스럽다. 디지털이 '새로움'이라는 포장과 함께 선사하는 미래 예언에 친숙해진 우리에게 어제의 기괴한 컴퓨터들은 빛나는 오늘과 다가오는 내일을 돋보이게 만드는 무대장치 구실을 한다. 두 전시 모두는 과학기술이 발전적이고 낙관적인 것이라는 환상을 전달하고 있다. 비록 주제가 과거로 향해 있지만 이런 목적을 위해서 과거를 미래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하나는 꿈으로 가득 찬 '어제의 내일'을 우리가 사는 '오늘의 내일'과 동일시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촌스런 어제를 배열해 과거의 흔적들을 약속된 미래를 위한 소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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