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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산업 '야누스 얼굴'

바이오산업 '야누스 얼굴' [한겨레]2001-06-30 06판 17면 1330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컴퓨터의 눈으로 상품 유형을 본다면 크게 세 부류일 것이다. 딱딱한 하드웨어, 몰랑한 소프트웨어, 그리고 축축한 웨트웨어. 하드웨어가 공장의 불길로 구워진 것이라면, 소프트웨어는 자유로운 디지털 정보의 조합을 얘기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한다. 그러면 웨트웨어는? 이는 생물 세포의 유전자 코드에 감춰진 추상적인 정보 패턴을 말한다. 이 새로운 범주는 그만큼 생명기술이 돈되는 사업으로 성장했다는 얘기도 된다.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는 이번주 나흘 간에 걸쳐 기업인과 과학자.정부관료 등이 모인 가운데 국제 생명기술 연례회의인 일명 '바이오2001'이 열렸다. 명목은 전세계 질병과 굶주림을 종식시킬 생명공학기술을 위한 모임이었지만, 내용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효과적으로 상품화하는 방안을 찾기 위한 자리였다. 샌디에이고 시장이 이번주를 '생명기술 주간'으로 선포하면서 외형상 들뜬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거리를 가득 메운 경찰 병력은 사태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회의장 밖에는 1천명 남짓의 전세계 환경운동가.시민단체.지역농민.과학자들이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이들은 수일 전에 모여 안티바이오 집담회인 '생명파괴2001'(biodev.org)을 열고, 회의 개시일에 맞춰 평화시위에 들어갔다. 5년째인 이 대회는 국제적 연대를 통해 생명기술의 위험성을 일반에 알리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번 대회는 유전자조작 식품의 상업화 거부, 특허에 의한 생명체의 소유 철폐, 다국적기업과 세계무역기구에 의한 인류건강 위협 반대, 생명기술의 규제 강화와 공적 여론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회 도중 부근 식료품점 곳곳에 붙인 '유전자 조작식품-독극물'이란 스티커 문구는 인류의 먹을거리를 늘린다는 유전자조작 식품이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고 장기적으로 환경 생태계까지 파괴할 수 있음을 알린다. 물론 그 화살은 지역 농민의 삶터를 바이오기술의 실험장으로 휩쓰는 몬샌토.노바티스.듀폰 등의 다국적 화학기업들에 향해 있다. 대회는 한편으로 생명 특허와 유전 정보의 사유화로 과학 발전의 열린 의사소통을 막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치밀한 로비로 정부 규제를 피해가는 다국적기업들의 영리함을 꾸짖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과학의 존립은 사회.경제적 요인과 무관할 수 없다. 노다지로 각광받는 복제나 유전학에 대한 치중은 자칫 질병의 환경적인 요인을 간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아에 대한 근본적 해결도 인증하기 힘든 생명기술보다는 식량 보급 불균형의 해소가 전제돼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의 밀폐된 실험실을 벗어나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과정만이 미래 생명기술의 긍정적 쓰임새를 마련하는 방도일 것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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