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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평화운동의 새수단 인터넷

반전.평화운동의 새수단 인터넷 [한겨레]2001-12-22 01판 09면 132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끝모를 전시체제 조성으로 미국 사회 곳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자기검열의 촉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피폐한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시킨 공격을 이젠 '민족해방전쟁'으로 한껏 치장하고 있다.미국 시민 가운데 자신의 자동차나 건물 외벽에 성조기를 달지 않았다면 그는 간이 부은 사람이거나 애국심과 무관한 사회 이탈자로 간주된다. 대학가.지역사회.의회.언론 등의 내부에서는 부시의 정책과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조그마한 비판의 목소리도 새나오지 못하도록 침묵의 자정이 이루어진다. 그래도 침묵의 암묵적 강요는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다. 위축됐던 비판적 목소리들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반전.평화의 물결이 인터넷을 통해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다시 한번 인터넷이 정치행동을 위한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으로 구실하고 있다. 인터넷은 베트남전과 걸프전 때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전자경로를 통해 반전.평화 운동의 새로운 연대 가능성을 열고 있다. 한국의 '평화쪽지 이어달리기운동'은 지금까지 4500여명의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모았고, 뉴욕 브루클린의 한 청년에 의해 시작된 '국제 반전청원운동'은 전세계 50만명 이상의 온라인 서명을 받아내는 등 전세계 비정부기구(엔지오)들과 시민들의 온라인 시위와 평화연대가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무차별 폭격에 의한 무고한 아프간 양민들의 죽음을 막고 동시다발 테러 이후의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원하는 세계 시민들의 소망이 전자 공간의 떨림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맥루한이 서구의 인쇄매체 혁명을 '구텐베르그 갤럭시'로 표현했다면, 정보 이론가인 마누엘 카스텔은 최근 저술에서 지금을 '인터넷 갤럭시'로 규정했다. 인터넷을 통해 인간 소통과 조직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주장이다. 그렇게까지 치켜세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인터넷이 반전 운동의 기폭제가 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상대적으로 익명성을 보장하는 인터넷에서 호전적 애국주의가 주는 무언의 공포 없이도 자신의 대안을 얘기하고 의견을 교류하고 힘을 모아 용기를 얻는 과정이 새로운 정치행동으로 정착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처럼 독점 언론에 의한 정보 통제가 광범위할 때 인터넷은 다양하고 심층의 대안적 정보들이 흐르는 소통로 구실을 한다. 그렇다고 인터넷이 자유의 영원한 보루라고 본다면 대단히 순진한 것이다. 여전히 미더운 것은 발 딛고 선 현실의 정치력이다. 컴퓨터 앞에 앉은 네티즌의 손끝 클릭만으로 '전쟁취소'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 당연 반전.평화 운동의 물결도 '온'과 '오프'의 조화로운 결합에 의해서만 한층 거세질 것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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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 위협하는 저작권남용

정보공유 위협하는 저작권남용 [한겨레]2001-12-15 04판 12면 1243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자유로운 정보공유 정신이 이윤 논리에 크게 위협받고 있다. 저작권의 기술적 통제 방식을 '코드'란 개념으로 풀었던 미국 법학자 로렌스 레식은 얼마전 출간된 그의 두번째 책에서 인터넷 현실에 대한 강한 비관론을 피력했다. 레식과 같은 시장 옹호론자조차 기업들의 구태의연한 저작권 남용에 대해 책 한 권을 소모해가며 성토할 정도면 그 심각성은 짐작하고도 남는다.지난달 연방 항소심에서 미국영화협회는 해커 전문지 (2600)에 또 다시 승소해 저작권의 위력을 새삼 확인했다. (2600)은 지난해 디브이디 잠금장치를 푸는 리눅스용 암호해독 프로그램(DeCSS)을 연결 페이지에 등록한 이유로 영화협회에 패소당한 바 있다. 올해초 미국음반협회의 압력에 대항해 프린스턴 대학의 한 연구팀이 낸 소송도 기각됐다. 디지털 복제를 막는 워터마킹의 허점을 진단한 학술논문을 발표하려다 협회의 압력으로 무산된 뒤 표현 자유권 침해로 법정 소송까지 간 사례다. 이 둘은 앞으로 법정 분쟁에서 저작권자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판례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저작권 중심의 법 해석뿐만이 아니다. 고자세로 저작권법의 확대 해석에 기대어 무고한 이들을 범법자들로 만들었던 거대 음반업자들이 본격적으로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법정 분쟁만으로는 네티즌들의 정보 공유 모델을 감당 못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업계는 사용자들의 정보공유 방식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길들이려 한다. 자유롭게 교환하고 내려받고 저장하여 담고 복제하던 방식을 기술적으로 크게 제약하는 상업 서비스다. 음반 업계들이 소비자들에게 내건 홍보 전략은 향상된 음질, 검색 기능, 내려받기 속도다.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고 음악파일을 듣는 대신 저장을 할 수 없게 하거나, 설사 저장을 한다 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 잠금돼 이용할 수 없게 만들어 다른 데 옮겨 담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모델을 기술적으로 고안했다. 혁신과 창의성을 키웠던 정보공유의 '열린 모델'이 저작권 확대의 옹벽을 치는 '닫힌 모델'로 귀환한다. 이윤 확대를 위해 들인 열성에 비해, 인터넷의 새로운 현실과 사용자들의 변화는 기업들의 안중에 전혀 없다. 최근 몇년 동안의 미국 저작권 판례들과 거대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한국내 인터넷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못될 것으로 보인다. 냅스터 판결이 '소리바다' 음악 공유 사이트에 미친 부정적 파장을 보면 미국의 선례들이 한국내 저작권 지상론자들의 나갈 바를 제시하는 능란한 길잡이로 나설 공산이 크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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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주의에 취한 미 엔지오

애국주의에 취한 미 엔지오 [한겨레]2001-11-17 05판 09면 1272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녹차 포장지에 새겨진 광고 문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기 십상이다. "녹차는 '자유소'라고 알려진 몸의 독소를 해독해 노화를 방지하는 천연 잎이다. 녹차의 주성분은 몸에 해로운 자유소들을 억제해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도록 돕는다."슬로베니아의 정신분석 이론가로 알려진 슬라보예 지제크가 다른 맥락에서 썼던 녹차의 비유를 요즘 미국 분위기에 맞춰 바꿔보면 아마도 이런 내용쯤 되지 않을까? "애국주의라 불리는 녹차의 효능은 전체에서 벗어나 튀는 것들을 순화시켜, 이것을 전체가 향하는 길로 이끄는 자연스런 대중 최면이다. 애국주의는 사회 단결력을 흐트러트리며 멋대로 튀는 것들을 억눌러 하나된 건강한 정신을 고취한다." 9.11 동시다발 테러는 미국에 '애국주의'의 진한 녹차를 선사했다. 이제 그 녹차의 효능이 자유주의 시민운동 진영에도 서서히 흘러들기 시작한다. 지난달 중순께 (뉴욕타임스)에 꽤 유명한 한 시민운동가가 글을 기고해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전자 신원카드를 왜 두려워하나'란 그의 칼럼은 녹차 덕을 단단히 본 경우다. 그는 잠재적 테러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지문 판독용 칩을 내장한 전자 신원카드의 도입을 난데없이 제안했다. 시민의 프라이버시 권리는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면서, 지금과 같은 위기시에 그 권리를 돌볼 여유는 없다며 전자 신원카드 도입의 당위성을 강변한다. 불과 두어 해 만에 급부상해 인터넷 시민단체로 자리잡은 프라이버시재단도 마찬가지다. 이 단체는 이제까지 디지털 녹화장치 티보에 의한 시청자 감청, 각종 첨단장치에 의한 노동자 감시 등 기업들의 최첨단 정보 수집 능력을 폭로해 언론의 큰 관심을 끌어왔다. 그런데 이 단체의 영향력을 좌우했던 한 활동가가 얼마전 안면 판독과 전자 신원카드의 개발을 주업종으로 삼는 보안업체를 차려 독립한 일이 생겼다. 어이없는 그의 기회주의적 행보로 이 단체의 장래가 아예 불투명하게 바뀌었다. 지금까지 몇 가지 사건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미 자유주의 시민단체들은 '애국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애국주의란 녹차의 효능에 더욱 취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수호가 애국주의의 고양과 별 구분없이 통용될 수 있는 허약한 이념적 기반을 갖고 있다. 게다가 소비자 중심주의, 대정부 로비 치중, 비대화한 조직 구조, 정치적 입지의 보수성 등 미 시민운동계의 고질적인 병폐들이 이들을 더욱 쉽게 애국주의에 휘둘리게 만들고 있다. 자유소를 순화시키는 녹차의 효능이 기가 막히게도 시민단체들에 먹혀드는 것은 바로 이런 정황에 기인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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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애국주의언론

전쟁과 애국주의언론 [한겨레]2001-11-10 06판 13면 1303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국의 미디어 재벌들은 지난 9월 동시다발 테러 이후 '애국전쟁'을 이끄는 여론조작의 확성기로 전락했다. 미국이 테러의 배후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의 녹화 테이프가 나간 뒤 공중파 방송사 간부들은 자성의 목소리로 앞으로 극악한 테러분자들의 '오염된' 메시지 송출을 자제하겠다고 결의했다. 국방부가 던져주는 철저히 제한된 전쟁자료나 받아서 얌전히 내보내겠다는 얘기다.대중매체들의 이런 태도는 도를 더해간다. 얼마 전 (시엔엔방송) 회장은 친히 해외 특파원들에게 돌린 편지에서 미국인들의 판단력을 흐릴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 양민 피폭 보도는 자제하는 대신 탈레반 정권의 극악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형평보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술 더 떠 (뉴스위크)의 한 칼럼니스트는 테러 혐의가 있는 사람에 대한 "고문을 진지하게 고려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악'의 소탕에는 인권도 하찮다고 언론이 거든 셈이다. 베트남전과 걸프전에서도 거짓 선전을 일삼던 미국 언론들이 지금도 그 고약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은 거세되고 광기만이 각종 지면과 스크린을 뒤덮고 있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전쟁에 비판적인 목소리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공갈이나 압력에 시달린다. 미 주간지 (더네이션)의 발행인 빅토르 나바스키는 최근 칼럼에서 시장 집중과 독점이 없어도 대중언론들이 지금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사회주의 저널인 (월간평론) 11월치는 미국의 범세계적 확장의 선전기구로 자리잡은 거대 언론들이 이번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이해에는 눈을 감고 감정적 애국주의에 편승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현 시점에서 이에 대한 대응은 대중매체들의 거짓 진술을 폭로하고, 전쟁 분위기를 되돌릴 수 있는 사회 저변의 연대라고 본다. 1990~91년 걸프전 때 중동 사막에 널브러진 주검과 관의 행렬이 미국민의 안방에 전달되는 것을 막았던 언론통제 조처가 오늘의 전쟁에서도 건재하다. 하지만 언론의 상황이 그때와는 아주 달라졌다. 인터넷이 급격히 대중화한 현실에서 포탄에 머리가 참혹하게 으깨져 숨진 아프간 어린이의 사진이 빛의 속도로 유통되는 것을 누가 어찌 막겠는가. 미 정부의 언론통제 작전도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매체에 적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미지 전쟁은 결국엔 정권의 신뢰성을 금가게 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한 보수 언론학자의 뼈있는 한마디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시는 뉴스에 집착 말고 전쟁에나 제대로 대처하라!"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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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만이 희망이다?

기술만이 희망이다? [한겨레]2001-10-27 01판 12면 1290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기술에는 사회적 '코드'가 내장돼 있다. 겉보기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듯하지만, 한 사회의 사회.문화적 지배 논리에 쉽게 이끌리는 것이 기술의 타고난 속성이다. 과학기술자들이 머리를 쥐어짜면서 독창적 기술을 고안하더라도 정작 그 선택과 방향은 사회의 중심 가치들에 의해 좌우된다. 기술 생성의 코드는 그만큼 한 사회의 지배 정서에 쉽게 굴복한다.미국 동시다발 테러는 무엇보다도 미국내 기술 발전의 코드를 확실히 '우향우'하는 계기가 됐다. 애국주의의 명분과 테러에 대한 일상적 공포감이 한데 뒤섞여 감시.통제 기술의 개발 붐을 불러오고 있다. '지연된' 후속 테러의 불안감을 최첨단 기술로 떨칠 수 있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일고 있는 것이다. 언론들은 연일 테러에 대비한 각종 기술 대비책을 제시한다. 보안 장비들을 판매하는 온라인 업체들은 가격 경쟁에 열을 올린다. 방독면.세균방지복 등 생화학 테러에 대비한 제품들은 동이 나서 못 팔 정도다. 때아닌 호재를 맞은 이동통신 업체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선 잘 터지는 휴대전화를 구입하라고 외쳐댄다. 경기 후퇴가 몰고온 대중 구매력의 쇠퇴가 테러 대비용 제품들의 헛된 소비로 반짝 빛을 발한다. 또한 첨단 기업들의 기술 개발은 군사적 목적으로 용도 변경된다.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대학의 한 생화학 테러 연구팀은 돈벼락을 맞아가면서 실험에 박차를 가한다. 한 디지털 잡지는 지금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테러에 노출된 현실에선 '기술만이 희망'이라고 여론몰이를 해댄다. 이렇듯 기술 코드의 심각한 왜곡은 준전시 체제에 기댄 정부의 정보통제 욕구에서 비롯한다. 최근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미 정부의 과도한 통제욕이 기술 발전의 경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공유 분산형 기술이 위축되고 각종 집중형 감시.통제 기술의 개발이 늘 전망이다. 역설적이게도 집중형 기술은 타격을 입을 경우 더 심각한 재난으로 돌변한다. 게다가 가상의 적을 막기 위해 개발된 기술조차 다시 상대에 의해 공격 수단으로 전도되는 경우가 흔하다. 문제의 해법에서 첨단기술이 능사가 아니란 얘기다. 테러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근본 원인은 이슬람권에 대한 미국의 잘못된 대외정책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현실은 원인의 치유는 멀리하고 부작용에 대한 액막이로 기술을 끌어들인다. 지금처럼 테러분자들의 씨를 말리려는 것도 상황 종결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같은 이치다. 잘 다듬어진 기술 수단조차 지나친 통제 욕구에 휘둘리면 기형으로 뒤틀린다. 허튼 진단에 부적절한 기술의 처방전은 액땜은 고사하고 독약이 되기 쉬운 법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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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가 감청당하고 있다

알라가 감청당하고 있다 [한겨레]2001-09-29 04판 08면 132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이달 초 미국 (뉴욕타임스)는 1면 머리기사로 세차례에 걸쳐 프라이버시(사생활권) 캠페인을 벌였다. 올해만도 50개 정도의 프라이버시 관련 법안이 의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 법의 입안을 앞두고 인터넷 감청의 위험에 대한 여론 환기용 특집 기사였다. 이제 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지난 11일의 동시다발 테러 직후 상원에서는 인터넷 감청을 강화하는 '2001 반테러 법안'을 단 30분 만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원을 포함한 의회의 공식 표결을 다시 기다리고 있지만 결과는 뻔해 보인다. 이번 법안 처리는 공청회나 청문회 등으로 의견을 수렴하던 관행에 비춰볼 때 '날치기'에 가깝다. 테러가 낳은 부정적 효과다. 테러 여파는 미국을 이른바 '경찰국가'로 바꾸고 있다. 민간 항공기를 '자살특공대'의 도구로 만든 테러범들의 잔인한 행태보다 위성과 인터넷 보안기술을 이용한 첨단 공작이 중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 감청, 바이오 감지기술 도입, 위성을 이용한 무선 감청 등이 기술적 대비책으로 거론된다. 앞으로는 일단 테러 용의자로 찍히면 법적으로 감시.구금에 제한이 없어진다. 영장 없이도 연방수사국(FBI) 직원들은 인터넷 감청기술인 '카니보어'를 비롯해 논란이 많았던 감시 장비들을 맘놓고 쓸 수 있게 됐다. 반테러법의 통과로 이제까지 비공식.불법이었던 것들이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감청 장치들에 대해 핏대 세우며 인권 침해를 거론하던 의원들이 국가 안보란 명분에 몸을 사리고 있다. 이런 애국주의의 '대중 최면' 가운데서도 관련 시민단체와 학계는 안보를 이유로 인권을 거래해서는 안 된다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온라인 감청 효과가 기대할 만한 수준도 못 되는데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시민권 침해의 악법으로 쓰일 확률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악법의 주표적이 미국내 아랍계라는 점이 비극이다. 테러에 대한 감정적 복수가 '눈먼 폭탄'으로 선량한 시민들까지 잔인하게 날려버리는 학살극을 초래할 수 있듯, 인터넷 감청의 강화는 얄궂게도 인종 차별에 기반한 사법 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테러 이후 아메리카온라인.마이크로소프트의 핫메일, 야후의 전자우편 서비스 등 대형 온라인 서비스 업체들에서 이뤄진 연방정보국 직원들의 대규모 감청이 전자우편이나 온라인 계정 이용자 가운데 주로 이름이 이슬람 유일신인 '알라'에 집중된 것을 보면 그 어처구니없는 효과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국의 모든 '김'씨처럼 미국의 모든 '알라'들이 테러범 혐의를 안고 살게 생겼다. 테러 후유증이 또다른 심각한 인권 테러로 번지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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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문명의 아방가르드식 경고

기계문명의 아방가르드식 경고 [한겨레]2001-09-07 05판 10면 1338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생시몽은 1820년대 초반에 새로 등장했던 급진적인 예술 경향을 '아방가르드'라 불렀다. 이 말은 줄곧 사회에 복무하는 예술의 해방적이고 선도적인 구실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다.아방가르드 하면 대개는 앞서 나가는 것, 보수적 장벽을 깨는 것,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때론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것, 시대 정서와 어긋난 것, 거부감이 드는 것, 자기만족의 엘리트주의로 똘똘 뭉친 것의 혐의를 받기도 한다. 다소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체제의 변방에서 선구적 예술 실험을 통해 자본주의의 물신화한 권력을 비판하는 촉매 구실을 톡톡히 해온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생존연구실험실'(www.srl.org) 또한 자본주의 기계 문명을 비판해오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대표적인 아방가르드다. 실험실은 1978년 '예술테러주의자'로도 불리는 마크 폴린이 문을 열었다. 이제까지 전세계에서 보여준 실험실의 공연들은 폴린과 함께 무보수로 그를 돕는 200여명 가량의 과학기술자들에 의해 꾸며졌다. 실험실의 외관은 쓰다버린 고철들의 수집소를 연상시키지만, 여기서 만들어내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기계장치, 이른바 '폭력기계'다. 50~60년대 프랑스에서 대중 통제요법으로 쓰이던 소음장비, 전쟁기계에 사용되는 거대 엔진과 엄청난 폭약장치 등이 폭력기계를 이루는 주요 부품들이다. 피칭머신, 고압축발사기, 러닝 머신, 신의 손 등으로 불리는 여러 종말론적인 기계들은 인간을 압살할 수 있는 힘의 상징 혹은 위협으로 등장한다. 대체로 관객은 공연 도중에 날아다니는 쇠붙이나 나무토막의 흉기들에 신체 위협을 느끼고, 고막을 찢는 거친 기계 소음에 멀미를 하는 등 낯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거대 기계의 폭력성 앞에서 기술 통제력에 대한 인간의 철없는 바람은 여지없이 깨진다. 공연의 목표는 의외로 간단하다. 자본주의 기계에 대한 공포심의 유발이다. 폭력기계가 관객에게 가하는 정신적 고문은 바로 기술 문명이 인류에게 자행하는 현실의 폭력과 일치한다. 안전은 고사하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기계 문명을 극복하고 인류 '생존'의 길을 다시 고민하자는 의도가 배어 있다. 전세계 치안 종사자들을 잔뜩 긴장시키는 이 아방가르드 실험이 어찌된 일인지 요즘에 더 성황이다. 경기 침체와 함께 과학기술자들이 부쩍 자신의 여가 시간을 반납하고 자진하여 실험실 폭력기계 설계에 몰두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법하다. 게다가 새로운 기술 문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에서 흘러나온 온갖 잡동사니들로 만들어진 최신 기계들이라 더욱 그 폭력성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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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닷컴에 되치기당한 야후

섹스닷컴에 되치기당한 야후 [한겨레]2001-08-31 05판 10면 135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도메인 이름이 인터넷 주소 할당 체계로만 기능하던 것은 오래전 얘기다. 컴퓨터 자판 놀림 하나로 전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세상에서, 도메인 이름은 소비자의 손끝을 다스리는 주술로 돌변했다. 힘있는 기업들은 닷컴 이름 앞에 얹혀진 그럴싸한 인터넷 주소들을 처음부터 자사의 상표로 선점하고, 유사한 도메인 이름을 강제 몰수하기 바쁘다. 말 그대로 거대 기업들은 도메인 이름을 통한 상표권의 독점적 확보에 열을 올린다.전세계 거의 2억 인구의 의식을 장악한 야후도 예외는 아니다. 야후닷컴에서 `야후'란 말을 변형하여 닷컴 도메인에 등록했던 `사이비' 야후들은 그 즉시 `오리지널' 야후의 호된 철퇴를 맞았다. 상표권 위반 혐의로 소송하겠다고 협박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사의 도메인을 수호하고 있다. 그런데 도메인 수호에 대한 집착과 자신감이 너무 지나쳤을까? 야후가 이번에는 '섹스닷컴'을 상표권 침해로 상대하려다 오히려 망신만 당하게 생겼다. 야후는 이른바 `와일드카드 도메인명 시스템'을 이용한 섹스닷컴이 자사의 상표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소송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인터넷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와일드카드 도메인명 시스템은 인터넷 이용자가 실수로 주소의 일부를 덧붙이거나 철자를 잘못 기입해도 가려던 곳에 자동으로 연결하는 '합법적 기술'로 알려져 있다. 야후가 문제삼은 것은 섹스닷컴으로 자동 연결했던 `yahoo.sex.com'의 세번째 하위 도메인 `야후'이다. 야후 이름을 무단 사용하여 섹스닷컴 사이트로 연결한 것은 야후의 공인된 사이트인 것처럼 행세하는 상표권의 도용에다, 저속한 섹스 사이트에 야후를 연결한 것도 명예훼손이라 주장한다. 이것이 야후의 선임 변호사가 섹스닷컴에 보낸 '협박' 편지의 대강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의를 불태우던 야후가 돌연 꼬리를 내렸다. 자동연결 서비스는 상표권 침해 사유가 아님을 눈치챈 까닭이다. 오히려 상황은 역전돼 며칠 전 섹스닷컴이 야후를 고소했다. 위법 여부를 명확히 밝히고, 이 기회에 야후의 위선을 폭로하자는 의도다. 올 초에 야후가 여러 청소년 보호단체들의 압력으로 포르노물 게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뒤로는 이를 계속 묵인하면서, 오히려 섹스닷컴이 자사의 이미지를 훼손했다며 닦달하려는 데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 청소년의 정신을 황폐화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섹스닷컴이 자유로운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정신을 더 잘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의 유연한 기술적 특성조차 상표권의 틀에 가두려는 야후의 눈먼 욕심이 거꾸로 호되게 당할 판이다.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보다 `음란 불건전' 사이트에서 인터넷 시대의 도덕적 교훈을 더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은 뼈아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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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닷컴 닷곤에 대한 향수

죽은 닷컴 닷곤에 대한 향수 [한겨레]2001-08-25 04판 10면 1368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운이 다해 스러진 '닷컴'(.com)을 빗대 '닷곤'(.gone)이라고 부른다. 닷곤은 신경제의 호시절이 갔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개별 닷컴 기업들의 사망을 뜻하기도 한다.닷컴의 죽음들이 늘면서 어떤 사이트는 연대별로 닷컴 저승 명부를 기록하기도 한다. 한 디지털 잡지는 죽은 닷컴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연재 코너를 만들었다. 이렇듯 새삼스레 닷컴 유령들을 불러들이는 까닭은 뭘까? 짐작하건대, 수없이 명멸했지만 경쟁과 도약이 가능했던 닷컴 전성시대에 대한 미련과 향수 때문일 것이다. 닷컴 거품과 함께 터져나온 닷곤 주변에 요즘 색다른 유행이 일고 있다. 최대 규모의 경매사이트 이베이에서 죽은 닷컴들의 유물들이 거래된다고 한다. 그것도 기이할 정도로 성황리에 팔린다고 하니 생전에 기 한번 제대로 못펴고 간 닷곤들의 맺힌 한이 조금은 풀릴 법도 하다. "인터넷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하게 살다간 닷컴 기업의 유물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대강 이런 문구로 수집가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경매 품목들은 다름아닌 죽은 닷컴의 회사 로고가 붙은 것들이다. 모자, 티셔츠, 머그잔, 가방, 마우스패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휴지조각이 돼버린 주식 권리증명이나 연말 결산서까지 비싼 값에 거래된다. 불과 한두 해 전에 활동하다 사라진 닷컴의 유물들이 그 즉시 값나가는 골동품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한시간 내에 무엇이든 신속히 배달하는 것을 자랑했던 코즈모(Kozmo.com), 온라인 식료 잡화점 웹밴(Webvan.com), 애완용 동물용품 판매업체 페츠(Pets.com), 장난감 공급업체 이토이즈(eToys.com) 등 그나마 좀 알려진 망자들의 유물이 더 후한 대접을 받는다. 이것으로 업을 삼는 전문 장사치도 활개친다. 언젠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예상 닷곤 후보들을 추려 캐릭터 상품까지 미리 사들이는 약삭빠른 부류도 합세한다. 속칭 닷곤 골동품의 매점꾼인 셈이다. 게다가 구매자는 차후에 더 값을 쳐 받을 수 있다는 야무진 꿈에 부푼다. 상품 물신의 전형적 모습들이다. 닷곤의 직원과 주식 소유자들이 한순간에 당한 허탈과 분노를 표현하면서 내다 팔던 것들이 돌연 닷컴의 살아있는 전설로 미화되고 있다. 그것도 쓰레기에 불과한 유물들이 수집상의 애장품 목록에 오른다. 어느 죽은 닷컴의 주식 권리증명을 어렵사리 큰 돈주고 구해 금박 두른 액자 속에 보관하는 진풍경을 앞으로는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허상인 가짜에서 만족과 위안을 얻으려는 소비 심리를 보통 '키치'라 한다. 닷곤 유물의 키치적 소비는 좋았던 옛시절에 대한 향수와 상대적으로 불확실한 닷컴 현실에 대한 심리적 위안에 발맞춰 조장된다. 조금 있으면 그마저도 없어질 닷곤의 싱거운 물거품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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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족쇄 전자감시

보이지 않는 족쇄 전자감시 [한겨레]2001-08-18 06판 10면 1279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흔히들 전자감시를 개인의 사생활 침해로 좁혀 해석하곤 한다. 하지만 감시는 개인보다 집단효과를 선호하고, 동시에 권력의 문제를 끌어들인다. 현대권력은 전자적 수단을 통한 '보이지 않는' 감시 덕에 그 반경을 넓히고 억압적 속성을 숨기는 재주를 터득한다. 후기자본주의의 고도화된 신체관리 기법으로 전자감시가 적극적으로 도입된다는 얘기다.직장에서는 노동자, 시장에서는 소비자, 공공영역에서는 시민으로 등장하는 대중들에 대한 권력의 통제방식에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노동자 감시가 극악한 노동통제 유형으로 군림하던 '테일러주의'를 더욱 과학화하는 것으로, 소비자 감시는 산업시대의 '표적 마케팅'을 고도로 전자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시민들에 대한 전자감시는 억압적 국가장치의 현대적 변형으로 자리잡는다. 지금처럼 신경제의 이해가 독점하는 시대에는 다양한 경제적 감시 기법들이 앞다퉈 실험된다. 소비자 감청 기술인 '웹 버그'도 그 중 하나다. 웹 페이지에 숨겨진 이 작은 벌레는 투명한 그림파일 형식 안에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을 담고 있다. 이 벌레는 부지불식간에 방문객의 접속 주소와 움직이는 경로, 브라우저 정보, 신상정보, 접속시간, 그리고 브라우저에 기록된 이용 흔적인 쿠키 값을 파악하여 정보 수집자들에게 전달한다. 해당 기업이나 전문 마케팅 관리업체는 이렇게 입수된 정보를 통해 소비자들을 분류하고 표적화하는 작업을 행한다. 웹 버그와 같은 기술적 장치는 최근 전자감시 경향에 비하면 아주 작은 사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 벌레들의 성장속도에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정보 관리업체가 기업들의 웹 버그 이용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100만개의 웹페이지를 무작위로 표본조사하여 얻은 결론은 지난 3년 전에 비해 현재 기업들의 웹 버그 이용이 다섯 배나 늘었고, 특히 상위 브랜드일수록 그 이용이 높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웹 버그를 기업들이 형식적으로 내세우는 소비자 프라이버시 보호정책을 위반하는 감시기술로 평가한다. 이 작은 벌레가 소비자의 정보들을 자동적으로 제3자인 마케팅 전문업체에 넘겨 관리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재미나는 사실은 이번 보고서를 발표한 곳이 관련 시민단체도 아닌 기업 브랜드의 이미지를 관리하면서 이익을 내는 사업체라는데 있다. 감시기법에 대한 사업선전용 보고서가, 몰래 웹 버그를 사용하는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폭로하는 문건이 된 셈이다. 의도야 어찌되었든 이번 보고서는 점점 심해지는 전자감시의 추세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선례로 보인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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