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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혁명 특별전

0815 야마, 제국에의 공격

 

: 고용안정센터의 셔터가 서서히 오르는 틈을 비집고 달려드는 일용노동자들.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달려드는 노동자들'의 그것. 일본은 정말 한국과 다를 바 없어서, 무서웠다. 그것이 곧, 우리의 일상적 풍경이 될 것 같아서. 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 같아서.

 

: 뱃노래가 그렇게 구슬피 흘러나올 줄은 몰랐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나는 왜 여기서 석탄이나 캐고 있나, 일본 가면 좋을 거라 누가 말했나, 일본 와서 살자니 배고파 죽겠네, 수레를 끌면 죽은 자가 끌려나오고, 천장을 보니 눈물만 나네, 강제징집 당한 어느 늙은 한인노동자의 노래 끝에 뱃노래가 흘렀다. 해질 무렵 강물 위로. 어기야 디여라 어기야 디여 어기 어차 뱃놀이 가잔다... 연주곡에 맞춰 낮게 따라부르는데 비석도 없어져가는 재일한인들의 공동묘지가 나온다. 노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는 일용노동자, 거기서도 차별 받는 한인노동자,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노숙자들. 제국은 그렇게, 한일 노동자들을 죽이고 있었다. 이제 산야 지역의 일용노동자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조차 없어 노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했다. 동경원정투쟁 때 보았던 늙은 노숙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붉은 깃발 아래 모여앉은 그들은 함께였지만, 분리되어 있는 듯 했다...

 

0815 주먹에는 주먹

 

: 단순명쾌한 선이 주는 발랄함.

 

: 이런 영화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되었다니, 부르삭 사장놈의 말처럼 프랑스인들은 '68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나 보다. 굳이 만사형통과 비교해 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카탈로그에 실린 평만 읽어도..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들이야 당연히 비판했겠지.. 유쾌하게 웃으면서 봤다.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인 줄 몰랐던 터라 더욱 신나게..



0806 치네지오날레

 

: 이탈리아 학생운동 그룹이 제작했다는 뉴스릴 3편.

: 1편을 보면서, 편집되지 않은 60분짜리 생필름을 보는 듯한 고역스러움을 겨우겨우 견뎌냈다. ㅡ.ㅡ 이탈리아어가 영어로 번역된 부분이 전체 20%도 안 되는 듯했고, 그걸 한국어로 번역(번역은 좋았다. 르노를 리놀트로, 시트로엥을 시트론이라고 번역한 영화도 있었으니...)했으니, 맥락은 겨우 이해해도 정확한 내용파악이 어려운 데다가, 촬영자가 초보였던지 당췌 멈춰있질 않는 거다. 일전에 보았던 오에 마사노리의 카메라는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지만, 이건 으... 안 그래도 멀미나는데 뒤에 앉은 프랑스인 두 명이 60분 내내 조잘대서 짜증나 죽는 줄 알았다. ㅡㅡ 오로지 기록했음에 미덕이 있는, 뉴스릴.

: 로마대학 학생들이 단대를 점거하고 있을 때 파시스트 그룹이 쳐들어오는데, 가히 전쟁이라 부를 만 했다. 경찰이 노동자, 학생 때려잡는 거야 뭐, 대한민국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고.. 하긴 G8 반대 제노아 투쟁 당시 영상을 보면 이탈리아 경찰의 폭력성은 말할 것도 없겠다.

: "대학은 우리의 피아트, 피아트는 우리의 대학"이라는 구호와 "우리의 베트남은 공장과 학교에 있다"는 피켓이 인상적이었음. (피아트는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 군인에게 얻어맞는 베트남인과 경찰에게 얻어맞는 이탈리아인을 교차편집한 장면이랑.

: 뉴스릴 2, 3편에는 일본이나 프랑스에서의 시위 장면도 보여주는데, 오프사운드로 이탈리아어 나레이션이 지겹게 깔리지만 번역되지 않아 뭐 알 수가 있나. 학생운동이 나아갈 바에 대해서 얘기했겠거니, 짐작할 뿐.

: 여튼 신기했다. 16미리 카메라 들고 열심히도 찍었구나. 누군지 몰라도.. 촬영자의 시선이 역사로 남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카메라를 드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아. 한없이 무거워지는구나. 현실을 가려볼 줄 아는 눈, 그게 아니라면 폭넓게 볼 줄 아는 눈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렌즈 청소 잘 해 줘야겠다는 생각도. ㅡ.ㅡ

: 리포트로 불거진 논란을 조만간 정리해야 하는데, 이건 결국 참세상에서 어떤 뉴스릴 작업을 할 것인가, 에 대한 대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겠지. 어차피 한순간에 정리될 것은 아니고, 이런 가설 하에 일정 기간 실험과 평가, 그걸 통한 수정, 다시 실험과 평가, 그걸 통해 발전해 나가겠지.. 고민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글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68년 5월 이탈리아의 거리에서는 bandiera-rossa가 불려졌더군.

 

0805 투쟁하고 승리하리라 / 서른 살의 죽음

 

68년 5월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표현방식으로 제작된 영화들을 보고 있다. 흥미로운 일이다. 98년 5월쯤, 68년 5월에 대한 레포트를 쓰기로 작정했을 때 이 영화들을 보았다면 좋았을텐데.

: 투쟁하고 승리하리라, 는 학생들의 봉기에 자극받아 기층부터 파업에 뛰어든 르노 노동자들의 5주 간 투쟁에 관해 다루고 있다. 그 과정 상에 드러나는 숱한 문제들에 대해 하나의 입장에 서서 정리하고 있는데, 그래선지 <유언>이 떠오르기도. 노동자 투쟁에 관한 한, 69년과 05년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자본가와 다를 바 없는 관료성을 드러내는 지도부, 기껏 일주일에 한 시간 감축과 한 시간에 62센트 임금인상을 위해 5주 간 파업한 건 아니라고 말하는 노동자, 노동자들은 처음엔 감자만 먹고 견디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고기를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하는 지도부, 6개월을 감자만 먹고 살더라도 투쟁하겠다는 노동자, 요구한 걸 다 얻진 못 했지만 이것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는 지도부, 침묵하는 노동자, 그리고 자본가와 경찰. (프랑스 공산당은 혁명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나온다)

: 서른 살의 죽음, 은 68년 당시 학생이었던 이들의 관점에서(대학생도 아니고 중고등학생), 그리고 감독이 자신과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이야기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더 쓰기 귀찮다.

: 화자들이 죄다 남성이란 점이 언제나 불편하다. 남성들이 끌고 가는 영화에 여성들이 비춰지고 등장하는 방식부터 무척 거슬린다. 아녜스 바르다를 보려면 여성영화제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고, 이런 특별전에서조차 보고 들리는 건 남성들의 목소리 뿐이라니.... 좀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의식적으로 여성들을 담아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뛰어나지 않아도 자꾸 뭔가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화나잖아. "미셸과 너를 기다려 식사를 준비하고..."라고 말하는 리벨륄르를 보다가, 연설하고 선동하는 미셸의 모습을 보면서, 고뇌하는 미셸이 과연 빨래를 했을까? 밥을 했을까? 청소를 했을까? 란 생각도 설핏 했다.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미셸이 오로지 운동에만 전념하도록 그를 돌봐주는 뭔가가 있었을 거다. 돌봐주는 뭔가가 없는 사람,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이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으려면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고 정말 부지런해야 된다구.

: 역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 역사와 철학, 그리고 영화. 그러려면 먼저 건강해지고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한데. 결국 하지 않겠다는 거냐?

 

0804 오에 마사노리 특집

 

S1번 S no.1 1967 5min 16mm
헤드 게임 Head Games 1967 10min 16mm
노 게임 No Game 1967 17min 16mm
살로메의 아이 Salome's Child 1968 7min 16mm
프레임의 사이 Between the Frame 1967 10min 16mm
거대사회 Great Society 오에 마사노리Oe Masanori & 마빈 피시먼Marvin Fishman 1967 17min 6 multi screen 16mm→DVD

: 집중과 배제, 자유, 동참... 맘에 들었던 초반 세 편의 뉴스릴을 보면서 내내 머릿 속에 맴돌던 단어들. 약간의 용기, 유치함을 견디고 끝까지 밀어부치는 곤조가 필요해. 거진 비슷비슷한 그림을 찍는 일을 1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제 카메라에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잔재주나 부리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겠지만, 그런 것에 대한 경계로 아무 것도 시도해 보지 않은 채, 너무 경직되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되는 거다. 마침 그러던 와중에 만난 이런 뉴스릴들은 숨통을 트이게 만든다. 최근 몇 번의 즐거웠던 촬영 경험을 떠올리며, 이제 그것들을 즐겁게 붙여보는 작업을 시도해 보자는 생각. 뭐, 허접하겠지.. 그래도 내가 즐거울 수 있다면, 신이 날 수 있다면, 숨이 트일 수 있다면.. 뭔들 못 할까.. 스토리텔링의 지나친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 거대 사회, 는 리플렛을 읽으면서 머릿 속에 그렸던 그대로의 작품 -  몽타주, 사운드의 충돌, 순간적인 침묵의 효과, 틸트 업다운의 불일치가 가져오는 조형적인 리듬. - 이었다. 실은, 편집증적으로 매달린다면 누군들 못 하랴 싶은, 그닥 대단하지는 않은 은유와 풍자의 꼴라주요 편집이다. 하지만 그는 '했다'는 차이가 있지. 오노 요코스러운 전위음악이 흐르면서 파편적인 푸티지들이 혼란 속에 어느 순간 통일감과 리듬을 만들어내는.. 시청각적 즐거움 속에 미제국주의와 60년대 반문화, 베트남전과 민권 운동까지 두루두루 짚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은 상상 속에 동의되는 '일본'의 느낌으로..

: 역사 속의 어느 한 순간에 카메라를 든 나는 어떻게 동참할 것인가. 대상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나는, 적어도 나의 감정의 기록을 충실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의 나는 그것을 통해서 혁명 운동에 동참하고 역사를 기록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맞나? 도저한 주관이 객관을 만나는 순간이 존재할까?

 

0803 작품 / 68년 5월의 청년 봉기 / 씨네트랙트

: 영화삐라라더니, 과연... ㅋㅋ 씨네트랙트에 대한 궁금증 : 1) 어떻게 배급되었고 당대 관객들(대중을 상대로 배급했을 것 같진 않고)의 반응은 어땠을까. 2) 현재적 시점에서 어떻게 응용, 활용될 수 있을까.

 

* cinetracts 관련 자료

http://www.garyelshaw.com/jlg/cinetracts.pdf#search='cinetracts'

 

0729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

: 한 번 더 봐야할 듯. 고다르의 딜레마로부터 정리해보는 나의 딜레마

: 나와 노동자, 나와 이라크, 삶에서 나의 개인적 투쟁과 사회적 투쟁.

: 집단제작이라는 것. 68 프랑스로부터 1999년 imc, 그리고 지금 우리들의 프로젝트.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고,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노동자계급과 단절되어 있지만, 미국영화에 대한 나의 투쟁은 노동자 계급과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내 영화를 보러 오지 않는다. 그것은 나와 베트남의 단절과 동일한 단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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