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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이별 영이별 / 김별아

단종의 비, 정순왕후. 열다섯에 시집와 열여덟에 남편과 생이별을 하고 여든둘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예순다섯해에 이르는 지워진 삶은 작가에게, 물음표 그득한 깊은 우물이었나 보다. 작가는 정순왕후의 입으로, 그녀의 마지막 순간으로부터 그녀가 낱낱이 지켜보았을 권력다툼의 이야기와 그 안의 인물들을 묘파해 간다. 다시 죽음의 순간, 단종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을 고백할 때까지, 삶은 사랑이고 사랑은 삶이니,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는 법구경의 가르침은 허허로울 따름이다.




"중이었고, 뒷방 늙은이였고, 날품팔이꾼이었고, 걸인이기까지" 했던 정순왕후에 대해, 그녀가 단종과 '영영이별 영이별'을 했던 영도교에 서서, 이 소설로 그녀의 혼을 위로하고자 했던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 기록된 역사는 '사랑을 잃고 힘을 얻기에 실패한' 여인들의 삶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있는 귀신'으로 지질하고 서러운 생애를 배겨낸 그녀들에게도 비밀스럽고 신비한 역사는 존재한다. p.5

 

또한 그녀의 시선으로 되살아나는 여성들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모두 연민의 대상이다.

 

- 세상에는 어찌하여 이토록 슬픈 여자들이 많은 것인지, 여자들의 슬픔이 넘치는 세상이 과연 정의롭고 평화로울 수 있는지 어리석고 둔한 저조차도 의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조선이라는 남자들의 나라에서 태어나 초라하고 값없는 목숨으로 살아가는 이들, 사라지는 모든 것들과 새로이 생겨나는 것들 전부가 남자들을 위해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영원한 그림자로 살아야 하는 여자들. 그들은 얼마나 더 구차하고 힘겨워야 하는지요? p.55

 

어릿하니 아프다. 정순왕후가 머물었다는 정업원이나 단종을 그리며 올랐다는 동망봉에 발을 한 번 디뎠으면 싶다.

 

- 살아가는 일이 온통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도, 죄를 짓고 벌을 받는 일도, 살아서 누리고 죽으며 놓고 가는 일도, 한번 빠져들면 쉽게 나올 길을 찾지 못하는 거대한 미궁에 갇힌 것만 같습니다. p.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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