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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a gracia / 길을 헤매면...

한글입력기 발견 기념 포스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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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참 헤맸다.
늘 헤맨다.
지도가 있어도 헤매고 없어도 헤맨다.
오늘은 버전이 다른 지도를 세 개나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나 헤맸다.
고되긴 하지만 길을 헤매면,
사람과 공간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체 게바라 뮤지엄에서 알따 그라시아 버스터미널까지 찾아들어가는 미련한 사람이 나 말고 누가 또 있을까?
너무 돌아가게 되는 거란 생각은 했지만,
금세 그 곳을 떠나기엔 하늘이 너무 파랬다.
그래서 걷기 시작한 게, 표지판 없는 길로 접어들면서 대낮의 조용한 주택가를 헤매게 된 거다.

 

어느 놀이터를 지나다 한 소녀에게 길을 물으니, 제 어머니인 듯한 여인을 데려 온다.
여인은 길을 한참 일러주더니, 알따 그라시아가 맘에 드는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본다.
의례적인 대답을 하고, 남한에서 왔다 하니,
여인을 비롯해 곁에 있는 세 명의 소녀가 한꺼번에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열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던 꼬마는, 한국이란 나라를 들어보기나 했을까..
문득, 뿌에르또 로뻬스에서 보았던 어린 소녀들이 떠올랐다.
놀이터 하나 없는 동네, 그 먼지 날리는 길에서 아이들은 빈 골대에 매달렸다 내려왔다를 반복하며 까르르 까르르 웃어대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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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골목마다 사람이 산다.
언제라도 내게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이 도와줄 것임을 안다.
그래서 어느 골목을 헤매더라도 나는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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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따 그라시아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터미널이라면 주변 상가와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여긴 정반대였다. 왼편으로는 조용한 주택가가, 오른편으로는 개울이 흐르고 나이 많은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잔디가 있어, 풀 뜯는 말들과  강아지 데리고 산책 나온 가족들, 공놀이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동화 같은 길을 걸어 한적한 터미널에 다다랐고,
첫 손님으로 버스를 탔다.

 

한켠으로 기우는 해가 따뜻했다.


 

알따 그라시아 버스터미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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