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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zco / 후안과 세르히오, 어떤 만남

triunfo 길로 접어들어 plaza san blas로 향하는 길,

한 소년이 엽서를 들이밀었다.

 

물이나 엽서, 민트껌, 티슈 같이 어차피 사야할 것들이라면 가능하면 거리에서 사는 편이다. 여행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소비일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소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실은 웃기는 고민을 하게 된다......

 

여행 초기 에콰도르 어딘가에서 만난 꼬까다 장수한테서 꼬까다(전통약식처럼 생긴 달콤한 코코넛 과자)를 산 후부터, - 에스메랄다 출신으로 보이는 그는 흑인이었는데, 안 그래도 검은 피부가 따가운 태양빛 아래 더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날따라 피곤했던 나와, 어쩌면 사는 일이 피곤했을 그는, 서로 한 마디 말도 없이 꼬까다와 동전 하나를 교환했다. - 거리에서 소모품들을 사기 시작했는데... 때로는 인디헤나 할머니로부터 바가지를 쓰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짜증내는 소녀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하고 있다.



소년에게서 세 장인가 엽서를 사고 나자, 함께 있던 좀더 어려보이는 다른 소년이, 이번엔 자기 차례라며 자기 것도 사란다. 물리치려다가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하고서 세 장을 또 집어들었다. 그렇게 18살 난 후안과 11살 난 세르히오를 알게 됐다.

 


광장에 앉아 있는데, 어느 덧 이 녀석들이 내 옆에 다가와 앉더니 말을 건다.

 

한국에서는 한 달에 얼마나 벌어?

내 사정을 얘기해 주니, 세르히오는 한 마디 툭 내뱉는다.

꾸스꼬에서는 한 달에 100솔 벌어.

 

잠깐 냉소를 짓는 듯 하더니, 다시 귀여운 소년의 표정으로 돌아와 내 여행루트를 물었다. 여기, 저기, 거기, 그리고 한국. 세르히오는 부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꾸스꼬 밖에 몰라.

 

한국은 예뻐?

무지 작은 나라인데, 예쁜 곳이 많아.

힘도 세고?

글쎄, 그런가? 몰라.

페루는 큰 나라지만 아무 것도 없어. 대통령도 나빠. 돈을 훔치거든. 그리고 모든 게 비싸지고 있어.

 

곁에 있던 후안이 문득, 넌 참 친절하구나. 서양애들은 돈을 안 써. 라고 말했다.

 

난 애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소년에게 친절함의 기준은 엽서를 사느냐 마느냐에 있었고,

소비만이 관계맺음을 가져오는 관광지의 논리가 참 슬펐다.

 

소년들과 얘기하는 도중 내게 다가온 한 언니로부터, 조카에게 줄 작은 손가락 인형을 몇 개 샀다. 야마랑 새랑 달팽이였던가.

몇 분 후, 같은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왔다.

곁에 있던 소년들이 나서서, 그거 이미 샀다고 얘기하자,

한 걸음 물러선 아주머니는 mierda(shit)라고 말했다. 왠지 가슴이 철렁했다.

 

p.s 아이들을 만난 그 주 토요일, 그 애들과 함께 근처 유적지 몇 군데를 다녀왔다. 양떼가 지나가고 유칼립투스 숲이 아름다운 길을 자전거로 스쳐 지나는 기분이란... 뭐라 말할 수 없을만큼 상쾌하고, 행복...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은 즐거웠지만, 헤어지기 직전 우리는 서로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명확히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내가 준 사례비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고, 내가 생각하기에 아이들은 내게 너무 많은 걸 바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것임을 예상치 못 했던 것은 아니나, 알고 있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은 늘 다르다. 아이들의 반응을 예상했었고, 거기에 마음 다치지 않으리라 다짐까지 하고 나선 길이었는데, 결국은 우울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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