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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7~09

1. 7일 저녁

아주 심한 감기에 걸렸다.

3일에 비맞고 생중계한 거, 그 다음 날 비 뿌리는데 영광사 오간 거며..

거의 한 달 동안 제대로 못 자고 못 먹은 거며...

여러가지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거 하며..

아마도 한꺼번에 터진 모양이다.

 

지금 사무실은 엄청나게 바쁘다.

나야 아프다고 현장도 안 나가고 사무실 일도 넘기고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부분 정도를 담당하고 있지만(안 해도 표 안 날 거다)...

다른 사람들은.. 게다가 생중계 자활로 뛰고 있는 친구들은 정말이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참 이 와중에 아픈 게....

 

이런 심한 감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여행 갔을 때 페루에서 한 번, 볼리비아에서 한 번, 감기를 심하게 앓아 하루종일 침대 속에서 끙끙댔던 걸 제외하면... 지금 감기는 거의 그 때 수준이다...

전철역에서 나올 때, 심지어는 허리 굽은 할머니보다 더 천천히 올라왔다.

 

동대문운동장 역에서 5호선을 향하는 동안..

익숙한 안데스 음악을 들었다..

댕기머리 곱게 딴 걸 보니.. 혹시 오따발로나 그 근교에서 넘어 온 분은 아닐까... 

어디서 오셨어요.. 물어보고 싶었지만..

목도 아프고 그냥 지나왔다..

안데스의 선율이 등 뒤에 가늘게 꼬리를 늘이는 동안...

문득 눈물이 났다..

 

2. 8일 새벽

다시 새벽이다. 어제 오전만큼 아프지는 않지만 나가서 뭘 할 정도의 상태는 못 된다.

몇 가지 작업 구상이 있었는데 하나도 못 할 것 같아 속상하다.

... 지금 광화문에서는 전경들이 진압에 나섰다.

 

3. 9일 새벽

전날 9시부터 잠들었다가.. 1시 반쯤 깼다. 오락가락 하던 열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오랜만에 두 끼를 먹어서 그런가, 속이 안 좋다. 언제 다시 잠들 수 있을지 걱정이다. 병원에 들렀다 사무실에 가야 하니까 늦어도 11시엔 움직여야 하는데.. 8시나 되어서 다시 잠들면..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 세계에서, 낙하.

 

49페이지의 저 문장을 제외하고는 <흙 속의 아이> 별로다.

여유가 생기면 히구치 이치요나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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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0

1.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쳐서 따뜻한 밥이랑 먹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맛이 없어도 혼자 먹어도

난 내가 한 밥을 내 방에서 먹는 게 제일 좋다.

어군 구박하면서 요리해서 어군이랑 같이 먹으면 더 좋겠지만.

 

이 국면이 시작되기 두어 주, 어쩌면 한 달 전쯤부터

평화로운 밥을 먹지 못 했다.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쳤다.

넌 왜 그리 빨리 지치느냐, 왜 그리 활동에 지속성이 없느냐 물으면

할 말 없다.

나한테 실망해도 할 말 없다.

 

평화로운 밥 한 끼, 내가 해서 내 입에 넣어주고 싶을 뿐이다.

 

2.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악연이라 한다.

당신과 나는 악연이다.

그 전에도 당신과 나의 악연은 충분히 길었다.

오늘 또다시 당신의 이름을 듣는다.

 

대책없이 마음 놓아버린 열아홉의 나를 탓해야 하는 건가.

 

3.

섭섭함. 미안함. 자괴감. 온몸에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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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캉테의 the class가..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한다.

로랑 캉테는 <인력자원부>의 감독.

그래서 당연히 the class를 계급이라 생각했는데, <교실>이란다. ㅎㅎ

이민 온 노동자계급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소우주를 통해

다양한 모순들을 드러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

와... 보고 싶다.

이건 다큐 같은 극영화라는데, 다큐여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다큐는 극영화에 비해 훨씬 어려운 접근이 되겠지..

 

암튼 로랑 캉테 감독이 했던 말,

 

“요즘은 영화들이 사회문제, 노동문제에 대해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하자고 생각했다. 어떤 사회적 그룹과 그 안에 속한 개인 사이의 갈등은 나의 주된 관심사이다. 노동자 계급을 택한 건, 그런 갈등이 더 부각될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 잠깐 잠들었다가 깨버렸다. 며칠 새 리듬이 깨진 탓이다.

    다리는 온통 멍투성이고 어쩐지 마음도 멍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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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7

예상치 못 했으나, 또 밤을 샜다.

이번에는 거의 끝까지 붙어 있었다.

지하철 지붕 위로, 중간쯤 위로, 바닥으로,

주변의 여러 사람들 도움으로 오르락내리락 열심히 뛰어다녔건만,

눈에 딱 띄는 장면은 하나도 잡아내지 못 했다.

하나쯤은 걸려주면 좋으련만, 이게 뭔 지랄인지.

 

시위대 맨앞에 같이 껴서 밀리고 밟히고 하다가 신발이 두 짝 다 벗겨졌다.

양말발로 지하철에 올라가서 다시 촬영하는데,

신발 잃어버렸어요?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짝이 돌아오고, 또 한 짝이 돌아왔다.

 

새벽 4시가 넘어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묻는 말,

아까 신발 잃어버렸어요?

네, 했더니, 자기가 그 신발 찾았단다.

 

촬영분을 보면 난 역시 안 되는구나 싶어 우울하지만,

신발 일이 재밌었다.

그리고 옷 찢어져서 인터뷰 했던, 8월에 미국으로 유학 간다는 친구.

잠깐 쉬는 타임에 같이 얘기했는데, 참 좋았다.

전경에게 맞고 끌려가는 동안에도 상황을 객관화 하고 있었다며

왜 나는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걸까? 얘기하던 그 친구가..

멋진..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한 후배 둘 중 하나가 잡혀갔다.

바로 나올테지만 맘이 안 좋다.

 

장기전.... 정말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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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5

밤의 평화는 순식간에 새벽의 전투로 바뀌었다.

 

처음 거리의 맛을 느낀 사람들은 한없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새벽 4시까지 그러했다.

그러나 그 후 두 시간 동안 공권력의 공포 앞에 처음으로 내던져진 그들은,

참 많이 울먹이고 있었다.

방패 앞에 스크럼 짜고 있는 사람들에게 초컬릿을 하나씩 쥐어주던 한 여성은

전경들이 순간적으로 압박해 들어오자 그 자리에 얼어붙어 비명을 질렀다.

움직이지 못 하는 그 사람을,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든 채 인도 쪽으로 잡아끌었다.

 

사람들이 많이 놀랐다. 2008년에 가당키나 한 일이냐며.

거의 매년 공권력에 의해 사람이 죽어나간 것을 몰랐던 이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순수한 시민'

이들이 집시법 개정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 놀랍고, 약간은 설레는 일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 하고 누구도 감당할 수 없게

사람들은 뛰쳐나오고 달려가고 있다.

이것이 '역사'인가 싶은 요즘이다.

 

+ 현장을 놓쳤다. 예측할 수 없으면 끝까지 붙어 있어야 한다는 걸 또 이렇게 확인한다.

역시 체력 싸움이다. 죽어라 해도 우린 게으르다는 소리나 듣는다.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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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4

코엑스에서 세계인형전 같은 걸 하고 있나 보다.

가 보라고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 얘길 들으니 문득 생각난 건데,

중 3 여름방학 때 엄마랑 오빠랑 셋이서 서울이랑 대전구경을 갔었다.

원래 엄마 예산으로는 서울만 가거나 대전만 갔어야 하는 건데,

대학 구경도 시켜줘야겠고, 엑스포 구경도 시켜줘야겠고 해서

엄마 딴에는 무리를 했던 것 같다.

그 때 셋이서 지도 펼쳐 들고 서울 시내를 누비고 그랬었다. ㅎ

 

대전엑스포에 가서는 국제관만 구경했었다.

정말 신기한 것도 많고 재밌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면, 엄마가 엑스포에 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엄마랑 같이 우수아이아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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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3

 

1년 전의 나는 에콰도르 로하로 넘어가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모린이 더는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면서.

안에서 열 수 없는 문바깥의 운전사와 얘기하고 싶으면

노크하는 것보다 동전으로 톡톡톡 치는 게 낫다는 것도 그 날 배웠다.

 

유난히 빛이 좋은 계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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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8

세 군데 발품 팔았다. 두 군데 들렀을 때부터 허리가 아프더니, 두 군데에서 세 군데 째로 가는 동안에는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나간 길이라 심지어 시청 역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한 20분 잠을 청했다. 올록볼록한 부분만 없었으면 아예 드러누워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건 울고 싶은 거랑 비슷한 심정이다. 오가면서 간혹 고갯짓으로 인사하거나 눈짓으로 인사하거나 '안녕하세요' 하고 소리내어 한 인사까지 얼추 열 번? 그 중 몇 번은 안 해도 되었을 인사였고 몇 번은 상대가 나를 알아보지 못 했다. 전에는 사람 기억하는데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재주가 있다. 것도 남들보다 훨씬. 심지어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도 잘 한다. 그리고 나를 어쩌면 알 지도 모를 사람인 걸 알더라도 사실은 나를 모르길 바라면서 모르는 척 한다. 다 겁이 많은 탓이다. 말을 하게 될까봐. 나는 때로 누가 말만 붙여도 얼굴이 빨개진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오늘, 역시 나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약간 뒤쪽에 떨어져 있거나 앞쪽을 오가거나 옆에서 서성인다.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사람을 대하는 일에 관한 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던, 대학 시절 이후부터,

똑바로 다가가 코가 닿아도 괜찮을 만큼 알게 된 건 딱 세 사람이다.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한 사람이 채 안 된다.

 

섭섭할 것 없는 한 철이 지나고 또 오고 있다.

 

피곤하면 잠이 안 온다.

하루 뒤에 잠이 쏟아진다.

 

재작년엔가 죽었대.. 하고 두세 다리 건너 두서없이 건네지는 소식, 이 내 것이었으면 한다.

명랑.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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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람포 / 데이빗 맥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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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치는 강가에서 / 온다 리쿠

'짧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겠다.

 지금은 없는, 굽이쳐 흐르는 저 강가에서 보낸 소녀들의 나날.

 아무도 모르는 그 이야기를,

 지금 너한테만.'

 

지금 너한테만. 이라는 문구로부터 휩쓸려 들어간다.

 

무기력한 오후. 그나마 책을 읽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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