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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세계사회포럼을 가다 ①

 

나홀로, 먼길을 떠나다

 

* 이 글은 참소리에 연재하고 있는데 한달이 다 지나가도록 이제 세편을 썼답니다. -_ㅠ 아직도 세편이 남았는데....


<편집자 주>제5회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이 지난 1월 26일부터 31일까지 5박 6일의 일정으로 브라질 남부의 포토 알레그레라는 소도시에서 열렸다. 2001년 브라질 좌파 활동가와 대중조직들을 중심으로 처음 제안된 세계사회포럼은 다보스 포럼 등 자본이 주도하는 반민중적인 세계화에 저항하기 위해 처음 시작됐으며, 해가 지날수록 세계 각국의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민중들과 활동가들의 열광적인 지지와 참여를 얻었다.

 

‘경제적 빈곤과 차별 강화’를 주요 의제로 다섯번째 열린 이번 포럼에 참석한 15만명(세계사회포럼 조직위원회 추산발표)은 각기 다양한 토론 등을 통해 세계화 반대, 빈곤국가 외채탕감, 이라크 전쟁 반대를 외쳤다. 약 150여명의 한국 참가단도 여러 포럼과 캠페인, 집회 등을 통해  FTA에 대한 아시아 민중의 공동대응, 전쟁반대, 파병군 철수 등을 비롯한 3.20 국제반전행동 등 아시아민중행동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성과를 이뤘다.

 

기자는 한국 참가단과는 별개로 세계사회포럼의 주요 후원단체 중 하나인 프랑스 CCFD의 초대로 포럼에 참가하게 됐다. 이 글은 세계사회포럼 참가기를 포함해 포럼 시작 전 일주일간 브라질 운동단체들과의 교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접한 브라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위해 작성된 글이다. 언어 문제 등 여러 조건의 문제로 세밀하고 자세한 이야기보다는 개괄적인 분위기와 개인적인 감상에 그칠 지 모르지만 브라질에서 느꼈던 여러가지 생각꺼리들이 독자들에게도 조금은 공감대를 불러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며, 총 6회에 걸쳐 연재한다.




비행기 좌석에서 쥐가 나도록 다리를 웅크리고 앉아 있은 지 10시간. 목적지인 브라질에 도착하려면 두 시간 후에 갈아타서 12시간을 더 가야 한다. 업무처리와 여행 준비 때문에 며칠 날밤을 샌 터라 처음엔 잠을 푹 잘 수 있었지만 이젠 눈이 말똥말똥 해져서 비행기 밖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창가 쪽으로 좌석배치를 받은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내가 브라질로 홀로 떠난 이유

 

브라질 세계사회포럼 참가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정됐다. 세계화에 따른 빈곤과 인권문제를 다루고 있고 세계사회포럼의 주요 후원단체 중 하나인 프랑스의 가톨릭 국제연대 단체인 CCFD(Comite Catholique Contre La Faim Et Pour Le Developpement)는 지난해 인도 뭄바이에서 4회째 열렸던 세계사회포럼에 문정현 신부님을 초청했었고, 문정현 신부님은 활동가인 오두희 선배님과 함께 인도를 방문했었다. 올해 역시 CCFD는 문 신부님을 초청했지만, 평택 미군기지 싸움이 긴박해지고 있고 평화바람 활동으로 몸이 많이 안좋아지신 신부님은 다른 젊은 사람을 추천하기로 했다.

 

기왕 평화운동을 함께 한 동지가 참석하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고, ‘기자의 의무’로 돌아와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는지 나에게 제안이 들어왔다. 가는 데만 하루가 넘게 걸리는 먼 거리에 한국 사람으로는 딱 한명이 가야 하니 심적인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었고, 처음엔 ‘한번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해외에는 일본 단체방문에 꼽사리를 끼어서 1주일 편하게 가본 경험밖에 없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은 기회겠다 싶어 다른 사람 추천하려던 상황을 뒤집고 ‘내가 가겠다’고 사정을 해 브라질 방문이 결정이 됐다.

 

해외를 꼭 가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결정을 하고 나니, 준비기간이 2주일여밖에 남지 않았다. 20여일의 긴 공백에 대비하기 위한 참소리 업무 이월작업, CCFD에 선물할 용도로 오두희 선배님이 촬영한 작년 인도방문 기록영상을 편집하는 작업, 세계사회포럼과 브라질 현황에 대한 사전자료조사, 그리고 해외여행에 기초적으로 필요한 생활영어 공부 등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낯선 이국땅, 브라질

 

▲세계사회포럼 중 열혈 룰라 지지자로 보이는 이들의 행진.
브라질은 나에게는 무척 낯선 나라였다. 개인적으로 서양의 문화와 역사에는 통 관심이 없는지라, 축구황제 펠레가 있다는 것과 노동당(PT)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돼 좌파정권이 들어섰다는 것 정도밖에 사전지식이 없는 머나먼 땅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조사해보니 나 하나만 아니라 한국과 브라질의 관계도 그러한 듯 했다. 미국으로 직행하는 비행기는 수도 없이 많지만 한국에서 브라질까지 직통하는 비행기 편은 하나도 없다. 미국이나 유럽을 거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만 도착할 수 있는 나라. 정보를 찾기 위해 서점을 들러보고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문화, 역사, 생활상이 자세하게 나오지만 남미의 개별국가에 대해서는 지극히 형식적인 관광정보 뿐이다. 전문관광책자도 남미만 유독 없다. 그만큼 브라질은 먼 나라였다.

 

그런 나에게 눈에 들어온 정보는 ‘브라질은 치안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여행자 티를 별로 내서는 안된다’, ‘차를 타고 갈 일이 있을 때는 총을 맞을 수도 있으므로 꼭 창문을 닫아야 한다’는 무서운 얘기들 뿐. 그날 밤부터 나는 해외에 나가 객사하거나 미아가 돼 정처 없이 떠도는 악몽을 꿨다.

 

그래도 브라질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을 몇 개 찾을 수 있었다. 먼저 해년마다 세계사회포럼 한국참가단을 조직해왔던 단체 중 하나인 사회진보연대에서 내놓은 자료집을 보며 브라질의 정치현황이 우리나라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똑같이 IMF를 겪었고 경제위기가 닥쳐 있으며, 비교적 진보적 성향이라 할 수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룰라 좌파정권이 들어선 시기가 유사하며, 그 후 정부가 펼치는 정책들이 국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우편향적인 성향을 보이며 많은 비판을 얻고 있다는 점 등이다. 물론 노무현과 룰라를 동일선상에 넣고 짜맞추는 것이 무리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한국의 보수언론들이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면서 인용하는 것이 좌파정권 룰라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정한 동일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세계사회포럼에 직접 참가해 분위기를 파악한 후로는 좌파성향 민중들의 룰라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한국에 소개된 것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
또 한편의 자료는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송기도 교수가 쓴 책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였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야 구할 수 있었던 책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며 읽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이 남미를 방문하기 전 필독했다는 이 책에는 미국 중심의 시각으로 왜곡된 남미를 남미의 눈으로 재해석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미국, 영국 등 강대국들의 침략사와 남미 각국의 독립과정과 정치적 특수성 등을 구체적인 사례들과 함께 엮어서 편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영어! 영어!! 영어?

 

해외로 떠나는데 또 한가지 두려움은 언어 문제였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해 10년을 넘게 영어를 배워서 읽는 것과 듣는 것은 가능하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How do you do'라고 해야 할지 ‘How are you'라고 해야 할지도 헷갈릴 정도로 영어는 나에게 익숙지 않았다.(문제투성이 한국 영어교육의 산실이 바로 나.) 부랴부랴 영어회화책을 장만하고 회화 테잎을 들었지만 2주일안에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경유지인 영국까지 12시간을 비행하는 동안에는 걱정이 없었다.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가니 한국어만 써도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영국 공항에서 내린 후부터는 도움을 구하려면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 영국 공항은 네 개의 건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브라질 행 비행기를 타려면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아시아나 항공사에서 쥐어준 공항 약도를 들고 직원 한명에게 “How can I go to terminal 3?”라고 더듬더듬 말을 걸었다. 내가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처음으로 말하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 대머리의 험상궂은 인상의 영국인은 의외로 친절하게 ‘15분후에 버스가 오니까 타면 된다’고 답해줬다. 그때의 감동이란...

예매권을 가지고 티케팅을 하는 창구에서도 ‘Yes', 'No'만을 사용하며 무사히 표를 끊고 브라질 행 비행기를 무사히 탄 후에는 ’문제없어‘라며 자신감이 가득 차게 됐다. 그러나 창피한 에피소드는 비행기 안에서 생겼다. 스튜어디스가 틈만 나면 식사와 음료수를 제공하는데, 뭘 마시겠냐고 물어서 나는 자신있게 “커피!”라고 대답했다. 브라질에 살고 있는 일본 여성으로 보이는 스튜어디스는 못 알아듣겠다며 다시 물어본다. 액센트의 문제였다. ’코피‘라고 발음하고 ’피‘에 강세를 줘서 발음해야 했던 것이다. 당황한 나는 움츠러들었다. 스튜어디스가 다시 뭐라고 물어보는데 ’Where are you from?(어디에서 왔냐)'이라고 물어본 듯했다. 자신있게 “I'm from Korea”라고 답했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아뿔싸! ‘(커피에) 프림을 넣겠느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작은 사고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스튜어디스가 또 음료수를 들고 오면서 “뭘 먹겠냐”고 물어봤다. 나는 “콜라”라고 말했다. 스튜어디스가 “쿠울라?”라고 다시 물어봐서 “예스”라고 했더니 ‘구알라’라고 하는 브라질 산 탄산음료를 건네 줬다. ‘코카콜라’, 혹은 ‘코크’라고 말했어야 했나보다.

 

한국을 떠난 지 30시간 만에 목적지인 브라질 쌍파울로에 도착했다. 브라질 입국 절차는 입국신청서와 여권을 넘기기 전에 입국창구에 늘어선 줄 사이에서 안내요원들이 미리 입력사항을 체크해줘서 한국 출국 절차보다 훨씬 간편했다. 이제 출구에서 기다릴 CCFD 사람만 만나면 무사히 도착완료였다. 만나서 건넬 영어 문구를 미리 생각해둔 후 나가니 ‘CCFD'라고 쓰인 안내판을 들고 있는 중년 여성이 보인다. 반갑게 아는 척을 하며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니 브라질 여성은 더듬더듬 말한다. 자기는 영어를 못한다고...

 

그 여성은 공항을 나와 영어통역을 해줄 이탈리아 여성 안나를 소개시켜 줬다. 나 외에도 다섯 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는데, 베트남, 알제리, 남아프리카 등에서 왔고 그들은 모두 프랑스어를 쓰고 있었다. CCFD 소속 회원들과 세계 각국에서 온 20여명의 사람들을 합해 총 50여명이 있는데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브라질에서 사용하는 포르투갈어,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으며, 영어를 쓰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딱 세 명이란다. 영어 문구 몇개를 공부해 가면 20일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으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어긋나버렸다.

 

브라질에서의 첫날 : CCFD 사람들과의 만남

 

영어를 모르는 브라질 여성 두 명이 모는 차를 타고 쌍파울로 시내로 향했다. 도시의 외곽은 도로 한쪽은 높게 세워진 빌딩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다른 한쪽은 낡고 허름한 주택들이 황량하게 서 있어 대조적인 인상을 줬다. (스프레이로 온통 낙서가 돼 있는 주택가의 외관은 더욱 빈곤한 느낌을 받게 했는데, 브라질의 낙서문화는 의미없는 문구에서부터, 소규모 상가들의 홍보수단이자, 나아가서는 브라질 젊은 층의 정치적 표현 예술임을 도시 곳곳을 둘러보며 알게 됐다.) 처음에 시내로 들어가면서는 쌍파울로 도시의 규모를 전주 정도로 예상했는데 도시 중심부로 들어설수록 서울 못지않은 커다란 도시라는 걸 느끼게 됐다.

 

도착한 곳은 공항에서 차로 약 30분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는 ‘Solidarity Center'라는 카톨릭 교육관이었다. 방을 배정받았는데 룸메이트는 베트남에서 온 ’칭‘이라는 젊은 여성이었다. 나와 같은 나이인데 베트남의 한 대학에서 프랑스어 교수를 하고 있는 이 능력있는 젊은 여성은 영어를 아주 잘하고 브라질에 있는 동안 꼬박 룸메이트로 함께 생활하며 큰 도움을 줬다.

 

▲CCFD 참석자들과 함께 한 오리엔테이션.
짐을 풀고 점심식사를 하고 나자(브라질도 쌀을 주식으로 하고 콩으로 만든 죽같은 스프를 밥에 비벼먹는데, 쌀이 길다랗고 푸석푸석할 뿐 한국에서 먹던 밥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아 음식문제로는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곧바로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큰 세미나실에 의자를 빙 둘러놓고 서로 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CCFD 소속의 회원들, CCFD와 교류하고 있으며 브라질의 실업운동, 여성운동 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남아프리카의 빈곤운동단체에서 온 사람 등 50여명이 차례대로 자기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막바지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온몸에 식은 땀이 흘렀다. 나를 소개할 영어 문구는 미리 준비해놓지 않은 것이다. 그제야 머릿속으로 단어를 꿰어 맞추기 시작했다. 드디어 순서가 다가오고 나는 경직되고 어정쩡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

 

“Nice to meet you. I am In Hwa. I came from Korea, Jeonbuk province, I am a media activist. I am a reporter of internet newspaper, at Jeonbuk province. I'm so nervous, because I don't know french, spanish, even I am not good at english. but i'll try and try, and will show your organization, and your activities by movie, photo, and articles, to Korean people. Thank you.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 전북지역에서 온 최인화라고 합니다. 저는 미디어 활동가로, 전북지역 인터넷 신문사의 기자입니다. 무척 긴장됩니다. 왜냐면 저는 불어도 모르고, 스페인어도 모르고, 심지어는 영어도 잘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한국사람들에게 여러분의 활동을 영상, 사진, 글로 전하겠습니다. - 전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인데 문법이 맞는 줄도 모르고 그냥 내뱉었다.)"

 

소개 시간이 끝나고 나자, CCFD에서 마련한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참가자들의 기대를 대자보와 퍼포먼스로 표현하는 코너가 진행됐다. 통역자 안나, 남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즈와인, 룸메이트 칭 등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 네명이 함께 구성된 우리 팀은 ‘연대’를 주제로 여러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는 그림을 그리고 바닥에 씨앗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다른 팀들도 각기 이색적인 퍼포먼스를 준비했는데 한 팀은 각자 허리띠를 풀러서 대자보에 천처럼 지그재그로 엮어놓고 모두 기차놀이처럼 줄을 늘어섰는데 늘어진 허리춤을 뒷사람이 추켜올려주는 방식으로 해서 행진을 벌여, 멋진 아이디어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인권교육 혹은 교류 프로그램이 짜임새 있게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이어서 세계사회포럼 전에 진행될 프로그램과 생활하면서 필요한 정보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앞으로 1주일간 브라질 정치현황과 쌍파울로에 있는 실업운동, 땅없는 사람들의 운동에 대해 설명회를 갖고 직접 현장을 방문한다고 했다.

 

▲브라질 젊은이들의 흥겨운 공연.

 

저녁식사를 마친 후 각국에서 온 이들을 환영하는 문화행사가 열렸다. 남미 특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기타연주와 브라질 젊은이들로 구성된 한 밴드의 흥겨운 공연이 진행됐는데, 북의 일종인 잠베이의 통통거리는 소리와 단조로우면서도 경쾌한 노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사람들도 신이 났는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20대 젊은이부터 60대 노인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고 흥겹게 어울리는 자리였다. 앉아서 촬영하며 구경을 하다 보니 누군가 레몬주스같은 음료수를 건네줬는데 마셔봤더니 엄청나게 독한 술이었다.

 

술을 홀짝거리다보니 기분도 알딸딸해지고 용기가 생겨서 노래 공연을 마친 한 가수에게 다가가서 ‘음악CD를 선물로 사가지고 가고 싶은데, 브라질의 좋은 음악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로키라는 이름의 이 가수는 말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자기들은 음반을 아직 내지 않았다며 이달 말에 첫 음반이 나오면 선물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한국 주소를 영문을 적어서 전달해줬더니 한국어로 자기 이름을 써달라고 했다. 메모장에 반듯반듯하게 ‘로키’라고 썼더니 굉장히 신기하고 재미있어 했다. 한국어는 재미있는 글씨였나 보다.

밤 10시가 돼서 문화행사가 끝이 나고 시차적응이 덜 돼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혔다. 금세 스르르 잠이 들었고, 브라질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무사히 마무리 됐다.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는 일정은 다음날부터 시작됐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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