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브라질, 세계사회포럼을 가다 ②

 

상파울로 시의 한 빈민가 풍경

 

브라질의 이면을 보다 : 실업운동

 

 

* 이 글은 참소리에 연재하고 있는데 한달이 다 지나가도록 이제 세편을 썼답니다. -_ㅠ 아직도 세편이 남았는데....

 

17일, 브라질에서의 두근거리는 두 번째 아침이 밝았다. 일어나자마자 마주치는 룸메이트 칭을 비롯해 세면장, 식당에 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Good Morning'이라고 인사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밥먹었냐?’라고 인사도 잘하지 않는 내게는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프랑스 사람들은 괜시리 지나치면서 ‘사봐?’라고 묻는다. 칭에게 물어보니 영어로 치면 ‘How are you?'로 안부를 묻는 인사란다. 처음엔 영어로 ‘I'm Fine!, I'm OK!'라고 대답했다가 그냥 프랑스어로 ‘사봐’라고 대답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했더니 그들은 놀라면서도 무척 기뻐해줬다.) 조그만 바게트 빵과 햄, 치즈, 샐러드로 아침식사를 하고 더부룩해진 배를 안고 본격적인 브라질 현장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강당으로 갔다.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제출한 평가용지에 끄적거린 그림.
전편에서 말했듯 언어의 문제는 시작부터 고역이었는데, 둘째날이 돼서야 개인에게 닥친 더 큰 어려움을 깨닫게 됐다.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영어 총 4개 국어로 진행되는 설명회, 거기에다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설명회 도중에도 캠코더와 카메라, 녹음기를 들고 이쪽저쪽을 움직이느라 영어 통역자 옆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일단 음성녹음기는 통역을 맡아준 또 다른 ‘안나’라는 이름의 여성에게 맡겨놓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곧바로 설명회 내용을 이해하고 노트에 메모할 수 없으니 이만저만 심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또 나중에 약 40시간 가량 녹음된 내용을 확인하려니 음질도 이상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장난 아닌 상황이었다)

 

이렇듯 언어의 문제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읽는 이들에게 뭔가 정보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면 그건 순전히 이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변명하기 위해서다. 어쨌건 17일 오전 브라질 상황을 개괄적으로 소개해주는 설명회가 시작됐다.

 

 




브라질, 풍요롭지만 풍요롭지 않은 나라

 

설명회는 브라질의 사회, 정치, 경제적 상황과 가톨릭 실업운동과 여성운동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우리나라(남한) 면적의 85배가 되는 면적으로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로 1억 5천의 인구를 가진 브라질. 세계 15%의 물을 차지하고 있고, 자국 필요 90% 이상의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15개 이상의 언어가 있지만 오랜기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 이들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있다.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해줬는데 문맹률이 12%로 교육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이 있으며, 공립학교가 85%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립학교 문제가 브라질에서도 심각하게 떠오르고 있는 문제라고 한다.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한달에 1천 달러를 내며 사립학교에 다녀야 하는 실정으로 교육에 있어서도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 여성들의 조건을 설명하고 있는 활동가와 2004년 브라질 정당들에 대한 지지율.
경제적 상황에 대한 브라질 실업운동단체 활동가의 입장은 단호하다. “룰라가 당선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룰라가 대통령이 된 후, 약 3백만개의 많은 일자리를 빼앗겼다. 우리는 정부로부터 기대하지 않고 우리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리고 정부에게 압력을 불어넣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여성운동단체의 활동가도 브라질에서의 여성들의 조건을 설명하며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불신을 크게 표출했다. 브라질 전체 여성 중 8%만이 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5%만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으며 약 30%정도는 인터넷 자체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한다. 전체 여성중 26.7%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41%의 여성이 직업을 갖고 있고 나머지 인구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다. 그녀는 여성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조건으로 여성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와 성적대상화의 상품으로 브라질 여성을 세계에 알리는 미디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가톨릭 단체 중 하나인 PO에서도 가톨릭 사회운동의 현황을 설명했다. 그들은 “브라질의 교회가 싸워야 할 첫 번째 과제는 ‘경제적 정의’”라고 말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싸웠고, FTAA에 반대하는 투쟁 등에도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은 브라질에서 가장 커다란 종교가 가톨릭이지만 대부분의 소속 단체들이 사회변화에는 관심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가톨릭 사회운동 이론정립에도 힘쓰고 있다고 전한다.

 

한국을 떠나기 전 얼핏 읽었던 자료에 ‘더운 나라 국민의 특성상, 풍요로운 환경이지만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알아들은 내용들이었지만) 이들의 얘기를 들으며 엄청나게 왜곡된 정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보수 기득권층이 집권해 있다가 변화를 맞은 정치상황이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전세계적 흐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측면에서 한국과 브라질의 정치적 상황과 서민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물론 집권한 좌파정권에 대한 기대와 이 좌파정권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진행하면서 민중들이 받은 배신은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크리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브라질 상파울로에서의 실업운동 : 우리 힘으로 대안을 만든다

 

▲반갑게 방문객들을 맞아준 재활용공장의 사람들. 이들은 모두 실업자였다.
세시간 가량의 설명회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마친 후, 상파울로에 있는 실업운동단체(Worker Pastoral, 우리말로 하면 천주교 노동사목 정도) 현장을 방문하는 일정이 시작됐다.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이틀간에 걸쳐 약 다섯 개의 현장을 돌았다.

 

봉고차 정도 크기의 미니버스를 타고 상파울로 시내 인근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는데, 운전사 안토니오라는 50대 남성 역시 실업자로 있다가 실업운동단체를 통해 버스운전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는 학생들을 태워서 학교로 이동시킨다고 한다. (상파울로에 있는 동안 그를 계속 볼 수 있었는데, 아시아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 나와 뭔가 대화를 하고 싶어 했지만, 그는 영어를 몰랐던 관계로 인사말만 겨우 나눌 수밖에 없었다.)

 

실업운동단체 현장이 있는 곳은 부유층이 살고 있는 지역 바로 옆의 이피랑가(Ipiranga)라고 하는 빈곤지역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며 매우 길목도 구불구불 복잡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통역자 안나는 브라질에서 있었던 경험을 얘기하며 “인구 3백69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대도시인 상파울로는 지나친 도시확장의 부작용으로 어떤 목적지에 도시 중심부를 통과해서 오후 2시까지 도착하려면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설명해준다. 다소 과장된 감도 있지만 차가 가득 들어서 있는 도로를 보며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활용 공장. 잡지 등 종이 폐품과 가전제품들이 이곳에서 다듬어져 다시 판매된다.

첫 번째 들른 곳은 버스로 20분 정도를 타고 도착한 허름한 공장. 재활용 공장이라 했는데, 플라스틱병, 폐지, 가전제품 부품 등을 수거해 분리하고 그걸 되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고 있던 서너명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상파울로에 있는 많은 실업자들을 조직해 운영하고 있는 공장으로 이 근방에 있는 대부분의 실업자들은 이 재활용 공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조직구조는 의외로 탄탄했는데 조직분야에서부터 자신들을 인터넷 홍보하는 역할까지 세분화된 역할분담을 하고 있었고, 이는 대개 여성(주부)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실업운동단체에서 눈에 띄인 귀여운 아이들. 인터넷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엄마 덕에 카메라는 익숙할텐데도 낯선 동양인이 카메라를 들이대니 잔뜩 긴장해버렸다.

 

▲상파울로 이피랑가 지역에 있는 빈민가. 앞쪽의 건물들이 이들이 직접 지은 집.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빈민촌이었다. 안내를 해준 에드워드는 이곳이 완전 슬럼가는 아니라고 설명해줬지만 마을은 마치 공장폐부품을 모아놓은 것처럼 언덕들에 빼곡히 허름한 집들이 들어차 있었고, 그 외곽에는 깨끗한 집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처음엔 이 깨끗한 집들과 허름한 집들이 빈부의 격차를 드러내주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이 주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집을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처음엔 정부지원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직접 자신들이 결단을 내려 집을 지었다.

 

딸과 둘이 살고 있는 한 독신여성 활동가의 집을 직접 둘러봤는데, 약 13평 정도(내가 살고 있는 원룸과 거의 크기가 비슷해 보였으므로)되는 2층집으로 흙과 도색제 등을 직접 칠해 환경적으로 이로울 수 있는 집을 꾸몄다고 한다. 조직적으로 진행된 집짓기 작업. 그러나 빈민가 건물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그냥 거기가 좋다고 새집으로 이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상하지...)

 

마을 주변의 공터에서는 아주 낯익은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아이들이 연날리기를 하고 있었다. 연날리기 풍경은 이곳저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는데 어린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놀이로 보였다.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의 연날리기.

세 번째로 들른 곳은 실업운동센터로 앞서 둘러본 곳들을 포함해 실업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였다. 그곳에는 방문자들을 위한 판매 부스도 있었는데 십자수, 손인형 등 수공예품이나 빵과 과일 음료수를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주어진 일자리를 찾는 일도 하지만, 이 단체들은 대개 떨어지는 일을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생계를 위한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도 고민이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실업문제, 사회문제의 심각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이 운동에 동참하지 않아 젊은 세대가 많이 없는 것이 참 아쉽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현장을 둘러보면서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어린이들은 많이 발견할 수 있었지만 젊은이는 다음날 들른 연대의 집(Solidarity House)에서 본 몇명밖에 없었다.

 

자급자족이 1차적 목표, 실업자들의 농장

 

다음날 오전 연대의 집에서는 브라질 활동가들과 나를 포함한 방문자들간의 교류행사가 있었다. 브라질을 나누는 ABC 지역이라는 곳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이때 녹음기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지리적으로, 자연기후적으로, 문화적으로 구분되는 구역이라는 정도로 개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

 

▲고기로 가득찬 접시. 또 한그릇의 샐러드가 위장을 달래주고...

이들이 준비한 브라질 토속춤을 구경하고 함께 어우러져 춤추며 오전 시간을 마쳤고(정말 이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안내해준 커다란 레스토랑에서 뷔페식으로 차려진 화려한 점심식사를 했다. 한국에서도 늘 그렇지만 뭘 담아야 효과적일지 한 번 먹어서는 알 수 없는 나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마다 다 담았는데 나중에는 접시가 가득차서 적당량을 먹고 있는 다른 사람들 앞에 접시를 내놓기가 창피할 정도였고, 이걸 다 먹어치우는 것도 고된 일이었다. 차려놓은 음식을 보니 닭고기,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가 대부분, 조리법도 튀기거나 소스와 함께 삶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맛의 차이를 거의 구분하지 못했다.

 

▲실업자들의 농장. 넓지는 않지만 오밀조밀한 공간에 야채들을 정성스레 키우고, 건물도 세우며 모양새를 갖춰나가고 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는 실업운동단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농장을 방문했다. 짧은 귀로 자동차 산업 공단을 들른다고 들은 것 같았는데 알고보니 자동차 공장 등에서 해고된 실업자들이 공단 인근에 약 2년 전 직접 만든 농장을 들른다는 얘기였다. 농장은 그다지 넓지 않은 크기에 서너개씩의 줄을 이어 채소들을 심어놓았고, 이를 관리할 사람이 들어가 쉴 수 있는 조그만 움막 정도 였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채소들은 아직 자라기 직전이었다. 거기에서 디젤오일을 만들 수 있는 열매도 봤다. (한국에서 몇 년 살았다는 장 마리 씨가 장난기 섞인 얼굴로 설명을 해줬기 때문에 이것도 사실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이들이 택하고 있는 방식은 친환경적인 유기농. 직접 농사를 짓고 농작물로 빵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농장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빵의 재료를 외부에서 사와야 하는 상황으로 완전한 자급자족은 할 수 없지만, 머지않아 완전한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희망이다.

 

여러 가지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해 더 들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생계유지 차원을 넘어 더 나은 브라질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틀간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이틀간의 실업운동단체 현장방문 프로그램이 끝이 나고 평가 시간을 가졌다. 토론시간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각자의 소감을 종이에 적어 제출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록을 남기는데 무척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그림(맨 위)을 그리고, 한국과 브라질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느꼈으며, 브라질에서 '스스로 대안을 만들려는 노력들'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적었다. (문법이 엉망이어서 죄송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고)

 

▲브라질 젊은이들의 퍼포먼스 공연.
이어서 또 한번의 문화공연이 펼쳐졌는데, 브라질의 젊은이들이 토속적인 분장을 하고 춤과 퍼포먼스로 꾸며진 내용이었다. 거센 북소리에 맞추어서 춤을 추며 서로 싸우던 네명의 젊은이들이 싸움에 지쳐 서서히 쓰러져갈 무렵, 평화를 상징하는 여신인 듯 한 사람(통역자 안나였다)이 무대로 올라와 이들에게 푸른 잎사귀를 댄다. 이들은 다시 살아나 평화의 춤을 춘다.

 

브라질 단체활동가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담은 각국의 단체 다이어리와 술(!) 등 선물을 전달하고, 스페인에서 온 이들의 주도로 함께 '연대'를 상징하는 노래를 부르고 첫번째 이틀간의 일정을 마쳤다.

 

▲이틀간의 일정을 마친 후 마무리 행사.

내일(19일)부터는 3일간의 일정으로 땅없는 사람들의 운동 현장을 방문한다고 한다. 전기도 없고, 물도 간혹 나오지 않을 수 있으니 채비를 잘 해가지고 가라는 충고. 전기없는 삶은 정전될 때 빼고 겪어보지 않았던 내가 무려 사흘간의 일정을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토록 브라질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줄만한 사람들과 풍경을 만날 줄 누가 알았으랴. (다음편에 계속)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