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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찬디수쿠(2)

virus님의 [[인도네시아] 힌두교 (에로티시즘)의 이해... 찬디수쿠(1)] 에 관련된 글.

 

 

숙소를 옮기고 편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숙소가 있는 골목 초입에 있는 나시 캄푸르 가게에서 밥과 반찬을 골라먹었는데, 인도네시아에서 처음으로 두부를 먹어보았다. 간장과 설탕으로 조린 약간 퍽퍽한 두부가 어찌나 맛있던지. 만족스럽게 밥을 먹고 사원에서 간식으로 먹을 빵 하나와 파파야 한 줄 까지 샀는데, 4000루피아 밖에 안하는 것이다. 다시한번 감동!

 

어제 최악의 숙소에서 일하는 청년에게 들은 대로 찬디수쿠 찾는 길에 나섰다. 일단 가까운 큰 도로로 가서 터미널 가는 버스를 타야 했는데, 앙콕이 몇 대 보이긴 하나 어느게 터미널에 가는 건지, 어디서 타면 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몇 사람에게 질문을 시도해보았으나 의사소통은 어렵고... 결국 베챠 아저씨와 협상. 아무래도 지난 밤 숙소 사태를 기점으로 대중교통에 대한 의욕이 조금 꺾인 것 같기도 하다. 터미널에서 들은 대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역시 멋진 풍경들과 산악지대 농촌마을을 구경할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 하지만, 아무래도 여기가 아닌갑다. 찬디수쿠에 간다니 버스를 타고 다시 내려가라는 듯 하다. 중간 어딘가에서 내렸어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그냥 타고있었나보다. 뭔가 방만해진 게 분명하다. 터미널에서 요구르트나 하나 사먹으며 사람들 구경을 하다 버스에 올랐다. 역시, 아까 지나쳤던 터미널 같은 곳에 내려준다. 한번 더 버스를 타고 다른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 그야말로 작은 버스, 사람과 짐이 한무더기로 버스의 용량을 훨신 넘어 실려가다 수도 없이 타고 내린다.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하니 내려서 오토바이를 타라고 친절히들 알려준다. 내린 곳에서 바로 보이는 오젝 정류장엔 찬디수쿠로 가는 정가가 명시되어 있어 좋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꽤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갔는데, 마을 풍경도 그렇고, 내려다보이는 산골 논밭 풍경이 환상적이다. 돌아가는 길엔 걸으면서 찬찬히 봐야지 생각하고 기다리겠다는 오토바이 기사를 그냥 내려보냈다.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역시 초라한 매표소와 입구. 주변에는 수학여행이라도 온 듯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이 한창 떠들고 있다. 가이드북에도 그렇고, 여길 다녀왔었던 친구가 쓴 글에도 그렇고, 마야문명 유적을 떠올릴 수 있는 색다른 사원이라고 해서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 첫 번째 피라미드에 도착. 편의상 피라미드라고 부르지만, 꼭대기가 잘린 사각뿔 모양 (이 도형을 가르키는 단어가 따로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 안남)의 커다란 석조 구조물이다. 별로 보존 상태는 좋지 않지만, 뱀, 가루다 등의 조각이 꽤 괜찮다. 가운데는 꼭대기 까지 마치 통로 처럼 잘려있고 계단으로 연결된 제단 형식으로 되어 있어 안에 뭔가 있나 싶다. 안을 들여다보니 미처 생각도 못했던 남녀성기상이 있어 깜짝 놀랐다.

 

 

첫 피라미드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두번째 피라미드가 나오는데, 이건 거의 흔적만 남아있다. 보존이 다 되었어도 세 번째 피라미드로 가는 관문 정도의 의미만 있었을 것 같은 심플한 생김새다. 두번째 피라미드 사이의 통로 사이로 이미 세 번째 피라미드가 엿보이는데, 통로를 넘어서면 마지막 피라미드와 함께 앞쪽으로 늘어서있는 꽤 큰 석상들과 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인상적인건 역시나 세 번째 피라미드 앞에 버티고 있는 거북 상들. 거북이는 힌두문화에서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저렇게 평평한 등껍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 용도가 있었던 게 아닐까?
다른 조각들도 꽤 인상적이긴 했다. 생각해보면, 불상을 제외하고 뭔가 인격화(혹은 반인반수화) 되어 있는 신의 조각을 이런 사이즈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몇 개 되지도 않는데다, 배치가 뭔가 어설픈 느낌은 나에게만 있는 것일까? 피라미드 앞에 있는 구조물들도 꽤나 괜찮은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의식 등에 쓰였을 것 같기도 하고, 여하간에 다들 의미가 있겠지만, 왜 여기 있는지, 무슨 의미인지 등을 알 길이 없으니 답답했다. 그나저나, 마야 문명이라니, 마야 문명의 유물들을 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으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산위에 있는 거대석상의 이미지 아닌가? 그다지 거대하지 않은 석상들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사각뿔 앞에서, 배반된 기대 때문에 잠시 침울해질 뻔 했다.

 

 

 

 

 

 

 

 

 

 

마지막 피라미드는 계단으로 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여느 사원과 마찬가지로 신을 위한 거라 가파르다는 계단을 올라 꼭대기에 서보았다. 아래에서 보기 보다 꽤 높은 느낌. 하지만, 아쉽게도, 링가가 있어야 할 곳에는 구멍만 있다. 여기 있던 링가는 자카르타에 있는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에이, 여기, 오랜 역사도시 주변의 산 위에, 새끼 피라미드들과 자신을 위해 봉헌된 조각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서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박물관 유리장 속에 들어있어봤자, 돌로 만든 교차로 표시 같은 느낌 밖에 안날 것 같은데 하며 또 괜히 투덜거렸다.

 

 

 

 

그래도 신기한 조각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산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벤치에 앉아 준비해온 파파야랑 빵도 먹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사원에서, 우주와의 합일을 꿈꾸고 업에 따라 살고 성을 즐기는 이런 종교에 따라 살던 사람들은 참 맘편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과연 그 '업'이라는 게 각자에게 뭐였을지, 성을 즐겼을지, 지독한 남근중심주의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심심하신지 다섯시에 문 닫는다고 알려주러 네 시 좀 넘어 올라온 관리인 아저씨에게 사진도 한장 부탁했다. 어째 이 곳에 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느낌.

 

걸어서 내려가는 길, 경사가 심해서 무릎이 좀 아팠지만, 조용한 농촌 마을이 좋았다. 간간히 눈을 마주치면 웃어주는 동네 아주머니들, 묻지도 않았는데 버스타러 가냐며 방향을 알려주는 아저씨들. 버스는 한참을 기다려 탄 작은 버스에는 역시 사람 보다 큰 장에 가서 팔 것들이 많이 실려있었다. 터미널에 내려서는 한방에 솔로까지. 서쪽으로 가고 있는지, 빨갛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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